봄햇살에 홍매가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경상감영공원을 둘러보고
바로 옆에 위치한 대구근대역사관에서 특별기획 전시중인
동요의 귀환전(1907~1950) 겸 윤복진 기증유물 특별전을 관람한다.
경상감영 징청각
절도사이하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절도사이하계하마)
경싱감영공원 홍매
비림
목련과 홍매
대구근대역사관
동요의 귀환전 겸 윤복진 기증유물 특별전
윤복진(尹福鎭)은 일제강점기 "기차가 달려오네" "발자욱" "아기참새" 등을
저술한 아동문학가로 필명은 김수향 혹은 김귀환을 사용하였다.
이원수(李元壽), 윤석중(尹石重)과 함께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동요시인으로
10세 이하의 유년층을 상대로 하는 짤막한 동요시를 많이 썼다.
1907~1950
1907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희원보통학교와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아동문학 분과위원의 초대 사무장을 맡았었다.
아동문학가 윤복진의 생애
그러나 정부수립 후 좌익으로 몰려 곤란을 겪다가 6·25 때 월북하였다.
월북 이후 그는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현역작가로 있으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이다가, 1991년 타계한 월북작가로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잊혀진 작가였다.
그러던 중 2022년 윤복진 유족들이 대구광역시에 유품 350여점을
기증하면서, 그동안 월북작가로 인해 완전히 잊혀졌던 일제강점기의
동요 등을 새롭게 찾아내고, 당시 우리지역 예술인들의 모습들을 담아
"동요의 귀환전" 을 겸한 "기증유물 특별전"을 만나게 된것이다.
스므하로밤 (스무하루 밤)
스므하로 이밤은 월급타는밤 / 실뽑는 어머니가 월급타는밤
버드나무 숲우에 높은굴뚝엔 / 동지달 쪼각달은 밝아오는데
어머니는 어듸가 무엇하시고 / 이밤이 기퍼가도 안니오실까.
스므하로 이밤은 월급타는밤 / 실뽑는 어머니가 월급타는밤
자장자장 아가도 잠들지않고 / 논두렁 공장길엔 밤은 깊는데
이달품싹 모자라 눈물지우나 / 저달이 넘어가도 안니오실까.
1927. 작(作)
~ 일흔봄 ~ (이른 봄)
봄이라고 햇쌀은 포근해저도 / 아직도 압뒷산엔 눈이싸여서
다문다문 봄바람 일흔봄바람 / 오늘도 어린맘을 차게만해요.
해빗조흔 밧둑엔 풋나물돗아 / 마을에 아가색씨 풋나물캐도
보리밧 종달새는 바람차다고 / 고개만 갸웃갸웃 날질안어요.
~1928.2.24~
(위 왼쪽) 조암(朝岩) 박태철(朴泰喆) 가요작곡집(歌謠作曲集) 제1집 1934
(위 오른쪽) 어린이 노래 외 28곡
(아래 왼쪽) 갈닙피리(갈잎피리), (아래 오른쪽) 희망의 나라로 외
(위 왼쪽) 동요유희집과 조선일보의 유희강습회 사진 기사
(위 오른쪽) 첫솜씨로 만든 이 적은 노래책을 조선의 어린이들께 드리나이다
(아래) 윤복진, 박태준 작곡집 "돌아오는 배" 재간사(再刊辭) 중 일부와 작곡집
(오른쪽 위)무영당, 예술과 사람
개성출신 상인 이근무는 1923년 서성로에 무영당 서점을 세우고
1937년 5층건물로 신축, 백화점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일본인이 세운 이비시야백화점(1932년),
미나카이 백화점(1934년)과 함께 대구 3대 백화점중 하나였다.
(오른쪽 아래) 무영당의 예술 후원 활동
무영당은 지역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이었으며, 전시회와 출판기념회 등이
자주 열렸고, 농구대회 축구대회 등 체육행사를 주최했다. 또 여러 음악가의
연주회를 후원했으며, 나라와 지역에 큰일이 있을때마다 성금을 냈다.
(왼쪽 아래) 무영당의 예술관련 동아일보 기사(1934.10.20과 1933.11.26)
무영당 이근무사장이 후원한 예술인들
(위) 이인성,윤복진, 이상화,박태준
(아래 왼쪽) 이근무,박태준,윤복진. 1930년 중중때때중 출판기념 사진(무영당에서)
(아래 오른쪽) 이근무,윤복진,이인영. 19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