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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연극이였다.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 사실 연극을 보면서 꼬마 풍도역을 어린아이가 연기를 하는줄 알았다. 풍도역의 이지현님 어쩜 그리 사투리연기와 꼬마연기를 잘하시는지... 연극을 보고나서 알게되었는데, 8살 꼬마 풍도역의 배우 이지현님이 바로 31살 37kg의 여자분이셨다는것이 놀랍다! 정말 꼬마 남자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지현님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할아버지 강만역의 이도경님은 정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강만을 연기한다. 이도경님의 특유의 말투가 인상적이고 무뚝뚝해보이지만 정말 정감있게 느껴졌다. "무슨 일로 의절했는지는 몰라도 이 아인 할배 핏줄임더." "그래도... 할배 니도.. 내를... 좋아하는 거 같더라." "할배 니는 뭐가 제일 무섭노?" "정 드는 거." 늙은 자전거와 함께 손자 풍도와 할아버지 강만의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웃음짓게 한다. 아직도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가 귓가에 맴도는것 같다. |
^-^재밌게 잘봤어요 |
남지친구가 좋아 하는 거라 보게 되었는데..
연극을 마니 접해 본거 아니지만 영화보는듯한...
제가 영화속에 들어가 인물들을 보고 있는거 같았어요..
풍도 역하신 분도 넘 연기 잘하셔서 ..
정말 어린아이로 생각할 정도 였구요..
코믹만 보다 영화같은 연극은 첨 봤는데..
재밌고 감동도 있고.. 즐거운 시간 이었어요 ^0^
정말 재밌게 잘 봤어요..
늙은이같은 꼬맹이, 늙은 할아버지, 늙은 자전거가 함께..
영화에서 감칠맛나는 조연으로 입이 찢어질 정도의 웃음을 준 배우 이도경 !! 영화에서 촐싹거리며 오버하는 그의 연기와 간드러지지 못해 웃긴 대사.... 웃기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기에, 진지하고 슬픔이 가득한 그의 연기는 예상치못함에 관객들은 당황스럼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기게 더 큰 감동이 가슴으로 흡수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얼굴에 핀 주름만큼 노인의 굽은 등에는 고단했던 세월의 흔적이 가득 들어있을 것이다. 아직은 세월의 고단함이 노인보다 적은 꼬맹이는 할아버지의 주름과 굽은 등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사뭇 궁금하다.
편한 삶보다는 고생이 가득한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와 사회에서는 성공하지 못해 보이는 그의 인생여정과 함께 해온 늙은 자전거, 자전거또한 때깔이 좋은 그런 화려하고 한강변에서 아침운동을 함께하는 젊은(?)자전거가 아니다. 페인트칠은 벗겨지고,고철로 가기 직전의 늙은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오랜 벗이요, 인생의 동반자일 것이다. 그 늙은 자전거에 이제 인생을 시작하려는 꼬맹이... 세상물정을 다 알아버린듯한 꼬맹이같지 않은 꼬맹이와 인생의 허무함까지 알아버린 늙은 할아버지는 타고 남은 인생의 길을 함께 달린다. 내리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에 늙은 자전거는 숨이차고 힘에 겨워도, 자신과 함께 하는 친구( 할아버지, 꼬맹이)가 마지막 힘을 낸다.
늙은이같은 꼬마와 늙은 할아버지, 늙은 자전거.... '늙음'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이들은 힘겨운 인생의 길을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보여주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배우 이도경을 보면 킬킬거리는 웃음보다는 슬픔을 잘 표현하는 배우, 슬픔을 뒤로 숨겨놓고 웃음을 연기하는 그런 배우로 기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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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인생의 수레바퀴다.. |
할아버지와 소년이 펼치는 갈등과 화해의 푸닥거리
할아버지 강만에게 미래는 침몰되어 있다. 아들을 내팽개치면서 동시에 미래는 내동댕이쳤다. 하루살이 장사치의 궁싯거리와 굳게 닫아건 마음의 빗장으로 연명했다. 반면 손자인 풍도에게는 과거가 함몰되어 있다. 집나가 객사한 아버지와 전전긍긍했던 시설기관에서의 과거는 어린 풍도에게 과거는 지워져야할 대상으로만 있다. 이런 두 사람이 혈연이란 이름으로 동거가 시작되며 갈등은 증폭되어 간다.
풍도는 할아버지 강만에게 침몰한 미래를 마구 쏘아 올린다. 미래를 위해 장단지 돈을 훔치고, 팔리지 않는 올인원을 외쳐된다. 애시당초 장밋빛 미래가 아니었지만 강만에게 이런 풍도의 객스러움은 치밀어오르는 화에서 차츰 애증으로, 그리고 이해와 공감으로 융해된다.
한편, 풍도는 할아버지 강만에게 함몰되었던 과거의 자양분을 건네 받는다. 밉다고 내팽개쳤던 아들의 생일을 챙기며 그의 행동은 버릴지언정 그의 존재는 받아 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을 복원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그리도 끔찍이 싫어했던 ‘풍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자신의 자존감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이로서 둘은 잃어버렸던 미래를 만나고, 잊으려 애썼던 과거를 만난다. 하여 공존과 상생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관객을 안타깝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순간 이들이 사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미래를 꿈꾸는 게 아프고, 손자가 과거에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프다. 두 사람이 톱니바퀴처럼 빈 공간을 채워가는 순간, 그것이 상실의 아픔을 겪어야 하기에 안타깝다. 그래서 그 공존과 상생의 아름다움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할아버지와 소년은 이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천연덕스러운 푸닥거리로 놀아낸다. 늙음은 나이를 까먹어가는 것이고, 젊음은 나이를 얻어가는 것이란 말처럼, 할아버지는 아이같은 순진함으로 놀아대고, 소년은 노인같은 능숙함으로 까불어댄다. 하여 두 사람의 놀이는 한판 푸닥거리처럼 끝없이 들썩인다.
짊어지기에 무거운,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시작과 끝인 만물상 자전거
장터를 누비는 만물상자전거엔 삶의 편린들을 모두 담고 있다. 없어도 무방할 것 같은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너무도 아쉬운 물건들이 만물상 자전거에 담겼다. 마치 인생역경의 축소판같은 물건들이 한동안 할아버지의 손에서 이끌렸고, 이젠 손자 풍도의 손에 이끌린다.
할아버지가 끌기에도 버거웠고, 소년의 손에 이끌리기에도 다소 버겁다. 할아버지는 삶의 끈 하나로 자전거를 끌었고, 소년은 부푼 미래의 꿈을 안고 세차게 밟아간다. 할아버지가 끌던 자전거는 자신의 인생처럼 모터가 고장났고, 그래서 그 힘겨움은 맨몸뚱아리로 지탱했다. 소년 풍도에게는 신형 모터가 장착되었다. 하여 그 버거운 만물상에 희망이 보이고 미래가 보인다. 물론 할아버지를 잃게 되지만.
만물상 자전거는 끝없이 이들을 둘러싸고, 그 속에서 인생이 시작되어 그 속으로 마감된다. 모든 소품들과 이야기꺼리는 그 속에서 펼쳐지고 그 속에서 닫아진다. 하여, 만물상 자전거는 장돌뱅이의 판매대이자, 이들의 휴식처이며, 유랑극단의 수레이며, 마술사의 마법상자가 된다. 또한 할아버지와 소년의 인생의 축소판이며, 과거와 미래를 조우하게 하는 만남의 길목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꼴라쥬같은 풍경의 무대공간
할아버지와 소년의 만물상자전거는 두 사람의 시선에 비춰진 삶의 풍경들을 만난다. 두 사람의 시선에 그려진 풍경들이기에 과감히 생략되어 있고, 지극히 축약되어 있다. 자전거가 종횡무진하는 넓은 인생의 길과 들판 위로, 장터가 불쑥 자리잡고, 집과 병원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의 무대배경 속에 만물상자전거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행자의 시점에서 늘 그 자리에서 바퀴를 굴리고 있는 자전거 앞으로 새로운 공간과 환경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따라서, 인생의 꼴라쥬들이 자전거를 잔뜩 애워싸며 펼쳐지게 된다. 관객 모두 그 여정에 동승하여 공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첫댓글 앗! 이만희 선생님 작품! 꼭 보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