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사람들이 꿈꾸던 낙원의 이름은 낙토(樂土)였다. 낙토(樂土)는 말 그대로 슬픔도 분노도, 또 포학한 정치도 없는 '즐거운 땅'이다. 그런가하면 깊은 산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실재한다고 믿은 낙원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했다. 명산이나 경치가 좋은 장소에는 신선이 사는 숨은 낙원이 있다는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동천(洞天)은 계곡 깊은 곳이나 동굴 속에 있는 별세계(別世界)이고, 복지(福地)는 인간 세상의 재해(災害)가 미치지 않는 비옥한 땅을 뜻한다. 굶주림도 없고 전쟁도 피할 수 있는 선택받은 땅은 승지(勝地)이다. 우리나라에도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이런 승지(勝地)가 열군데 있다는 전설이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왔는데, 십승지지(十勝之地)가 그런 곳이다.
경북 봉화 석천계곡에 암각된 청하동천(靑霞洞天)
노자는 자신이 살던 동주(東周) 사회의 부조리한 정치 질서를 비판하면서, 전쟁과 억압이 없고, 빈부 격차가 없으며, 혹독한 세금도 없는 평화로운 이상 사회를 그렸다. 《도덕경(道德經)》에 서술된 이 이상 사회는 아주 작은 공동체 사회로, 인위적인 질서나 문명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대로 소박한 욕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원시적인 사회이다. 최소한의 기록을 위해서 결승문자(結繩文字) 정도를 사용하고 쌓아 놓은 재산이 없으니 그로 인한 다툼이나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곳이 바로 도가의 이상향이다.
노자가 꿈꾸던 세상은 동진(東晋)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에 의해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채색되면서 사람살이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바로 <도화원기(桃花源記)>에 그려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진나라 때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길을 잃었는데 떠내려 오는 복사꽃을 발견하고 꽃잎이 흘러온 곳을 찾아가 이상향을 발견하였는데, 그 곳의 모습이 이러했다.
서로 격려하여 농사에 힘쓰고
(相命肆農耕)
해가 지면 쉬는 집으로 가네.
(日入從所憩)
뽕과 대나무는 그늘 드리우고
(桑竹垂餘蔭)
콩과 기장을 때를 따라 심는다.
(菽稷隨時藝)
봄 누에 쳐서 긴 명주실 거두고
(春蠶收長絲)
가을에 수확해도 바치는 세금 없네.
(秋熟靡王稅)
황폐한 길이 왕래를 막았으니
(荒路曖交通)
닭과 개는 서로 울고 짖는구나.
(鷄犬互鳴吠)
제사는 여전히 옛법대로이고
(俎豆猶古法)
의복도 새로운 제도가 없으나
(衣裳無新製)
아이들은 마음껏 다니며 노래하고
(童孺縱行歌)
노인들은 즐겁게 놀러 다니는구나.
(斑白歡游詣)
풀이 자라면 시절이 온화할 줄 알고
(草榮識節和)
나뭇잎 시들면 바람 매서울 줄 아네.
(木衰知風厲)
비록 세시 절후의 기록이 없어도
(雖無紀歷志)
사계절이 절로 한 해를 이룬다.
(四時自成歲)
기쁘고 넘치는 즐거움 있으니
(怡然有餘樂)
무슨 일에 애써 지혜를 쓰랴.
(于何勞智慧)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이른 시기에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다양한 갈래의 문학으로 재창조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땅에도 다채로운 무릉도원이나 도화원이 생겨나게 된다. 무릉도원 사상이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진 동기는 분명하다. 중세 시대에 이 땅에서도 백성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으며 전쟁으로 인한 슬픔이 더하면서 이상 세계에 대한 열망을 낳았다.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어디엔가 있지만,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또한 폭력적인 현실 정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서 행복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지리산 어딘가에 있다는 청학동(靑鶴洞)이 고려 때부터 이상향으로 알려져 왔고, 제주도에는 이어도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꿈꾸던 이상향은 어떤 곳이었을까?
유가의 이상향(理想鄕)에 대한 상상력은 현실 세계를 이상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데 초점이 있다. 요순(堯舜)시대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 그 나라에서 구현하여 만백성이 태평성세를 노래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부패한 고려 왕조를 뒤엎고 역성혁명에 성공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이상국가 건설의 소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이상 사회라고 여겨졌던 주나라의 제도를 탐구하여 새로 만든 나라에 적용하여 이상적인 정치질서를 수립하는 꿈을 꿨다.
공자는 대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져서, 누구나 욕심내지 않고 공평하게 나눠 갖고, 도적도 없는 세상이 오는데, 이런 세상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에도 똑똑한 사람을 뽑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며, 서로 믿고 화합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분수에 맞는 일을 하게 하면 이상향인 행복한 나라인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대동세계는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사리사욕을 추구하기보다는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또한 국가는 민생의 복지에 힘쓰고, 국민들은 도덕과 윤리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는 사람들의 끝없는 인격 도야와 합리적 통치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가의 이상향과는 대별되며, 강력한 현실 개혁적 지향을 지닌다.
그래서 선비들은 유가(儒家)의 가르침에 따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통하여 사(士)로써 수신(修身)하여 제가(齊家)하고 관직으로 나아가 치국(治國)하고 평천하(平天下)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의 정치에서는 부도덕하거나 무능한 군주가 자리 잡고 있고, 관료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온갖 모함과 참소가 들끓고, 피 흘리는 정치 싸움 속에서 일신의 생사와 가문의 존폐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유가 사대부들에게는 세상을 피하여 홀로 수양할 수 있는 도피처 혹은 휴식처가 필요했다. 새소리 들리고, 맑은 물이 흐르며, 솔바람이 불어오는 강호자연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들도 무릉도원이나 신선들이 산다는 '막고야산(邈姑射山)'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곳들이 실재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대신에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면 무릉도원에 빗대어 노래했다.
지리산
조식(曺植, 1501~1572)은 지리산 계곡의 복숭아 꽃잎이 뜬 맑은 물을 보고, 박인로(朴仁老, 1561~1642)는 포항의 구인봉 절벽 아래에 있는 피세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그리고 조황(趙幌, 1803~?)은 제천에 있는 구학산 골짜기의 복숭아 꽃잎이 뜬 냇물을 보면서 무릉도원을 떠올리며 각기 이런 시조들을 읊었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전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 그림자 잠겨 있네.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딘가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명리(名利)에 뜻이 없어 베옷에 막대 짚고
물 찾아 산 찾아서 피세대(避世臺)에 들어오니
어즈버 무릉도원(武陵桃源)도 여기런가 하노라. (박인로)
구학산(九鶴山) 깊은 골에 도화유수 따라 드니
깊숙한 한 동천(洞天)이 무릉선원(武陵仙源) 아닐런가.
두어라 이 생(生)에 남은 세월 술 마시며 보내리라. (조황)
경북 봉화 석천정사(石泉精舍)
조선 선비들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실천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기고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은 정치 현실에서의 도피처로서 뿐만 아니라 자신과 대면하면서 심성의 수양을 통해 인격을 도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연 속에 흐르는 우주만물의 이치와 조화의 원리를 체득하면서 그 감회를 시적 언어와 여러 가지 예술적 방법으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람의 흐름’, 즉 풍류(風流)라고 불렀다.
경기12잡가 선유가 - 강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