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만든 고대 풍류 정신'
한국발 영화부터 음악, 드라마까지 이른바 'K-문화'가 세계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강화된 우리나라의 국력 또는 빠른 경제 성장과 비례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 원인이 한국인 특유의 '신명' 덕분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한류를 만든 고대 풍류 정신을 뒤쫓아 본다.
풍류 정신, 최고의 도에 이르게 하다
2021년 9월 9일,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ED:Oxford English Dictionary)에 ‘Chimaek(치맥)’, ‘Hallyu(한류)’, ‘Oppa(오빠)’ 등 한국어에서 유래한 영어 표제어 26개를 새로 등재했다. 그중 필자의 눈을 사로 잡은 것 중 하나는 ‘Fighting(파이팅)’과 접두사 ‘K-’였다. ‘Fighting’은 ‘전투적인, 싸움?전투’라는 뜻의 영어 단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쓰이는 ‘파이팅’은 ‘힘내자’를 뜻한다. 그래서 이런 뜻으로 ‘Fighting’을 쓰는 것을 두고 일부 지식인은 ‘콩글리시’라는 딱지를 붙였다. ‘K-’는 접두사로, 접두사는 어떤 단어 앞에 얹혀 그 단어의 뜻을 더 섬세하게 만드는 언어 요소이다. 접두사는 그것이 붙을 만한 단어만 있으면 언제든지 거기에 덧붙어 그 생산성을 발휘한다는 특성이 있다.
청량산에서 바라본 마산 앞바다
K-drama’, ‘K-pop’, ‘K-food’ 등 한국발 ‘K-’는 바야흐로 세계 문화의 중심부로 등장할 태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한류가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그것이 한국인 특유의 ‘신명’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신명의 원류는 ‘풍류(風流)’라 믿는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풍류는 최치원이 지은 ‘난랑비(鸞郞碑)’ 서문에 나오는 말로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이른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가 그것이다. ‘현묘한 도(玄妙之道)’는 최고 도의 다른 표현이다. 풍류의 내용을 제대로 알려면 그다음에 나오는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을 이해해야 한다. 앞부분은 ‘실로 이는 삼교(유교·도교·불교)를 포함하여’로 쉽게 이해되지만 ‘접화군생(接化群生)’은 바로 와닿지 않는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필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군생은 뭇 생명체이니, 접화군생은 풍류가 뭇 생명체로 하여금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한다 [化]’라는 것이다. ‘어떤 상태’란 유교적 치화(治化), 도교적 조화(造化), 불교적 교화(敎化)로, 요약하면 우리나라 전래의 풍류 사상은 잘 수련만 하면 모든 유생류(有生類)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左)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적 경주 포석정지는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右)충남 보령시 월전리에 자리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최고운유적,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한 최치원은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 머물며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에 한시(漢詩)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고국을 향한 신의(信義)를 지킨 고운 최치원
이 같은 본유적 의미의 풍류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풍류와 거리가 있다. 현재의 우리는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을 풍류로 알고 있다. 이는 풍류 본래의 뜻 중 어떤 한 부분만 강조된 결과이다.
이런 일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이 신라의 화랑도 정신이다. 화랑의 수양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①상마도의(相磨 道義) ②상열가악(相悅歌樂) ③유오산수(遊娛山水)이다. 많은 학자가 주목한 것처럼 이런 화랑정신이 풍류와 밀접하게 관계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서로 도의를 닦는다는 것이 상마도의이고, 서로 노래와음악을 즐긴다는 것이 상열가악이며, 산수 좋은 데를 찾아 노닌다는 것이 유오산수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수양 방법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화랑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①이고, ②와 ③은 ①을 추구하는 데 동원된 방법과 수단이다. 다시 말해 상마도의가 주목적이고, 상열가악은 상마도의를 위한 휴식의 한 방법이며, 유오산수는 휴식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게 하는 수단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목적인 상마도의 정신은 풍류의 본 의미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반면에 그 방법이고 수단인 상열가악과 유오산수가 강조되는 느낌을 준다. 위에서 필자는 풍류의 본질이 도의를 닦는 것 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풍류’라는 말을 후세에 전승한 최치원을 예로 들어 그의 풍류가 어떤 것이었는지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그는 ‘①신라 왕실, 문한의 길 ②변방, 지방관의 길 ③소요자방, 자유인의 길 ④은둔, 천화의 길’을 걸었다(『최치원의 풍류를 걷다』,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가 쓰러져 가는 고국 신라를 다시 부흥시킬 생각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신라의 유학파 천재들이 후백제나 후고구려(고려) 실권자의 복심이 되어 자기들 생각을 마음껏 펼쳤던 것과 대비된다. 안 먹힐 것이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바쳤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함께 망해 갈망정 고국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신의(信義)는 최치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였고, 그것은 바로 풍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左)『고려사약지』에 전하는 「자하동」. 『고려사』의 시중 채홍철은 자하동에 살면서 그가 놀던 당(堂)을 중화당(中和堂)이라 하고 매일 원로 들을 맞아 즐겼으며, 「자하동」을 지어 가비(家婢)에게 부르게 했다고 한다. 「자하동」은 조선시대 선비가 풍류를 읊은 시를 노래로 부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右) 2021년 전 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오징어게임>. 한국인의 풍류 DNA는 한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진. 넷플릭스)
넘치는 에너지 속에 담긴 풍류의 기원
경남 창원(마산)은 합천과 더불어 최치원의 숨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합포(合浦. 마산의 옛 이름)에 그 의 별서(別墅)가 있었다는 『삼국사기』 속 기록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합포 별서와 함께 월영대(月影臺), 고운대 (孤雲臺)도 마산에 남아 있는 유명한 사적이다.
그 옛날 마산 앞바다는 천하의 절경이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합포만 변두리로 십리 백사장이 펼쳐졌고, 밤이면 앞바 다에 달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마산은 매립으로 흉하게 망가지고 만다. 그리하여 현재의 월영대는 육지 한가운데 고층 건물 사이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고운대는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두척산)의 한 봉우리에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 없이 터만 남았고 그곳이 고운대였음을 알리는 표지판만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보면 저 멀리 거제 앞바다도 한눈에 들어온다. 최치원은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쓰러져 가는 고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한에 몸부림치지는 않았을까. 이 또한 풍류의 한 양상이었을 것이니, 이처럼 풍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도리 지키기를 그 기본으로 하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고운 최치원과 조선 중종 때 관리였던 신짐(申潛)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적 정읍 무성서원 (사진.문화재청)
시대가 흘러가며 풍류의 의미는 변해 갔지만, 그 속에는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 있다. 필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운 혹은 에너지라고 믿는다.
삼교의 정신으로 도의를 닦는 것은 정신적인 기운일 것이다. 풍광 좋은 곳을 찾아 시를 읊조리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 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 기운일 것이다. 이것저것 다 던져 버리고 그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육체적 기운일 터이다.
최치원은 일찍이 한국 사람들의 피 속에는 이런 넘치는 에너지가 있음을 알았고 그리하여 ‘현묘한 도’인 ‘풍류’가 있었다고 갈파(喝破)했음이 분명하다.
콩글 리시를 잉글리시 본국에 역수출하고 ‘K-’ 접두사를 탄생 시킨 저력은 풍류 DNA를 타고난 한국 사람들의 역동적인 에너지 덕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대가 흘러가며 풍류의 의미는 변해 갔지만, 그 속에는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 있다. 필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운, 혹은 에너지라고 믿는다.
평양가 - 강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