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7시가 넘어선 시각, 서울 태평로 시청광장 에서는 하얀 소복에 흰 천을 휘두르는 무용수의 온몸을 다 바친 한 폭의 그림이 공중을 날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 살풀이 춤사위가 펼쳐졌다. 추모시와 추모의 노래도 함께 울려 퍼졌다. 광장 한편에 마련된 분향소 에서는 진한 국화향내와 함께 참배 객들의 추모와 애도의 행렬도 계속 이어졌다.
▲ 불의의 참사로 비명에 숨져간 미 버지니아 공대생들의 희생을 아파하며 이들의 넋을 달래기위한 추모 촛불집회가 21일 저녁 서울 시청 광장에서 1천여 애국단체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개막에서 김문애 교수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를 추고 있다. ⓒkonas.net | |
이 날 시청 광장에서는 지난 16일 미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계 학생 조승희 군에 의해 자행된 미 역사상 한 개인의 범행으로는 가장 큰 33명의 젊은이들을비명에 숨져가게 한 아픔을 추모하고자 시민단체 연합으로 '버지니아공대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촛불집회'가 열렸다.
▲ 간절한 기도로... ⓒkonas.net | |
대한민국재향군인회와 선진화국민회의, 자유시민연대, 기독교사회책임, 국가비상대책협의회,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유보를 위해 서명운동에 진력해 온 248개 단체들이 긴급히 추모 촛불집회를 마련했다.
이들 단체가 이 날 추모 집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추모행사를 갖고 있지만 범 시민단체가 참여해 집회를 가짐으로써 한국국민들이 미 국민의 아픔에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해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동포사회에 보내는 위로와 격려 메시지와 더불어 자칫 더 큰 인종차별이나 반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역풍을 사전에 차단하는 취지도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추모 촛불집회에는 서울 경기, 인천지역 재향군회원을 포함해 애국시민단체 등 1천 여명이 시청 앞 평화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혀 채 피지도 못하고 숨져간 젊은 영혼들의 넋을 위로했다.
추모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얼굴에도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한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어서 인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듯 모두가 숙연하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요한 분위기 아래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화여대 김문해 교수의 진혼춤이 이어진데 이어 각 단체 대표의 추모 헌사와 김지하 시인의 추모시, 한양대 고성현 교수의 추모노래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애틋해졌다.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아이들과 학생들도 행사장 군데군데 촛불을 들고 앉아 시종 침통한 표정으로 함께 참석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또 행사가 끝난후 국화꽃을 희생자들의 사진 앞에 바치고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 행사가 끝난후에도 어린이를 비롯한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konas.net | |
버지니아 공대 동문인 이원우 서강대 교수는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하다는 버지니아와 자신이 다녔던 공대를 언급하면서 한마디로 '용서를 비는 심정'이라면서 비명에 숨져간 젊은 넋의 영혼을 위로했다.
전국학부모 모임 함이연 대변인은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되짚고 반성하고 자성해봐야 한다" 면서 숨져간 영혼들에 대해 보듬어야 할 벗이고 책임을 함께 통감해야 된다고 마음 아파 했다.
▲ 학부모 모임 대변인 함 대변인. ⓒkonas.net | |
그는 이어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듯이 한국민은 끝가지 고인들을 추모하고 잊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한다는 말과 더불어 평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했다.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은 애도사를 통해 "미 버지니아 공대 무차별 총격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명복을 빌고 부상자와 유가족, 미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유치로 자긍심과 재도약의 부푼 꿈을 안고 있는 국민에게 당혹감과 수치심을 안겨준 희대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 박세직 향군회장. ⓒkonas.net | |
박 회장은 이어 "1950년 6·25전쟁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14만여명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우리를 도왔고, 휴전이후 반세기 동안 한반도 평화를 지켜주고 한국의 비약적 발전을 도와준 혈맹의 우방이 미국"이라며, 한미 관계를 거론하고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인종문제를 부각하지 않은 성숙된 미 국민의 자세와 여론에 대해서도 신뢰의 뜻을 표명하고 지난 2002년 훈련중인 미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 미선 양 사망 사건을 계기로 반미단체들에 의해 촉발된 촛불시위와 反한 감정 증폭 사례를 비교했다.
박 회장은 또 "이번 참사가 슬픔의 강을 건너 동맹과 친선의 대지가 더욱 단단하게 굳어지는 계기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자" 며 "손에 손에 애도와 위로의 촛불이 들려지고 미 국민들과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진심이 태평양을 건너 미 국민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정성을 모으자" 고 호소했다.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높인 김지하 시인은 문용식 시인이 대신 낭송한 추모 헌시를 통해 "한없이 슬프다. 우리가 당신들을 죽였다. 참회의 눈물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는 추모로 고인들을 위로했다.
최해일 목사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한 기도를 통해 지난 우리시대의 암울했던 역사와 그 과정을 벗어나게 한 기성세대의 역할과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세대간의 격차를 조명하고 기성세대로 하여금 확고한 의식으로 요즘의 세대가 분명한 자기 의식, 특별히 친북 좌경의식에서 깨어나게 해 줄 수 있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간절한 음성으로 올렸다.
추모행사는 한양대 음대학생들의 '사랑으로'를 전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면서 버지니아 공대에 보내는 성금을 모금하는 순으로 1시간 여에 걸쳐 끝이 났다.
한편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이 언론사 사진기자들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증평정보고 1학년 서규정 양과 무학초등학교 6학년 신시현, 2학년 신지은 양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장 한쪽 편에 마련된 추모 글씨 쓰기 란에 자신들의 마음을 담은 글을 적었다.
▲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헌사를 작성하는 란에 서 양등 어린 학생들이 함께 글을 작성하고 있다. ⓒkonas.net | |
서양과 신양 등은 여기에 남긴 글에 '우리나라 사랑, 용서해 주시고 하늘나라 가서 행복하세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명복을 빕니다' 라는 글을 남겼다.
▲ 추모헌사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란 글 귀등이 한없이 우리를 부끄럽고 슬프게 만들게 있다. ⓒkonas.net | |
이 날 오후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험에 응시하고 오다 마침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는 행사장이 있어 함께 참석하는 것이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참석했다는 신 양 어머니 말처럼 신시현 양은 "우리나라 사람이 잘못한 것 같아요.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참석하고 글을 썼어요"라고 천진한 얼굴 표정 한 가운데서도 미안해하는 마음이 깃들여 있었다.
▲ '저희들도 함께 합니다' 서 양등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konas.net | |
추모행사장은 휴일을 맞아 등산을 다녀오는 듯한 사람 등 등산복장과 배낭을 멘 사람들도 다수가 눈에 보였으며,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도 다수의 시민들은 분향소에 국화꽃을 헌화하는 등 아픈 마음을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이 날 행사장은 외신을 비롯한 국내외취재진들의 취재열기도 대단했다.(Konas)
이현오 기자
▲ "당신들을 추모합니다. 부디 평안히 가세요". 추모식장에 참석한 한 여성이 추모의 촛불을 들고 애끓는 마음을 한곳에 담고 있다. ⓒkonas.net | |
▲ '평안히 가시기를' 행사장에 불을 밝힌 추모의 촛불. ⓒkonas.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