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자애심 올가미 꽃이 피고 열매를 수확한 후 땅을 파서 뿌린 씨앗을 찾는 사람은 없다. 씨앗은 없어진 게 아니라 싱그러운 잎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맛난 열매로 바뀐 거다. 땅속이 아니라 꽃이나 열매 안에 있고 그 안에는 한 개가 아니라 수십 배 많은 씨앗이 있다.
예수님은 자연의 이 순환과정을 가리키며 우리 생명과 삶도 그러하다고 가르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하느님 말씀, 신앙, 성사로 받은 은총은 씨앗과 같아서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씨앗은 보관소가 아니라 땅에 뿌려져야 하고, 우리 믿음은 성당 안이 아니라 세상에서 실천되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낸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멋진 말이나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이다.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5-17).”
오늘 기념하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한 그 유명한 말을 되새긴다. 성인은 258년 무렵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교회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가 ‘이들이 교회의 재산이다.’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이 그를 불태워 죽였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주었다.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남을 위한 존재가 될 때 아름답고 완성된다. 사랑은 남을 위한 행동이다. 사랑은 남을 위해 움직이는 거다.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남을 위한 존재가 되어 간다. 자애심(自愛心)이 사랑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뿌리다. 사랑이 자신 밖을 향해야지 그 반대가 되면 자신 안에 갇혀 성장하지 못한다. 자애심의 포로가 되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기회를 만들어서 실천하고 사랑해야 한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그 주인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은 종이나 두 탈렌트를 더 벌은 종이나 똑같이 칭찬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23).” 하지만, 탈렌트를 땅속에 숨겨 두었던 이는 받은 탈렌트는 빼앗기고 저주를 받는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30).”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예수님, 제 의지만으로는 자애심이라는 이 굵은 밧줄을 끊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친밀과 우정이라야 이 올가미를 벗길 수 있습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이 불에 달구어진 석쇠 위에서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 했다는 전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스테파노 성인에게 하늘 문을 열어 주님을 보여주셔서 돌에 맞는 고통을 잊게 해주셨던 거처럼, 주님을 사랑하여 자애심에서 풀려나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사랑이 저에게 하는 요구에 예라고 대답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