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에는 흔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사가 존재했다.
대표적인 여기사단으로는 "자귀 기사단",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일부 종교 기사단이나 국왕이 창설한 기사단에 여성이 기사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여기사가 있었던 대표적인 기사단으로는 튜톤 기사단, 구호 기사단 등이 있다. 국왕이 창설한 기사단 중 여성이 기사로 입단이 된 케이스가 있는 경우는 네덜란드의 귀족 출신의 여성만이 입단할 수 있었던 여기사단이나, 왕족 여성 등의 입단을 허용했던 영국의 가터 기사단 등이 있다. (가터 기사단에는 역사상 총 68명의 여기사가 입단을 했다.)
*여기사가 될 수 있는 방법
1) 전공을 크게 세우는 경우
전공을 세운 여성들이 기사단에 편입된 경우는 최초의 여기사단 중 하나인 자귀 기사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149년 바르셀로나 백작이 이슬람 세력과 치열한 전쟁을 벌일 당시에 토르토사 성에 살던 여성들은 이슬람 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고 그 결과로 토르토사 성을 지켜냈다. 바르셀로나 백작은 그 공로를 인정해서 당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여성들을 모아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그들의 여성 자손들에게 그 기사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특권 및 면세권을 하사했다. 이 밖에도 개인적으로 전투에서 용감히 싸워 기사 작위를 받은 여성들도 드물지만 가끔 등장하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에서도 일부 여성들은 직접 무기와 갑옷을 들고 사라센 군과 싸운 사례도 존재한다.
2) 여성의 입단을 허가하는 기사단에 입단하는 경우
여성만을 받아들인 종교기사단은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이 대표적 이었다. 1261년 볼고나 백작이 당시의 교황 알렉산더 6세의 허가를 받은 이 기사단은 단원 전부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종교 기사단 이었다. 그러나 이 여 기사단은 1588년 당시 교황이던 식스투스 5세가 폐지하게 된다. 이 밖에 남자 기사단에도 여성의 입단이 허용되는 곳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기사단은 튜톤 기사단 및 구호 기사단이 있다. 튜톤 기사단에 입단허가가 난 여기사들은 대게 전투에 나가기 보다는 행정업무나 기사단 내의 규율 유지, 부상자의 간호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맞는 것이 보통이었다. 구호 기사단 같은 경우에는 아예 여기사 들로만 이루어진 기사단이 따로 존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스페인의 산 티아고 기사단에서도 여기사의 입단을 허가했다. 여기사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여기사의 허가를 허용한 군주의 기사단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네덜란드의 귀족여성만이 입단할 수 있었던 기사단이 그 대표적인 예고, 영국의 가터 기사단도 귀족여성의 입단을 허가했다. 유명한 쟌 다르크 도 여기사에 포함시킬 수는 있지만, 실제로 쟌다르크가 무슨 작위를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쟌 다르크의 가족에게 귀족 작위가 하사된 것은 알려져 있는데 이 작위는 특이하게도 여성에게만 작위의 세습이 허용되는 작위였다.
이렇게 중세유럽에는 소수긴 하지만 여기사단이나 여기사가 존재하기는 했다. 이러한 여성기사단들은 르네상스 들어 여성에 대한 규제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둘씩 사라지게 된다.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