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장군계(上將軍系) 인동장씨(仁同張氏)
- 우리 인동장문(仁同張門) -
2) 직제학계(直提學系) 인동장씨(仁同張氏)
조선초기(朝鮮初期)에 5개파(個派)로 분파(分派)되어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榮州), 예천(醴泉), 문경(聞慶)과 충청북도(忠淸北道) 단양지역(丹陽地域)에 살며, 연복군장말손(延福君張末孫)의 후손(後孫) 중에는 본관(本貫)을 인동(仁同)과 옥산(玉山), 영천(永川) 세 가지를 써왔다.
3) 문숙공계(文肅公系) 인동장씨(仁同張氏)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의 계(系)는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을 1세조(世祖)로 하고 상장군계(上將軍系) 인동장씨(仁同張氏)와 계대(系代)를 못하고 있으나, 국가사기(國家史記)로 찬집청(撰集廳)에서 편찬(編纂)하고 홍문관(弘文館)에서 교정(校訂)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인동읍지(仁同邑誌), 옥산지(玉山志), 의고대방(典故大方), 씨족통고(氏族通考) 등 씨족(氏族)에 관한 여러 문헌(文獻)에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을「인동장씨(仁同張氏) 시조(始祖) 삼중대광공(三重大匡公)의 후손(後孫)이라」하였다.
4) 장수명계(張壽命系) 인동장씨(仁同張氏)
안동장씨계(安東張氏系)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태사(張太師)의 장손(長孫) 장금선(張錦善)의 후손(後孫) 장수명계(張壽命系)로, 본관(本貫)을 안동(安東)과 인동(仁同)으로 쓰는데 함경도(咸鏡道)의 함흥(咸興)과 영흥(永興), 북청지방(北靑地方)에 사는 장씨(張氏)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족보(族譜)를 해오다가 뒤에 인동(仁同)으로 개관(改貫)하였다.
5) 흥성(興城) 장연좌계(張延佐系) 인동장씨(仁同張氏),
흥성장씨시조시랑장유(興城張氏始祖侍郞張儒)의 둘째아들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연좌(張延佐) 계(系)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연좌(張延佐)를 옥산군(玉山君)에 봉(封)해졌다 하고, 옥산장씨(玉山張氏)라 하다가 관적(貫籍)을 인동(仁同)으로 하였다고 하나, 흥성장씨(興城張氏)와 족보(族譜)를 같이하고 있다.
6) 예빈경(禮賓卿) 장용서계(張龍瑞系) 인동장씨(仁同張氏)
고려말예빈경장용서계(高麗末禮賓卿張龍瑞系)-혹(或)은 용서(用瑞)-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과거(過去) 장연(張淵)이라고도 하고 주(主)로 이북(以北)-평안도(平安道)-에 많이 살며 8․15해방후(解放後) 월남(越南)한 사람들이며, 이로보아 태사공장정필(太師張貞弼)의 둘째손자 기(記)-혹(或) 기(紀) 혹(或)은 기(杞) 개명금용(改名錦用)-의 자손(子孫)으로서 본관(本貫)을 인동(仁同)으로 쓰는 사람의 거항(居況)은 알 수 없고 옥산(玉山)이라 하였다가, 지금은 인동(仁同)으로 많이 쓴다.
인동을 관향으로 하는 또 다른 장씨가 더 있는지 매우 궁금 합니다.
첫댓글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6개 인동장씨 중, 문숙공계(장계임계)는 우리 집안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제학계 문숙공파로 기록된 사실이 誣系라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辱及先祖에 다름 아닌데... 이해하기 어렵네요...
모두가 처음을 알수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그냥 각자의 주장을 비판없이 들어주고 다른쪽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가장 좋을것 같다는 소견입니다. 문제는 다른쪽을 말함 일 것입니다.
시조를 달리하며 같은 관향과 성씨를 쓰는 系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 해 듣고 대단히 궁굼했는데요... 소중한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동안 많은 의문으로 남던 '용천파'는 6개 관향을 쓰는 장씨 중 '예빈경 장용서계'란 사실을 알게 됐고, 조선말엔 우리 집안 공식으로 인정한 파는 27개 였는 데 현재는 25개 파만 인정 하며, 2개 파 중 '성주파(星州派)'는 단불입(單不入)으로 대동보에 표기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남은 1개 파는 '안주파(安州派)'인데 확인하니 '함평파' 분파조이신 휘 백림 부군의 네째 아드님인 휘 '효익(孝翊)'이시며,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증암리'가 선영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