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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창밖만 바라보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지난 여름을 아쉬워 하는 분들도 많으신 듯 싶네요.
제법 빨리 날아온 민들레 76호를 다들 무척 반갑게 반기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방학동안 쉬었던 민들레 읽기 모임을 76호 모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학교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이번 76호를 우리 독자분들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76호 모임에는 '허당 선생, 공부를 논하다' 를 연재해 주셨던 필자 이한선생님을 모시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민들레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에겐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시지요.
지금의 민들레를 탄생하게 한 최초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를 넘어서'( http://bit.ly/nqgM8m ) 의 저자이자
현재는,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시민교육센터 (http://www.civiledu.org/) 와 변호사 일을 하고 계시답니다.
이한 선생님과 함께 진정한 '공부' 에 대해 서로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9월을 시작하는 첫번째 주말, 민들레와 함께 배움의 도를 논할 수 있는 자리에 많은 분들의 참석 바랍니다.
참! 민들레가 성산동 경성고 앞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새롭게 이사한 곳엔 너른 마당은 없지만, 근사한 북카페가 있답니다.
그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9월을 여는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 때 : 2011년 9월 3일 (토) 오전 10시30분
* 곳 : 경성빌딩 2층 '공간 민들레' (이사한 민들레 위치를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문의 : 제비꽃 (010-3208-7270) 민들레출판사 (02-322-1603)
2호선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06번 타시고 경성고 입구에서 하차후
오른쪽에 유료주차장 건물이 보이고 그 뒷편 경성빌딩 2층 입니다.
http://www.mindle.org/xe/39802
이한 선생님이 9월 중 '허당 선생의 공부하는 법' 책 출간을 앞두고 퇴고 중이라고 하십니다. 시민교육센터 누리방에 서문이 공개되어 있는데 이한 선생님을 만나기 전, 읽어보고 오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둡니다. (원문: http://www.civiledu.org/392 )
저는 13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까?”라는 고민을 죽 해왔습니다. 이 책은 그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 즉 “요령”을 시시콜콜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그럼 14년 전까지는 왜 고민을 안했냐?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전에는 제가 공부를 잘 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한다고 폼을 잡았던 많은 시간들이 결국 ‘허당’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제가 잘난 체 하느라 꿰지도 못할 정보를 이리저리 읽어대고, 혼자 깜냥으로 생각하면서 뭔가 대단한 걸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 전적으로 제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공부에 대해 양 극단의 오해가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극단은, “시험준비”를 공부 본연의 모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착각에 따르면 진지하고 흥미로운 진짜 문제 해결과 공부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착각은, 책만 찾아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퀴즈’들을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낼 준비를 하는 것 가치 있는 활동으로 취급합니다. ‘흥미로운 문제 해결에 필요한 도구를 습득하는 일’과, ‘무의미한 정보를 꼬아서 연결한 퀴즈를 풀 준비를 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통합 교과라고 하면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지역을 새까맣게 표시해놓고, “이 지역에 노비들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저기 영국 지도에 색칠해놓은 저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라고 묻습니다. 세계사와 역사를 통합시켰다는 식입니다. 물론 같은 지도를 놓고 ‘텅스텐은 B지역에서 많이 난다’고 한 지문까지 포함시키면 한국지리까지 통합시킨 그야말로 훌륭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이런 종류의 ‘퀴즈 풀이’에 대해선 달인, 그것도 전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공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 오해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오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점수가 높게 나왔다면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인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가정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메아리치고 있을 ‘공부 좀 해라, 공부!’라는 말은 실상 ‘퀴즈 풀이에 대비하라, 퀴즈 풀이! 어서! 빨리!’로 교체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 반동으로 반대 쪽에 있는 극단의 오해가 생겨났습니다. “구조화되지 않은 체험”을 공부 본연의 모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착각에 따르면 주의깊게 짜여진 적절한 ‘반복훈련’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리저리 여러 가지 해보면 되고 문제가 던져지면 혼자 무정형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답이 나옵니다. 그것이 곧 ‘삶에 밀착한 공부’ 또는 ‘창조적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합니다. 이 오해의 전통에 잘못 물들면 반지식인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전문적 지식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이 대중에게 잘난 척 하려고 개념의 산을 쌓아올린 것에 불과하다며 비난합니다. 물론 그런 허위의 개념 산들은 존재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렵지만 유용한 산과 정말 쓸데 없는 산을 구별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깜냥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추었기 때문에 자신은 이미 배울 것을 다 배웠다고 생각하니까요. 거기다 이리저리 기발하고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툭툭 던지면 다 ‘창조적’이다라고 칭찬까지 합니다. 제약 조건이 없는 생각은 무정형의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몽상에 불과한데도, 창조성이란 의식흐름기법에 의해 아무렇게나 끄적인 ‘낙서’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엄밀한 제약 조건 하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조’ 같은 것이라는 점을 놓치는데도, 그걸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습니다. “정답은 없고 의견이 다를 뿐이다”라는 입증되지도 않은 형이상학적 교리를 암송하면서 어떤 의견이 더 타당한지 집중해서 보지 않습니다.
이 두 오해가 공히 가장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치입니다. 정치가들이 하는 말과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일 수 있게 되면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반대의 극단에서는, 정치가나 언론이 하는 말과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신은 ‘스스로 생각해서’ 알게 되는 지식에 접근했다고 착각합니다. 그 결과 누구나 정치공동체가 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을 삼척동자들도 씹어댈 수 있는 노가리 수준으로만 생각합니다.
제 공부 인생은 이 양 극단에서 한번씩 토스 당하면서 허당이 되었습니다. 제가 ‘불만’이 많은 인간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에 대해 손쉽게 제시된 답이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 결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어쨌든 ‘문제’에 관심의 끈을 놓치 않고, 문제를 풀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서서히 공부를 얕게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알아가고 싶은 분야의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물론 직접 만난 것은 아니고-걔 중에는 알현의 기회가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모두 책으로 알게 된 분들입니다. 당연히 상당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발톱 끝에도 미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건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졌지요. 그렇게 주눅이 든 상태로 있다 보니, 스스로에게 너무 낮은 한계를 긋게 되고 공부도 딱 그 어렴풋한 한계만큼만 되어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그 부작용을 직시하게 되자, 약간 사고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공부는 요령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너무 가볍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에는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한탄해 보았자 별 수 없는 것이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한탄한다면 사고 방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머리 속도가 느려서 의미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거야”. 이 생각은 인생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게으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게으름 유전자가 내 몸속에 박혀 있거나 귀차니즘 귀신이 들러붙어서 지금 이 순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가? 머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무엇인가? 머리가 이보다는 더 빨리 돌아가지 못하게 무슨 칩이라도 박아 두었단 말인가?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라는 질문의 “왜”는 부정적인 힘을 지닙니다. 실상은 “왜 나는 공부를 못하도록 태어났거나 양육되었을까?”라는 자괴감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는 지금 게으른 행동을 하고 머리를 느리게 회전시키고 있다. 이걸 조금 덜 게으르게 하고 머리를 조금만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요령이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바로 ‘요령 중심의 발상’입니다. 이건 무궁무진한 적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나는 시간을 함부로 쓸까? 이 바보야”라고 하는 대신 “시간을 지금보다는 더 알차게 쓰고 재밌게 보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 의지력은 그대로라고 가정할 때(cetris paribus) 이 상황을 약간 개선하려면 어떤 요령을 따르면 좋을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이 요령을 만들었는데, 재대로 따르지를 못했다. 이 요령을 잘 따르게 하는 요령은 무엇일까?”라는 요령의 요령까지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애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이 요령중심의 사고에서 보면 두뇌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요술보자기입니다. 우리는 요술보자기의 뉴런 하나하나를 손가락 움직이듯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요술보자기를 어떻게 굴리면 잘 작동하고, 어떻게 굴리면 어눌하게 작동하고 어떨 때에는 아예 스위치가 꺼지는지 잘 관찰합니다. 그래서 잘 작동할 때의 환경, 기분, 생각, 작업 방식을 되풀이해서 최대한 요술보자기가 잘 활동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전면적인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국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범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조금 더 개선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한 내용을 정리한 ‘요령’의 기록일 뿐입니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분이 이런 책을 쓴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들이 유치한 요령들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책의 유치하고 시시콜콜한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격언 형태로 압축된 캐치프레이즈를 간단하게 늘어놓고 ‘자, 이제 열심히 해’라고 내모는 자기계발서보다는, 더 가까이에 두고 자주 돌아와서 참조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세상에는 누구나 ‘풀어야 하는’ 대상이 되는 진짜 문제들이 널려 있습니다. 큰 문제도 있고 작은 문제도 있습니다. 추상적인 문제도 있고 구체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학문적인 문제도 있고 실무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인류의 빛나는 지성 중 하나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음악을 감상하다가 멋진 음악 멜로디들이 다 고갈되면 어쩌나 하고 우울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어쩌다 그런 황당한 생각에 사로잡혔을까 의아합니다. 멜로디는 고갈되지 않고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문제를 다른 사람이 다 풀었을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들은 너무나 많아서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다르고 능력 수준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나 이상씩 골라잡을 수 있습니다. 문제들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이 책의 공부 요령이나 공부 방법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의 공부 사례는 ‘정치철학’에 초점을 맞춰서 썼습니다. 다른 예들도 조금씩 들긴 했지만 제가 잘 모르는 것을 중심되는 예로 들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책의 대화 속에 제시되는 공부의 구조를 염두에 두되, 그것은 각 분야의 문제 해결 방식에 맞추어 참조하는 용도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공부 이야기를 ‘정치철학’ 더 넓게는 ‘정치의 쟁점이 되는 지식’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던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정책을 쓰면 이렇게 된다” 또는 “이 현상의 원인은 이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를 추구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단순히 적대적이거나 친화적인 수사와 동원의 대상으로 환원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하고 흥미로운 문제들이며, 연마된 이성을 통해 체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시민들이 정치의 쟁점을 공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정치가들 역시 그렇게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이 오직 친하고 소원함, 이익과 불이익, 그리고 수사와 상징에 휘둘리는 존재들이라면, 그들은 그 점에 착안해서 어떻게 그들을 조작하고 자신을 포장할지만 고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은 공책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공책 파는 사람 따로 있고 하는 식으로 분업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과업입니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시민들이 일정 수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단순한 욕망의 다수결로 변질되거나, 권력자들의 조작에 놀아나는 장난으로 전락합니다. 정치의 쟁점들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며 공부하고 푸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된 공동의 과업입니다. 이 책이 정치적 가치에 관한 이성적인 접근이 우리 사회의 배경 문화의 일부가 되는데 조금이나마 조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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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두들 안녕하시지요 ? 작년 여름 이맘때쯤 뵌 것 같은데 어느새 일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대구모임 소식도 저희 까페에 많이 전해주세요. 건강하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서울소식들 앞으로도 많이 알려주세요~^^
네 제비꽃님도 잘계시지요? 저희도 6일에 모임해요. 후기 남길께요^^
제비꽃님 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유망 직종 및 모든 자격증에 대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 받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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