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스마트 병원’, 그 뒤꼍을 들여다본다
최근 경기도 성남에 있는 분당서울대병원에 식구가 입원한 적이 있다. 엿새 동안 응급실과 뇌졸중집중치료실, 일반 병실을 거치며 치료를 받았다. 이 병원은 “최고의 의료진, 세계 최고의 스마트 병원”을 표방하며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될 것”임을 자부하는 곳이다. 과연 얼마나 그런지 병원 도착부터 퇴원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본다.
오전 11시쯤 병원에 도착,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마음은 한없이 급한데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며 줄을 이었다. 개원한지 두 달도 안된 건물인데도 주차공간도 부족하고 빈 자리를 안내하는 유도장치도 없어 사람이 일일이 안내를 하고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낡은 주차장운영시스템이 세계 최고 스마트병원(?)에 대한 첫 인상부터 구겨놓았다.
급히 신관 1층에 있는 응급센터로 갔다. 환자와 가족들이 여기저기서 초조한 모습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익숙한 광경과 마주쳤다. 다행히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환자는 따로 접수해 주었다. 뇌에 대한 MRA, MRI검사도 그만큼 빨리 진행됐다.
이어서 8층 뇌졸중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이곳은 하루 두 차례 모두 2시간 30분 동안 면회가 허용됐다. 그러나 보조의자 하나 없었다. 환자 병상에 걸터앉거나 선 채로 면회를 해야 했다. 모두 불편했다. 면회만 허용할 뿐 환자와 면회객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입원 나흘째 일반 병실로 옮긴 첫날 새벽, 환자가 심한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간호사가 혈압을 점검하고 진통제를 주었다. 당직 의사를 찾자, 간호사는 자기도 행방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간호사는 한참 뒤 당직 의사가 1층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긴급호출이 안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당직의사는 레지던트 1년 차란다. 그가 혼자서 밤새도록 8층에 있는 40명 안팎의 입원 환자와 1층 응급실의 뇌졸중 환자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만약 8층에서도 입원 환자가 동시에 위독해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MRI, MRA, 뇌파와 뇌혈루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으니 의사가 주요 영상자료만이라도 직접 짚어주며 설명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회진 때 말고는 당직 의사도 직접 찾아 다녀야 간단한 설명이라도 건질 수 있었다. 마치 구걸하는 느낌이었다. 퇴원 때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고, 간호사 혼자서 주의사항 등을 설명한 것이 전부였다.
뇌졸중과 같은 증세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나 그 가족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한다. 당장 죽을 병인지 아닌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 아닌지, 신체 장애 등 후유증은 없을지 등 온통 걱정뿐이다. 그러니 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의 자상한 설명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환자와 가족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병원 안내서에도 “환자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의료진으로부터 질병 상태, 치료방법, 부작용 등을 설명들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병원 휴게실에서 한 환자 가족이,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을 계기로 도마에 오른 국공립병원들의 난맥상을 지적하며 “국공립 병원은 절대 갈 곳이 못돼”라며 흥분한 목소리로 이 병원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병원, 최고의 의료진을 자랑하기에 앞서 병원운영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한 신뢰구축이 더 시급한 것 같았다. 이런 대학병원이 운영체계를 선진화 한다면 그 파급효과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의 중증 환자 분리 접수’와 같은 운영시스템도 좋은 예일 것 같았다. ※ 선사연 칼럼 전체 목차와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십시오. → [선사연 칼럼] |
필자소개
김강정 ( kkc7007@hotmail.com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동아원(주) 사외이사, 학교법인 운산학원 이사 (전) 삼성화재, 방송광고공사, 수협은행 사외이사 (전) 경원대 교수, 우석대 초빙교수 (전) MBC보도국장, 논설주간, 경영본부장, iMBC사장, 목포MBC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