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3> 300: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죽기를 각오한 ‘다윗’…
오만한 ‘골리앗’을 눕히다
 
감독: 노엄 머로/출연: 설리번 스테이플턴, 에바 그린
그리스 전함, 열세하나 창의성·기동성 발휘
대열 유지하지 못한 페르시아 전함 침몰시켜
페르시아 왕비·첩자인 꼽추 에피알테스 등이
전편 ‘300’ 그대로 출연…더 복합적으로 구성
BC 480년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와 300전사들이 크세르크세스 1세(재위 BC 485∼BC 465)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에 대항해 육지에서 싸우는 동안, 같은 시기 바다에선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 여자 지휘관인 아르테미시아의 해군과 맞선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 함대가 페르시아 함대를 크게 이기는데 이 전투가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이다.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
육지 테르모필레와 바다 아르테지움의 방위선을 돌파한 크세르크세스 1세의 대군은 파죽지세로 아티카(그리스의 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를 점령했다. 하지만 그리스군은 살라미스만(灣)으로 피신해 전선은 교착 상태. 이때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거짓 정보를 흘려 페르시아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으로 유인한 다음 11시간 동안 계속된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한다. 이 해전은 칼레해전, 트라팔가르해전, 그리고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으로 불린다
3차 페르시아전쟁 살라미스해전이 배경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은 전편 ‘300’과 마찬가지로 3차 페르시아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BC 480년 9월 23일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연합해군과 페르시아 해군 간의 살라미스해전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전쟁에서 시작하는데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되자 페르시아 여장군 아르테미시아는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에 복수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리스와 전쟁하려는 이유는 어릴 적 그리스의 군인들에게 가족을 잃고 자신 또한 성노예가 됐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스파르타에 가서 도움을 청하지만 스파르타는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페르시아와 싸우겠다고 거절한다. 아테네 단독으로 페르시아와 싸워야 되는 상황.
첫 번째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페르시아 함선이 앞부분은 강한 반면 옆면이 약하다는 것을 이용해 측면을 공격, 승리한다.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의 주력 함선은 3단(段) 노 갤리선으로 노를 젓는 노잡이가 1, 2, 3층에 배치돼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전투 역시 페르시아의 함대를 좁은 지형으로 유도한 후 함대끼리 부딪치게 해 배들을 침몰시킨다. 이 같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에 반해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부하가 되라고 유혹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거절한다. 화가 나 전투에 직접 나선 아르테미시아는 석유를 이용해 아테네 배에 불을 질러 승리한다. 이 전투로 아테네는 큰 피해를 본다.
한편 아테네는 육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싸우던 스파르타군이 전멸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그래도 3일 동안 스파르타가 싸워준 덕분에 페르시아의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다시 한 번 스파르타 왕비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하지만 역시 거절당한다. 아테네는 하는 수 없이 스파르타 없이 마지막 살라미스 전투에 나선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전투할 장소를 살라미스 섬과 아티카 사이에 있는 폭 2~3㎞의 살라미스해협으로 결정한다. 그리스 전함은 수적으로 열세지만 좁은 해협에서 대열을 유지할 수 있어 공격하기 용이한 반면 페르시아는 많은 수의 전함으로 대열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격전 끝에 아테네는 페르시아 함선을 침몰시키고 스파르타 왕비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이 가세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사 재현
마라톤전쟁으로 시작한 영화는 전편 ‘300’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살라미스해전으로 이어지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사를 재현하고 있다. 전편 ‘300’의 배경이 됐던 테르모필레 전투와 같은 시기에 일어난 전투들이어서 페르시아 왕비, 첩자인 꼽추 에피알테스 등이 그대로 나오며 ‘300’보다는 복합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테미스토클레스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는 것은 역사가 아닌 영화적인 허구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싸운 그리스가 승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페르시아인들은 전제군주 1인 치하에 있는 노예의 군대였지만, 그리스인들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싸운 군대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지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관건이었다. 그리스가 절박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반면 페르시아제국은 오만했다.
대군을 동원한 페르시아 제국의 유럽원정은 실패로 끝난다. 크세르크세스 1세부터 페르시아 제국은 서서히 쇠락을 길을 걸었다. 그 후 6명의 왕을 거치면서 다리우스 3세 때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한다. 이로써 역사상 최초의 제국도 역사의 뒷장으로 물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