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나무라는 나무꾼이 능선에서, 출렁출렁 주름져 흐르는 산들을 본다. 금도끼도, 은도끼도, 나무켜는 도끼이거늘, 도끼 탓하는 사이 도끼자루가 썩어 내린다 |
- 다산 정약용(丁若鏞)
老人一快事. 우리네 한 가지 즐거운 일은,
從筆寫狂詞. 붓 가는대로 마음껏 쓰는 것.
競到不必拘, 어려운 韻자에 구애받지 않고,
摧敲不必遲. 고치고 다듬느라 더딜 일도 없다네.
興到卽運意, 흥이 나면 즉시 뜻을 옮기고,
意到卽寫之. 뜻이 되면 곧바로 적는다.
我是朝鮮人, 나는 본디 조선사람,
甘作朝鮮詩, 즐겨 조선의 시를 쓰리라.
鄕當用鄕法, 그대는 그대의 법을 따를 뿐,
迂哉議者誰.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이 누구인가?
區區格與律. 그 구구한 詩格이며 詩律을,
遠人何得知. 먼 데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랴?.
凌凌李攀龍. 뻥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嘲我爲東夷. 우리를 東夷라고 조롱했는데,
袁尤槌雪樓. 원굉도는 오히려 攀龍을 흠짓냈으나,
海內無異辭. 세상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背有挾彈子. 등 뒤에 활 쏘는 자가 있거늘,
奚暇枯蟬窺. 어느 겨를에 매미를 탐보리오.
我慕山石句. 나는 韓愈의 시구를 사모하노니,
恐受女郞嗤. 秦觀의 비웃음을 받을까 염려로세.
焉能飾悽黯. 어찌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辛苦斷腸爲. 고통스레 감정을 삭일 수 있으랴.
梨橘各殊味. 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嗜好唯其宜. 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원굉도(袁宏道)는 바로 명(明) 나라 때의 시인이고, 설루(雪樓)는 역시 명나라 때의
시인 이반룡(李攀龍)의 서실(書室) 이름인 백설루(白雪樓)의 준말이다. 원굉도는
본디 시문에 뛰어난 사람으로서 그의 형인 종도(宗道), 아우인 중도(中道)와 함께
모두 당대에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특히 왕세정(往世貞)과 이반룡의 시체(詩體)를
매우 강력히 배격하고 홀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당대에 많은 학자들이 왕세정ㆍ
이반룡을 배제하고 그를 따르면서 그의 시체를 공안체(公安體)라 지목했던 데서
온 말이다.《明史 卷二百八十八》
【韓愈의 「山石」 시를 말하고, 女郞의 시란 곧 여인같이 온순한 풍의 시를 뜻한다.
元 나라 때의 시인 元好文의 論詩絶句에 “정이 있는 작약은 봄 눈물을 머금었고 기력
없는 장미는 저녁 가지가 누웠다(이상은 송나라 秦觀의 시임) 하니, 이를 한퇴지의
「山石」 시에 대조해 보면, 이것이 여랑의 시임을 비로소 알리라.有情芍藥含春淚
無力薔薇臥晩枝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女郞詩” 한 데서 온 말로, 즉 秦觀의 시를
한유의 「山石」시와 비유하면 한유의 시는 장부에 해당하고, 진관의 시는 여랑에
해당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3】.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시 창작이 갖는 성률(聲律)의 어려움과 중화사상에서 탈피하려는
정약용의 민족적 주체성을 읊었다. 이 시에서 말하는 ‘朝鮮詩’는 물론 한시(漢詩)이다.
당시의 선비들은 한시를 지으면서 그 전범(典範)을 중국 시에서 찾았다. 漢詩를 평가하는
모든 기준이 중국 시였던 것이다. 즉 중국 시와 얼마나 닮았는가 하는 것으로 시의 우열이
판가름 났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산이 ‘朝鮮詩’를 쓰겠다고 한 것은 더 이상 중국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선민족의 詩’를 쓰겠다는 선언이다. 조선 사람이 조선 땅에서 조선인의 정서를 조선식
으로 표현하면 훌륭한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그는 실제 시작(詩作)에서도 ‘麥嶺[보릿고개]’ ‘高鳥風[높새바람]’ ‘같은 토속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다. 강진 유배시절에 그곳 농민과 어민들의 고난에 찬 생활상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중국시의 규율(規律)에 어긋나는 시어(詩語)를 구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한자(漢字)로 시를 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족 정서와 민족문화에
뿌리를 내리라는 당부의 詩作이라 할 수 있다. 위 시는 육쾌시(六快詩)중에 다섯번째의 시이다.
봄이 온다.
지난 해 묵힌 붓들을 꺼내 놓고 애증의 눈으로 흘겨본다.
書不盡言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言不盡意 말은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지만
이 붓들 중 사용해본 붓이 과반을 넘지 못한다.
寡有不及이라지만 애절하기 짝이 없다.
붓을 사용하고 빠는 즐거움이 가득한데
애석하기 가득하다.
꽃피는 춘 삼월이 오면 기쁨을 주려던
기약이 새로운데 붓 주인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면이 안선다.
봄을 맞이하여 붓을 털어 보지만.
글을 다듬기도 전에, 붓이 성급하게 먼저 나선다. 올핸 막쓰는 글씨라도 자주 써보자고 다짐하지만 잘될까.
첫댓글 여러방면으로 재주가 출중하심이
짐작 되옴은
저렇게 많은 붓이 나란히 자리하는 것 만으로도...
잘 쓰지 못하나
몇 자루 안되는 붓으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막글씨로 뭔가를 적어 봅니다.
남계선생님의 지식은 쓸모가 많사오나
어리석은 돌모퉁이는 모난데가 많아
돌뿌리를 발길에 채이기가 다반사입니다
이것저것 한가지 뾰쭉하지도 못하고
문리도 터지기 전에 주저앉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