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7장 32-44절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
우리 나라 삼국시대 때 연개소문이 고구려를 다스릴 때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습니다. 김춘추는 왕족의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도 연개소문은 김춘추를 무시하면서 모욕감을 주었습니다. 그로인해 김춘추를 마음에 그 분을 품고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사람이 모욕을 당할 때 그 모욕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분노로 남다가 언제가 때가 이루면 그것에 대한 보복을 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모욕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 모욕감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반대로 혹시 여러분들은 누군가를 얕보면서 모욕한 적은 없으십니까?
대부분 모욕감은 말로 인해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서 다윗과 나발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나발이 다윗을 무시하고 심한 모욕감을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입니다. 그는 큰 부자인 나발이 모는 가축들을 대적들과 짐승들로부터 지켜주는 선의를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발이 양털을 깎는 날이 왔습니다. 이 날은 그 집안에서는 잔치를 벌입니다.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들을 초청해서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거움을 갖습니다.
나발이 양의 털을 깍는 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그 잔치에 같이 참여하여 축하해주고 싶다고 아주 정중하게 전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기 소년들 열 명을 보내면서 소년들에게 전하라고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사무엘상 25장 4-8절입니다.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다윗의 명령을 받은 소년들은 나발에게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다윗의 마음에 있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은 나발은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쫓겨다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크게 모욕을 줍니다. 사무엘상 25장 10-11절입니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자신이 있는 자로서 주인에게서 떠난 자인 다윗에게 줄 음식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하면서 굉장히 비하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분노가 극에 달하여 나발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데리고 찾아갑니다. 그 말을 하인에게 전해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이것 큰일이 났구나!’ 하면서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여 다윗이 오는 길로 나갑니다. 그리고 엎드려 빌면서 구합니다. 그로인해 다윗의 마음은 누그러져서 돌아갔지만 하나님은 나발을 벌하셔서 죽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넘겨주었고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온갖 조롱과 희롱과 구타와 채찍질을 행한 후에 십자가에 못박게 하기 위하여 데리고 나갔습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친 몸은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에 너무나 약해져 있었고 자꾸만 쓰러지셔서 빨리 갈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골고다 즉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긴 대못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이 그 위에서 목말라 하시자 쓸개 탄 포도주를 해융에 적셔서 창 끝에 걸어 예수님께 마시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맛보시고 마시길 거부하셨습니다. 그 고통당하시는 그 순간에 십자가 아래서는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놀이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산 자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는 군병들의 무지하고 무식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명령과 복종, 그리고 그 위에 탐욕을 더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빌라도가 쓴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두 강도의 머리 위에도 이 죄패가 붙어 있었을 것입니다. 왜 죽이는지 그 죄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보는 자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옆에는 두 강도가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가 골고다 언덕의 지나가는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면서 자기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들이 들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은 가장 어이없는 말일 수도 있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기에 사흘 만에 성전을 세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을 이해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아시기에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 자’라고 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 광야로 나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로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고 했고, 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하나님이 네 발을 바쳐주시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봐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해주실 것이다”하고 시험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마귀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해봐라”하고 시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험 뒤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또 다시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여기서 제사장과 서기관과 백성의 장로가 된다는 사림들이 한 말은 시편 22편 6-8절을 보면 이렇게 예수님에게서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악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향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중에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지나가는 자들과 유대인 지도자들과 심지어 강도까지도 공통적으로 한 말이 바로 “구원하라”는 말임을 알 것입니다. 저가 남은 구원한다고 하면서 일을 했는데 이제는 너 자신을 구원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
그런데 이기적인 죄인들은 계속해서 자기에게로 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도 자꾸만 “너를 구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들의 죄로인해 십자가형을 받아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는 강도 중 하나도 똑같이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를 구원하라”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나라에 같이 있기를 구했고 예수님은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아닌 강도의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는데 더 기도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달라고 더 기도하겠습니까? 또한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겠습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고백은 자기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주님이 맡기신 복음으로 자기가 아닌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수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이 길을 버리고 자가 자신을 위해 일을 합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많은 것을 드리지만 다 자기를 위해서 드립니다. 자기가 받을 축복을 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다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드린 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걸어야할 길이며, 목회자와 성도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여 모욕을 겪고 박해를 당해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을 가시기를 소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진정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인이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그리스도인입니다. 천국은 그들의 것이며 또한 천국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증거로 인해 이 세상에 확장될 것입니다. 우리 제석교회 성도인 여러분들을 통해서도 역시 천국인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가정과 이 지역과 온 세상에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