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이야기 404 - 무념 · 응진 역주
스물한 번째 이야기
석굴 속의 여신과 빱바라와시 띳사 장로
부처님께서 제따와나에 계실 때 빱바라와시(산의 동굴에 사는) 띳사 장로와 관련해서 게송 404번을 설하셨다.
띳사 장로가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받아 숲으로 들어가서 수행하기 알맞은 거처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한 석굴을 발견했다. 그가 석굴에 들어선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자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에 거처를 정하면 출가본분사(出家本分事)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석굴에 거주하는 여신은 비구가 굴에 들어오자 이렇게 생각했다.
‘계행이 청정한 비구가 왔는데 한곳에서 함께 거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는 하룻밤 머물다 떠날 것이다.’
여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장로가 탁발하려고 마을로 들어갔다. 한 여자신도가 장로를 보고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의자를 제공하고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면 안거에 필요한 필수품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장로는 그녀의 도움으로 해탈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제안에 기꺼이 동의하고 석굴로 돌아왔다.
여신은 장로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일 공양에 초대한 모양이다. 그는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떠날 것이다.’
여신이 장로가 내일 떠날까 모레 떠날까 생각하는 동안 반달이 지나갔다.
‘장로가 여기서 안거를 보낼 거라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계행이 청정한 비구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장로에게 ‘여기서 나가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의 계행에 허물이 있는가?’
여신은 천안으로 비구가 포살당(戒壇)에서 비구계를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비구생활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계행에서 허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장로의 계행은 청정하고 한 점 얼룩이 없다. 하지만 뭔가 쫓아낼 구실을 만들어야 비난을 퍼부어 쫓아낼 수 있지.’
여신은 장로를 후원하는 여자신도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막내아들의 몸에 들어가 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즉시 아이의 눈알이 튀어나오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온몸이 뒤틀렸다. 여자신도가 이걸 보고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여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말했다.
“내가 네 아들 몸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에게 제물로 바치라고는 하지 않겠다. 대신 너는 네 집에 오는 장로에게 약초에서 기름을 짜서 아들의
코에 발라달라고 요청해라. 그렇게 하면 네 아들을 풀어주겠다.”
“아들이 죽으면 죽었지 장로님에게 약초를 발라달라고 요구할 수 없어요.”
“약초를 발라달라고 할 수 없다면 아위(미나리과의 약용 식물)가루를 아들의 코에 넣어달라고 해라.”
“그렇게도 할 수 없어요.”
“좋아, 그러면 장로의 발을 씻겨주고 그 씻은 물로 아들의 머리에 뿌려달라고 해라.”
“그건 할 수 있어요.”
장로가 제 시간에 오자 그녀는 의자를 제공하고 쌀죽과 음식을 오렸다. 장로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그녀는 장로의 발을 씻어주고 나서 그 물을
가지고 장로에게 요청했다.
“장로님, 이 물을 제 아들의 머리에 뿌려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로는 아들의 머리에 물을 뿌려주었다.
여신은 즉시 아이를 풀어주고 석굴로 돌아와 입구에서 지키고 서있었다. 장로가 공양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행주제를 놓치지 않고 몸의 서른
두 가지 구성요소를 되풀이하여 관찰하면서 여자신도의 집을 출발하였다. 장로가 석굴 입구에 도착하자 여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훌륭한 의사양반! 의사양반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장로가 서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 석굴에 사는 여신입니다.”
장로가 생각했다.
‘내가 의사노릇을 한 적이 있었나?’
장로는 계단에서 비구계를 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출가생활 전체를 회상해보고 자신의 계행에 티끌만큼의 허물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여신에게
말했다.
“내가 의사노릇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런 적이 없다고요?”
“눈을 씻고 봐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럼 제가 가르쳐주어야겠군요.”
“제발 가르쳐주게나.”
“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바로 오늘 신도의 아들에게 귀신이 들렸을 때 당신이 발 씻은 물로 머리에 뿌려주지 않았나요?”
“그렇다. 물을 뿌려주었지.”
“이제 아셨나요?”
“그걸 보고 말하는 것인가?”
“바로 그걸 보고 말하는 거예요.”
장로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확고한 결심으로 이제껏 살아왔다. 이제까지 눈곱만큼이라도 계율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여신은 나의 계행에서 티끌만큼의 허물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네 가지 계청정을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에 여신은 나에게서 조그마한 허물도 보지 못하고 발 씻은 물로 아이의 머리에 뿌린 것만
겨우 보았을 뿐이다.’
장로는 자신의 계행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자 강한 희열이 내면에서 솟아올라 온몸을 가득 채웠다. 장로는 희열을 가라앉히고 땅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그는 여신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그대는 나와 같이 청정하고 한 점 허물이 없는 비구를 어리석게 비난했으니 여기에 더 이상 살 수 없다. 여기를 떠나거라.”
장로는 그렇게 말하고서 일어나는 감흥을 노래했다.
오! 나의 삶은 청정하고 한 점 허물도 없었네.
그대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이 숲을 떠나시게.
장로는 그곳에서 안거를 보내고 해제가 되어 돌아오자 비구들이 물었다.
“스님, 이번에 출가본분사(出家本分事)를 끝마쳤습니까?”
장로는 그가 석굴에 도착했을 때부터 경험한 것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비구들이 물었다.
“스님, 여신이 스님을 비난할 때 화가 나지 않습니까?”
“전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자신이 아라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신이 자신을 비난할 때 화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의 아들은 결코 화내지 않는다. 그는 재가자나 출가자와 어울리지 않고, 홀로 머물고, 바라는 것이 없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재가자나 출가자와
쓸데없이 어울리지 않고
거처에 집착하지 않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
그를 일컬어 아라한이라 한다.(404)
--- 석 소원 사경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