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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단편동화 수상작] 최상아
「한 사람을 위한 방게 탕수육, 그리고 딤섬」/ 최상아
집에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에 드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빠와 말이 안 통한다. 다른 집이라면 모르지만 우리 집에선 진짜 큰 문제다. 식구라곤 아빠와 나 딱 둘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중국집을 한다. 일 층과 이 층은 식당이고 삼 층은 우리 집이다. 학교 갔다 올 때마다 식당을 통해서 집에 들어와야 하는 것도 싫고 단체 손님이라도 올 때면 늦은 시간까지 시끄러운 것도 싫다. 우리 집은 식당을 하는 집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런 나에게 중국집 딸로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 새로 전학 온 정현준 때문이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정현준. 그 정현준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너희 집이 사거리에 있는 중국집이라면서? 나 요리사가 꿈인데, 구경 가도 돼?”
모든 게 심심하고 지루하기만 하던 나에게 드디어 반짝반짝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와 정현준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우리 식당으로 왔다. 나는 뭘 먹을지 고르는 척 메뉴판을 보면서 정현준을 살짝살짝 훔쳐본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곱슬머리, 큰 눈동자가 아이돌 가수보다 멋지다.
“너희 집은 메뉴 이름이 진짜 재밌다. 기분을 풀어 주는 짬뽕, 우울함을 날려 주는 바삭 군만두.”
“그래? 고마워.”
나는 최대한 예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 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만든 메뉴다. 차분한 분위기의 우리 식당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정현준이 재미있어 하니 나도 좋다.
“그런데, 이건 뭐야? 한 사람을 위한 방게 탕수육?”
“우리 집에 그런 메뉴가 있어? 나도 처음 들어 보는데?”
나는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이런 이름의 메뉴는 없었다. 일주일 전 아빠가 갑자기 메뉴판을 바꾸더니 새로 추가한 모양이다. 어이없게도 메뉴 설명에는 “팔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팔지도 않을 걸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우아! 너네 아빠 멋있다!”
정현준은 아빠가 면 뽑는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고 있다. 밀가루 반죽이 순식간에 면으로 변신하는 건 볼 때마다 신기하기는 하다.
식사 시간도 아닌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다. 주방 보조 영훈 오빠가 짜장면과 만두를 가져다주었다. 정현준은 먹는 둥 마는 둥 아빠만 쳐다보다가 학원 시간에 늦었다며 가 버렸다. 조금 섭섭하지만 괜찮다. 나도 학원에 가야 하고 정현준이 내일 또 오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차차 친해지면서 면 뽑는 아빠보다 나를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아빠! 내일 내 친구 올 건데 주방 안 좀 보여 주면 안 되나요? 방해 안 할게.”
“…….”
나는 아빠가 당연히 주방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방엔 주방 보조 영훈 오빠랑 요리사 왕씨 아저씨밖에 없다. 둘은 일하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는 집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빠!”
“응, 왔니?”
아빠는 옷장 문을 열고 넥타이를 뒤적거리고 있다. 저녁 손님 준비로 한창 바쁠 이 시간에 왜 집에 있는 걸까? 게다가 왜 넥타이를 만지고 있는 거지? 사 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빼고 아빠가 넥타이 맨 걸 본 적이 없다.
“아빠. 갑자기 넥타이는 왜 꺼냈어?”
“응, 아빠가 어디 초대를 받았거든.”
“어디?”
아빠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요사이 어쩐지 들떠 보인다.
“아빠, 나 할 말이 있는데…….”
“응, 그래, 그래. 아빠 식당 내려가야 되니까 이따 보자.”
내일 정현준이 오면 주방 좀 보여 달라는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아빠는 넥타이나 만지다 식당으로 내려가 버렸다. 항상 이런 식이다.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 늘 겉도는 느낌이다. 나는 숙제를 하다 혼자 저녁을 먹고 아빠가 들어오기 전에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정현준 생각에 들떠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아빠다. 십이 년을 살면서 아빠가 노래 부르는 건 처음 들었다. 나는 어제 삐쳤던 것도 깜박 잊고 아빠 방으로 가 보았다.
“아빠!”
“그래, 일어났니?”
아빠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에게 윙크를 했다. 잘 웃지도 않는 아빠가 윙크를 다 하다니. 갑자기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빠가 우울해 보이는 건 싫지만 저렇게 꿈꾸는 듯한 얼굴로 실실 웃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새침하게 있으니까 아빠는 머쓱해 했다.
“학교 가기 전에 식당으로 내려와서 아침 먹어라. 아빠 먼저 식당에 가 있을게.”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좇았다. 발걸음이 가볍다. 메뉴판을 바꿨을 때부터 뭔가 수상했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다. 아빠 책상 위에 빨간색 봉투가 있다. 아빠 방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빨간색 봉투다. 나는 봉투를 열어 보았다.
『 <골목을 맛보다> 출판 기념회에 초대합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요리 이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성 요리 월간지 ‘퀴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내었습니다. 우리 동네 장인들의 이야기, 숨은 맛집의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날짜를 보니 내일이다. 영훈이 오빠가 요리 잡지에서 우리 식당 사진을 찍어 갔다는 말은 했다. 우리 집이 정말 책에 나오나 보다. 정현준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나는 평소보다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미리 골라 놓은 옷을 입었다. 어제처럼 준비 없이 정현준을 맞지는 않을 거다. 두근두근해서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나 늦어서 그냥 갈게.”
아빠는 식당 이 층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화들짝 일어났다.
“아빠가 금방 아침 준비해 줄게. 먹고 가라.”
“됐어요.”
아빠가 나를 뒤따라온다. 딴생각만 하다 왜 지금 아침밥 타령인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때였다. ‘쿵쿵쿵쿵.’ 요란한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 밑에서 아빠가 발목을 붙잡고 계셨다.
“아빠!”
때마침 주방 보조 영훈 오빠가 막 식당에 들어오고 있었다. 오빠는 한달음에 아빠에게 달려왔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응, 그래. 괜찮아. 넌 신발주머니 갖고 학교 가라. 얼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빠는 많이 아파 보였다. 영훈 오빠는 아빠를 들쳐 업었다. 따라가려는데 오빠가 나를 밀어 냈다.
“넌 학교 가. 오빠가 병원 가서 문자 보낼게. 알았지? 너무 걱정 말고.”
“네.”
늘 서서 요리하는 아빠가 다리를 다쳤다. 학교를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쉬는 시간에 영훈 오빠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괜찮아, 너무 걱정 하지 마. 부목 대고 며칠 쉬시면 된대.」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걱정스럽다.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내 얼굴을 보고 정현준이 물었다. 나는 정현준에게 아빠가 다쳤다고 했다.
“그래? 놀랐겠다. 그럼, 나 다음에 놀러 갈게.”
아빠 때문에 정현준이 놀러 오기로 한 것도 깜박 잊고 있었다. 하지만 정현준과 친해질 기회를 날릴 수 없다.
“아니야, 괜찮아. 왕 씨 아저씨가 면 뽑으실 거야. 그 아저씨는 원래 중국 사람이야. 그 아저씨도 요리 되게 잘해.”
학교를 마치고 정현준과 나는 서둘러 우리 집으로 왔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 초대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당분간 요리를 못 하게 된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예전의 아빠라면 아무리 아파도 주방에 자리를 펴고 앉아 계셨을 텐데.
“아빠! 괜찮아요?”
“응, 그래. 친구도 같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그래.”
아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아빠라면 딸이 열두 살에 처음으로 남자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왔는데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갑갑하다. 정현준이 어색해 하는 것 같아 내가 말을 꺼냈다.
“아빠, 얘는 커서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래요.”
그제야 아빠가 흐뭇한 얼굴로 정현준을 보았다. 아빠는 요리 얘기를 할 때면 눈빛이 환해진다. 꼭 정현준 같다. 아빠가 친절하게 물었다.
“그러니? 무슨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
“확실하게 결정하진 못했지만 아저씨가 면 뽑는 거 정말 멋있었어요.”
“그렇구나. 면은 너에게 아직 어려울 것 같고……. 다음에 아저씨 다 나으면 딤섬부터 가르쳐 주마.”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빠는 이렇게 잃었던 점수를 만회했다. 그런데 아빠는 아침의 들뜬 기운이 싹 사라져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윙크하던 사람이 아니다. 정현준이 와 있는데도 아빠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빠는 좀 쉬고 싶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현준에게 초대장을 보여 주며 자랑하려는데 초대장 글 밑에 작은 글씨로 뭐라고 쓰여 있다.
[취재 나간 식당에 전부 초대장을 드린 게 아니에요. 한 번 더 뵙고 싶어서 망설이다 연락드립니다.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Y.M]
아빠가 시무룩한 이유가 이것인가 보다. 다리 때문에 Y.M.을 만날 수 없어 속상해 하는 거다. Y.M은 누굴까? Y.M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분명 비밀이 있다. 나는 초대장을 얼른 주머니에 넣고 정현준과 식당으로 내려갔다.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정현준이 말했다.
“너 오늘 기분도 안 좋았는데 짬뽕 먹을까? 짬뽕이 기분 풀어 주는 거 맞지?”
“응.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었어?”
짬뽕을 먹기도 전에 기분이 싹 풀렸다. 그리고 좋은 생각까지 떠올랐다. 비밀도 풀고 정현준과 데이트를 하는 방법이 있다.
“내일 토요일인데 뭐하니?”
“나? 뭐 별로…….”
“나 출판 기념회 초대장이 있는데 같이 갈래? 멀지 않아. 삼청동이야.”
“출판 기념회? 그런 델 뭐하러 가?”
“요리에 관한 책이야. 우리 집도 책에 나와.”
“그래. 재밌겠다.”
정현준과 나는 삼청동에 가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가는 게 빠른지 얘기하다가 면 뽑는 것도 못 보고 학원에 갔다.
다음 날 우리는 초대장에 있는 약도를 보고 물어물어 겨우 출판 기념회에 찾아갔다. 초대장을 보여 주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두리번두리번하는데 정현준이 와서 작게 말했다.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한다. 저쪽에 가 볼래?”
“너 먼저 구경하고 있어.”
나는 Y.M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아빠를 변하게 한 이유를 찾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안내> 표지판 앞에 앉아 있는 언니에게 가 초대장을 보여 주었다.
“여기 Y.M이라는 분이 어느 분이세요?”
“Y.M? 무슨 일로 그분을 찾니?”
“우리 아빠 대신 왔는데 궁금해서요.”
그 때였다. 화려한 스카프를 한 여자가 다가왔다.
“무슨 일 있나?”
“아, 편집장님. 이 아이가 편집장님을 찾네요.”
“그래?”
편집장님이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나는 얼른 초대장을 보여 주었다.
“아빠가 발목을 다치셔서 제가 대신 왔어요.”
“어머, 그래? 네가 그분 따님이구나?”
나를 따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으니 좀 이상했다.
“책 때문에 추천받아 몇 번 뵙고 너희 식당에 반했단다. 재미있는 메뉴 설명도 들었고.”
우리 식당에 반했다는 말이 아빠한테 반했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은 많았지만 요리사가 되진 못했어. 너 방게라고 아니?”
“방게요?”
편집장님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은 바닷가였고 방게가 참 흔했어.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방게를 탕수육처럼 튀긴 요리를 해 주셨는데 참 좋았어. 엄마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는데도 방게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
어디서 봤는데. 뭐였지? 아, 메뉴판! 메뉴판에서 본 적 있다. 한 사람을 위한 방게 탕수육.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팔지도 않으면서 메뉴판에 집어넣은 음식이 바로 이분을 위한 거였나? 이분이 바로 그 한 사람인가? 한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 한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니 실망스럽다. 아빠의 비밀은 풀었지만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야, 여기 있었구나. 저쪽에 신기한 거 많다.”
멍하니 서 있는데 정현준이 어깨를 툭 쳤다. 편집장님은 책을 주며 아빠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에 빠졌다. 메뉴판을 바꾸고 넥타이를 뒤적거렸던 게 다 저 편집장님이라는 아줌마 때문인 거다. 아빠가 윙크한 것도 내가 예뻐서 한 게 아니었다. 아줌마를 볼 생각에 설렜겠지. 그것만으로도 아빠가 나를 모른 척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속이 울렁울렁하고 어지럽다. 혹시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야, 이거 예쁘다. 너 가져. 선물이야.”
“고마워.”
정현준이 삼청동 길에서 고양이 모양 핸드폰 고리를 사 주었다. 드디어 나한테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복잡한 순간에도 정현준과 함께 걷는 건 좋다. 아빠도 삼청동 길을 저 아줌마와 같이 걷고 싶었나. 몇 개 되지도 않는 넥타이를 고르면서 아줌마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겠지. 나는 아빠한테 화가 나고 섭섭하지만 하필 이 순간에 다리를 다쳐 얼마나 속상할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아마 정현준을 좋아하기 전엔 몰랐을 거다. 저 아줌마를 만난 일이 아빠에겐 반짝반짝한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 책장에서 앨범을 꺼내 보았다. 아줌마는 자신만만하고 씩씩했지만 우리 엄마는 다정하고 부드럽다. 식당 앞 장미 나무를 등지고 아빠 옆에서 웃고 있다. 이때 엄마도 자기가 그렇게 일찍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걸 참으려고 아빠를 보았다. 아빠 역시 활짝 웃고 있다.
어, 이상하다. 그동안 앨범을 볼 때마다 엄마 얼굴만 봐서 몰랐다. 사진마다 아빠는 웃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 엄마가 계실 땐 지금처럼 말도 없고 웃지도 않는 답답한 사람이 아니었다. 행복해 보이는 아빠가 새삼 어색하다.
앨범을 넘겼다. 최근에 찍은 사진에서 아빠는 표정이 없다. 아빠의 얼굴은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과 후. 사 년 넘게 웃지 않았다면 이젠 웃어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마가 아빠 여자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지. 저 아줌마를 좋아할까 아니면 싫어할까. 어쩌면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가 웃지도 않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받아 온 책을 만지작거렸다.
“언제 왔어? 뭐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할까?”
아빠가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말없이 책을 내밀었다.
“어! 너 여기에 갔다 왔니?”
아빠가 허둥댄다. 아빠를 안심시켜 주고 싶다.
“아빠 대신 갔다 왔어. 편집장님이 전화하래. 빨리 해 봐요. 늦게 전화해서 차이지 말고.”
나는 아빠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윙크를 하고 내 방으로 왔다. 조금은 아빠와 초점이 맞은 느낌, 같은 세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섭섭한 거 아니지? 이해하지?’
“여보세요.”
아빠가 어색하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현준과 처음 말했을 때처럼 아빠도 좋은 목소리를 내려 애쓰고 있다.
‘엄마, 저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아빤 얼굴도 별로고 재미도 없잖아. 하늘나라에서 멋진 남자 친구 찾아 봐. 난 괜찮으니까.’
눈물을 꿀꺽 삼키는데 뭔가 씁쓰름했다. 내가 갑자기 쑥 커 버린 것 같다.
핸드폰을 꺼내 고양이 핸드폰 고리를 끼웠다.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다른 남자 친구를 찾고 시간이 남으면 나와 정현준이 잘 되도록 힘 좀 써 줬으면 좋겠다. 정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같이 가 줘서 고마워. 핸드폰 고리도 고맙고. 다음에 우리 집에 또 놀러 와. 그땐 주방도 보여 줄게.』
바로 답 문자가 왔다.
『O.K. 내일 갈까?』
벌써 엄마가 힘쓰고 있나 보다. 정현준이 빨리 딤섬을 배웠으면 좋겠다. 정현준이 처음 만드는 딤섬은 한 사람을 위한 딤섬이 될 거다. 당연히 그 한 사람은 나다.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최상아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단편동화 「한 사람을 위한 방게 탕수육, 그리고 딤섬」으로 제11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