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27장 1 - 11절
1 내일을 자랑하지 마라.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 것인가?
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는 해도, 네 입으로는 하지 마라.
3 돌도 무겁고 모래도 무겁지만, 바보가 주는 모욕은 이것보다 더 무겁다.
4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사람을 삼키지만, 질투처럼 파괴적이지는 않다.
5 면전에서 책망하는 것이 숨겨진 사랑보다 낫다.
6 친구가 주는 상처들은 믿음에서 난 것이지만, 원수는 입 맞추고 배반한다.
7 배부른 사람은 꿀도 싫지만, 배고픈 자에게는 쓴 것도 달다.
8 자기 고향을 떠난 사람은 둥지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다.
9 향유나 향이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친구의 충심 어린 조언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
10 너의 친구든지, 아버지의 친구든지, 아무도 버리지 말며, 위급할 때, 형제의 집에 가지 마라. 가까운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낫다.
11 내 아들아, 부디 지혜를 깨우쳐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해 다오. 그리하면 나를 경멸하는 자에게 내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묵 상>
본문 역시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수집하고 편집한 솔로몬 왕의 제2 잠언입니다. 자랑하지 말 것과 분노와 투기에 대해서 경계하며, 우정에 대해서 증거 합니다.
1. 자찬, 투기, 충고에 대한 지혜(1-11절)
"내일을 자랑하지 마라.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 것인가?"(1절) 어제는 지나간 시간임으로 나의 것이 아니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역시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현재의 것만 나의 것입니다. 사실 오늘이라고 하는 현재도 주님께서 맡겨 주신 새날이기에 이것 조차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기에 더더욱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짧은 우리의 인생을 ‘아침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안개가 아무리 짙게 껴 있을지라도 바람이 불고, 해가 뜨면 이내 안개는 사라지고 맙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내일에 관한 많은 것을 나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쥐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는 압니다. 또한 내 손을 잡고 계신 분도 누구신지 압니다. 나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 또한 하나님께 속해있음이 분명합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는 해도, 네 입으로는 하지 마라."(2절) 한마디로 말하면 ‘자화자찬(自畵自讚)’하지 말라고 합니다. 칭찬은 ‘타화타찬(他畵他讚)’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칭찬은 다른 사람이 해 주면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면 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물론 최고의 칭찬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칭찬입니다.
"돌도 무겁고 모래도 무겁지만, 바보가 주는 모욕은 이것보다 더 무겁다.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사람을 삼키지만, 질투처럼 파괴적이지는 않다."(3-4절) '돌과 모래가 무겁다'는 것은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가슴 위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짓누를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것보다 더 사람을 짓누르는 것은 바보가 주는 모욕입니다. 미련한 사람의 분노입니다. 상한 감정이 누르는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마음의 눌림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돌에 눌려서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눌려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많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누르게 하는 질투는 말할 것도 없이 더 파괴적이라고 말합니다.
"면전에서 책망하는 것이 숨겨진 사랑보다 낫다. 친구가 주는 상처들은 믿음에서 난 것이지만, 원수는 입 맞추고 배반한다."(5-6절) 진실한 우정과 그렇지 못한 우정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면전에서 책망' 즉 ‘면책(面責)’은 ‘마주 대하여 책망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사랑은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숨겨진 사랑’은 사랑의 표현을 숨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야 할 말, 해주어야 할 말을 숨긴 채 달콤한 대화만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리 듣기를 원합니다. ‘직언(直言)’은 듣는 사람도 힘들지만, 하는 사람도 힘듭니다. 직언의 바탕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직언은 비난과 정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하는 ‘책망’은 하는 당사자도 아픈 책망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도 아픔이 됩니다. 친구의 책망은 믿음에서 난 것이기에, 상대를 지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랑의 표현이어야 할 원수의 입 맞춤이 거짓이 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입 맞춤은 배신과 동의어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꿀도 싫지만, 배고픈 자에게는 쓴 것도 달다."(7절) ‘꿀’은 가장 좋은 음식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단지 ‘좋은 음식’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좋은 것’을 뜻하면서, 특히 ‘좋은 충고’를 의미합니다. ‘싫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발로 밟다’, ‘짓밟다’입니다. 스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충고는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발에 밟힐 뿐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배고픈 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을 간절하게 요청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음에 좀 거슬리는 충고라 할지라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향유나 향이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친구의 충심어린 조언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8-9절) 여기서 '향유'는 식용유와 같은 기름을 뜻하지 않습니다. 올리브유에 여러 가지 향을 섞어 만든 것으로 머리에 붓거나 피부에 바르는 화장용 기름을 뜻합니다. 그리고 ‘향’은 ‘침향’이나 ‘계피향’ 등의 냄새를 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런 향료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충심어린 조언'이 아름다운 기름과 향과 같다고 합니다. 그 향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서 ‘충심 어린 조원’의 문자적인 뜻은 ‘생명의 권고’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권고를 하면 상대가 듣습니다. 이런 생명을 건 사랑의 조언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내 아들아, 부디 지혜를 깨우쳐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해 다오. 그리하면 나를 경멸하는 자에게 내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11절) 인생의 지혜를 깨우친 자녀가 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가슴 뿌듯하겠습니까? 다른 뭔가를 해줘서가 아닙니다. 자식이 어떤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자랑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깨우쳐서 기쁘게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때 혹 자신을 경멸하고, 비방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금 있는 그곳에서 삶을 풀어낼 능력을 주십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업적을 쌓기 위해, 예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주님이 아니라 이 땅에 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은 세상의 주인도 주님이시기에 주님의 뜻대로 더 지혜롭게 세상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아버지 하나님! 세상이 흉흉하고 혼란스러워도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하옵소서. 마음을 정금처럼 다듬어 주셔서 잘된 방수처럼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하늘의 든든함이 내 속에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유한한 존재, 연약한 존재, 답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책임질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을 자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것만 옳은 것이라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성급히 고집부리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에서도 우정을 나눌 좋은 친구들이 있기를 바라지만,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생명을 내건 사랑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겸손과 실력을 갖추게 하옵소서. 조금만 내 생각과 다르면 흥분해서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나의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그때 내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통로로,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