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meditation on the word / 2022.10.22.토요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도도새는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새는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서식하는 새인데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항해 도중 발견했답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에 내리면서 처음 만난 새가 커다란 도도새였다고 합니다.
이 새는 칠면조보다 크고 몸무게는 23kg 정도나 되어 신선한 고기를 원하는 선원들에게는 좋은 사냥감이 되었답니다.
모리셔스 섬은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먹이가 사방에 널려 있는 데다가 천적마저 없었기 때문에 애써 날아오를 필요가 없어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가 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선원들은 날 줄 모르고 멍청히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어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로 붙여준 이름이 ‘도도’였답니다.
시간이 지나 인간의 남획과 외부에서 유입된 종들의 영향으로 도도새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모리셔스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지 약 100년 만에 도도새는 희귀종이 되었고, 1681년 마지막 남은 도도새는 죽고 이제는 몇 부분의 몸체 일부와 스케치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변화나 도전 없이 편하게 살려는 사람과 자기 개발에 소홀한 사람은 도태된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도도새(dodo bird)의 법칙”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이영직 저)> 책의 저자는 도도새의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해석한 토인비가 자주 인용한 청어 이야기를 합니다.
청어가 잡히는 곳은 북해나 베링 해협 같은 먼 바다였기에 배에 싣고 오는 동안에 대부분 죽어 싱싱한 청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청어는 냉동 청어에 비해 2배 정도 비싼 값에 팔렸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살아있는 청어가 런던 수산시장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답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운반해오는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이었답니다.
그러면 청어들은 물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힘껏 도망 다니게 되고 그런 긴장이 청어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꾸라지 양식장에서 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도 그런 이치 때문이라고 합니다.
토인비가 청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던 것은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자신의 역사 이론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외부의 도전이 없으면 고대의 마야 문명처럼 스스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고대 마야는 기원전부터 중앙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우며 수학, 천문학이 발달하였고,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건축물을 남겼지만, AD 900년경에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가뭄, 지구 온난화, 화전으로 인한 삼림 파괴, 허리케인의 강타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외부의 적이 없었고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갑작스러운 시련이 닥치자, 도도새처럼 그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시련이 꼭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통로는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받은 유대민족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며 시련을 겪었습니다.
히틀러 치하의 나치에서는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룬 후 미국 허드슨 강변에 거주하게 되었답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강물이 넘치는 최악의 조건을 갖춘 곳에서 유대인들은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옹벽(Wall)을 쌓고 금융업을 시작했고 지금의 월가(Wall Street)를 만들었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금융자본주의 나라 미국의 월가를 장악하고 세계 인구의 0.3%에 불과한 그들이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했고, 세계적인 부자의 절반 정도가 유대인이 될 정도로 세계 경제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시련과 연단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겠지만,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시련과 연단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시련일지라도 어떤 태도로 시련의 길을 걷느냐에 따라 결말은 달라집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복이 된다고 확실하게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시련과 문제가 생겨도 오뚜기같이 일어서게 된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하게 믿는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불행하거나 파멸을 당하지 않는답니다.
내일의 확실한 믿음과 소망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황홀한 승리를 하게 된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처럼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외국으로 노예로 인신매매를 당하고 소망 없는 노예로 살았지만, 그는 30세에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이집트에서 총리가 되어 자기를 노예상에게 판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챙기며 110세까지 이집트 총리로 온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부와 존귀를 누렸답니다.
요셉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시련을 너끈히 이겨냈던 것입니다.
답을 알면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답니다.
확실한 내일의 소망은 오늘의 행복을 만들어 주며 어떤 시련도 너끈히 이겨내게 만들어 준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할렐루야~!!
오늘의 행복은 내일의 꿈만큼 만들어진답니다.
구세주 예수님과 함께 황홀한 믿음과 소망으로 오늘의 모든 시련을 너끈히 이기고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은혜로운 찬양>
https://youtu.be/-K3cFtz39g4
첫댓글 호산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