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The neatly unfolded world of the ten directions spreads the dazzling spectacle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by giving the 凹凸 lifted by the seal.
문 文
‘문文’을 얘기할 때 통상 ‘글월 문文’이라고 하지만, ‘등 글월문’이라 하기도 한다. 글자의 생김새가 등을 돌린 듯이 보이는 ‘글월 문’이라는 뜻이다. ‘글월 문文’을 획수나 모양이 비슷하여 ‘몽둥이 수殳’나 ‘칠 복攵’과 같은 글자로 보기도 하지만, 역사나 내력을 가진 글자로서 자기 고유의 뜻을 지니고 수많은 세월을 살았던 글자, 신발 치수를 가리키는 말이나 사람들 성姓의 하나인 것을 떠나서라도 수십 가지의 뜻을 지니는 글자, 그럼에도 일반적으로는 ‘문장文章’이라는 뜻과 함께 ‘무武’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학문學問ㆍ학예學藝ㆍ문학文學ㆍ예술藝術 등을 이르는 글자가 바로 ‘글월 문文’이다.
500년 쯤 전인 1446년의 훈민정음 언해본에 ‘글월’을 ‘글왈’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 ‘글왈’과 근접한 말로 ‘글발(=적어놓은 글-표준국어 대사전)’이라는 말이 있다니 ‘문文’이라는 글자를 두고 ‘글월’ 문이라 한 것은 이래저래 흔히 ‘말발이 세다’할 때처럼 ‘글발이 그럴 듯하다’는 뜻을 담아 ‘아름답고 수려한 글’을 뜻하고자 했던 것일까?
‘글월 문文’이라는 글자는 상형문자이다. 혹자는 양팔과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을 본뜬 ‘큰 대大’의 다리부분이 양쪽으로 꼬아져 양반다리하고 앉아서 공부하는 모양이라 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사람의 가슴 부위에 문신으로 무늬를 새긴 모습이다. 고대에는 종교적 의식과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족사회의 성원에 가입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신체에 문신을 넣든가, (혹은 시체를 신성하게 치장하는 의식으로서 문신을 새기든가) 그림물감으로 장식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문文’이다.
그렇게 문신→무늬→글자→문장→학문→문화文化→문명… 이런 식으로 뜻이 발전하였다. ‘문장文章’이란 단어에 나오는 ‘글 장章’이라는 글자도 문신을 새기는 침(매울 신辛)과 문신의 모양(이를 조早)이 들어 있는 글자이다. 영어로 tattoo인 ‘문신文身’이라 할 때도 ‘몸 신身’에 ‘글월 문文’을 붙인다. ‘무늬 문紋’은 ‘실 사糸(=실)’를 옆에 붙여서 실로 짜는 옷감이나 천에 문신을 새기듯 무늬 새긴 것을 뜻한다.
‘어지러울 문紊’자도 ‘무늬 문紋’과 마찬가지로 ‘실 사糸’와 ‘글월 문文’이 합해진 글자이긴 하지만, ‘실 사糸’ 위에 ‘문文’을 올려붙여 ‘실(糸)로 짠 무늬(文)가 어지럽다’는 뜻을 담는다. 그래서 ‘문란紊亂’ 하면, ‘어지럽고(紊) 어지럽다(어지러울 난/란亂)’는 뜻이다. ‘흩어질 산散’을 붙여 ‘산문散文’이 되면 ‘정돈되지 않고 흩어진(散) 글(文)’로, 일정한 형식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소설이나 수필 등의 글이 되고, ‘운 운韻’을 붙여 ‘운문韻文’이 되면 ‘운율(韻)이 있는 글(文)’로, 보통 시詩의 형식으로 지은 글이다.
가슴에 새긴 무늬처럼 소박하더라도 가슴으로 쓰는 글이 좋은 글이라 했다. 가슴으로 새겨서 쓰는 글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도 자국을 남기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때, 글을 쓰다보면 보아주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글을 내가 왜 이렇게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1915~1968년) 같은 이는 글쓰기만이 침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거룩함에 이르는 자신의 길임을 알아서 썼다고 하지만, 나 같은 大기자에게는 아마도 너무도 부끄러운 내 마음 속을 그 누구에게도 열어 보일 용기가 없어서, 그래도 살아있어서, 개발새발 무늬를 새겨가듯이 존재감을 끄적거리는 것일 게다.
그러다가 얼핏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어떤 문장, 어떤 단어들에 살짝살짝 자기의 속마음을 담아 흔적을 남기는, 아마 남모르는 고백이고 기도일 것이다. 그래서 쓸 것이다.
일찍이 모세는 하느님의 마음을 돌 판에 새겼다.(참조. 탈출 34,28)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몸소 돌 판에 “써서 주셨다”(신명 4,13;10,4)고 표현한다. 내가 과연 내 마음에,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니 어쩌면 내 인생 안에 하느님께서 새겨 주신 무늬를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내보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미 뭉그러져버린 그 무늬들을 어떻게 나타내고 남겨야 하는 것일까?
文神 : 문신
* 문신,부적
리버티 대학의 변증학 교수인 윌 허니컷에 따르면 문신이 금지된 문화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노예 제도에서 구출 된 후에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에 위치했을 때였다.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유방이나 허벅지 및 복부에 문신을 새겼으며 이는 출산 과정을 보호하는 행운의 부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허니컷 교수는 주장했다.
허니컷 교수는 "여성들이 종종 이교의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인 'Bes'를 문신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제기되는 논쟁 중에는 문신에 관한 성서적 관점이 있다.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의 보도에 따르면 성경에 나타난 문신에 대한 가장 명백한 비난은 레위기 19 장 28절에 나온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문신이 마법이나 다른 이교도 종교적 관행과 같은 오컬트 관행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자신을 위해 분리되길 바라셨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그 구절을 읽는다고 CP는 보도했다.
이어 위에 언급한 레위기 주변의 구절들은 문신을 금지하는 것이 이교도들과 관련된 많은 것들 중 하나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딸들을 창녀가 되게 하지 말고 신접한 자들과 박수를 믿지 말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지난 2013년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생츄어리 교회(The Sanctuary Church) 제이 해이즈립 목사는 "문신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왜 이 문신을 사용하는 것이고 문신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신은 마법, 우상 숭배 또는 이교도 상징의 표현인가?"라며 "지난 20년 동안 문신은 미국 사회에서 문화적으로나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40%가 문신을 갖고 있다는 퓨리서치의 연구 결과를 내세웠다.
리버티 대학의 변증학 교수인 윌 허니컷은 크로스워크닷컴(Crosswalk.com)에 올린 글에서 "그림을 나타내기 위해 피부 아래 잉크를 주입하는 것은 구약에서 언급한 문신의 종류와 상당히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레위기의 구절은 문자적으로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허니컷 교수는 "레위기에 나타난 문신을 나타내는 'writing marks'의 'writing'이라는 단어는 상징이나 말을 새기거나(inscribe) 조각하는(engrave)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사용된 'marks' 역시 그 뿌리가 불분명하여 그 의미를 불확실하게 만든다"면서 "1700년대 후반까지 '문신'(tatto)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허니컷 교수에 따르면 문신이 금지된 문화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노예 제도에서 구출 된 후에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에 위치했을 때였다.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유방이나 허벅지 및 복부에 문신을 새겼으며 이는 출산 과정을 보호하는 행운의 부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허니컷 교수는 주장했다.
허니컷 교수는 "여성들이 종종 이교의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인 'Bes'를 문신했다"면서 "명백히 비난받지는 않았지만 크리스천들은 문신을 얻으려는 동기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 보라"고 촉구했다.
그는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 문신을 새긴다면 그것은 분명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에베소서 6장 1~3절에 나타난 신약의 다섯 번째 계명에 대해 인용했다.
이어 "예술적 자기 표현은 괜찮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우리의 주된 동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린도전서 10:31). 이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그 분을 존중하고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며 "증인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문신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만 하다. 그러나 문신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거나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복음을 구두로 전하는 것을 대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