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3월 19일(토)■
(창세기 3장)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묵상/창 3:20-24)
◆ 모든 산 자의 어미 - 하와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담이 아내에게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의미의 '여자'라는 이름과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의 '하와'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서 '산 자'라는 히브리어 '하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 때, 생령이 된지라(창 2:7)고 할 때의 그 '생'에 해당하는 단어다.
아마도 하와를 통해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이름일 것으로 생각한다. 여자라는 이름 위에 어머니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셈이다.
세상에 없던 인간이 여자의 몸에서 새로 나오는 것처럼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여자의 몸속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다윗. 시 139:13,14 새번역)
◆ 하나님의 은총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인간이 벌거벗고 사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동물이 벗고 산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난 뒤에 인간은 부끄러움이 생겼다.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옷을 지어 입었다.
옷을 입어서 어찌 죄가 가리어지겠는가마는 인간의 죄의식을 이것만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이후로 인간들은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모두 옷 속에 자기를 꼭꼭 숨겨두게 되었다. 옷으로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고, 옷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들은 양복 입으면 신사로 착각한다.
이제 인간들은 다시 벌거벗은 세대로 돌아갈 순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임시로 만든 무화과나무잎 옷을 벗기시고 친히 만드신 가죽옷을 입히셨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믿는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위해 옷까지 지어 입히시다니,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가!
가죽옷을 입혔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두 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미래에 우리 죄를 가리시기 위해 희생되신 하나님 아들의 희생을 암시한다.
◆ 삼위일체 하나님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중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천사들을 가리킬까? 그럴 순 없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부리는 종일 뿐이다(히 1:14).
삼위일체 하나님을 배운 우리는 이 말씀이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대답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성경은 여러 번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밝힌다(신 6:4, 롬 3:30)
삼위일체는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누구도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명쾌하게 설명한 자는 없다. 오히려 삼위일체를 나름대로 설명했다가 이단 딱지 붙은 사람이 무수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도 잘못된 설명이고, 저것도 잘못된 설명임을 잘 아는데, 정확하게 설명은 할 수 없는 것이 삼위일체다. 애초에 이러한 존재 양식은 우주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비유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나오셨고,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성령이 나오셨으니, 동일한 본체이시다. 아들과 성령은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낳으시고, 발생하신 존재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 삼위는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일체인지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통나무를 한 쪽에서 보면 직사각형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둥근 원이다. 평면 세계인 이차원에서 이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해보자. 직사각형이면서 둥근 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 공간 세계인 삼차원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평면 세계인 이차원에서는 아무리 해도 조화시킬 수 없다. 이차원에서는 오히려 조화시키지 말고 따로따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위되신 세 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신지를 조화시킬 순 없어도 신앙생활에서는 문제가 없다. 어떤 때는 삼위로, 어떤 때는 일체로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
◆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
동산 중앙에 있었던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묘한 대조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두 나무의 대조를 '율법과 복음'이니, '복과 저주'니 하는 틀을 적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틀을 거기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아담과 하와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나무였다.
그리고 저주스러운 나무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복된 나무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순결한 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순결한 성도가 살아가는 두 가지 필수 요소를 우리에게 교훈한다고 믿는다.
두 가지 필수 요소란 곧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사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모름지기 순결한 성도의 삶이란 이렇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는 삶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믿음을 저버린 자가 되었다.
그런 자는 더는 생명을 누리며 살 자격이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다. 그리고 에덴의 동쪽에 길을 막으셨다.
이제 에덴은 인간의 눈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아무리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샅샅이 뒤져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감추셨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났다.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쫓겨나서 삭막하고, 험악한 환경에 내보내진 것이다.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주님,
제가 매일 매 순간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결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