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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
이천년 전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3일만의 부활은 또 무엇을 의미했는가?
예수님은 이 사건을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명명하셨으며
이 복음을 온 세상 만국에 전파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마지막 때 다시 오셔서
마침내 지상천국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것이 인류에게
복된 소식이 되며 지상천국을 이루는 막중한 원천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임은 물론이며 온 인류를
구하는 인류역사상 최상의 복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예수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기독인들은
그 뜻하는 바를 지식으로 전혀 알지 못한채, 오늘도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어주셨다고 그 말 한마디를 토하며 뜨거운 눈물로 탄성을 지르며
감성과 감동의 도가니에만 푹 빠져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되는 지식의
뼈대는 전무하고 오직 허접한 감성의 무당 굿풀이식 묻지마 신앙에
매몰되어 있다. 다시 말해 반석 위에 집을 짓지 못하고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날위해 죽어주셨다고, 그래서 구원받게 되었다고 감격에
겨워서 울고불고 팔짝팔짝 뛰고 소란떨고 법석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가?
그런 맹신은 시끄럽고 더러운 귀신의 처소만 양산해낼 뿐이다.
그러면 누가 과연 전세계 기독인들을 이런 맹신으로 이끌었는가?
사도바울이다. 바울은 간교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 옛뱀이요,
사탄마귀였다. 왜일까?
그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인류의 죄를 사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당장에
구원을 다 받아버렸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우선 인류의 죄가 무엇인지 그 지식을 알려준 일이 전혀 없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알려준 일이 없다. 그리고 바울은 3일만의 부활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알려준 일이 전혀 없다.
명명백백한 지식으로 알려주어야 하는데, 지식은 전무한 채
오로지 예수님의 죽으심의 피를 믿어서 이미 구원받았다고
단 하나 감성만의 달콤한 사탕발림의 맹신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믿어서 이미 구원받았다는 그 말 한마디에 미혹되어
오늘날까지 교회들을 감성만 넘쳐나는 아수라장 귀신의 처소를 만들었다.
이천년 동안의 맹신! 무섭다! 이제 지식 없는 그 맹신을 끝장내야 한다.
호세아서 4장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라고 질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나님은 지식 없는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명명백백한 논리와 이성의 하나님이며 로고스의 하나님이다.
즉 반드시 지식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명백한 지식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본성)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화이다.
즉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 되신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죄를 위해 죽어주셨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죄를 위해 죽어주신 것이 된다.
그러면 왜 창조주 하나님(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어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예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면 죄라는 것도 없는 것이고 살아있을 근
거도 없고 그로부터 죽어야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자로서 창조원리 때문에 죄가 발생하게 되고 반드시 죽어야 했다.
쉽게 말해 창조에는 반드시 죽음이 동반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창조란 곧 죽음이 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창조에는 물질계 창조와 인간정신계 창조가 있는데, 물질계 창조는
최초에 빅뱅으로 시작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까지
진화되어 왔으므로 제외하고,
이제 죄와 관련한 인간정신계 창조(심령창조)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인간정신계 창조, 즉 심령창조를 위해
오신 분이다. 이로 인해 인류에게 신앙을 하는 주체로서 믿음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생겨난 것이다. 그 이전은 샤머니즘의 원시신앙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심령창조에는 반드시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란 말인가?
물질계창조도 진화론적 창조이지만 인간 정신계창조도 반드시
진화론적 창조가 된다. 진화론적 창조이므로 인간이 낮은 차원에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되기 위한 코스에는 반드시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1)
가장 낮은 차원은 창조주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무신론자적 입장에 있는
자들이 된다. 이것을 동양적 표현으로 첫번째 무극이라고 하자.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모든 인류는 자연계 인간으로서 단지 무극에
처해 있다 하겠다.
2)
그 다음에 높은 차원은 예수님이 오신 때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된다.
즉 신앙하는 자들이 된다. 이것을 두번째 태극이라고 하자.
이천년 전 에수님을 믿었던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의 기성교단이
태극에 속한다.
3)
그 다음에 최상으로 높은 차원은 오늘날 재림 예수님 때에 그분을 믿는
자들이 된다. 즉 오늘날 알곡으로 선택 받아 구원을 이룰 창조완성된
자들이 된다. 이것을 세번째 완성의 황극이라고 하자.
일련번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극에서 태극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는가? 오늘의 태극으로 건너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제의 무극의 나를 죽여서 소멸시켜야만 했다.
다시 태극에서 완성의 황극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는가?
오늘의 완성의 황극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제의 태극의
나를 죽여서 소멸시켜야만 했다.
이것이 앞으로 전진하는 진화론적 창조이며, 따라서 그 이전에 창조된
나는 죽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같은 창조의 원리를 죽음으로
보여주셨던 것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그 죽음의 십자가를 우리모두 각자 지고 따라오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죽지 않으면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보다 높은 단계의 창조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이전 단계의 창조는
허물어 버리고 죽여야 한다. 죽지 않으면 창조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토기장이의 비유에서도
하나님은 손수 만드신 토기를 깨부숴버리지 아니하셨던가?
불명예스럽지만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전쟁왕으로서 죽이시고
소멸시키고 무너뜨리는 것! 그것은 바로 창조의 죽음들이 되고 있다는
깊은 의미의 구약역사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은 예표이고
신약의 예수님이 그 실상인데, 실상으로 오신 예수님이
지금까지 말한 모든 총체적인 의미에서 창조의 죽음을 죽어 주셨던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이쯤에서 눈치를 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신계 창조의 믿음을 논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은 곧 정신계 죽음(영적 죽음)을 뜻하는
비유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영적 부활(살아있는 자가 영생을 받는 일)을 뜻하는 비유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심과 부활 뿐 아니라,
성경은 모두 육신적인 일로 기록을 했으나, 즉 형이하학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숨겨진 참뜻은 그것들이 모두 인간심령창조(형이상학)에 대한
기록물이므로 성경은 비유라고 했던 것이다.
성경의 본질은 인간정신계창조(심령창조.형이상학)임을 꼭 인지해 주기 바란다.
창조계에서 모든 창조물은 창조의 정신이 이끌어간다. 정신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보다 낮은데서 보다 놓은데로 혹은 최상의 곳으로
이끌어가는 게 하나님의 창조이다.
무극에서 태극으로, 태극에서 완성의 황극으로 이끌어가신다.
완성의 황극은 영생의 세계이다.
도판(종교판)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세상살이에서도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창조진화의 손길에 의해 최초에 밀림 속을
누비는 수렵시대를 살았으며, 다시 농경시대를 살았으며, 다시
산업화 시대를 살았으며 다시 오늘날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판(도판)과 세상판들이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의 진화론적
창조이다. 진화론적 창조이므로 우리의 정신계 창조에서는 반드시
오늘의 완성된 나로 거듭나기 위해(부활받기 위해.영생받기 위해)
어제의 구닥다리 나는 죽여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죽지 않으면 오늘의 부활이 없고 영생이 없다.
창조에는 반드시 영생의 천국에 오르는 진화의 사닥다리가 놓여지고,
우리는 그 사닥다리를 하나씩 오를 적 마다 반드시 죽음을 요구 받았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우리 모두도 창조의 죽음을 요구 받았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본성으로 오신 창조자로서 세상의 모든 도판과
일반세상판 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창조의 그 죽음을 죽어주신 것이며
우리도 그분의 뒤를 따라
반드시 각자 그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산다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총체적인 창조의 세계에서 총체적인 창조의 죽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게 크신 분이다!! 총체적인 창조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총체적인 영생의 세계를 이루신다는 뜻이 된다.
즉 총체적인 온 세상 인류의 부활이 된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총체적인 영생의 세계요, 총체적인 부활이므로 이것을 어디에
대비할 수 있겠는가? 상대적 관계에서
처음 세상은 사망이요, 나중 세상은 영생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극과 태극시대를 살아왔다.
무극과 태극시대, 즉 주역이나 동양예언에서 말하는 천지비(天地非)시대를
살아왔다. 천지비시대는 천존시대이며 남존여비시대이며 거꾸로 사는
지옥세상이었다. 즉 사망을 당하는 처음 하늘 처음 땅에서 살아왔다.
예수님은 총체적인 이 모든 악한 세상에서 죽어 주신 것이다.
즉 사망세상을 패대기 치고 못박아 죽이는 죽음을 몸소 죽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을 받으셨다. 무슨 부할인가? 총체적인 영생의 부활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새하늘 새땅에서 인존시대를 개막시키는 지천태(地天泰)
시대에서 영생을 구가시키기 위해 다시 오시리라는 예언적 부활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하나님)은 무극에서 태극까지 오셨으나 그 미완성의
무극과 태극세상을 끝장내시고(죽으시고),
마지막 창조완성의 황극(영생의 부활로)으로 오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전 인류를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시는 죽음을 연출해
주셨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 연출의 참 지식을 깨달았던가?
예수님(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처음은 사망이고 나중은 영생이다.
이것이 창조세계의 원리이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지식이 된다.
그런데 왜 그 부활이 3일 만의 부활인가?
사망을 당하는 무극과 태극을 지나서 세번째 완성된 영생의 황극으로
오시기 때문에 3일 만의 부활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술된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지식이다.
그리고 죄란 이와 같은 창조의 지식을 모르는 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엄중히 물으시는 본질적 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기독인들은 이러한 지식은 전무한 채, 오로지 바울의
교리에 따라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외치며 울고불고 뛰고 있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피 마르는 냉철한 창조지식은 없이,
인간이 배부른 꽃돼지 처럼 평안히 착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감성에만 매몰되어 소란스레 울고불고 뛰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제발 크신 예수님(하나님)께 욕 돌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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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루하루 일상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하지만
되돌아 올수 없는 시간들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바쁘지는 않은것 같은데 세월의 시계는 마냥 빠르게만 느껴 지네요.
오늘도 소중한 하루 얼굴 찌푸리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빵긋 빵긋 웃으며 행복하게 보람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