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종착역을 행해 달려가던 2022년 6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8%대로 급등하자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제룸 파월 Fed 의장은 '2023년까지 금리를 연 4%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 후
2024년부터 다시 내려 연 2.5%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의 구상은 빗나갔다.
한 달 후인 같은 해 7월 미국의 6월 CPI는 시장 예상을 뒤엎고 전년 동기 대비 9.1% 급등하면서
1981년(9.6%) 이후 41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결국 Fed는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통해 기준금리를 당초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연 5.25~5.5%까지 올려야만 했다.
이 떄 등장한 용어가 바로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다.
오른 물가가 천장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처럼 잘 안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끈적한 물가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이 흐른 지금 각국의 성적표는 어떨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말 10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끈적한 물가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인플레이션 고착화' 지수(근원물가 기준) 를 공개했다.
1위는 호주, 2위는 영국, 5우는 미국이었다.
한국은 9위, 일본은 10위였다.
순위가 높을수록 끈적한 물가 현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선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체감이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한국 특유의 끈적한 물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을 보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의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상승률은 각각 3.5% 와 3.9%다.
영국은 3.8%, 4.7%였다.
미국과 영국 모두 전체 물가보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높다.
반면, 국내 물가상승률은 지난 4월 기준 2.9%, 근원물가는 2.3%로 근원물가가 낮다.
그만큼 식료품과 에너지 물가가 전체 물가 수준에 비해 높다는 얘기다.
특히, 가증치가 가장 높은 석유류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식료품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셈이다.
실제로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 상승률은 3.5%로, 근원물가보다 1%포인트 넘게 높았다.
이른바 '금 사과' 등 높은 서민 체감물가는 지난달 총선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 돌아선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윤삭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은 민심 이반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체 물가상승률이 하락했다는 것을 앞세워 물가 관리를 잘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가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장바구니 물가는 몇 백억 원 정도만 투입해 할인지원을 하고
수입품 할당 관세를 잘 운영하면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기엔 이미 추가 투입한 재정 효과가 미미하다.
올 여름엔 많은 비까지 예고돼 있어 장바구니물가 불안이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가안정이 민생안정이라는 각오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황혜진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