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씨의 노래, ‘봄날은 간다’에 그런 가사가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기막힌 가사가 아닌가...
나이 오십이 넘어 이 가사가 얼마나 기막힌 가사인가를 깨닫는다
그는 철인정치를 표방하고 시인은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라 했다.
예술은 이데아(실재계)로부터 두 번이나 모방된,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이 세상)
는 실재계인 이데아의 모방이고 예술은 이 현상계를 또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를 폄하했던 플라톤이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얘기다
그러나 어쩌랴 당신은 이미 죽어 무덤에 묻혔고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을...
어제 문화원에선 광주항쟁 34주기를 맞아 프랑스 영화 ‘버터 플라이를 상영했다
(영화에 대한 내용은 다른 분의 글을 스크립해서 답글로 넣어놓았다)
천진한 아이 때문에 자주 웃음이 나왔고, 영상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주 감탄사가 나왔고
영화 속에서 보여준 휴머니즘 때문에 자주 눈물을 찔끔거렸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따뜻했다
돈 코사크 공연 이후 찔끔거리기 시작한 눈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점심을 먹은 후엔 모든 것을 작파하고 최백호의 ‘봄날은 간다’를 듣고 또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대학 때 였던가
아마 그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분이
청록파 시인 중의 한 분인 박목월의 ‘나그네’를 놓고 그런 평을 했다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 모두가 헐벗고 모두가 굶주린 그때
민족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술 익은 마을이 어디 있으며 그런 유유자적
인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그런 논평이었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발달주기로 봤을 때 젊은 날의 특징이 무엇인가
세상을 흑과 백으로 보는 것이다
그 안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고 회색지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기다
누군가를 아주 이상화시켜놓고 그 모습에서 조금만 실망의 단서가 보이면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 시키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런 정신이 있기에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설 수 있고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한열과 박종철이 나올 수 있었고 이 세상이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인터넷을 뒤져 ‘백설희씨의 ’봄날은 간다‘를 치니 여러 명의 가수가 나온다
심수봉이 부른 ‘봄날은 간다’를 클릭하니 가수 심수봉이 아니라
미라도시밴드의 풀룻을 분 사람의 이름이 심수봉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인권 콘서트’에서 연주한 곡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그 많은 한과 그 서럽고 분노스럽던 날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마 이 노래가, 그분들의 서럽고, 외롭고, 분노스럽고, 치욕스럽고,
고통스런 마음들을 달래주고 위로해주지 않았을까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서 들었을 이 노래가
치욕으로 점철된 꽃다운 청춘을 달래주지 않았을까
이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할머니들과 함께 울어주었던 노래가 아니였을까
이런 노래, 이런 예술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꽃이 피면 웃고 꽃이 지면 울 줄 알던 그 마음이, 예술이 없었다면
어찌 표현했을까....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슬픔을 사랑하라! 저항하지도 말고 달아나지도 말라.”
이슬람 신비주의자 얄라루딘 루미는 말한다
“기쁨, 우울, 분노, 깨달음은 뜻밖의 손님처럼 찾아온다. 이런 것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접대하라“
저항하지도, 없는 것처럼 가장하지도, 도망가지도 말고 그것을 내 것의 일부로 받아들여
직시할 때, 온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우린 치유될 수 있고
거기서 삶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도 시간이 가면 잊혀진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부모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이젠 삭혀내야한다
그건 혼자의 몫이다
이웃들의 관심과 위로가 많은 도움이 되긴 하지만 혼자 치러내야할 몫이다
베이스 캠프까지는 같이 동행할 수 있지만 정상엔 혼자 가야한다
그때, 노랫 가락 하나가, 아름다운 영화 한편이, 아름다운 그림 한점이
다름다운 수필 하나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슬픔과 함께 가는 길에
좋은 길동무가 되어줄 것이다
나와 같이 울어줄 것이고 이 슬픔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도 먼저 겪여낸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덜 외로울 수 있을 것이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배부른 자의 여유가 아니라 정신이 허기진 자의 양식이 되어야할 이유다.
첫댓글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배부른 자의 여유가 아니라 정신이 허기진 자의 양식이 되어야 할 이유라는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렇게 온국민들에게 눈물흘리게 한 이 세월호 사건도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질 까 두렵습니다.
지난 5년간 규제완화가 25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선박의 경우 지난 2009년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이 기존 20년에서 최대 30년까지로 완화,
철도의 경우 지난 2009년 내구연한 연장기간을 최대 5년에서 15년으로 완화한 것에 이어 2012년에는 정밀검사를 통한 내구연한 연장제도 자체를 폐지
항공의 경우 지난 2008년에는 25년 이하라 제한하고 있던 부정기항공기의 기령제한이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못하고 총리 갈아치우고 장관 바꾸었다고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언제 어느 때 철도에서 또는 항공기에서 대형 참사가 벌어질 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지요.
그래서 제가 가입한 다른 카페에서는 세월호 실종자를 모두 찾아 장례를 다 치르고 시간이 흘러도
절대 세월호 사건 잊지말자고 노란팔찌를 만들어 공동구매하였답니다.
손목이 가늘은 여성은 잘 갖고다니는 핸드백에 그리고 학교다니는 아이들 책가방에
그 노란팔찌를 매달아주는 주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차에 붙일 수 있는 노란리본도 구매하여 차에 붙이고 다닌답니다.
우선 지치지 않으시고 좋은 정보들을 넣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들이 우려하는 것도 모두가 지쳐가는 것..피로감이 쌓여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의 뿌리를 캐내지 못해 다시 시간이 흐르면 똑같은 사고를 내게 하는 것, 그것이 정말 무서운 일일겁니다
한쪽에서는 구조의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처난 우리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민주항쟁 34주기를 맞아 영화를 통해 지금 이곳에 다시 광주항쟁을 불러낸 것처럼
예술이 우리의 지난 아픔과 상처를 잊지 않도록 다시 여기에 불러내 상기시켜 주는 것..
그것도 예술이 해야할 일이고요..올려주신 생방송을 보면서(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토요일 촛불 집회에서 추었던 몸짓춤(?)을 보았습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몫이라 생각합니다
구조의 개혁.. 내면의 치유...이 모든 것들을 이루는데 예술이 할 수 있는 몫이 분명이 있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란팔찌 참 좋은 생각입니다
열심한 모습과 아름다운 마음...고맙습니다
그런 작은 마음들이 변화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