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인 나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더 중요한 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나는 짝사랑에 빠졌다. 15살 소년이던 나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선생님과의 만남. 한 반에 학생이 10명도 안 되는 '맹학교(시각장애인 학교)'였다. 선생님이 보여준 관심은 내게 언제나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 짝사랑은 내가 시각장애자라는 사실보다 내 인생에서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 왔다.나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다. 5살 무렵 어머니와 형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배운 글자를 공책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그런 일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엇에 부딪혔는지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나를 치료하기 위해 독일까지 데려갔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2배로 확대 복사한 글자나 큰 사물만을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시력을 가진 공식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1급 시각장애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중학생이 되고서야 시각장애라는 것이 정말 나에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런 고민들을 같은 시각장애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남들이 눈으로 보고 하는 공부를 나는 손끝으로 읽으며 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그 시기에 그 선생님을 만났다. 새벽녘에 일어나 선생님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번호를 누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 버튼은 끝내 누르지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곤 했다. 앞이 안 보이는 나를 들뜨게 한 것은 그 선생님의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였고 마음이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던 영어 과목을 지금 내가 커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됐다는 게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사춘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짝사랑'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짝사랑이 차지하고 있던 내 마음속엔 현실적인 고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너도 할 수 있어"라던 그 선생님의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에게 장애란 인생을 할퀴고 지나가는 아픔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싸움도 아니었다. 열차가 선로를 살짝 바꿔 다른 열차보다 조금 더 먼 길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종착역은 같다. 돌아가는 그 길에는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은 마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다. 바위틈에 핀 화려하지 않은 꽃들도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존재를 발견하는 일과도 같다. 이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나는 작년부터 서울시내의 한 일반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일반 아이들을 가르치느냐고 놀라워한다. "시각장애인이 못 가르치기 때문에 안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 가르쳐 본 시각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내 대답이다. 나는 그 편견을 깨고 싶다.
나는 나도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그 선생님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업이 쉽지는 않다. 보조교사가 배치돼 교재 배포를 도와준다. 교재에 실린 그림 설명까지 모두 컴퓨터에 입력하면 음성으로 전환되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교과 내용을 통째로 외워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따뜻했던 선생님은 내게 그렇게 하셨다.
아이들에게 "나는 별 볼일 없는 VIP"라고 농담을 한다. 눈이 안 보이니 '별을 볼일 없고', 영어로 'VIP'라는 말은 visually impaired person(시각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의 준말이라고 설명해준다. 나는 쑥스럽게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안녕. 나는 VIP인데, 너희들도 같이 VIP석에 앉아보지 않겠니? 겨울 밤도 길어졌는데 별 볼일 없는 내게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설명해보렴."
조선일보에서...
첫댓글 멋지네요...한번씩 이렇게 감동을 주는 글을 읽고 마음의 순화를 해야되겠습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할 마음의 준비 끝~~~ ^^
정말 감동이죠..^^
아름다운 VIP이시네요.마음이란 한마디 찡하구만요^^
대단한... 멋진 VIP 인것 같아요...^^
아침 부터 가슴이 뭐랄까 멍~~~ 해지네요.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돌콩님 요즘 바쁘신가봐요...ㅎ
삭막한 세상에서 아름다운세상이 있다는걸 느끼고 가는 좋은 아침입니다~~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 아름다운 맘을 갖고 사시는 분 같아요^^
정말 멋진 인생관을 가지신 분이네요.
장애인이라서 대단한게 아니라 본인의 장애를 대하는 맘 가짐이 달라서 정말 VIP네요.
대단한 VIPwt~^^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맞네요.!!. 짝사랑의 선생님의 관심과 보살핌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VIP선생님.!!.화이팅~~
저분도 그렇지만 꿈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도 진짜 멋지신붙 같아요^^
그러게요.~훌륭하신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정말 마음이 이쁘신 분이네요!! 저도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겠어요^^
네 꼬옥요.. 정말 저런분의 마음가짐을 갖게된다면 불가능이란~ ^^
진실함이 느껴지네요
그러게요...^^
많은 이들이 저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닮았으면.....^^
좋은 선생님도 많겠죠^^
진정한 훈남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멋진분~ 쿠로네코님도 훈남이실듯~^^
오늘 아침 신문을 읽어면서 정말 감동적이다고 생각 했었는데......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죠?
그러게요... 어디까지 인건지..^^
멋진 스승을 만난 것이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끝까지 학업을 했다는 것이 감동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반성과 힘을 낼 수 있을 만큼 얻어가네요.
이글 보시고 미네르바님처럼.... 저도 물론이구요..^^
우와,,, 정말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강한 마음,,,, 대단합니다..
김헌용 선생님의 끝없는 도전에 まごころを込めた박수를 드립니다...
김헌용 선생님은 우리처럼 맘속으로 성원 보내시는 분들이 많이 행복하시리라요^^
밝고 선한 이미지에 끌려 클릭했더니 이렇게 멋진 내막이 있었네요..
참으로 찡하고 감동백배입니다..
존경받아 마땅한 VIP이십니다^^
얼굴이 진짜 맑고 밝은것 같아요.
멋진 VIP .... 그리고 댓글로 성원해 주신 울 재매회원님도 모두 멋지신~~^^
멋지네요. 저도 더 멋져져야겠습니다
원래 멋지신 분이란거 다 알고 계실텐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아직 모자른 부분이 많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