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뽀뽀
때는 조선조 말엽의 갑신정변 이듬해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러시아의 남하 세력을 막는답시고, 동양함대(東洋艦隊)의 군함 6척을 남해의 외로운 섬인 거문도에 보내, 무려 이태 동안이나 섬을 점거하고 있었을 때 생긴 실화 한 토막이다.
처음엔 눈이 파란 오랑캐를 억시기(무척) 무서워하던 섬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차츰 신기한 군함도 구경하게 되고, 코가 큰 영국 수병과도 손짓 발짓을 나눔으로써 조금씩 친해져 갔다. 그러던 중, 영국 수병 하나가 서도(西道) 나루의 주막에 올라 거나하도록 술을 퍼마시고는 그만 춘정(남녀 간의 정욕)이 동했던지, 물동이를 이고 가는 마을 아낙의 두 귀를 잡고서 입을 ‘쪽’ 맞추고 달아난 ‘도둑 뽀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는 바, 이로써 그 수병은, 별나게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한국인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리고 만 셈이었다.

여기서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 무슨 소린고 하니, 더운 날 산나물을 뜯던 말만한 처자[處女]가 더위를 못 이겨 산골짜기 냇물에서 가슴을 씻다가 길 가던 초군(樵軍· 나무꾼)들에게 암암리에 들켰다 치자. 그걸 눈치 챈 아비와, 그로써 성이 난 아재비들은 단지 ‘먼발치로나마, 사내에게 맨살을 보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처녀의 치마에다 돌을 싸안긴 채 강물에 떠밀어 넣음으로써 그 알량한 체면을 유지해 내린 우리 민족이 아닌가? 이런 말이다.
그런 심성을 지닌 섬사람들이 영국 수병에게 당하기만 하고 가만히 있었으랴? 아니지! 아니지! 모두들 영국 군함으로 등장(等狀: 시쳇말로 데모)을 갔지! 등장을!
그러자 군기가 매우 엄정했던 영국 해군은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다 그 수병을 끌어내 놓고서, 물에다 처박는 ‘물고문’으로 온통 까무러치게 했다고도 하고, 좀 엇갈린 얘기로는 끝내 물고를 냄으로써 손상 받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되살려 주더라고 전해 온다.
이 사건에 앞서 신재효(申在孝, 1812-1884)가 창극화한 판소리 ‘박타령’에 볼 것 같으면, 놀부의 악행 가운데,
‘초상난 데 춤추기, 우물가에 똥 누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등에 이어, ‘물을 이고 가는 여자 귀 잡고 입 맞추기’라는 억지 뽀뽀 대목이 나온다.
위에 말한 놀부와 수병 사건의 공통점은, 아낙이 두 손을 올려 잡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습속에 기인한다. 남부여대(男負女戴)란 말은 본디 남정네는 물건을 등에 지고, 아낙네는 물건을 머리에 이는 습속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물건을 머리에 이는 건 우리 겨레만의 습속인 줄 알았더니, 티베트는 물론 예루살렘과 아프리카 북부의 여인들조차 걸핏하면 보퉁이를 머리에 얹는 것으로 볼 때, 여인들 사이에 스민 어떤 문화적 동질성이 아닌가 싶다.
아낙네가 물동이를 일라치면, 혹 엎지를세라 양손을 올려서 동이 꼭지를 잡게 마련이라, 누가 여간 짓궂게 굴더라도 곱다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 기회를 최대로 악용한 것이 ‘놀부’와 ‘수병’이랄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이 아낙의 입술을 훔친 심리의 밑바탕에는 ‘구애기(口愛期) 때의 의식에 잠재 돼 있던 성욕이 변형되어 분출된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학설이 미상불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만서의 기행록(奇行錄)에는 ‘도둑 뽀뽀’ 사건이 오래 전에 올라 있었으니 그 진상은 이러하다.
들에 일을 나간 농부의 점심밥은 으레 그 아낙이 내가게 마련이라, 함지를 한 손으로 잡아 인 아낙이, 남은 손엔 술병을 들고 미끄러운 논두렁길을 뒤뚱거리는 판인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허기진 정 공 일행과 외가닥 길에서 마주치게 됐다. 저만치서 오는 아낙을 본 짓궂은 이지번(李芝蕃)이,
“자네 말이야, 저기 오는 저 아낙과 입을 맞추면, 오늘은 코가 비뚤어질 만큼 내가 술을 사겠네!”라며 정 공에게 ‘술’을 걸고서 슬슬 부추기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다 목까지 타 들어가던 참에, ‘술’ 소리에 현혹된 정만서가 어찌 그 기막힌 기회를 놓칠쏘냐? 다짜고짜로, 그것도 번개처럼 점심 함지를 이고 오는 아낙의 두 귀를 잡아 얼어붙게 한 다음, 그만 ‘쪽’ 소리를 내는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도둑 뽀뽀’의 기발한 착상은 정만서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박타령’이 나오기 전부터 오래도록 구전되어 온 폐습일 성싶고, 정 공 뒤로도 영국 수병을 거쳐 20세기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져 내리고 있음을 본다.
실례를 들면,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에,
“이 달 스무 날 열두 시에 남촌 갓우물골에서 오 씨네 계집종이 동우를 이다가 또아리가 빠지거늘 사나희 한범이란 놈이 지나기에 또아리를 너 달라니 그놈이 너 주는 체하면서 입을 짝 맞추고는 은비녀를 빼가지고 도망치거늘 계집종이 고성으로 저기 도적놈 간다 하니…….”
라는 기사 속의 ‘한범’이란 사나이에게로 맥이 닿아 있음을 본다.
심리학자들이야 ‘도둑 뽀뽀’가 잠재된 성욕의 발로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간에, 현실적으로 순박한 농부의 아낙에게 ‘도둑 뽀뽀’의 봉변을 안긴 정 공 일행이 과연 무사할 수 있었을까?
그건, 어림없는 얘기다. 모르긴 해도 이번엔 담배 장수처럼 대신 맞아 줄 ‘성님뻘’도 없으니까……(229쪽 참조). 성난 농부님네의 지게 작대기에 매타작을 싫도록 당했겠지. 아니? 혹시 몰라?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격으로 옆에 섰던 고목나무가 대신 날벼락을 맞았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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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林慶澤, 이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