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은 내적 삶에서 찾아야 옳다. 만약 그 행복을 정치에서 찾는다면 사회는 격한 욕망의 분출구가 된다. 욕망은 인간세계를 넘어 자연을 무참히 파괴시킨다. 인간의 교만함은 자연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자연의 노함의 위력은 인간을 삼켜 버린다. 자연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삶은 타인, 사회, 사회에 피해만 준다.
기자의 사회 공헌은 정치의 처참한 실상의 사실(팩트)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게 삶을 찾아주고 인간의 복지를 가져다준다. 조선일보 100주년 사고는 “세상이 속도전으로 뉴스를 쏟아낼 때 우리는 팩트를 찾아 나섭니다. 가까 뉴스가 과학의 탈을 쓰고 왔을 때 우리는 검증하고 또 검증합니다....지금 진실에 눈감으면 오늘보다 나아질 수 없습니다. 진실은 팩트에 있습니다. 팩트가 있는 곳에 조선일보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속초⦁고성의 엄청난 화재인 자연을 훼손하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줬다. 그 원인이 한전의 적자로 변압기를 교체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고, 태양광으로 돌린 것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정치 광풍 사회로 사회가 소란스럽다. 북한과 조선의 문화가 아직 살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선시대 수기(修己), 극기(克己)를 도외시한 채 당파성 정치만 한다.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작년에 ‘태양광’이 훼손한 산지, 이번 강원 산불의 5배〉라고 했다.
동 사설은 “1960년대까지 전체 산의 절반이 벌거숭이던 나라가 1980년대엔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림녹화 성공국으로 변신했다. 임목축적량이 15배가 됐다. 정부의 강력한 조림 정책, 해마다 식목이면 전 국민이 나무 심기에 나선 열성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한 채 120조원이 넘는다. 흙을 지켜 홍수를 막고 대기 오염물질 흡수, 산소 생산, 경관 개선, 온실가스 흡수 등 숲이 주는 혜택은 헤아릴 수 없다.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태양광 설비가 2030년까지 4배 이상 늘어난다. 그만큼 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숲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60〜70대 국민들은 산림녹화에 특별히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일이 좋아 일을 하면서 조금씩 노력 봉사를 것이 이렇게 녹화가 되었다.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나무가 일정하게 자라니, 떨어진 잎이 거름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 온 천지가 푸르게 되었다. 요즘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산의 공기가 상쾌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정말 자연이 주는 혜택은 엄청나구나...자연의 순리대로 된 것이다.
김태길⦁이삼열⦁임희섭⦁황경식 교수는 『삶의 일』(정믐사, 1986)에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에 있어서나 삶의 궁극목적은 ‘행복’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길에서 무엇인가를 성공하고자 애쓰고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모두가 행복을 얻고자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말을 좁은 뜻으로 이해하여 ‘즐겁고 안온하며 근심 걱정 없는 삶’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풍운의 생애를 선택한 의사(義士)나 혁명가의 인생관을 소극적 의미의 행복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했다(3〜4쪽).
동 서적은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도의 잘못으로 돌리는 주장은 제도의 혁신을 열망한 사람들의 주관이 개재한 주장이며, 개인의 심정(心性)이 사회제도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생각이다(6쪽).
정치 광풍 사회는 사회제도의 모순이 사람의 심성을 황폐화시킨다는 단언적 논리로 정치광풍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신진환 기자는 4일 〈文 대통령 ‘언론에 대한 국민 신뢰 높아지는 것 같지 않아’(전문)〉라고 했다. 동 기사는 “촛불혁명 역시 우리 신문들의 보도를 통해 가장 평화롭고 민주적인 혁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모두 신문과 보도의 힘입니다. 언론 자유는 결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신문인은 참으로 어려운 길을 걸었습니다.”라고 했다.
신문이 촛불혁명을 선동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언론인은 팩트에 입각해 자유와 독립정신에 공정하게 보도했는가? 다른 말로 기자는 일에서 삶의 행복을 얻었는가, 아니면 정치 선동을 한 것 인지가 문제로 대두된다.
조선일보 A 31 오피니언 페이지의 5단 통 광고는 〈변희재 석방, JTBC와 검찰 공모 태블릿조작 특검 수사하라!〉라고 했다.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검사는 ‘최순실 태블릿PC 국정농단’
팩트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엉터리 조사를 한 것이다. 동 대통령 전문은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 많은 해직 기자들이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진실한 보도, 공정한 보도,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해 신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적 도전도 여전합니다.”라고 했다.
63회 신문의 날은 기자의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분명 성찰할 시기가 온 것이다. 신문인은 민주노총 간부에게 얻어맞고 다닌다. 열독률은 떨어지고, 국민은 신문 읽기를 거부한다.
여전히 ‘내로남불’에 말이 많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지가 의문이다. 이는 일과 정치 사이에 분명히 갈리는 측면이다. 필자는 일과 정치로 나눠본다. 조선일보 윤주헌⦁김정환 기자는 〈환경부 직원들 ‘청와대⦁김 前 장관 ’내 사람 심기‘ 갈등 있었다.’〉라고 했다.
동 기사는 “검찰은 작년 말부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하고 있다. 이 사건의 얼개는 환경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특혜까지 줘가며 현 정권 사람들을 앉혔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청와대가 계획⦁주도하고 김은경 전 장관은 주로 사후 승인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김 전 장관도 일부 산하기관 자리에 ‘내 사람’을 보내려 했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알력 다툼을 벌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라고 했다. 청와대 ‘국정농단’이 일어난 것이다.
동 기사는 “김 전 장관은 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인사를 산하기관 몇몇 자리에 임명하려 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하기관의 대부분 자리가 결국 청와대 의중대로 채워졌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정치 강풍 사회로 ‘숙청’이 이뤄진 것이다.
청와대는 지금 정치광풍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인사뿐 아니라, 전 국토를 유린하고, 파괴하면서 까지 정치적 의도를 노출시킨다. 속초⦁고성의 산불은 탐욕으로 인한 자연의 노함이 표출된 것이다. 탐욕의 끝은 어디 일까? 수기(修己)나 극기(克己)가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지 의심스럽다. 삶의 행복은 내적 완성일 터인데 말이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 있다. 그들은 진정 국정농단을 한 것인가...조윤선 장관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금 재판을 받거나, 감방에 가 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문화계 블렉리스트’는 국립극단 연극 ‘개구리’(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 2013년 9월 공연)에서 시작되었다(김기철, 〈〔태평론〕이 정부는 ‘개구리’를 참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 2018.10.30.). 그 자세한 대사 내용은 “‘우리 딸애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그러는데 학교 때 커닝 페이퍼 안 만들어 본 사람 있어? 부모 없이 혼자 자란 애라고 지랄 발광을 하고 있어요, 옛날 같으면 탱크로 확!’ ‘벌써 잊었는가. 왜놈 앞잡이가 되고자 손수 혈서를 쓰고, 만주 벌판에서 벌인 그 치욕적 활동을..’ 청와대와 집권 세력은 분노했을 것이다. 대통령과 그 아버지를 욕하다 못해 ‘대선 선거 부정’까지 들먹이다니, 이런 ‘가짜 뉴스’가 없었다. 청와대는 공무원들을 앞세워 ‘불온한’ 예술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했다.”라고 했다. 지금 청와대와는 전혀 다른 ‘블랙 리스트’이다. 정치 광풍으로 가지 말도록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일에 관한 것이고, 국고 지원에 관한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 작가들이 현실을 왜곡하면 문제가 있다. 문화계는 일을 설렁설렁하고 정치판만 벌리고 있다. 북한의 숙청 문화를 그 대로 이식한 것이다. 팩트가 이를 밝혀준다. 그 때 진정 진실을 말하는 언론인은 잘 못되었다고 지적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일보가 더 이상 정치 신문을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 국민의 신문을 보지 않는 이유가 다 있었다. 지금 청와대는 ‘적폐’라는 이름으로 정치 광풍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삶을 정치로 풀어가는 북한 문화가 대한민국에 엄습하면서 사회가 소란스럽다. 민둥산 문화까지 직수입되니, 이젠 자연까지 놀라고 말았다.
첫댓글 공감하는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