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꾸는 요셉
말씀/ 창세기 37:1-38:30
요절/ 창세기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오늘 말씀은 창세기 37,38장 말씀으로서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의 청소년 시절을 다룬 부분입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 유다의 삶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도 그들의 인생에서 많은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겪은 인생여정 중 하나 입니다. 특히 야곱은 자식이 아들과 딸을 포함하여 13명이나 되는 바람 잘 날 없는 아버지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세겜에서 딸 디나로 말미암아 엄청난 살인사건에 휘말려 그 가족 모두가 세겜 이웃들에게 의하여 몰살당할 뻔 한 그런 사건을 경험을 했습니다. 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헤브론으로 오는 중 죽는 사건도 겪었습니다. 그 사건 후에는 라헬의 첫째 아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11번째 아들 요셉이 실종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야곱의 열 한번째 아들 요셉이 어떻게 실종되고 어디로 팔려가게 가게 되었습니까? 이 사건의 배경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인생에 어떻게 함께 하셨습니까? 이런 슬픈 사건 이후 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가축을 몰고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 3명을 포함하여 자녀 13명 등 가족 17명의 대가족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딸린 종들과 함께 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상당한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 형 에서에게 주고자 했던 예물을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더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한 사람의 족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마침내 아버지의 땅 가나안에 돌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야곱은 어떤 면에서 성공적인 인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금의환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서 사는 야곱의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들판에서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이 때 요셉도 함께 했는데 아이가 17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자주 그 아버지에게 일러바쳤습니다. 3절에 보면 그 아버지 야곱이 특별히 요셉을 사랑하여 옷도 형들보다 더 좋은 옷을 사주었습니다. 형들은 이런 아버지 야곱의 편향된 사랑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지고 자주 잘못된 행동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요셉은 이런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 형들이 이런 요셉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다 보니 그 동생을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동생에게 말도 시원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형들과 동생 사이에 자꾸만 간격이 생기고 형들은 동생들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자기들은 뼈 빠지게 양을 치고 죽어라 고생하는데 동생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공부만 하고 사랑만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 큰 형들은 그래도 어린 동생을 이해해 줄 수 있었지만 중간에 있는 형들은 도무지 이 어린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기 질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기 질투를 부채질 한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후 이것을 형들에게 이야기 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형제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형들의 곡식 단들이 요셉의 곡식 단을 향해 절을 하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이 꿈을 홀로 간직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 이야기를 그 형들에게 다 이야기했습니다. 분명 그 꿈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형들의 시기를 받고 있는 형편에 이런 꿈 이야기를 들었으니 형들은 성질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오직 아버지의 사랑만 받고 사는 이 연약하게 보이는 동생이 자기들 위에 군림하여 살게 될 것이라는 꿈 이야기는 형들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도 꿈을 꾸고 또 그것을 형들에게도 이야기 하고 그 아버지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그 꿈은 지난 번 꿈과 비슷한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해몽을 해 볼 필요가 없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누가 들어 보아도 이 꿈이 주는 메시지는 요셉이 그 부모님 보다 그 형들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고 더군다나 절을 받는 꿈이므로 장차 높은 자리에 오르는 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치도 없이 요셉이 이 꿈을 자신을 시기하고 있는 형들과 또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 이런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들이 그를 시기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이것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아버지와의 관계와 형제들과의 관계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는 그래도 의사소통이 되었고 형들과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오해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떤 면에서 너무 고지식한 그런 청소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좋게 본다면 매우 정직한 청년이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가 요셉의 인생에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을 다음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그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었고 이 때 야곱이 요셉에게 그 형들이 양떼를 잘 치고 있는지 보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습니다. 목축이라는 것이 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풀을 찾아 온 들판으로 이동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처음에는 세겜에 갔지만 세겜에서 풀을 다 뜯긴 후에는 도단으로 갔습니다. 요셉도 그 형들을 찾아 도단에 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요셉이 자신들에게로 나아오는 것을 보고 한 사건을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동생을 죽여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전에 요셉에게 준 그런 사랑을 자신들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전에 들었던 꿈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런 꿈이 이루어 지지 못하도록 하고자 작전을 짰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가장 큰 르우벤이 듣고 죽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구덩이에 넣는 것은 문제없지만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고 그 동생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의 손에 그 채색옷이 벗겨지고 또 이끌려 구덩이에 붙잡혀 감금되었습니다. 이 때 그 동생 요셉이 얼마나 살려달라고 애원했을까요? 하지만 그 형들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동생의 절규를 듣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동생을 구덩이에 감금시켜 놓고 적절한 때에 어떻게든지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도 르우벤은 나중에 그 동생을 빼돌려 그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고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생들이 워낙 강경하게 주장하고 행동을 함으로 그런 행동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런 중에 멀리서 미디안 상인들이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유다가 나서서 동생을 죽이지 말고 멀리 애굽에 팔아버리면 우리 앞에 나설 수 없고 또 우리가 손에 피를 묻히지도 않고 동생을 외국에 쫓아버리니 얼마나 좋은 계획이냐고 다른 동생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아들로서는 영원히 보지 않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다의 설득으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이 순간에도 요셉은 얼마나 울며 얼마나 발부등을 쳤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들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오직 자신들의 하고자 하는 일만 하였습니다. 시기심에 사로잡힐 때 자신들의 혈육인 동생의 아픔과 고통을 전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시기심은 사람의 모든 분별력과 사랑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시기심이 살인의 원인이 됩니다. 그 중에 그래도 르우벤과 유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명이나마 살리고자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요셉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를 보니 거기에 요셉이 없어진 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들은 그 아버지에게 아들이 죽었다고 그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발라 악한 짐승이 찢어 죽인 것처럼 만들어 그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이들은 정말 아주 악한 형들이요 아주 악한 아들들이었습니다. 그 아버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확인도 해 보지 못하고 정말로 죽은 줄 알고 슬피 울었습니다. 자신도 그 아들을 따라 죽어야겠다고 슬피 울었습니다. 정말 그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 무엇으로도 이 상황을 보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라헬이 죽고 또 그 아들 야곱이 죽었으니 그 인생에 어떤 의미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그 슬픈 상황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그 아버지를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또 38장을 보십시오. 38장에는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아름답지 못한 삶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했던 야곱의 험난한 인생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인 수아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두었는데 각각 엘, 오난, 셀라였습니다. 유다가 그 첫째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를 데리고 왔는데 그 이름이 다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하나님 앞에 악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이 그 형수를 맞아 대를 잊고자 했지만 오난 역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직 셀라는 나이가 장성치 않아 그 형수를 맞을 나이가 되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 까지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그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유다의 아내 수아가 죽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시아버지 유다가 자기에게 셀라를 주지 않은 것 때문에 다말이 창녀처럼 자신을 꾸며 그 시아버지와 동침을 했습니다. 이 후에 다말이 잉태를 하였고 그 소문이 유다에게 들어갔고 그 며느리로 잉태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인 것을 안 유다는 자신의 허물 많음을 인정합니다. 그 때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유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며느리의 인생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회개합니다. 어떤 면에서 유다는 요셉이 구덩이에 감금되어 자칫하면 죽을 뻔 한 요셉을 살려 애굽에 팔려가게 한 장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며느리 다말을 구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윤리적으로는 허물이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인정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며느리 다말의 인생을 구원해주었습니다. 유다는 윤리적으로는 허물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영적으로는 사랑과 긍휼의 사람이었고 회개하는 영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사실 야곱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야곱은 정말 제 3대 믿음의 조상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것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믿음을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는 야곱의 아들 중 두 사람 요셉과 유다의 삶을 배웠습니다.
첫째 요셉의 꿈꾸는 청소년 시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도 도우시지만 또 요셉의 인생에도 관여하시는 것을 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 하시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청소년이 된 요셉에게 꿈을 보여주시고 그 꿈을 통해 원대한 비전을 갖도록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꿈을 통해 가족 중에서 으뜸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간직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온 세상에서 뛰어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꿈도 갖게 해 줍니다. 그는 평생 이 꿈을 간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잠을 자면서 늘 꿈을 꾸지만 특별한 꿈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바로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꿈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 꿈을 간직하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세웠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꿈 때문에 고난을 받는 삶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고난스러운 운명적인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마음에 간직함으로 형들의 시기를 받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끔찍한 고난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 의로운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배웁니다. 또한 꿈을 좇는다면 또한 고난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꿈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야겠습니다. 요셉은 꿈을 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유다의 삶입니다. 유다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비윤리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것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다의 현재까지의 삶은 정말 매우 초라해 보입니다. 정말 사람들 앞에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삶은 온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많은 사건 앞에서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이 옳지 않은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오히려 며느리 다말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더 옳았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삶이 쓰임 받는 꼬투리가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윤리적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잘못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경주센터 이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