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말갈족, 여진족, 거란족으로 불리며 업신여겨지면서도- 비근한 예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거란족이 선물로 낙타 몇 마리를 보냈는데 선죽교 다리 아래 뙤약볕에 묶어 둬서 굶겨 죽였다는 얘기도 있더만- 어째 쪼매 심심할라치면 등장하곤 했던 만주족들이 누루하치의 영도 아래 17세기 초엽부터 중원을 휩쓸더니, 마침내는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은 것맹키로 명(明)을 멸망시키고 청(淸)을 세워 거대한 한족(漢族)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동북부 일대에 퍼져 살던 만주족들은 원래 농경민족이었지만 몽골의 원나라의 지배를 거치면서 서서히 기마민족의 성격을 갖게 되었으니, 뭐 농사를 짓든 말을 타든 무식하기는 매 한가지였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요행이랄지 중원을 지배하게 되면서 당연히 한족들에게 자신들의 이념과 문화를 강요하는 게 이치에 맞았겠지만, 체두변발(剃頭辮髮) 외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사실 아닐까?
용광로(melting pot)란 게 그런 거였으려니, 청나라 300년- 정확히는 296년이었나- 역사의 결과는 비록 피지배 민족이었던 한(漢)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서슬 푸른 지배민족인 만주족이 하릴없이 녹아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흔적조차 없이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 만한일체(滿漢一切)라 하여 청의 황제들이 동화정책을 적극 추진한 탓도 있었겠지만,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족에 대한 만주족은 언제나 열등 민족일 뿐이었다.
그러한 열등감이 청의 전성기였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집권시에도 끊임없는 필화(筆禍)를 불러왔으니,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한족을 지배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는 한족으로부터 항상 경멸받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청나라 시대의 서준(徐駿)의 목숨을 앗아간 그의 한시 '청풍도(淸風濤)'를 감상해 보자. 바람이 글도 모르면서 책장을 넘긴다는 대목 때문에 황제 옹정제는 자기네 만주족을 경멸했다는 이유로 애꿏은 선비의 목숨을 거둬버린 것이었다. 하필 시에 쓰인 맑은 바람이 한자로 淸風이고 그 '청(淸)'이 청나라 이름 청이었네그랴. 그게 글자도 모르면서 감히 아는 척 페이지를 넘기다니...죽을 짓을 한 건가?
莫道螢光小 반딧불의 불빛이 작다 탓하지 마라
猶懷照夜心 되레 어둠 속 내 마음을 비춰 주나니
淸風不識字 맑은 바람은 글자를 알지도 못하면서
何故亂飜書 어찌하여 어지러이 책장을 뒤치는가
참으로 어이없는 역사적 사실로서 이는 분명 경멸의 결과로서의 열등감이 아니지만, 열등감은 현대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도 수많은 악의 씨앗을 뿌려대는 것임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청의 전성기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유독 필화 사건이 많았던 데는 한족에 대한 만주족의 정신적·문화적 콤플렉스가 그만큼 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