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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암의 전경..절벽위 둥지를 막 떠나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처럼 날렵합니다. |
사성암의 전각들은 오랜 창건역사와는 달리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입니다.
아마도 그동안은 암자터였던 모양입니다.
고풍스런 느낌은 없지만, 절벽에 바짝 붙여 지어진 건물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팔작지붕의 모습은 마치 절벽위 둥지 속에서 막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려는 새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 사성암 약사전으로 오르는 길..담장에 놓여진 소망을 담은 기와들.. |
견고하게 쌓은 담장과 계단을 따라 약사전에 올랐습니다.
모진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을 듯한 견고함과 정성이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망과 기도가 담긴 기와장들이 담장 위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 약사전 난간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주변풍경... 헉헉거리며 올라온 길이 보입니다. |
약사전에 올라 난간에 서자 저 아래로 섬진강 줄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풍경이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방금 전 헉헉거리며 올라왔던 길도 보였습니다.
'내가 저 길을 올라왔단 말이지. 올라올 때는 멀어 보이고 길어 보이고, 흔들림도 있었지만,
지금 내려다보는 방금 전의 그 길은 그저 하나의 실을 아무렇게나 옮겨놓은 듯 하구나.
지금에 와서야 별것도 아닌 것을…'
앞을 내다보고 넓게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비춰주는 순간이었습니다.
▲ 사성암 북쪽 절벽쪽에서 바라본 구례읍과 너른 벌판의 풍경 |
약사전을 내려와 절벽 뒷편으로 다시 올랐습니다.
강한 바람이 바위를 비집고 얼굴을 한없이 강타했습니다.
차디찬 느낌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제 봄이 오고 있다는 전조가 아닐런지.
바람을 마주하며 절벽 뒷편으로 오르자
구례읍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조망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도 역시 돌로 견고하게 쌓은 낮은 담장들이 보기좋게 굽이굽이 이어져 있고,
절벽 안쪽으로 숨은 듯 지어진 산신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사성암 북쪽 절벽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 |
다시 동편으로 낮은 담장을 따라가니 섬진강과 지리산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빛이 구름에 가려서인지 맑은 풍경을 여지없이 가리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리산이 한없이 낮아 보이다니. 지리산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산 아래의 복잡스러움과는 달리 지리산의 모습은
정기를 가득 머금은 채 편안히 누워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 사성암을 내려와 광양을 달리는 길에 바라본 장엄한 지리산 |
사성암에서는 쉽게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오산 정상 사성암에서 바라보던 지리산이 이제는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을 찾은 것 같습니다.
▲ 섬진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일렁이고 있습니다. |
푸르디 푸르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섬진강 물결과 아직은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지 않은 듯
산세에서 느껴지는 짙은 색감은 떠나는 겨울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봄이 찾아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라며
은은하게 기다릴 줄 아는 대자연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조만간 흐르는 강물에서 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그제서야 저 당당한 지리산도 곧 봄을 품안에 품겠지요.
섬진강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저도 봄을 기다려 봅니다.
풍수지리학상으로도 명당이라고 했다.
오산은 섬진강에서 노는 자라 형국. 오산(鰲山)의 뜻이 바로 ‘자라산’이다.
큰 산과 큰 강이 어우러진 구례땅은 예부터 길지 중의 길지로 꼽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남원, 진주, 성주와 함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썼다.
볍씨 한 말을 뿌리면 예순 말을 거둬들이는 곳이라는 뜻.
조선시대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명당을 찾아 구례땅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다.
1931년에 간행된 ‘조선의 풍수’란 책에는 충청, 전라, 경상 지역에서
100여호가 명당을 찾아 몰려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오산 정상에서 구례땅을 내려다보면 풍수를 모르는 사람도 구례가 길지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높은 산줄기가 호수처럼 푸른 들판을 에워싸고 있고,
섬진강이 들판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국내 3대 명당으로 꼽힌다는 운조루도 희미하게 보인다.
운조루는 천상의 옥녀가 지리산 형제봉에서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형국.
운조루 외에도 구례에는 금거북이가 묻혀 있는 ‘금귀몰니(金龜沒泥)’,
5가지 보물이 있는 ‘오보교취(五寶交聚)’의 길지가 숨어 있다고 한다.
오산의 산줄기 끝머리에는 5마리의 봉황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오봉산도 붙어 있다.
그래서일까.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과 간전면 양천마을은 전국 제일의 장수촌으로 유명하다.
또 문척면 동해마을은 희한하게 여름에도 모기가 없다고 한다.
오산의 정상은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신발이 떨어지면 섬진강 끝줄기 하동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뜀바위, 신선이 살았다는 신선대,
산을 둘러싸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병풍바위 등 봉우리들도 기기묘묘하다.
그래서 이곳에도 소금강이라는 별호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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