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영원면 길거리 문화재
서울 강남이 물에 잠기던 며칠 전 전라북도 정읍 조그만 시골 마을에는 경사가 났습니다.
바로 영원 면민이 모여 길거리 문화재를 실시한 것입니다.
정읍 시골 사람들은 사방으로 호남평야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편히 놀 시간이 없습니다.
“꼬끼오!” 하고 외치는 수탉의 알람 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갑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에서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원한 새벽에 일을 합니다.
새벽이슬에 젖은 모기와 깔따구가 땀에 젖은 농부의 얼굴에서 달아날 줄 모릅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수박밭에서 수박을 골랐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앵성리 최 씨 아저씨네 원두막에서 최 씨 아저씨가 길가는 동네 어르신을 부릅니다.
“어르신! 이 새벽에 벌써 논에 댕겨 오는 갑소. 이리 오셔서 수박 한 조각 잡숫고 가시랑께요.”
말라비틀어진 수박 순에서 따낸 수박을 아저씨는 칼로 자릅니다. 발갛게 익은 수박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아니 이렇게 큰 수박을 팔지 왜 자르고 그러는가. 아깝쿠로......”
“마른 순에서 딴 수박은 단맛이 없당께요. 억지로 익은 거구먼요. 손님도 이리 와서 한 조각 들어 보소.”
주인아저씨는 나에게도 수박을 권합니다.
“아이고 잘 먹겠습니다. 밭에서 직접 딴 수박을 먹어본 적이 삼십년은 넘은 듯싶군요.”
어르신은 연거푸 수박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씀을 하십니다.
“참! 자네 말이야! 오늘 영원초등학교에서 길거리문화재인가 뭔가 한다는데 아는가?”
“그게 뭔데요?”
“나 참,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모른 당가? 영원 면민들 모아놓고 문화재를 한다는 구먼, 사진작가, 예술가. 소설가, 시인들의 시낭송 그리고 영원에서 알아주는 재주꾼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는 구먼,”
어른신의 말씀에 저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문화재에 참석하려고 내려온걸요.”
수박 주인이 내게 묻습니다.
“손님은 어디 사는 누구인데요?”
“저는 이평중학교 앞집에서 살다가 고향 떠난 지 25년이 넘었는데 시낭송을 한다고 초청이 와서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그럼 손님이 시인이신갑소?”
“에고 그냥 시와 소설을 끼적이는 정도인걸요. 하하.”
우린 오후에 행사장에서 다시 만나기로하고 헤어졌습니다.
영원 초등학교 강당에는 많은 영원 면민이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르신부터 어린아이까지 많은 분들이 잠시 일손을 접어두고 성공적인 문화재를 만들고자 참석한 것이지요.
논의 피를 뽑다가 거머리에 물린 다리를 싸매고 오신 농부 아저씨, 호미질을 하다가 몸배바지 차림에 수건을 눌러쓰고 오신 아낙네,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오신 슈퍼가게 아저씨, 그리고 영원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사진전과 시화전, 조각품 전시회, 그리고 이고장의 시인과 소설가들의 시낭송까지 참으로 다채롭고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모처럼 오랜만에 시낭송을 했습니다.
저는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제 소개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저는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읍역에서 서울행 마지막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찬바람이 덜컹덜컹 기차 유리창에 박혔습니다. 이제 가면 다시 언제 올지 모를 이 길을 저는 그렇게 떠났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25년이 더 지났습니다. 이제 제가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어 다시 고향에 왔는데, 그때 흐르던 동진강 물줄기는 아직도 유유히 흐르는데, 그때 날 대견하다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축제장은 일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눈시울을 훔치는 어르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 차례가 끝나고 다음에는 도청에 근무하시는 어느 시인님이 시낭송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쓴 것인데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모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농촌 아낙네들이 모여서 만든 풍물놀이와 색소폰 연주, 대금연주, 등 영원면의 스타는 총 출동을 한 듯 보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런 시골 촌에서 이런 시낭송과 시화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왜 그리 아름답던 지요.
앞으로 많은 시골에서 길거리 문화재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른 감성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준 영원면 길거리 문화재에 대해 다시금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