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롱개와 만난 기쁨
조 명 철
베롱개, 그 이름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별들이 베롱베롱, 마을엔 집집마다 호롱불이 베롱베롱, 어두움을 뚫고 빛을 발하는 모습, 그것은 희망의 빛이다. 그래서 이 고장 선인들은 배롱개라 불렀나 보다.
봄의 막바지, 그날 베롱개엔 황금빛 햇살이 잔잔한 옥색 바닷물을 희롱하고 있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그 물빛에 나는 이내 반하고 말았다. 과장이라 할지 모르지만 가보면 안다. 서천꽃밭 같은 풍경,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감히 말하거니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베롱개에 가보라.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사랑이 시들해져 헤어지고 싶은 심정이라면, 또한 이곳을 찾아가보라. 이별의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사랑은 되살아날 것이다. 바로 베롱개가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 줄 터이니 맗이다.
어느새 발걸음은 방파제를 따라 바다 안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금빛 햇살은 바다를 간질이고, 바다는 소리 내어 웃고 있다. 그 바닷물에 두 여인이 몸을 담그고 있지 않는가. 아직 해수욕을 하기엔 때가 이른데 바다에 안긴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옥빛 바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탓이리라. 그 여인들은 고개를 들고 우리 일행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낸다. 자궁 속의 유영인 듯 편해 보인다. 원초적 행복이다.
방파제 끝자락에 머문다. 미풍은 바다 안의 소식을 귀띔해 준다. 용왕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심청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꾀로써 용궁에서 살아 돌아온 토선생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오른쪽 육상에도 왼쪽 저만치 바다위에도 바람개비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라 위용을 자랑하며 천천히 돌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다. 옛날의 바람은 제주를 황폐화 시켰지만 오늘의 바람은 풍요를 창조하고 있다. 시대가 지나면 바람도 달라지고 있음을 본다. 제주에서도 가장 가난했다던 마을마저 풍차가 도는 낭만의 마을로 변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되짚어 돌아오는 길, 두 여인은 어느새 방파제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다. 성급한 관광객이지 싶어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 본다. 이 마을 주민이노라 한다.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이 베롱개에 반해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는 게 아닌가. 베롱개가 서울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며 커피 한 잔 대접할 터이니 시간 내어 찾아오라며 미소를 보낸다.
베롱개는 어디쯤인가. 제주시 도심에서 동쪽으로 우회도로를 따라 30여 분 거리, 구좌읍 월정리 앞바다가 바로 그곳이다. 발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데마다 아름다움이 지천으로 널린 제주이지만, 베롱개의 아름다움은 도드라지다.
이제는 월정리를 지나는 올래길 20 코스마저 개통되었다. 베롱개는 입소문을 더욱 타게 될 터이다. 이 마을은 오래지 않아 외지인들에게 점령되어버릴 듯싶다. 이를 어찌하랴. 아름다운 비명이지 싶다.
등하불명이란 말을 떠올린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 그 베롱개를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다니 황당한 일이 아니던가.
월정마을, 달이 뜨면 물은 이내 달을 품는가보다, 달과 물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곳 월정리月汀里, 풍류가 넘치는 아름이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까지 발견되어 아름다움을 보태었다. 땅속 ․ 땅위 ‧ 하늘 ‧ 바다, 어디에고 베롱베롱 희망이 솟아나고 있다.
햇볕 쏟아지는 날 베롱개를 찾아가, 낮에는 백사장에서 뒹굴며 바다에 안기고, 밤이면 갯가에 앉아 하늘에 뜬 별을 헤고, 바다에 빠진 별을 주우며 사랑이야기를 노래한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첫댓글 베롱게... 지금은 제주도 최고의 해수욕장... 제주 최고의 백사장 베롱게를 시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하셨네요
즐감하였습니다
베롱게 그 아름다운 바다가 나에겐 한알의 청심환.
한폭의 동향화를 보는 듯 아름답게 글을 쓰셨네요
베롱개를 만난 것도 인연이요. 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준 것도 인연이요.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의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