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탄현동 주민자치위원회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고양 고봉누리길 - 황룡산 구간
황룡산 구간은 고봉산삼거리 고개에서 우측으로 금정굴 방향으로 진행한다..........
건너다 본 고봉산쪽 들머리에는 등산객들의 차량들이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다..........
한남정맥의 마루금 상의 고봉산삼거리고개에는 363번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오르는 계단 옆에는 고양고봉누리길 종합안내판이 서 있다...........
황룡산(黃龍山)
황룡산은 고봉산과 함께 고봉 누리길상의 주요 산으로 고양시와 파주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높이는 해발 134.5m이며
산 정상에서는 고양, 파주, 양주, 김포, 강화, 개성 등이 조망되는 전략상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리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황룡이란 이름은
성석동 두테비 마을의 두꺼비와 황룡산의 황룡이 다툰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산아래 감내 마을에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용강서원(龍江書院)을 비롯하여
황토문화재인 이천우 묘소, 권필, 권벽이 무덤이 남아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용강서원(龍江書院)
일산동구 성석동 황룡산 자락 감내 마을에 위치한 서원 건축물이다.
용강서원은 현재 홍살문, 묘정비, 삼문, 고직사 등의 건조물이 남아 있으며 매년 재향을 봉행하고 있다.
용강서원에는 고려말의 충신이며 몽고군을 물리친 충정공 박서(朴犀)와 조선 태종 때의 충신인
충정공 박순(朴淳), 숙종, 영조대의 문신인 경헌공 조상경(趙尙絅)을 제향하고 있다.
지금의 건축물은 1970년대에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제향일은 봄에 음력 3월16일, 가을에는 음력 9월16일에 지내고 있다.
감천(甘川) 마을
감천은 한자식 이름이며 쉽게 감내라 불리는데 옷감내와 아랫감내로 마을이 나위어져 있다.
마을 앞으로는 일산과 봉일천을 연결하는 고봉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마을 뒤로는 황룡산이 감싸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감내는 예부터 황룡산 자락에서 시작된 개울 물맛이 달고 좋아
달감(甘)자에 내천(川)자를 써서 감천이라 한 것이다.
마을 내에는 용강서원과 같은 한옥건물을 비롯하여
단독주택 및 이천우의 묘소와 같은 황토문화재도 자리해 있다.
감내 마을 뒤로는
파주시 교하 운정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고양시는 물론 파주시와도 가깝게 지내는 마을이다.
권필(權韠)의 묘
권필(權韠)은 조선중기 문인으로서
선조(宣祖)2년(1569)에 출생하여 광해군(光海君)4년91612)에 사망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문인(門人)으로 문명(文名)이 높았으나,
과거(科擧)에 뜻을 두지않고 시주(詩酒)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문신들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강화부(江華府)에 갔을 때 많은 유생(儒生)들이 몰려오자 이들을 가르쳤고,
이정구(李廷龜)가 대문장가로 알려진 명(明)나라 사신(使臣) 고천준(顧天俊)을 접반하게 되어
문사(文士)를 널리 엄선(嚴選)할 때 재야인(在野人)으로 뽑힐 정도로 문명(文名)을 떨쳤다.
저서(著書)로는 “석주집(石洲集)이었다.
계단을 따라 마루금을 오르면서 고봉산삼거리 너머로 건너다 본 고봉산의 자태.........
마루금을 오르면 이내 경사가 거의 없는 육산으로 편해진다..........
금정굴을 지나면서.........
우측 아래로 중산힐스인도어골프연습장이 내려다 보인다.........
이정표 황룡산 정상을 따라 진행한다..........
이제부터 솔향이 가득한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중산힐스인도어골프연습장 너머로 감내마을이 조망된다...........
일산청소년 수련원에서 시설한 체육시설을 지난다............
9사단 신병훈련대대의 철조망을 만나 우측에 두고 진행한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주민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약수터가 나오고 황룡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이정표가 하나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설치가 되지 않았다..........
9사단 301대대장의 경고문이 붙어 있는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등산로는 계속 이어진다.........
이정표가 설치되지 않고 기둥만..........
빈약하지만 운동시설이 설치된 구간을 지난다...........
빈약한 체육시설은 오래전에 설치된 것인데 2011년 12월 9일 설치된 것처럼 안내문이 서 있다...........
되돌아 본 체육시설이 있는 장소.........
진행방향의 좌측 아래는 9사단 사격장인데 민원이 많아 올해부터 사용이 중지되고 있다.........
전방에 보이는 봉우리가 한북정맥이 북한산에서 견달산 그리고 고봉산을 지나
황룡산을 이어오다가 좌측으로 경성큰마을을 지나 가구공단1문쪽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봉우리 정상에 있는 군부대에서 설치한 삼각점...............
봉우리 정상에 있는 이정표(금정굴 0.79km, 황룡산 0.8km)........
이왕이면 이정표에 고봉산까지의 거리를 표기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고양누리길 황룡산 등산로는 좌측으로 진행하는 한북정맥을 버리고 직진하여 진행한다..........
또 하나의 이정표(탄현묘지 0.1km, 금정굴 0.79km)...........
군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은
황룡산에서 제일 급한 경사가 있지만 등로의 재미를 주는 별로 어려움이 없는 구간이다..........
경사길에는 로프 난간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이번에 황룡산 정비의 일환으로 설치한 것이다).........
경사로를 내려가면 301부대의 작은 후문이 있고 좌측으로 홀트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이정표가 하나 필요하지만 없다........
이제 301부대의 철조망을 버리고 직진하여 좋은 길을 따라 등로를 진행한다.........
정오를 지난 한낮에 쏟아지는 향기가 짙다...........
북녘을 지키고 있는 벙커를 지나면서...........
전방에 황룡산 정상이 보이고 정상위에 군부대가 조망된다..........
파노라마로 보는 황룡산 정상의 전경............
마루금은 좌측에 따라오는 교통호와 같이 진행된다..........
멋진 솔밭길 양옆에는 운동구가 몇 개 설치되어 있다........
파주 운정신도시가 건너다 보인다............
팔각정을 하나 설치해 놓으면 멋진 명소가 될 곳이다...........
정상의 군부대가 보이면 이번에 설치한 벤치와 안내문이 서 있다..........
탄현동(炭峴洞), 숯고개 이야기
탄현동은 고양시 일산서구에 속한 마을로 숯고개라 불리운다.
숯고개라는 이름은 일산지역의 명산인 고봉산과 황룡산에
많은 참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개발 전 마을은 위쪽에 있는 상탄마을을 시작으로 하여
중탄, 하탄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산과 논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탄현동의 서쪽으로는 경의선 철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일산 홀트학교가 들어서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행신, 탄현, 성사지구와 함께
택지개발이 이루어졌고 이후 계속된 도시화로 인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을 안에는 SBS드라마제작센타를 비롯하여 탄현 문화의집 등이 자리해 있다.
탄현동에서 황룡산과 고봉산을 연결하는
고봉누리길은 주민들의 휴식 및 운동공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봉누리길
황룡산(黃龍山) 이야기
황룡산은 고봉산과 함께 고봉누리길상의 주요 산으로 고양시와 파주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높이는 해발 134.5m이며
산 정상에서는 고양, 파주, 양주, 김포, 강화, 개성 등잉 조망되는 전략상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리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황룡이란 이름은 성석동 두테비마을의 두꺼비와
황룡산의 황룡이 다툰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온다.
산 아래 감내 마을에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용강서원(龍江書院)을 비롯하여
향토문화재인 이천우 묘소, 권필, 권벽의 무덤이 남아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 설치한 평상...........
새로 설치한 화장실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이..........
용강서원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새로 설치된 화장실은 조립식으로 만들어졌다.........
물이 없어 위생상태는 제로에다 악취가 나서 혐오시설이 되어 버렸다........
용강서원 방향으로 간다..........
되돌아 본 황룡산 정상부...........
개인 등산객이 붙여놓은 황룡산 정상표시가 아랫쪽에...........
내려가는 경사길에 설치된 로프난간...........
치워지지 않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덩걸을 피해 진행한다...........
우측 아래로 감내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등로는 교통호를 따라 이어진다.........
또 다시 만난 로프난간.........
별로 필요 없는 난간시설이다.........
계곡을 돌아간다.........
나무 아래를 큰 절을 하고 지나간다.............
쓸데없는 뻣뻣한 자존심은 내려놓고...........
등로는 다시 편해진다..............
뒤로 가면 바로 황룡산 정상의 군부대로 가는 군사도로를 만나지만 전주이씨 음택 앞을 지난다........
감내마을 너머로 고봉산을 조망해 본다........
전주이씨 음택 몇 기를 지나가면..........
군사도로를 만나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좌측으로 용강서원을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내려가는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황룡산 쉼터 0.6km, 용강서원 0.7km)........
내려가는 길 좌측에 설치된 로프난간...........
정비되지 않은 소로길로 이어진다..........
여성분들은 약간 겁이 나겠지만,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을 사색하며 지나간다.........
평산신씨 음택을 지나가면...........
되돌아 보는 평산신씨 음택...........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뒤쪽으로 가서 함흥차사의 주인공 박순(朴淳)의 음택으로 간다...........
이정표(황룡산 0.76km, 용강서원 0.16km)...........
함흥차사 박순(朴淳)의 음택............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조선 태조, 丁丑年 신덕왕후 강씨가 승하하자
방원이 하륜의 계책에 따라 정도전의 난을 평정하였다.
강씨의 소생인 세자 방석(芳碩)과 그의 형 방번을 살해하니
역사는 이를 '제 1차 왕자의 난'이라고 기록한다.
이 성계가 크게 노하여 방과(芳果: 후에 정종이 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난다.
그 뒤 방원은 방간의 도전을 물리치니 이를 '제 2차 왕자'의 난이라고 부른다.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태종이다.
태종이 사신을 보내어 이성계를 돌아오기를 간청했지만
이성계는 자기를 데리러 오는 사신을 모두 죽여 버린다.
이러기를 무려 10년 동안이나 하였다.
함흥으로 보낸 사신이 "함흥차사"다.
여기서 나온 함흥차사라는 말은 한 번 가기만하면 깜깜 무소식이라는 뜻으로
심부름을 가서 아주 소식이 없거나 더디 올 때 쓰는 말이다.
"강원도 포수"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그 뒤에
태종은 이성계의 어릴 때 친구였던 박순(朴淳)을 사신으로 보내게 된다.
먼 길을 떠나는 박순은 새끼 딸린 어미 말을 데리고 가서는
망아지를 이성계가 머무는 곳의 맞은 곳에 묶어 두고
자신은 어미 말만 타고 이성계의 처소에 이르러 알현을 하였다.
이 때 멀리 보이는 새끼 말과 어미 말이 서로 마주보며 날뛰면서 길게 소리쳐 우니,
이 소란스러움에 태조 이성계가 괴이여겨 그 까닭을 박순에게 물으니
모든 사실을 아뢰면서
"짐승도 저러하거늘 지극하신 자애(慈愛)로서
어찌 주상(主上: 태종)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으십니까?"하고 돌아 가기를 권유하였다.
이성계는 마음이 움직여 한참 있다가 돌아가기를 허락하였다.
그러면서
"그대는 내일 새벽닭이 울기 전에 이곳을 떠나서
오전 중에 빨리 영흥(永興) 용흥강(龍興江)건너가도록 하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였다.
이튼날 아침,
여러 관원들이 박순을 죽이기를 간청하자 처음에는 허락을 하지 않았지만 재차로 간청을 하자,
태조는 박순이 이미 영흥강을 지났으리라 생각하고
"만약 영흥강을 건넜거던 죽이지 말고 돌아오라" 하고 허락을 하였다.
사자(使者)가 말을 달려 강가에 도착을 하니 박순이 마침 배에 오르는 참이었다.
결국 그 사자는 박순을 뱃전에 끌어내려 베어 죽인다.
죽으면서 박순은
"臣은 비록 죽으나 성상(聖上)께서는 식언을 하시지 말기를 바라나이다"하며 죽어 갔다.
박순의 음택 아래에는 박순의 소실의 음택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이정표로 나와서 좌측으로 용강서원으로 내려가면...........
수로너머로 용강서원이 보인다...........
농업용 수로 밑을 지나...........
용강서원 앞의 홍살문이 보이고 너머로 고봉산이 보인다.........
용강서원 중건비..........
용강서원 앞쪽 전경.........
용강서원의 전경..........
홍살문 앞에서 다시 보는 용강서원...........
용강서원(龍江書院)
일산동구 성석동 황룡산 자락 감내마을에 위치한 서원 건축물이다.
용강서원은 현재 홍살문, 묘정비, 삼문, 사당, 고직사 등의
건조물이 남아 있으며 매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용강서원에는 고려말의 충신이며 몽고군을 물리친 충정공 박서(朴犀)와
조선 태종 때의 충신인 충정공 박순(朴淳),
숙종, 영조시대의 문신인 경헌공 조상경(趙尙絅)을 제향하고 있다.
지금의 건축물은 1970년대에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제향일은 봄에 음력 3월16일, 가을에는 음력 9월16일에 지내고 있다.
용강서원을 나와 상감천슈퍼 앞을 지나간다..........
되돌아 본 상감천슈퍼쪽 전경.............
상감천 슈퍼를 나오면 서 있는 이정표(용강서원 0.14km, 상감천마을)에서 상감천마을로 진행한다........
옛골 시골밥상집 앞을 지난다............
옛골 시골밥상 집 앞쪽 전경..........
옛골 시골밥상 집에는 등산객들이........... 혼자라서 그냥 진행한다........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일산손만두집을 지나간다...........
일산손만두집 전경...........
상감천마을회관도 지나고..............
뚝딱게장집도 지난다...........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고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
주택 너머로 고양실업고등학교가 건너다 보인다............
정다운 마실길을 따라 걸어간다..........
고봉로 55-20에서 좌측으로 틀어서 고양실업고등학교쪽으로 진행.........
창고사이를 지나 좌측에 보이는 실내낚시터를 지나간다...........
되돌아 보는 마을..............
고양실업고등학교가 보이면 우측의 음택단지를 따라 오른다.........
음택단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마루금을 이어간다...........
음택지를 올라가다 내려다 본 고양실업고등학교와 상감천 그리고 성석동...........
넓게 자리잡은 음택지...............
넓은 음택지에서 고봉산의 통신탑을 건너다 본다.............
301대대의 철조망을 다시 만나면 좌측에 철조망을 두고 올라간다..........
본 등산로와 만나서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돌아간다..........
군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서 황룡산 등로를 걷다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약수터로 내려간다(이정표가 없다)..........
이곳에도 이정표 기둥만 있고 이정표가 없다..........
초라한 약수터.............
눈살 찌프리게 하는 쓰레기 더미가..............
예전부터 있던 철봉과 평행봉..........
등산로 입구에는 에어워셔기로 먼지를 제거하고 있는 주민들.........
에어워셔기는 박상인 구청장이 설치해 준 것이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황룡산 등산로 약수터쪽 들머리 전경...........
입구에 있는 이정표(황룡산 1.76km, 탄현마을 0.15km)에서 오늘 답사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