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있었던 오래전 일이다. 그리고 실명을 거론 안할 수 없다.
전북 순창군에서 남원을 향해 7km쯤 가다보면 적성면이 나온다.
그 곳 적성면에 면 소재지(고원리/관평마을) 옆
적성초등학교가 보이고 초등학교 옆 우뚝 자리 잡은 적성교회가 보인다.
그 교회에 신앙이 누구보다 돈독하고 잘생긴 두 집사가 있었다.
한 분은 서상조(사후에 그는 김상조로 변경)집사이고
(또 한 분은 하명수집사) 그런데 그 교회 건축 당시 그 터는
서상조 집사의 땅인 논이었다 그 논 위에 건축을 하게 된 것이다.
워낙 성실하고 근면하여 논,밭 4,000여평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살아
주변의 칭송과 소문이 잦아 그 때문에 모두들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 신축도 그의 몫, 그가 궂은 일 마다 않고 손수 지었다.
그러던 중 일이 크게 벌어졌다. 다름이 아닌
그 서 집사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나무로 만든 삼각 사다리를 딛고 올라서 천장 공사를 하던 중
그를 지탱하고 있던 삼각 사다리가 싹 뚝 잘라져 버려 부러진
사다리 한쪽이 서 집사를 관통하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을 사고였다.
얼마나 끔찍했냐면 그를 부러진 사다리 한 끝이 그의 항문을
관통해서 배를 통과해서 뒷 목으로 나온 정말 말로 표현하기조차
끔찍한 사고 였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가 차에 실려
광주 모 병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그 서 집사의
왜 마디 같은 호소와 절규는 이랬다.
"하 집사! 사람이 죽음이라는 걸 누구나 겪는데
그 죽음이라는 게 고통이 얼마나 커야 오는 거야!
내가 이래도 아직 살아 있으면 이
고통이 죽음보단 못해서 인가 봐? 하 집사!
내가 이래도 살 수 있어?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는 걸 보면
죽음의 고통은 이보다 엄청나게 큰 가봐."
그런 후 그는 병원에서 곧바로 유명을 달리 했다.
천국행(?)을 탔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참아내듯 끝까지
참고 견디다가 천국을 간 것이다.
나는 요즘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이란 고통이 얼마나 크기에 서집사님이
하명수 집사에게 신음하시면서 외친 소리가 들리는 듯한다.
도대체 얼마나 큰 고통이 죽음이란 고통에 다다른단 말인가?
밥맛이 없다. 살 맛도 없다. 이 정도론 아직 이르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아니 대부분 85-6세에 이르면 죽음에 이르는 천국행을 탄다.
근래 유명한 연예인들 다수가
그렇고 유명 정치인, 종교인, 체육인,언론인등 모두가 죽음앞에
조금도 거절하지 못하고 천국행이다. 너 나 할 것 없다.
우린, 죽음이 마지막이란 생각은 하면서
죽음이 영원한 삶의 거룩한 입장식이란 생각을 안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 같다.
잠시 세상에 머물며 살아갈 이세상의 헛된 삶.
그것 때문에
남을 짓밟고, 헐뜯고,질투하고, 다투고, 시기하고, 뽐내며 산다는 말인가?
좀 더 초연해질 순 없을까?
부모가 자녀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부자가 가난한 이에게 권력자가 백성에게, 힘센 자가 약자에게
아니, 묻지마폭행등 전에 보이지 않던 현상이 주변에서 다반사다.
더우기 상인이 소비자에게,선배가 후배에게 교사가 제자를,
제자가 선생님을 폭력으로,
한편 인터넷으로 댓글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함이나
목사나 스님등 종교인이 신도를 폭행. 신도가 목사나 스님을
여러가지 일로 폭행,폭언하며 서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변호사,의사가 아내를 반면에 아내가 변호사나 의사를 죽이고
폭행하며, 산모가 영아를 죽게 만드는 엄격한 현실등
사회나 주변이 풍부하고 부요 할 수록 더 각박해져 간다.
죽음이란 고통은 서상조 집사를 관통해도 이르지 못할
너무 큰 고통인데 그것을 모르고 감사하지 못하며
우린 그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앞에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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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민원, 양환욱 및 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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