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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은 늘 그렇듯 쓸쓸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곧 다가올 추운 동토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백설이 난분분하고 북풍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만 생각해도 움추려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엄함이 있기에 새봄을 만나는 기쁨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순환은 모든 것을 새롭게도 하지만 퇴락의 의미도 지녔다. 천천히 사라지며 어느날 홀연하게 우리들의 기억을 떠나는 일이 참 많다. 가을이 익어가는 길목에 홍주를 선택하고 해변길을 걸으려 한 것은 자꾸 세상 이치에 대한 진리적 사고 보다 실리에 매달리는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피하려는 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정직한 자신을 찾아 보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10월 성지순례와 해변 걸음여행이었다. 모래 언덕, 갈대 숲과 해송 사이로 난 사잇길을 걷고 파도소리와 해풍, 해국과 초롱꽃을 보며 정직한 나를 찾아 고요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하늘의 주인이신 큰 어른을 통하여 평화를 얻고 싶었던 길이 바로 10월의 순례와 길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평화를 기원해 드리며 ......
그리스도의 역사는 어쩌면 박해와 순교 위에 세워진 그분의 이야기다. 늘 그렇듯이 약속 시간에 맞춰 모두 모이셨다. 새벽부터 분주한 사람은 데레사 총무님이시다. 떡과 밥을 챙겨 준비하셔야 한다. 종전 함께 한 이영관씨 몸이 불편하여 다른 사람을 소개받았다.
한철수씨와 새벽 5시 15분경 만난 후 데레사 총무댁에 도착한 시간은 45분경, 그리고 다시 약속 장소에 도착한 시간 6시5분, 5분 지체다. 인원을 파악한 후 기흥 휴게소로 벨린다 자매님을 픽업 그리고 가야산 문석봉 아래 조선팔도중 제일 명당이라 불리는 가야산으로 향하였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가을이었다. 초목에 근사한 가을 옷이 입혀지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높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풍요로운 행색이라 보는 이의 마음도 가을을 닮을 수 밖에 없었다. 가을이 걸음을 부추긴다. 도착하여 가야사지가 있던 터를 가로질러 흙으로 토성을 쌓아 그 위에 모셔진 남연군 묘에 올랐다. 석등이 아름답고 석필 또한 웅대 장대했다. 양순함을 상징하는 양의 석상이 무엇인가 배반의 상징처럼 다가 왔다. 단 일년으로 끝났을 박해가 남연군 묘의 도굴사건으로 대원군이 권력의 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근 8년 동안 박해는 이어진다. 전에 없었던 어린아이들까지 박해의 대상이었고 가족과 인척들도... 재산은 천주학쟁이를 체포한 자의 몫으로 돌아 갔다. 병인박해는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묘 앞에 엎드려 있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 복과 장수를 상징한다는 거북이, 물을 향해 움직이는 형상이다. 이곳에 조상의 묘를 세우면 두 명의 왕을 가문에서 배출할 수 있다는 풍수의 말을 믿고 연천에 있던 부모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한 대원군, 고종과 영친왕을 얻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나 국권이 상실되는 비운의 책임이 더 커 그런 의미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
병인박해, 4대박해중 가장 긴 박해였다. 고종 3년(1866년) 봄에 시작하여 1873년까지 이어진다. 그 시기를 세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1866년 봄, 박해 시작. 2). 병인양요 이후 1866년 가을 - 1867년 까지 박해, 3). 덕산 가야산 굴총사건(남연군 묘) 1868년 박해
4). 신미양요 1871년 이후 1873년 까지 박해.
박해의 원인은, 1).천주교 세력이 서양 세력의 위협에 앞잡이 역활을 하고 있다고 조정에서 파악, 2). 1860년 10월 영,불 연합군에 북경 함락에 위기의식, 3). 북경함락 후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 남하정책으로 1864년, 1865년 두 차례 두만강과 경흥에 나타나 통상요구로 위기를 느낌. 3). 사람을 내세워 대원군은 1864년 8월 베르뇌 주교에게 프랑스가 러시아를 막아 주는 조건으로 신앙의 자유 허락을 제의 하였으나, 베르뇌 주교 함대를 동원할 처지가 안된다고 거절함. 4). 홍봉주 토마스가 남종삼 요한을 찾아가 프랑스와 조약체결과 러시아 방어책을 대원군에게 건의, 주선을 부탁하지만 남종삼 거절함. 5). 1865년 1월 경흥에 다시 러시아인 출현 베르뇌 주교와 재접촉 시도함. 6). 대원군 부인 여흥 민씨, 왕의 유모 박 마르타, 홍봉주, 김면호 토마스, 이유일 안토니오과 나서서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 만남을 주선하기 시작함, 또한 남종삼도 청원서를 작성 대원군과 독대함. 7). 김면호는 베르뇌 주교에게 연락, 황해도지방에 있던 베르뇌 주교 1월 29일 상경, 내포 사목중이던 다블뤼 주교 1월 25일 상경함. 8). 대원군을 만난 남종삼은 홍봉주 집에 있던 베르뇌 주교를 만나 러시아 남진을 막기 위하여 프랑스 북경 영사관에 연락 요청함. 9) 대원군의 변심. 선교사들과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러시아가 저절로 물러감, 천주교 반대파인 조두순, 정원용, 김병학의 정치공세가 극심해 지고 대원군이 천주교와 내통한다는 장안의 소문으로 조대비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안 대원군이 박해령에 서명을 하여 박해가 시작되고 만다.
어느 누구도 예상 못했던 도굴사건의 중심에는 조선인 신자와 서양선교사 페롱신부가 있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중 8분은 순교의 길로 나간다. 브르에니에르 백신부, 볼리외 신부, 도리신부는 1866년 2월 23일부터 3월 사이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참수되고, 3월 11일에는 베론에서 잡혀온 푸르티에 신,신부, 프티니콜라 박신부 새남터에서 참수된다. 그리고 내포지방에서 체포된 다블뤼주교 위앵신부, 오매트로신부는 갈매못에서 참수된다. 이중 공주 진밭에서 사목중이던 리텔 신부는 장상인 페롱신부의 지시에 따라 7월 1일 장치선, 최선일 요한의 안내로 아산, 선장면 계산리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탈출한다. 칼레 강신부는 박해소식을 듣고 문경 한실, 진천백곡 삼박골, 목천 소학골을 경유한 후 11월경 페롱신부와 중국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1866년 조선 원정에 실패한 오페르트는 지속적으로 조선원정을 노리던중 중국에 있던 페롱신부와 조선신자들로부터 덕산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 부친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그 부장품을 가지고 협상하면 가능하다는 제의를 받고 오페르트는 독일인 뮐러를 선장으로 정하고 조선 원정을 떠난다. 그 일행중 페롱신부와 조선인 최선일 등이 동행하게 된다.
1868년 5월 9일(음 4월 17일) 아산만과 구만포를 거쳐 덕산관아를 습격한 후 군기를 탈취하고 이곳에 당도하여여 도굴을 시도하였지만 묘광이 견고한 탓에 도굴에 실패한다. 5월 11일 아산만에서 영종도로 이동한 이들은 프랑스 제독 알르마뉴의 명의 통상교섭 서한을 영종 첨사 신효철에게 전하였으나 대원군은 경기감사 이의익을 통해 통상을 거부하고 퇴각조치하도록 명한다. 3차 원정도 9일만에 종료되지만. 이 도굴사건은 대외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 온다. 젠켄스는 미국인에 의하여 고발되었고 페롱신부는 프랑스로 소환된 후 1870년 다시 인도 퐁디세리로 파견되어 그곳에소 선종하게 된다. 도굴사건은 천주교 신자들의 가족들에게 까지 형벌이 시행되는 노륙지전을 몰고와 그 피해는 막대하였다.
남연군 묘를 참배한 후 일행은 홍주로 들어섰다. 이조시대에는 행정,군사,문화, 교통 등의 요충지였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문초와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 받거나 배교를 거부하여 순교의 길로 떠난 곳이다. 이 곳에서 서양 선교사로 자수하여 감옥에 갇혔던 사람은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였다. 수많은 신자들이 죽어나가자 신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앵베르 주교는 결단을 내린다. 내포지방에서 사목중이던 모방신부와 새스탕 신부에게 서찰을 보내 자수를 권유한다. 장상의 요청에 굴함 없이 두 신부는 자수하여 홍주 옥사로 끌려 오는 것이다. 일행은 우선 홍주관아 터를 찾았다. 아문을 본 후 감옥을 본 후 옛 홍주산성 동쪽에 올라 지세를 보았다. 산성의 지형이 꼭 남연군 묘역 흙 속에 묻혀 있는 거북이 형태였다. 성문을 본 후 성곽에 대한 게시판을 보시도록 한 후 성지경당을 찾았다.
오늘 순례 인원이 많아 경당에서 미사를 못하고 군청 대강당을 빌려 미사를 진행 한다는 소식을 듣고 순례단들과 함께 군청 대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3 년전 봉헌된 경당내부는 사진처럼 아주 작다.
해학을 섞어 신앙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장시간 강론이어 나가신 주임 신부님이 인상적이셨다. 회원으로 가입한 후 쪽지를 작성하여 제출한 후 임시 성전을 빠져 나와 수령 700여년의 느티나무를 구경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심어졌다는 느티나무 지금도 청청했다. 동헌의 뜰이었던 한 곳을 빌려 식사 자리를 마련 한 후 차를 이동시킨 후 점심 나눔 시간을 가졌다. 오후 일정은 창조적 질서가 반겨주는 해안선 따라 걷는 것이다. 계획은 신두리 사구에서부터 만리포까지 였지만 현지에 도착한 시간이 3시, 출발 시간은 3시 15분이었다. 이 시간으로 만리포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다음 성지순례 때 걷기로 하고 학암포 방향으로 길을 텄다. 여름이면 만리포가지 가능한 일이지만 10월 일몰은 6시경 이기 때문에 일몰전 걸음여행을 종료하기 위하여 변경하였다.
길이 있어 걷는 것일까? 아니면 길을 내기 위하여 걷게 되는 것일까? 글세~~ 아무래도 좋다. 걷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지면 길 없는 길도 길을 내면 걷게 되는 것이 걷는자의 자유다. 직립인간으로서 걷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맹목적으로 편리함에 익숙해진 육신은 모든 것을 게으른 함정에 빠지게 한다. 편리한 만큼 나의 육신에 독성의 물질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태워버릴 만큼만 먹고 마시면 되는 일을 우린 그 이상을 섭취하기 때문에 잔여 물질이 체내에 남기 마련이다. 길을 잃은 독성들은 독성과 독성이 결합하면서 어두운 터널을 만들어 암흑의 길을 걷게 만든다. 신체에 병이들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금새다. 걷는 일은 바로 마음의 행로를 명확하게 하고 정신의 세계를 창조적 질서만큼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준다. 만물과 소통 안에는 삶의 진리가 살아 있다.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통과 배려다. 배려가 왜 소용이 있는지 그리고 소용의 결과는 어떤 결과를 줄까.모든 것을 사랑으로 모이게 한다. 사랑은 만질 수 있거나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최고의 행복을 전해 온다. 만약 사랑이 보이고 만질 수 있다면 사랑은 보편적 가치로 전락하고 소중한 행복 중심도 잃어버리고 사고 파는 가치로 전락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점 매석도 가능하기에 사랑의 고귀함은 마음으로 만 느끼라고, 완전한 감동의 느낌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창조적 질서의 대명사격인 자연의 모든 것이 함축된 해안선 따라 걷는 것은 몸과 마음의 중심을 찾게 만들어 준다. 산 과 바다와 들 그리고 그 사이사 이에 초목, 초목 사이로 터진 하늘 아래 것들 모두는 서로의 인과 안에서 사랑하고 배려하며 스스로 이뤄나간다. 생하고 멸하는 그 사이 과정들 까지도 함께 이뤄 나간다. 각자 자연의 개체가 되어 자연과 공존한다는 마음으로 신두리 해변을 떠나 태안반도 서쪽 해안선에 만들어 놓은해변길 총 97km 중 12km 구간의 바라길 첫 걸음 내 딛었다.
해안사구를 지나 해송곁을 지나다 다시 갈대숲 사이 오름길을 올랐다. 이 길의 끝은 학암포다 해안의 고운 모래사장이 약 2km, 그리고 옛부터 학이 놀고 간다는 뜻의 지명이 있는 곳이다. 그 사이 사 이 걷는 길에는 해송군락과 해변과 각종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오만함과 이기심도 지배욕도, 헛된 낭비도 불필요한 축척도 다 벗어 버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하늘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스스로에게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을바람 소슬하다. 봄 바람이 동토의 세계에 잠든 것들을 깨우기 위하여 메몰찬 흔드는 속성이 있다면 가을바람은 소슬하게 걷어가는 바람이다. 그리고 온갖 씨앗들을 대지위에 재배치 하기도 한다. 모래위에도 만초들이 자란다. 이 자람이 없다면 세상은 모두가 모래로 덮힐 것이다. 이런 이치는 하늘의 사랑의 증거인 셈이다.
광활한 모래위 갈대숲을 바라 보며 사랑의 징표인 창조적 질서에 대하여 잠시 묵상에 빠져 보았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름 언덕에 서면 바다가 조망된다. 그리고 학암으로 가는 해안길 모퉁이를 볼 수 있다. 갈대는 이미 가을을 먹고 있었다. 어느정도 가을이 채워지면 허리를 꺽고 누워 잠을 청할 것이고 바람과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새봄에 태어날 새싹의 자양분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너브러져 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항상 사랑과 배려의 끝은 자유로 귀결되고 자유의 끝은 평화로 모아진다. 사진 몇장을 남겨 갈대가 가을을 먹은 사실을 증거하였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로 질러 해안선으로 갈 수 있지만 도(道)를 지키기로 하였다. 구비 몇구비를 돌아 나가야 해안으로 갈 수 있다.
길 안에는 갈대와 억새가 공존하고 있었다. 갈대 평원에는 가을이 나이태를 형성하고 가을이 익어가는 색색을 표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 입에서 가을 동요가 흘러 나왔다. 가을바람에 실려 갈대 속으로 노랫말들이 숨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웃으며 이런 기도를 챙겼다. 아 지금 가을 동요 노랫말 덕분에 내년 가을은 올해 보다 더 곱게 차려입을 것 같습니다. 지금 주시고 계신 이 모습과 당신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갈대 밭에서 빠져 나오면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갈대 숲으로 들어가 사구를 돌아 사구 안내소로 가는 길과 갈대숲 사이로 곧장 나가는 길이 바로 신두리로 곧장 가는 해변길이다. 우린 모퉁이에서 학암포로 가는 길 테크에 올라 섰다. 방품림 역활을 하면서도 풍경을 아름답게 내조하는 가로수 길이 아름답다. 데레사, 요한 자매님을 모시고 길의 아름다움과 자매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해 두었다.
다시 또 순례자들의 핵심 위치에서 동행 해주시는 자매님들도 함께 .....
오랜만에 마틸다 자매님, 그리고 후미를 항상 챙겨 주시는 체칠리아, 요셉형제님도 담아 두었다.
풍광을 음악을 작곡하고 작사하듯 채집하기를 좋아하시는 펠레치아 자매님도 ... 길이 좋아 맨발로 걷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수산나 자매님! 늘 유쾌한 모습이 보기 좋다. 재담도 좋고.. 오늘도 유쾌함이 가득하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여러차레 반복하다 보면 아름다운 조망대가 시선을 이끈다.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가 함축된 장소다 잠시 시간을 내어 쉬는 시간이 필요한 때 마다 사진 찍기를 청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걸음 행보중에 늘 있는 행사다. 잠시 쉼도 장시간 걷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잠시 행동식도 나눔하고 물도 섭취하고 아직 걷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도 재충전 해 보는 시간을 갖아 보는 것이다. 설레임은 아주 삶의 중요한 요소다. 설레임이 없는 사랑은 사랑의 본질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걸음여행을 하면서 설레임을 갖지 못한다면 걸으면서 시시각각 만나는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모욕이다. 이 언덕을 넘으면 무엇이 나오지? 이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뭘까? 빛은 어떤 모양으로 사라져갈까? 오늘 듣게 될 파도소리와 새의 울음소리는 시련의 소릴까? 아니면 사랑의 음율일까? 이런 설레임을 걷지 않는 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다. 걷지 않는 자는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더기 하트가 찍는 자의 가슴에 와 닺는다. 접은 손가락 두 개 만큼이라도 제대로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족하다. 표현이 부족한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마음 피정이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버린다.를 실천하는 형편을 살려 마음에 중심이 들게 하는 것이다. 다시 길을 걸어 아름다운 길을 구비구비 돌아 다시 내려서는 길 안부로 들어 섰다. 이곳에서 돌아 나가면 능파사가 나온다. 이름에 멋이 든 것 같지만 철학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능파사 너른 광장같은 공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하였다. 행장 수습한 후 해안 안쪽, 산 기슭에 있는 샘을 찾아 물을 먹고 해변으로 내려가 풍광을 즐기다 다시 떠날 계획으로 내려섰다. 모래가 곱다. 그리고 한쪽으로 몰려 있는 갯바위에서 들려 오는 파도소리는 옛적 흔하게 듣던 대학가요제 대상곡 리듬과 같게 느껴졌다.
능파(凌波)란? -
파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파도 위를 걷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불경이나 법구가 참 많다. 능파도 그렇지만 해인(海印)이란 말도 뼈속 깊이 새길 말이다. 능파나 해인이나 인간의 바른 성정과 관련된 이야기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念은 전부 흩어져 생각 자체가 망가져 버리기 마련이다. 늘 깨어있는 구도자적인 삶 안에서 혜안을 얻어야 비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지만 범부들의 삶은 늘 위태롭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번뇌와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축생이지 인간이겠는가! 인간이기에 늘 念은 변하기 마련이다. 쓸모 없이 변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낭패가 따르기 때문에 경계를 하라는 의미로서 해인도 생겨난 말이다. 파도가 잠시도 쉬지 않는 바다 표면에 어떻게 무엇인가를 새길 수 있단 말인가! 늘 변화는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붙잡아 둘 수 있다면 마음에 각인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파도위를 과연 걸을 수 있겠는가! 가능한 일이다. 모든 편심을 버리고 일체 모든 것을 중심 안에 두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는 능파의 뜻을 헤아리며 넘실거리며 춤추는 파도처럼 지친 걸음에 흥과 함께 경쾌한 리듬을 주기로 하였다. 모래사장 끝을 빠져 나오자 지금 시간으로는 가혹한 언덕이 가로 막는다. 시작에서 이정도 언덕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시간으로는 벅차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리듬을 마음에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누구나 다, 지금 여기에 있는 형제 자매들은 갯바위, 해송, 바다, 모래, 바람, 구름 , 하늘 등으로 변신하며 창조적 질서를 체험하고 있었다. 가끔 내 자신이 소나무가되어 소나무 이외의 것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치로 자연을 보았을 때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이처럼 세상을 살면서 나 이외 사람들을 볼줄 알아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가 되어 보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만 본다면 살아갈 형편이 안된다 항상 대립의 각 끝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만을 지키는 일이다. .
산 허리를 가르며 북으로 걸어 나갔다. 점점 빛도 세력을 좁혀 주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서면 먼동이다. 참 이름도 곱다. 내포지방은 특히 지명이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 느림의 미학에서 생겨난 삶의 여백이 만들어 낸 심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꽃지와 동등한 노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먼동 해변이다. 구름이 낮고 빛이 사리지는 저녁끝이라 기대할 수 없었다. 7, 8, 9 월이면 가능한 일이지만 10월이라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학이 놀다 갔다는 학암포까지 거리는 약 3 km 남았다. 먼동 노을과 학암포 정경은 사진으로 대신하고 그곳을 밟을 날은 다시 내포 중에 서산부근 성지를 찾았을 때 마련하려고 한다.
먼동 일몰 사진이다. 이번 걸음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차 후 기회를 마련하려고 한다.
학이 놀다 갔다는 학암포 해변 정경이다. 이곳 또한 차 후 찾을 계획이다.
함께 동행하며 오늘의 행복을 공유해 주신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다음달은 화려한 단풍과 낙엽이 쌓여가는 깊은 산중 계곡을 걸어 볼 계획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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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엇이 부려우랴....

들의



인간이 무엇이길래 주님께선 이토록 사랑하시는가.....( 성경구절)
사랑을 주어도 받을자세가 된사람만이 받을수있다네요.....
모든 기록을 상세히 올려주시니 할말이 없습니다...
흙토성위.남연군묘.....역사 이야기
깊어가는 가을 숲길을 ,갈대와 ,해송과 ,
환영을 받으며 ,,신두리 사구의 길......이곳이 천국
내일일을 모르고 사는 삶 속에서 ...
성지걸음이 있어 여한이 없습니다.......정말 행복합니다
늘 주관하시는 하느님과 세베리노 리더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음가는 대로 느끼고 온 가을정취~~ 마음에 남아 예쁜 단풍잎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밥 건사의 노력, 상금값 깜입니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많은 순례자를 위한 마음, 이 역시 단풍의 아름다움 같습니다.
이른새벽,
바쁘고 분주하게 꾸려서 떠나는 가을의 걸음여행...
아~ 아름다운 해송군락과
모래위 갈대숲, 해변의야생화,
갈대와억새풀~
아름답고 멋진 자연에
감동 감동~~~~
먼동의 해수욕장의 풍취.~.
모든것 잊고 벗어버리고
동심으로 돌아가 파도와 함께
뛰면서....
이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아름답고 멋진 해변의 길을 걷게 해주신 리더님께
감사 드리며~
함께한 형제님들께도
사랑한다는 마음 전합니다~^^♡
샬롬 & 샬롬
감상문 안에 가을단풍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가을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유치원 아이처럼 또박 걸음으로 가을 추수하셔서 가을노래 불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