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2.09.18 주일 낮 예배
말씀: 사 41:10/찬 (389장) 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도들의 소명(召命) ♱
당신은 하나님의 소명(Calling, 召命)을 받았는가?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들어가는 말: 주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We can't everything at once, but only can do anything at once - Rev. dhleepul
두려워 말라. 두려움은 너를 감옥에 잡아 둘 수 있지만 소망을 가지면 너는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할 것이라고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엔디가 하는 말이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시련과 환난이 닥쳐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모든 인간이 범하는 잘못이 하나 있다.
두려움의 실체와 본질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꾸 그 두려움을 생기게 만드는 대상이 두려움의 실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실제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객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담대하지 못하여서 그렇다. 왜 담대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의 본질은 이 두려움이 혹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혹시 해결 안 되고 큰일을 당하면 어쩌나,
이일로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거나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 때문에 더 두렵다.
두려움이란 절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두려움도 절대 영원하지 않다. 사단도 절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의 어느 피조물보다 오래 존재하겠지만 결국은 어린 양에 의해 무저갱에 갇히고 말 대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미 어린 양에 의해 무참히 패배했으며 그 어린 양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존재다. 영원하지 않는 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이 우리를 속인다면 우리가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참으로 영원한 것을 붙드는 길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 당신뿐이다.
본론: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벗어난다는 것은 죄라는 단어인 ‘하마르티아’는 화살이 과녁을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1.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 때
창 3:11"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뱀의 유혹으로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까지 먹게 하므로 둘 다 범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범죄이다.
먹지 말라 하면 먹지 않으면 된다.
롯의 처에게는 오직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 뒤돌아 보지 않으면 된다.
구약성경은 '하라. 하지 마라.' 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순종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고 살 수 있는 길이다.
순종 외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다른 길이 없다.
2. 자신에게 닥쳐오는 미래를 보고
창 21:8-21 사라의 여종 하갈이 이스마엘과 내쫓김을 당하고 그녀의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운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두려워 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장면이다.
누구든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 모를까 주위의 사람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마엘에게도 민족을 이루게 하여 주셨다.
잊지 말 것은 약속의 자녀는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이다.
3. 새로운 일을 행하려고 할 때
창 46:3 성공한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하며 수레를 보낸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고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나타나시어 애굽에 내려감을 두려워(害怕)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할 때 예배와 기도드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처음 행위는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렸다가 낭패를 당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사람 다윗도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고, 여호수아도 기브온 사람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므로 큰 어려움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잊지 말 것은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작은 문제라도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논하듯이 우리도 크던 작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결론: 세상을 두려워하여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심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害怕) 하지 말라.'
우리의 큰 두려움은 말씀에 어긋난 삶이다. 말씀으로부터 어긋나는 것이 하마르티아 이다.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삶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명을 받는 삶이 됨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회개하고 은혜의 삶을 사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므로 어떤 상황이든 십자가만을 의지하게 하셨다.
세상에 사는 우리의 실정과 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강함을 요구하시고 담대함을 요구하시며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여서는 안됨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이다
신 31:6'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와 함께 가시며,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누구든지 쉽게이길 수 있는 대상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세상의 환난은 절대 끊이지 않는다. 신자를 끝 없이 시험에 들게 하며 흔든다. 그 시험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없다. 정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가 이 환난을 못 이겨내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과 염려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말씀은 가까이 와서 주님과 거리를 좁히라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내 생활의 1순위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주님께 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쉬게 해 주시려고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와서 무거운 짐을 다 내려 놓고 참된 쉼을 얻으시고, 주님을 가까이 하므로 하늘의 기쁨이 임하여 세상 근심 다 사라지고 평안과 감사가 넘치시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생각을 바꾸어 보라. 단순화 시켜 보라. 주님이 함께 하는가 아닌가? 주님이 세상을 이기는가 못 이기는가? 그 환난이 영원히 갈 것인가 언젠가 끝이 날 것인가? 그 끝의 모습이 실패와 절망이겠는가?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는 모습이겠는가? 주님이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가 놓고 있는가? 내 인생을 내 혼자 걷고 있는가 주님이 동행하고 있는가? 내가 그 분의 손을 놓고 있지 않는 이상 이 세상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걱정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나를 죽도록 내 버려두실 작정으로 끝까지 나 몰라라 하겠는가?
언젠가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동안 주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바라보시고 계심을 잊지 않고 우리 만나인 모두는 살전 5:16-18까지 함께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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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사단의 속임수를 이겨내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두려움의 실체인 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내 손을 꼭 붙들고 동행하고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 공부로도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동행 하고 있음을 확신, 또 확신할 때에 기도할 수 있고 찬양이 참 찬양이 되고 말씀이 살아 운동하고 역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