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8개월간 어항속에 있다가 30년전 신혼여행지였던 남쪽바다 건너 제주로 ... 모든 것이 낮설은 중에 오자마자 온종일 컴퓨터 화면으로 전자파일 살피며 따져보느라 좋은 줄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마음은 예전 그대로 지속적인 명령을 내리지만 눈과 머리가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니..... 어떨 땐 내 자신이 바보 같기도 하고, 그동안도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아낀다고는 했지만..... 이제와서 보니 제대로 남아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그것 마져도 쓸데없어진 것 같으니.... 한라산 신령님 흰구름 속에서 얼굴 내미시며 세상만사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세월앞에 영원한 실패도, 영원한 성공도 없는 법이니 육신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해서 상심하지 말고 어서 내게로 달려 오라신다. 성판악에서 관음사만을 기역하고 무작정 시외버스터미날을 찾아간다. 20여분 걸어 대로변 버스정류장을 찾아갔으나 노선도가 보이지 않는다. 집부근 바닷가 마을에선 보았는데... 다가오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 확인하는데 31번을 타라 한다. 제주시청행 버스는 10분간격으로 오는 것 같은데 터미널행 버스(31번)는 1시간이 넘도록..... 아무 것이나 타고 시외터미날 가까운 곳에 부탁하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서귀포행 버스는 상판악을 지나는데 제주시청, 법원. 제주여고, 제주대를 지나며 손님을 태운다. 시청행을 타도 되는 것인데.... 세상만사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하나씩 체득되는 법인지.... 올라갈수록 제주 특유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데 성판악에 내리니 진한 숲향기로 상큼하다. 휴게소 들러 먹거리 준비하여 올라가는데 잡목 아래 듬성 듬성 자라는 활엽수가 무엇인지 마치 온실속을 지나는 느낌이다. 난대성 식물위로 가을이 지나갔는지 잠시 빨간 단풍 잎새 보이다가 꼬실꼬실한 모습으로 겨울이 가깝다 한다. 산죽밭으로 바뀌면서 간간이 만나는 계곡엔 물 흘러간 흔적만 있을 뿐 조용하다. 한라산 신령님 내주시는 물은 뵈지 않지만 저 아래 해안마을까지 쉬지 않고 흘러내리니 식수 걱정 말라 하시며 통나무속에서 시원한 물을 펑펑.... 한 바가지 단번에 마시고 한 병 체워 숲향기에 취하다보니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아담한 건물이 반갑다. 산장은 아닌 것 같고 비상 대피를 겸한 휴게소 같다. 따끈한 커피(500)와 컵라면(1500)으로 중간 요기도 할 수 있고.... 진달래 평원 노천 쉼터에 누워 흰구름 스쳐 지나는 정상을 올려다보니 한라산 신령님 내 품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순리에 따라 마음을 잘 관리하도록 하라 하신다. 가을이 되면 보이는 육체는 단풍처럼 어쩔 수 없을 텐데.... 석양이 깊어지기전 남은 시간만이라도 잘 관리해야 할 것 같다. 드넓은 평원을 내려다보며 지나온 길과 성판악을 찾아보는데 옆에서 쉬시는 분 제주의 곡주 맛이 좋다며....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의 곡주가 어떨까 했는데... 역시 전통주 맛 그대로다. 말문이 열려 이것저것 물어보니 내달초 상경 예정이라 그동안 해안가만 돌다가 오늘에서야 인사드리러 왔다며 말띠생이란다. 산에서 자주 만나는 말띠 생들 비록 배고픈 시절도 있었고, 급격한 환경변화로 푸대접도 받았지만.. 우리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상을 앞두고 설래는 맘으로 발걸음 재촉하니 바위면에 바짝 붙어 살아가는 나무들이 반겨주는데 마치 설악산 대청봉 눈잣나무처럼 신기하다. 누가 이렇게 높은 곳에 심었을까? 저 녀석 스스로가 육지에서 바다 건너 왔을까? 창조주가 용암과 화산재를 뿜어낸 후 이것 저것들로 옷 입혔을까? 계단 끝에 서자마자 세찬 바람과 함께 운무에 같혀 정신이 몽롱한데 운무속에서 커다란 웅덩이가 갑자기 모습 드러내다가 또다시 운무로 채워진다. 백록담(1950m)은 물 대신 구름타고 날아온 운무로 끝없이 채워지고 맴돌다 사라진다. 저 아래서 붉은 용암과 연기 화산재가 하늘 높이 뿜어져 원추모양의 제주(동서간: 72km, 남북간: 35km, 섬둘래: 210km)를 만들었으니 상상만 해도 무섭고 신비롭기만 하다. 분출된 용암은 저 아래 해안까지 날아가는 동안 용존가스를 배출시키며 바위덩이가 되었는지 하나같이 부풀려진 빵처럼... 뜨거운 용암덩이들이 쌓이면서 섬을 이루었을 텐데 어쩌다가 오늘날 같은 동식물이 깃들게 되었는지? 우주 공간에 외로이 떠있는 지구 온갖 생명체가 살아가도록 필요한 것들이 기획되었는지? 변함없는 규율로 엮여져 있고 오늘날까지 준행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분명한 목적이 설정된 것 같고.... 화산폭발도 이같은 규율의 결과물인지.... 탐라계곡 하산길은 구상나무와 이곳만의 특유한 식물로 빼곡하여 성판악 오름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백록담에서 탐라협곡 따라 뻗어내린 능선은 깍아지른 절벽지대를 이루며 사람의 접근을 불허하는 것 같다. 탐라계곡 바로 옆에 있었다는 용진각쉼터는 폭우로 유실되고 흔적만이..... 지붕없는 마루바닥에 누워 그때를 상상해 보니 캄캄한 하늘아래 백록담에서 엄청 많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여기저기 흘러내린 물로 순식간에 협곡이 가득 채워지면서 무섭게 휩쓸고 내려갔을 것 같다. 처음 만나보는 예쁜 현수교를 건너 높은 곳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폭포수 한잔 마시고 바위지대 돌아가니 거대한 삼각모양의 암봉밑에 삼각봉 대피소다. 이제부턴 디딤돌만을 찾아 능선 숲길따라 계곡 건너며 본격 하산이다. 계곡바닥과 주위가 온통 바위들인데 검은색 바위면에 이끼만이 가득하다. 계곡 물은 폭우시에만 잠시잠깐 존재하는가 보다. 바위들마다 내부에 구멍이 많아 잘 부서질 것 같은데 예상과는 달리 엄청 단단하고 결이 없어 잘 깨지지도 아니한단다. 이 같은 특성으로 제주에선 현무암을 건축재로 많이 쓰는 것 같다. 하늘로 분출되었던 용암이 떨어지면서 겹겹이 쌓이다보면 동굴도 형성되는지 숲속엔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는 동굴도 있고.... 한라산 신령님 내 주시는 숲향기속에서 온종일 화산의 신비로움에 취하다보니 관음사 야영장인데 산악회버스들로 가득하다. 어디가 관음사일까 살피는데 낮익은 얼굴과 마주치며 지난 기역들을 되돌려 보는데 워낙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라... 그 쪽에서 먼저 김동명입니다. 그제서야 동해 바닷가 영동화력에서 사회초년생으로 만나 함께 근무했던 김동명씨 34년만에 그것도 바다건너 제주에서 만나고보니 반갑고 놀라운 맘으로 서로의 안부를.... 평택화력 근무중이라며 선배님은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로? 사람따라 함께 유동하다보니 여차저차.... 객지를 떠돌며 태생이 야생마가 아닌데 야생마로 살아간다며.... 제주온지 4일차 백록담에 첫인사드리러 왔다는 말로 화재를 돌려 후배인 김경제씨도 만나 기념사진 남기고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관음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했는데 516도로까지 가야 한단다. 30여분 소요된다는데 일찍 들어갈 일도 없으니 한라산의 귀여운 노루도 만나볼 기대로 숲향기 맡으며 걸어가는데 노루대신 말이 석양빛 아래 한가롭게 먹이를 뜯고 숲속에선 꿩이 푸드륵.... 신비의 도로에 정차하면 내려가던 차가 올라간다는데 걸어가는 자는 상관없는지 516도로와 만나고 제주 의료원이다. 서귀포와 제주를 오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지라 아무 버스나 무조건 타도 제주시청을 지나는 것 같다. 제주시는 무척 깨끗하고 시민 모두가 섬을 찾아온 관광객에게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다.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면 알아봐서 전해줄 정도다. 우리들도 이분들에게 정성으로 화답해야 하리라. 논이 없고. 밭작물, 어업, 수산물 가공, 서비스업에 의존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제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빨리 스쳐가지만 예로부터 홀로 자립해야했기에 풍족해도 낭비하지 않고 비상시를 대비하며 분수를 잃지 않고 존양정신(절약정신의 제주 말)으로 살아가신단다. 없어도 가진 자를 크게 부러워하지 아니한다는데... 자신의 분수에 만족할 줄 알고 분수대로 살아가려는 제주도민의 마음가짐이 크게 인상적이다. |
첫댓글 바람처럼 구름처럼 제주까지 날아가셔서 그 옛날 회상하시며 오른 한라산 산행길 모습이 아련히 나를 다시 그곳으로 인도 하는듯한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언제나 삿갓처럼 방랑하시는 발걸음이 낮설지 않고 늘 그곳에 가면 그곳 사람처럼 익숙해 질수 있는 삿갓님 품성은 정말 높이 사야할 본받을 정신입니다. 오랫만에 사회 지인도 만나시고 즐산 하고 오심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