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변해가는 삶의 모습들을 내가 보는 눈으로 엮어보자 싶어졌다.
이제 말복도 지나고 가슴 조이며 한여름을 넘긴 견공들 휴~우 하고 신나겠지.
보신탕집 풍경
40여년 전 난 개고기를 처음 접했을때 구수하고 맛있는 육질이며 국맛이 입에 붙는달까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시골 5일장 개장국집이 가마솥에 장작을 짚혀 연기를 뿜기 시작하면 그 냄새가 5리는? 뻗는다.어른들 중 좋아하는 분은 일부러 개장국 자시러 담뱃대 휘젓고 가셨다 오실땐 약주까지 곁들여 아주 기분짱."여름엔 그저 한그릇 해야 장에 간 포또가 나지"하시곤
그땐 그저 평상같은 곳에서 걸터 앉아 드시곤 했지.양반은 내 놓고 장터에서 안 자셨던 모양.여름 보양식으로 개고기대신 쇠고기를 잘게 찢어 끓인 걸 육개장으로 이름 붙였다든가?그러다 보신탕이란 이름으로 간판이 나붙다가 건강탕이니 보양탕이니 좋은 이름이 등장.
40여 년 전 첫 직장 상사가 이놈을 좋아하셔서 서울 한 복판에 허수룸한 골목에 초갓집같은 곳에서 사시 사철 그저 들락거렸다.그러다 창원 마산에서 살면서 30년 단골집에 지금도 들락거린다.좁은 한반도에 그 풍경이 조금은 차이 있을지라도 비슷하게 변해가지 않을까.
한 세대전 보신탕집은 거의 99% 손님이 남자들.여자분이 가끔 오셔선 냄비나 툭바리에 한그릇 담아 보자기에 싸선 돈을 건네고 나가는 걸 띄엄띄엄 보았을뿐 내놓고 탕집에서 먹는 경우가 없었는데 아마 10여년전?언제 부턴가 하여간 여자 손님이 두어명씩 보이드만 최근엔 부부는 물론 아예 게 모임도 하는 다른 여늬 식당과 다를바 없는 탕집이.
지금 단골 그집은 그땐 오두막집에 방 두개 평상하나 마당에 솥걸고 했었는데 지금은 4층 건물에 아주 멋진 식당으로 변했다.이보다 한 차원 높은 탕집은 거의 기업화?정말 세월따라 풍속도 변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돌아 갈 줄이야.허긴 60년 전 한국을 생각하면 모든게 엄청난 발전을 한것에 비하면 먹어라 마라 도마에 오르고 버림받은 음식치곤 잘 견뎌 온것만도 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