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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2011년 4월 22일
이곳과 한국의 시차는 12시간 늦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시차에 우리 일행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21일 동안 계속된 여행에 피곤함을 느끼지만 실지로는 단지 낮과 밤이 바뀔 뿐인데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특이한 사항은 일반상점의 가격표시 $는 미화가 아니고 현지 화폐단위임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미화 1$는 이곳에서 4페소 수준이다. 한화로는 약 393원이다. 처음에 이것을 모르고 우리 일행들은 상점에서 전시된 가격표에 혼돈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다.
아르헨티나는 북쪽으로 파라과이와 볼리비아가, 북동쪽으로는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서쪽과 남쪽으로는 칠레가 있다
면적은 한국의 약 28배로 인구는 4천만정도고, 주로 백인계가 많다. 한국교민은 약 3만 여명, 스페인 식민통치하에서 1816년에 독립했다.
기후는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고 넓기 때문에 지역차가 크지만, 대체로 온화하다. 북부와 동북부는 아열대성으로, 우계 10∼3월과 건계4∼9월로 나누어지며, 여름이 길고 덥고, 겨울철은 짧고 온화하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중앙부는 온대 기후며, 강수량은 여름철에 많으나 대체로 연중 고른 편이다. 남부의 겨울, 즉 4∼9월은 혹독하다. 남반구에 있으므로 4계(四季)의 시기는 북반부와 정반대로 1년의 시작인 1월 1일은 여름이 된다.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사회 및 교육 정책을 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면서 노동자 계급이 성장했다. 그의 아내 에바 페론("에비타"로 잘 알려진 인물)은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영부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페론의 성공으로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와 영부인으로 큰 활동을 한 거물이었다. 1947년 그녀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복지를 실시했다.
후안 페론 대통령(1946년)은 아르헨티나 최초로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된 정부였으며, 기존의 과두정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비타는 무뚝뚝한 페론과 그의 지지자 사이에 "사랑의 다리"로 많은 국민에게 헌신했으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페론주의 여성당을 창립하기도 했다. 1952년 에비타가 33살의 나이로 죽자 페론 행정부는 점차 아르헨티나의 전통교회인 로마 가톨릭과 자신의 정치운동 사이의 갈등으로 곤란에 처했다. 1955년 쿠데타가 일어나 스페인으로 망명했으나, 그 후 부분적으로 군부 독재정권의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써 정치적 소요가 확대되자 망명지에서 페론은 능란하게 학생과 지식인으로 구성된 시위대를 동원해 결국 군사 정권은 1973년 자유선거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페론은 스페인에서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페론은 1974년 7월에 죽고, 그의 셋째 부인이자 부통령 이사벨 페론은 남편의 뒤를 승계했다. 이사벨 페론은 페론주의자 파벌 사이의 타협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과 더불어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인들은 유럽에서 온 식민시대 정착민과 19~20세기 이주민들의 후손들이며, 아르헨티나 인구의 85%는 스스로를 유럽 후손으로 생각한다. 이들 유럽 이민자 대다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이다. 쿠오레(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마르코 소년이 엄마를 찾아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이야기는 19 세기와 20세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민이 많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인구의 8%는 메스티소이다. 또 4%는 아랍인이나 동아시아인 후손이며, 국가 인구조사에 따르면 600,000여명 (1.6%)만이 원주민이다.
아직 적지만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자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다. 최초의 아시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일본의 후손으로, 이후 한국, 중국, 베트남인 등이 뒤 따라서 현재 60,000명이 넘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90% 이상이 로마 가톨릭에 속하며, 소수의 성공회,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도 존재한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로마 가톨릭 신자여야 하는 헌법이 정해져있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와 목축으로 유명하며 교육과 문화 수준은 남아메리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따라서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의 문화 수준과 대학을 비롯한 교육 시설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만 문화는 이 지역의 원주민 인디오가 볼 만한 문화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이식된 유럽 문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상류 계층에서는 프랑스풍이 유행하고. 반면 중·하류 계층에서는 국민의 최대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계 이민과 그 자손을 통해 전파된 이탈리아 문화가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식민지시대 이후 스페인 문화의 토대 위에 생활양식, 관습, 특히 식생활, 언어,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정치, 경제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미국 문명도 침투되고 있으나 큰 영향은 받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중남미에서 가장 교육이 진보한 나라며 문맹률은 3%에 불과하다. 교육제도는 7년제의 초등 교육, 5년제의 중등 교육과 4∼6년제의 대학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가 무료다. 대학의 경우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렵다.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의 하나인 떼아뜨로 꼴론(Teatro Colon)을 비롯, 오페라, 발레, 연극, 영화, 클래식 음악, 미술 전시 등 200여 개가 넘는 중남미 최대의 문화 공연 시설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민속춤은 삼바(zamba). 가또(gato)등이 있는데 특히 탱고(tango)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가장 멋있는 서점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극장 겸 오페라 하우스였던 곳을 서점으로 개편하여 사용한다. 서점으로 쓸 생각을 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는 사실 이 자체가 바로 문화가 아닌가 싶다.
남미 중에서는 그래도 치안만큼은 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운행되는 버스는 마치 각자 자신의 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벽이 되었건 밤이 되었건 모든 것을 즐기며 돌아다닐 수 있는 버스 운행의 도시다. 모든 카페나. 극장. 서점 등은 결코 잠들지 않는 거리라는 수식어가 이용될 정도로 24시간 운영 되므로 마치 살아있는 도시 같다.
조식 후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이동. 영화미션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 수려한 경치 관광을 한다.
아르헨티나편 이과수 폭포(악마의 목구멍)관광
이과수 폭포 상류를 향해 여유있는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간이 열차 안. 세계 각지에서 이과수의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일행들과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두 군데의 작은 역에서 잠시 정차하여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을 태우고 이 행복한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열차 곳곳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은 영화 미션의 테마. 원시 밀림에서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려했던 어느 순교자의 삶을 그렸던 영화 미션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 밀림을 지나면서 느낀점은 아직도 자연 그대로인 상태로 무성한 산림이 우거져 길을 막을 정도다. 여기저기 얼룩덜룩한 도마뱀이 마치 뛰어 다니는 것과 같이 날 새게 기어 다닌다. 첫 번째 역은 Catarata 역. 영화 미션 촬영지를 구석구석 볼 수 있다. 두 번째 정거장이 바로 악마의 목구멍 역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간신히 2사람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데크를 따라 10분 정도를 이동한다.
한 10여분을 걸어가니 저 앞에 물보라가 크게 보이고 저것이 악마의 목구멍 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들리며. 또한 설명뿐만 아니라 점점 멍해질 만큼 이과수 폭포소리의 거대함도 함께 들려온다.
폭포 바로 앞까지 계단전망대가 잘 설치되어 있어, 앞에서 펼처지는 광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 형상을 내려다보면 말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소를이 끼칠 정도로 오싹한 느낌이 든다.
악마의 괴성이 귓전에 강하게 와 닿을 무렵 앞서가던 관광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지점이 있다. 100명 이상이 몰려 넋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선 곳. 바로 악마의 목구멍이다. 낙차는 20층 고층 아파트 높이인 82m. 길이만 700m요, 150m 폭은 마치 목구멍처럼 U자형으로 굽어진다.
가이드의 짤막한 경고도 이어진다. 이곳에서 "30분 이상 이 악마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것. 1분엔 근심을 가져가고, 10분엔 생의 시름을 삼켜버리는 이 험악한 폭포가 30분 눈을 맞추면 영혼을 가져간다는 살벌한 의미의 말을 인용한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자살이 잦은 매우 위험한 곳으로 꼽힌다. 아쉽더라도 딱 10분만 즐기시길 바란다는 가이드의 특별 말씀이다.
폭포의 아래쪽부터 보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쪽까지 올라와서 접근하는 것이기에 가까이 가기 전에는 그 규모를 느끼기 힘들다.
대신 한 100미터 전부터 물보라가 비와 같은 물살이 얼굴과 머리를 때린다.
악마의 목구멍 한가운데에 물줄기가 가장 세차게 용솟음 치고 있는 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 밑으로 또 하나의 볼거리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바로 폭포 무지개가 그것이다. 폭포가 낙하하는 것과 무지개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이 이과수폭포를 이정표로 나누어져 있기에 다시없는 구경거리를 보기 위한 많은 사람들은 양쪽 편 어디에서나 항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인 의견으로는 브라질 쪽의 이과수는 장대함이 아르헨티나 쪽은 아름다움이 돋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좀 더 폭포에 근접하여 구경할 수 있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인 듯하다.
세찬 물 기운으로 일어나는 물안개(?) 또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무서운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가까이 가기도 힘들 텐데, 이곳만은 더욱더 여성들이 앞장서서 사진촬영에 열을 올리며, 기념사진에 몰두한다.
물이 떨어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잠시 머리가 멍해질 정도이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걸 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 자연이 주는 두려움에 고개를 떨구는 것인지, 마냥 의지 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와 같은 폭포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떤 의미가 생길까? 하는 여행자들의 이견이 벌써부터 들린다. 이과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브라질 쪽 이과수를 275개 폭포의 합주라고 한다면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리더가 펼치는 독주의 향연이다. 그 리더가 바로 여왕벌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이끌며, 괴물로 치면 275개 괴물의 우두머리인 악마의 목구멍 폭포다.
이것이 바로 이과수 폭포의 절정이라고 불러지는 악마의 목구멍이 이루어 내는 장관이다. 우주의 블랙홀을 직접 본적이 없기에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구상에 블랙홀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냥 폭포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할 듯 한, 그야말로 대자연의 비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래로 쏟아 내려지는 폭포의 모습이 얼마나 섬짓했으면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그 굉음에 주변의 다른 소리들은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이 멋진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연속적으로 연출된다.
그냥 여유롭게 폭포를 보는 낭만 보트 여행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시속 35노트(약 시속 60㎞)로 질주하던 보트는 폭포수 앞에 얌전히 멈춰선 뒤 그대로 폭포 아래로 쑥 들어가 버린다. 이른바 이과수 폭포 샤워다. 곱게 단장한 머리와 속옷이 다 젖어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한지 특히나 여성들의 즐거운 비명소리와 함께 합창을 이룬다.
이런 진귀한 구경을 다 마치고 시내로 간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자주 보이는 특유의 아르헨티나인들 브라질 사람들보다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자존심은 상당한 강인함이 있어 보인다. 짙은 눈썹과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생활로 인한 생활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을 돌아다녀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순박하고 친절하다. 경제적인 수준은 빈곤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야하는 환경만 아니라면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브라질, 아르헨티나,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 사는 순박한 현지인들이, 보다 나은 경제적 삶을 위해 스트레스 받아가며 치열하게 사는 뉴욕 시민들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해 보인다.
이 곳 남미에서도 역시 동양인들 보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않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미소지우며. 친절히 대해준다.
길거리의 풍경은 세련되었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과 넓은 보도를 따라 쭉 늘어선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노천카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럽의 거리 예술가 보다 뛰어난 이곳 예술인들, 더불어 강열한 탱고와 열정적인 남미의 인상이 더 해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윽한 향기와 특유의 활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7월 9일 대로 중심으로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시가지, 골목마다 낡기는 했지만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빼곡 차있다.
다른 남미 국가들은 물론 현재 남미에서 가장 잘 산다는 칠레에서도 보통 커피라고 말함은 인스턴트커피로 알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허름한 시골 휴게소에서도 기계로 뽑는 진한 에스프레스가 기본이다.
15시 30분에lan항공편으로 이과수를 출발하여, 17시 30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한다. 오후 6시에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8시30분에 그 유명한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 쇼를 관람하며, 식사를 한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댄스 음악. 또는 그에 맞추어 추는 춤. 4분의 2박자의 율동적인 음악으로, 원래는 하층민 사이에서 발달한 민속음악이었다.
쿠바의 무곡이 19세기 중엽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어와 아르헨티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탱고로 발전되었다. 이런 탱고의 발생지인 아르헨티나에서 만 볼 수 있는 정통 탱고 쇼다.
식당 안은 온통 여행객들로 초만원이다.
우선 식사 전에 무대 위에서는 이곳 남녀 댄서들의 여행객과 기념사진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이것도 초만원을 이루어 기다릴 정도로 손님들의 극성이 대단하다. 우리 일행 몇몇 부부는 각자 여성은 남성과 남성은 여성대서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어보며 즐거워한다. 한 컷 찍는데 10불을 주었다고 일행이 말한다.
좁은 무대에서 많은 벤드가 더없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여 여러 커플들이 탱고의 정수를 보여 준다.
끊임없이 남성의 허리에 감기는 여성의 길고 아름다운 다리의 곡선과 함께 여행자의 마음은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붉은색 조명에 돌아가는 댄서의 서글프면서도 매혹적인 표정이 끓어오르는 정열에 참다가 한 순간에 폭발시켜 쭉 벋어내는 스텝이 순간순간 나를 빨아들이는 둣 했다. 음악은 애끓게 가슴을 쥐어짜듯이 강열하게 흘러나오고, 여행자의 마음은 도취되어 깊은 밤 가는 줄도 모르고 한 잔의 포도주에 취해 연신 박수로 대신하며, 피곤한 여정을 풀어본다.
탱고는 인간의 감정들을 좌지우지하면서 한 없이, 음악의 선율에 따라 하나씩 옷을 던져버리는 하소연 같아 보인다.
파나메리카노 부에노스아이레스 호텔에 투숙한다.
다운타운에서 약 10 블럭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호텔로 Obelisk와 Teatro Colon 오페라 하우스 인근이다. 총 363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고, 객실 내 냉방시설과 모든 편의시설이 잘 구비하고 있어 마치 서울의 호텔방과 같다. 그 밖에 호텔 내 레스토랑 및 바, 풀장, 운동시설, 회의시설 및 주차시설 등의 부대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괜찮은 호텔이다.
23일
조식 후 대통령궁,국회의사당을 연결하는 최초의 7월의 대로를 거닐며 이곳의 시가지를 거닐어 본다.
1937년에 개통된. 7월 9일 대로는 세계에서 제일 넓다고도 하며, 도로 폭이 144m, 왕복 20차선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로 한편에 설치된 그 들이 자랑하는 오벨리스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하는 으뜸 조형물로 1936년에 이루어 졌다.
스페인인에 의해 재건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5월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를 조성했기 때문에, 5월 광장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많은 인파가 모이는 장소로 유명하다. (5월의 광장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작이며 역사의 시작),
에비타가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연설을 하고, 또는 시민들을 대하면서, 인사하던(영화장면에서 본 것), 바로 그곳에 올라가보니(실지로는 별로 커 보이지 않는 아담한 발코니다,) 마치 옛 그 당시의 위대한, 한 여성의 애국심에 울어나던 열정적 연설이 현재까지도 울려 퍼지는 듯하여 감회가 깊다.
문화계 저명인사 및 에비타(에바페론)가 잠들어 있는 레콜레타 묘지를 방문, 이곳은 바로 시내에 위치한 곳으로 잠시 자동차로 이동하여 가본다.
1882년에 개설된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묘지로 묘소에 따라 그 지위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아르헨티나 인들에게는 최상의 장소이다. 전통적인 장식과 조각상들이 화려해 마치 어느 공원 같았으며, 묘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배열로 묘 자체를 조성했다. 각 묘지마다 그들의 숭배하고, 또는 가족들의 헌화한 아름다운 생화들이 장식되어 있다.
150㎡의 면적에 총 6,400개의 납골당이 있으며, 이 중에 70개가 이 나라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역대 대통령 13인과 일명 '에비타'로 불리는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도 이곳에 매장되어 있는데 생각보다는 너무나 검소하고 작은 평수에 안치된 나머지, 우리 일행은 예상외로 그의 묘지에 세월의 무상함을 또다시 느끼게 한다. 그토록 유명한 그의 명성이 아직도 외국에서까지 알아볼 정도인 그녀였지만, 살아생전 영광과 죽음 후의 현실은 타인의 묘에 비해 초라함을 외국인 나로써도 잠시 이곳에 멈춤을 갖게 한다. 이외에도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중식은 아사도를 먹다.
세계 최고 수준의 쇠고기로 만든 아사도는 저렴한 와인과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인공 향료를 배제해서 자연적인 맛인 아이스크림과 곁들인 식사는 정말로 일품이었다.
이곳 식당이 여행자에게는 정말 유명한 듯, 입구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들이 휘날리고 우리 태극기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레스토랑 내부로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훌륭히 넓어 보인다. 주위를 들러보니 찾아오는 손님들조차도 좀 수준이 있어 보인다.
잠시 후 엠빠나다 가 나온다. 이것은 좀 딱딱하고 퍽퍽한 고기만두 같다. 속은 고기와 건포도, 치즈, 옥수수, 달걀, 올리브 등을 넣어서 굽거나 뛰긴 것으로 대표적인 그들의 간식거리이며, 매우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다음에 빠리쟈다가 본 메뉴로 나오는데, 각종 부위와 간, 창자 같은 내장과 소시지를 숯불에 구워먹는 것이다. 정말 양이 많다. 스테이크를 두 점 먹고 나니 이미 배가 찬다. 그 중에서도 T-bone스테이크가 가장 좋았다.
이곳 국민 1인당 소가 2마리 정도로 많은 6천만두가 푸른 지평선위에 풀을 뜯고 있다. 과연 소고기의 천국 나라답다.
오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라보카를 가본다. 가난했던 항구도시, 그리고 탱고가 발생한 근원지다. 알록달록한 색채들이 가득한 이곳은 현재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힌다, 가장 부에노스아이레스다운 곳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입이란 뜻을 가진 라 보카(La Boca)는 아마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컬러풀한 지역일 것이다. 항구를 따라 위치하며, 이곳에는 다양한 색으로 페인트칠한 작은 집들이 매우 많아, 마치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마을에 온 뜻 한 느낌을 준다.
갈레리아 파시피코는 파리의 봉 마르셰 형식으로 19세기 말엽에, 플로리다 거리에 완벽한 유럽 스타일로 당시 가장 유행하던 건축적인 표현을 가미해서 건설했다.
건축적 창조성이 돋보이는 이 건물도 1890년 및 1908년도의 경제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철도 사무실로 일부분을 매각했다. 그 이후 천정의 중앙 돔에 450 평방미터의 천연색 벽화를 완성함으로 변형공사가 일단 끝내는 듯 싶었지만, 건물의 개발을 막는 수많은 역경이 있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건물구조가 훼손되었다. 1989년 마침내 국가 유적으로 보호된 이후에 1992년 갈레리아 파시피코로 상업, 문화 센터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천정의 벽화를 감상 하는 것이 중요하며, 2층에 스타벅스 커피숍 및 휴식 공간이 있으며, 지하층에 Food Court도 있다.
시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16세기에 스페인 사람 멘도사가 최초로 조그만 집을 지은 장소로 아르헨티나의 발상지라고도 불리곤 한다. 이민이 성행했던 당시의 번화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습이 남아있는 항구 거리이다. 또한 이곳은 탱고의 발상지로도 유명한데, 명곡 '가미니토'로 알려져 있는 원색으로 갈라져 있는 카미니토 거리에 있는 민속술집, 칸티나의 벽에는 탱고의 기념비가 있을 정도이다. 이 거리를 사랑한 화가 킹게라 마르틴은 이곳을 보카 공화국이라고 부르며 자칭 대통령이라고 하는 등,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활달하고 자부심이 많은 기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운하를 건너는 배가 있고 생선 요리가 명물이며 탱고가 유명한 만큼 탱고 클럽이 많다.
석식은 한식,
한인이 직접 운영하는데 건물도 색다르게 지어진 멋있는 음식점으로 생각된다. 열무김치도 나오는 싱그러운 음식점으로. 한국인 주인이 열심히 우리들의 요구에 잘 응하는 태도에 고마움을 갖는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모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열무김치만 찾아 현지 종업원이 땀을 흘리며 연신 갖다 준다. 나도 열심히 맛있게 먹고 나서 이제 생각해보니 이곳의 상점이름이 생각나질 않은 그런 지경이다
메인 스트리트는 카미닌토(Caminito)이다. 이곳에는 많은 공예가와 미술가들의 시장, 탱고쇼, 전형적인 이탈리안 술집들이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이다. 매 주말마다 이곳에서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술을 맛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불행이도 많은 여러 나라의 여행객들 틈에서 마침 오늘이 주말인데도 우리일행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아 아쉬움을 앉고 돌아섰다.
에비타가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칠해진 로코크 풍의 멋진 건물 대통령궁과 ,벽화와 대리석으로 유명한 대성당. 남아메리카의 파리란 별명에 걸맞게 마치 파리를 모방한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하다.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중앙 도로는 공원인지 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어 쉼터로도 이용된다. 국회의사당은 건물 중앙에 청동으로 처리된 82m, 높이의 돔이 이 있고, 에비타의 유명한 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 아르헨티나를 위해 울어 달라>는 절규가 드넓은 이곳 광장 속에 소리 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하다.
아르헨티나 맥주 맛도 보고 싶어 맥주를 시켰다.
더운 동네에 오니 맥주가 정말 맛있다. 차가운 맥주 한잔을 마시며 일행들과 잠시 한담을 나누며 이곳의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낸다.
흔히 아르헨티나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탱고, 양질의 소고기,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인구 보다 많은 소떼들, 가죽제품, 뮤지컬 에비타로 잘 알려진 페론대통령 부인, 축구에 대한 열광 등이다. 정말 유럽인이 않이면서도 현지인들의 유럽풍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곳을 여행하고 느낀 색다른 점은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세 나라의 국기가 한곳에 모여있는 기념비도 엄숙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Iguazu 강이 분리하다가 세 강줄기가 한군데로 모이는 곳으로도 유명세를 탄다.
24일
7시에 조식을 하고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8시에 공항으로 이동 후. 11시 10분에 칠레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