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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절집 실상사 그리고 지리산 가을 단풍 (실상사 - 달궁 - 성삼재)
코스 거리 (총 24k)
실상사 - 산내삼거리 - 반선(뱀사골 입구) - 달궁 - 심원쉼터 - 성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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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에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난다. 만수천과 뱀사골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을과 만나는 지점이 산내면 면소재지, 즉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타나는 삼거리 부근이다. 이 삼거리에서 동쪽을 향해보면 천왕봉이 손에 닿을 듯 눈 앞에 선하다. 그 발 아래 산내면 입석리 들판이 넓게 펼쳐지는데 그 곳에 실상사가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실상사 홈피에서 부분 발췌)
내게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절집이 하나 있었다. 실상사가 그곳이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그쪽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지난 주 트레킹 종점이 거창군 마리면 면소재지였다. 당연히 이번 주에는 마리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코스를 바꾼 것이다. 아내가 지리산 단풍구경을 가고 싶다고 해서 마리에서 산내까지 약 30킬로의 거리를 건너뛰고 바로 지리산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실상사는 홈피에서 소개한대로 바로 지리산 발자락에 홀로 서있는 고졸한 절집이다. 이번 코스는 실상사를 출발해서 861번 도로를 따라 산내 - 반선 - 달궁 - 심원 - 성삼재 - 구례로 빠지는 여정이다. 원래 계획은 마천 백무동을 출발해서 벽소령을 넘어, 화개로 빠지려고 했으나, 아내 때문에 숙박시설이 잘 되어있는 861도로를 선택한 것이다.
동서울을 아침 8시 20분에 출발한 지리산 가는 고속버스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실상사에 도착했다. 동서울에서 마천 가는 버스표를 일주일 전에 예매해 두어서 버스표 구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단풍철이라 미리 대비해 둔 덕분이다. 버스는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함양과 인월에서 손님 몇 명을 내리고 싣고 하더니 우리를 실상사 앞에 내려주었다.
실상사는 유명세와는 달리 절집 규모가 작았다. 또 평지에 혼자 서 있어서 멀리서 보면 좀 외로워 보인다. 우리는 절집을 돌아본 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혼자 다닐 때는 모든 걸 내 마음대로 결정하기 때문에 편했는데, 아내와 동행하다보니 이런 간단한 것도 마음이 쓰인다. 절 입구로 들어서는데, 그 유명한 돌장승 벅수가 길가 오른쪽에 홀로 서 있다.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그 벅수다. 나머지 두 개가 더 있었는데, 들어갈 때는 보지 못하고 나오면서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여행을 하면 이렇게 관찰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원래는 4개였는데, 1936년 대홍수 때 하나가 떠내려갔다고 한다.
참 수수하고 자연스런 인상이다. 어떤 꾸밈도 없다. 누가 절집 앞에 이런 장승을 세웠을까? 불교와 토속신상의 결합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제주도에 있는 돌하루방과 정말 닮았다는 점이다. 돌 색깔만 다르다. 제주도 하루방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서 까만게 많지만, 이건 화강암에 새겨서인지 회색빛을 띠고 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우리 인간의 문화 전파력에 감탄했다. 나는 호주 유학중에 피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리조트 정원에서 제주도 하루방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조각상을 보았다. 단지 다르다면, 그건 야자수나무 뿌리를 이용하여 조각을 했다는 점이다. 그 ‘피지 하루방’을 보는 순간 제주도 하루방이 딱 연상될 정도로 똑같았다. 어떻게 수만 킬로 떨어진 태평양 피지에 있는 조각상과 제주도의 조각상이 같을 수 있을까? 원형 지구본으로 두 지점을 비교하면 어는 정도 추측이 간다. 뉴질랜드 북쪽에 있는 피지 문화는 그 위에 있는 솔로몬제도와 그 위에 있는 미크로네시아와 오키나와제도를 거쳐 제주도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피지 등 남태평양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고구마처럼 생긴 타로라는 채소가 우리 토란과 같은 형제라는 걸 감안한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오키나와와 일본에는 남태평양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실상사 경내에는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은행나무 잎은 샛노랗게 몸단장을 하고 있고, 잎이 거의 떨어진 감나무에는 주홍빛깔의 감이 탐스럽게 달려 있다. 모과나무도 연노랑색 열매를 매달고 있다. 스님 한 분이 그 가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거처로 들어가는 걸 보니 이 절집에 계시나보다. 우리 사진도 한 장 부탁했다.
화장실이 볼만했다. 절 해우소 중 명품으로는 선암사 해우소를 치는데, 여긴 장애우를 배려하는 모습이 가상하다. 해우소 안에 들어가니, 한 칸을 장애우용으로 지정해놓고, 거기에 밧줄을 하나 매달아 놓았다. 처음엔 누가 목매달아 죽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애우나 노인들이 그 줄을 잡고 일을 보라고 그 줄을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혼자 웃었다.
“야, 이쁘다,” 아내가 해우소 앞에 놓인 돌확을 보면서 말한다. 넓은 돌확을 이용해서 손 씻는 곳을 마련해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면 그 돌확 둘레로 파인 홈을 따라 물이 흐르고, 앞쪽 홈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거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손을 씻으면 된다. 참 실상사다운 자연스런 발상이다. 실상사가 어떤 절집인가. 바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도법스님이 실상사 지주로 있을 적에 절 땅 3만평을 귀농한 사람들에게 내놓으면서 시작된 공동생명체운동이다. 그럼 인드라망이란 무얼 뜻하는가? 나도 그 뜻을 몰라서 인드라망공동체 홈피에서 찾아보았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합니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며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장엄한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다고 합니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그물(인드라망)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들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작은 구슬은 큰 구슬에 투영되고 큰 구슬은 작은 구슬에 투영된다. 동쪽 구슬은 서쪽 구슬에 투영되고 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투영된다. 남쪽 구슬은 북쪽 구슬에 투영되고 북쪽 구슬은 남쪽 구슬에 투영된다. 위의 구슬은 아래 구슬에 투영되고 아래 구슬은 위의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시간의 구슬은 공간의 구슬에 투영되고 공간의 구슬은 시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동시에 겹겹으로 서로서로 투영되고 서로서로 투영을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투영이 이루어진다. 불교의 연기법, 연기적 세계관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 모든 법이 하나하나 별개의 구슬같이 아름다운 소질을 갖고 있으면서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그 하나가 다른 것들과 떨어져 전혀 다른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것 모두와 저 구슬들처럼 서로서로 그 빛을 주고 받으며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연기법의 진리를 화엄경에서는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인드라망이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물눈 하나하나의 그 모든 구슬들이 이중삼중으로 빛을 반영하고 있는 장엄한 광경을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바치는 예불문에 나오는 ‘제망찰해'(帝網刹海)’는 법계(法界)요 바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입니다. 세계는 본래부터 한몸 한생명의 인드라망생명공동체입니다.”
서구사회에서 70년대부터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킨 생태학의 근본개념이 여기에 있다.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지만 이런 훌륭한 사상을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서구인이라는 점이다. 동양 사람들은 도교나 불교 등 자연주의와 윤회사상에 근거한 친환경적인 세계관, 즉 이 세상 모든 만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항상 서양 사람들에게 뒤진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관은 동양 사람들은 산업화시대 이전 수천 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산업화시대에는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서양 사람들이 그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열심히 그런 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부디 실상사에서 주도하는 이 생명공동체운동이 성공하길 빈다.
실상사를 나오면서 주민들이 3천 원에 파는 반홍시 10개짜리 한 줄을 샀다. 어떤 사람은 5천원을 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3천이란다. ‘공정여행’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의무 중 하나가 현지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는 여행을 말한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주민들이 파는 현지 토산품을 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민들은 실상사 들어가는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자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과 토종꿀 등을 팔고 있었다.
절집 입구에 자리잡은 사하촌으로 나와 점심 먹을 집을 고르는데, 오른쪽 길 건너편으로 허름한 ‘전통추어탕집’이 보인다. 여기도 남원땅이니까 원조 남원추어탕을 먹고 싶어서 추어탕을 시켰다. 추어탕 하면 남원추어탕 아닌가. 탕도 반찬도 맛이 있었고, 밥도 새밥이라서 맛있게 먹었다. 단체손님이 온다고 미리 담아놓은 배추 겉저리까지 나왔다. 좀 짜긴 했지만 다 먹어 치웠다. 그런데 나는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경상도 지방 그러니까 거창이나 함양 쪽 추어탕과 남원식 추어탕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 가까운 지역인데, 음식 맛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집 추어탕은 서울에서 파는 남원식 추어탕과 함양식 추어탕의 중간 맛이었다. 서울에서 파는 남원식보다는 덜 걸죽하고, 함양식보다는 걸죽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 부근에 청도추어탕을 하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음식이 하도 깔끔하고 담백해서 우리 부부는 거길 자주 가곤했다. 그런데 항상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음식을 깔끔하게 하는데 왜 손님이 없을까?” 속으로 항상 그 점이 궁금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 다른 음식점이 들어오고 그 집은 어디론가 이사 가고 없었다. 남원식으로 걸죽하게 끓이는 추어탕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에게는 그 추어탕이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추어탕을 맑게 끓이는 게 그 집만의 비법인줄 알았다.
“추어탕이 왜 이렇게 맑고 담백해요?” 언젠가 그 점이 궁금해서 주인아저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추어탕이 걸죽한 것은 거기에 전분을 넣어서 그런 겁니다. 추어탕에는 미꾸라지가 많이 들어가야지 전분이 많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나는 전라도 사람인데도, 추어탕은 걸죽한 남원식 보다는 맑고 담백한 청도나 거창식을 더 좋아한다. 남원식 추어탕은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서 그렇다. 그나저나 그 산청식 추어탕집을 하시던 아저씨는 어디로 가셨을까?
산내를 지나 본격적으로 지리산 품에 접어든다. 지리산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품어 안은 속 깊은 산이다. 특히 여순반란사건 대구폭동사건 등 해방 전후에 일어난 여러 난리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좌우익이 갈라져 싸우면서 일어난 원한과 적개심 모두 어머니의 깊은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무엇보다 빨치산의 무대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남쪽 북쪽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한 많은 비극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을 소재로 한 시나 소설 작품이 유난히도 많은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그곳을 걸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많은 곳이다. 혼자서 지리산 길을 가만가만 천천히 걸어가면 그 한풀이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형형색색으로 불타는 지리산의 가을은 우리가 걷는 길을 지나 만수천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신계행의 ‘가을사랑’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함께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고개를 올라갔다.
그대사랑 가~을사랑 단풍일면 그대 오고
그대사랑 가~을사랑 낙엽지면 그대 가네
그대사랑 가~을사랑 파란하늘 그대 얼굴
그대사랑 가~을사랑 새벽안개 그대 마음
가을 가~~을 오면 가지말아라
가을~ 가~~을 내 맘 아려나
그대사랑 가~을사랑 저 들길엔 그대 발자욱
그대사랑 가~을사랑 빗소리는 그대 목소리
가을 가~~을 오면 가지말아라
가을~ 가~~을 내맘 아려나
그대 사랑 가~을사랑 저 들길엔 그대 발바욱
그대 사랑 가~을사랑 빗소리는 그대 목소리
우~~~ 우~~~!!
나뭇잎 끝자락이 조금씩 마른 걸 보면 아마도 단풍의 절정은 조금 지난 듯했다. 언론에서는 10월 24일 부근이 지리산 단풍이 절정이 될거라고 요란을 떨었었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지리산의 가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지리산의 시월은 가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고 있었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가을빛으로 흥건하게 물들고 있었다. 잎이 작고 얇은 나무들부터 색갈이를 하기 시작하여 잎이 크고 두꺼운 나무들까지 가을로 치장하고 있었다. 분홍 주황 노랑 빨강, 나무에 따라 그 색깔은 가지가지로 물들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여러 가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숲을 이루어도 녹음은 자연스럽게 조화되었듯이 그 나무들이 단풍들어 온갖 색깔로 변해도 그 다양한 채색들은 또 그지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봄이 늦어 철쭉을 유월 초순에나 피워내는 지리산은 가을은 또 유난스레 빨라 시월이면 단풍들지 않는 나무가 없었다. 다만 바늘잎을 가진 침엽수들만이 둔감하게 초록빛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태백산맥, 10권, 7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정말 그랬다. 한 여름철에는 짙은 초록색 모노톤으로 건강하지만 따분하게만 보였던 산들이 불과 두 달 사이에 이렇게 만산홍엽으로 옷단장을 바꾼 것이다. 861번 도로 중 남원 산내에서 구례까지 지리산 북부 지역을 동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구간은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절경을 지닌 도로 중 하나이다. 갓길이 없어 걷기에는 상당히 위험해서 그렇지 단풍철 경치는 이만한 곳이 드물다. 단풍철 끝물이라 그런지 통행차량이 너무 많아 걷기에는 정말 위험했다. 더구나 아내와 앞뒤로 함께 걷다보니 더 위험하다.
길가에는 주변 주민들이 농사 지어 수확한 사과랑 감이랑 다른 작물을 팔고 있었다. 과일들이 얼마나 실하게 잘 생겼는지 보기만해도 군침이 돈다. 이번에는 도보여행 내내 과일을 하나도 얻어먹지 못했다. 역시 여행은 혼자가 좋은가보다. 혼자 도보여행하면 주민들이 돈도 안받고 사과도 주고, 포도도 주고, 감도 따준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걸어가니 아무도 그런 호의를 배풀지 않는 것이다. 잠도 마찬가지다. 혼자일 때는 쉽게 잠자리를 내주지만 동행이 있을 때는 쉽게 방을 주지 않는다. 다시 혼자 걸어야 할까 보다.
오후 2시에 실상사를 출발하여 4시 반에 반선마을에 도착했다. 반선마을은 뱀사골 입구에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지리산파크텔에 여장을 풀었다. 나 혼자 걸으면 더 갈 수도 있지만, 아내와 동반이라서 더 이상은 위험하다. 갓길이 없는 길에서 저녁에 걷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특히 산속에서는 오후 다섯 시만 넘으면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숙소 위아래로는 식당과 민박들이 여러 개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값비싼’ 저녁을 먹었다. 토종닭백숙을 시켰는데, 나는 지금까지 ‘전주’라는 이름을 단 식당에서 반찬을 그렇게 맛없이 하는 집은 처음 보았다. 여러 가지 반찬 중에서 정말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반주로 시킨 오미자주도 술이 전혀 익지 않아서 반납시키고 복분자주로 바꿔 마셨다. 통일전망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 가장 맛없는 집을 만난 것이다. 아니 어디에서도 음식을 그렇게 맛없게 하는 집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도 한쪽 벽에는 동아일보에서 맛있는 집이라고 소개한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액자가 버젓이 걸려 있었다. 현지 음식 맛도 내 여행만족도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한 가지 요소이기 때문에 나는 현지에 도착해서 먹을 음식도 신중하게 고르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오늘은 숙소에서 먹을 만한 음식점을 미리 물어보지 않은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말았다.
아침 8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달궁야영장에 도착했다. 야영장에는 서른 명쯤 되는 오토캠핑족들이 으스스한 아침 날씨에 떨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기에 참 멋있었다. 차를 타고 우악우악 소리지르면서 적막한 산속의 정적을 깨는 사람들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다. 수도나 화장실 등 부대시설은 잘 되어 있었다. 우리 딸도 얼마 전에 개그맨 김제동이 출연한 오토캠핑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더니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번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마치면 아내와 함께 오토캠핑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 시간쯤 길을 따라 올라가자 달궁마을이 나온다. 달궁은 반선과 달리 마을 규모가 상당히 컸다. 길가를 따라 20-30가구쯤 되는 식당과 민박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들은 가게 앞에 나무난로를 피워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난로 연통에서 피어 오르는 푸르스름한 연기가 산속의 가을 정취와 정말 잘 어울렸다. ‘달궁’이라, 참 좋은 마을 이름이다. 달궁 일대는 빨치산의 영웅 이현상이 활약한 무대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장소인 것이다. 달궁야영장과 달궁마을 중간에 있는 달궁터에는 빨치산들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교육시키는 사진들을 모아 작은 간판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 이곳 달궁 골짜기에서 활동한 빨치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월혁명 기념 씨름대회날은 더 없이 쾌청했다. 시월의 청명한 햇살이 달궁에 가득 퍼지면서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남부군 사령부 병력과 전남북, 경남도당의 대원들까지 합해 육백여 명이 넓은 풀밭에 도열했다. 시월혁명을 성취한 볼셰비키의 위대한 정신을 어어받아 해방투쟁을 더욱 가열하게 전개해나가자는 내용으로 이현상이 짤막하게 연설을 했다. 그리고 곧 이어 씨름대회로 들어갔다.
맑은 날씨에 산들산들한 바람은 씨름판을 벌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지가지 색깔로 물든 나무숲은 초등학교 운동회날 펄럭이는 만국기들과 다름이 없었고, 누릿누릿 변한 풀밭은 모래밭보다 더 좋은 씨름판이었다. 그리고 풀밭 가장자리에 매어진 황소가 씨름대회의 기분을 한껏 돋워올리고 있었다.
(중략)
고기를 굽고 끓이는 냄새가 달궁 골짜기에 진동했다. 대원들의 흥겨운 웃음소리와 정다운 이야기들이 오가며 푸짐한 점심이 준비되고 있었다. 천점바구는 정말로 축 늘어진 소불알을 가져와 한바탕 부대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점심을 배불리 먹은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락회였다. 오락회는 씨름대회 못지않게 모든 대원들을 흥겹고 즐겁게 만들었다. 여성대원들이 참여한 까닭인지도 몰랐다. 문화공작대가 이끌어가는 오락회는 다채롭고도 성대했다. 단막극 노래 집단춤 개인 장기 등으로 엮어지면서 흥겨움이 넘쳐났다.
해가 지면서 오락회가 막을 내렸는데, 그 마지막 순서는 ‘빨치산의 노래’ 합창이었다. 모든 대원들은 똑바로 서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약간 애조를 띤 듯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노랫소리는 우렁차게 달궁 골짜기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서는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태백산맥, 10권, 32-34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달궁은 소설가 서정인의 작품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달궁에 왔을 때 어머니의 자궁속 같은 근원의 고향과 이상의 세계를 떠올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가 달궁을 찾았을 때의 그런 이상적인 모습은 간데없고 유명 관광지의 정신 사나운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작가가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우리처럼 한나절 넘게 산길을 걸어서 들어왔지만, 지금은 산 입구에서 차로 한 시간은 커녕 30분도 안걸린다. 그래도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당궁은 아직까지는 산속마을의 정취를 꽤나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식당이나 민박 말고는 유흥시설이 드물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마을 앞으로는 달궁계곡이 흐른다.
달궁마을 입구에 있는 첫 번째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우리에게는 점심이나 마찬가지다. 산채정식을 시켰다. 어제 밤에 이곳 음식에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또 맛없는 음식을 먹을까봐. 걱정은 기우였다. 다양한 산나물이 나왔는데, 꽤나 맛이 있었다. 곰취장아찌, 뽕나무잎, 취나물, 고들빼기, 고사리 등등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산나물들이 여럿 나왔다. 된장도 괜찮았다. 어제 밤의 실수를 만회한 것 같아 기분이 좀 나아졌다.
길가에 ‘황토집 100평 매매’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어 전화로 위치와 가격을 물어 보았다. 집은 마을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초라한 황토집이었고, 마당 한구석에는 키가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집 옆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다 무너져가는 스레이트 지붕을 한 빈집이 한 채 서있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거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집값이 1억이란다. 세로는 일 년에 400만원이고. 아무리 시골생활이 좋다고 해도 저런 집을 1억이나 주고 살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옆에 있는 폐가를 사서 함께 리모델링을 하면 몰라도 그냥 살기는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보낸다”는 아내의 핀잔에 발걸음을 돌린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고개가 더 가팔라진다. 그렇게 수많은 차량들이 오가건만 걷는 사람은 우리 부부 밖에 없다. 남원 주천으로 빠지는 정령치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조금 더 지나 도계쉼터가 나오고, 더 올라가자 심원마을이 저 아래 내려다보이고, 그 다음 길 오른쪽으로 심원쉼터가 나왔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은 내려가보고 싶었으나 우리 둘 다 몸이 지쳐있어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은 성삼재로 올라가는 차량으로 이미 만원이어서 차들이 모두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했다. 어떤 아저씨들은 차가 서있는 동안 길가에 내려서 트로트 반주소리에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추어댔다. 서울에서 함양으로 내려갈 때는 죽암휴게소에서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화장실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여행이란 저렇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순기능이 큰 여가활동의 하나다. 그런 모습을 안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좋게 본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그러나 사회가 밝아지려면 저렇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흥겨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길은 아예 주차장으로 변해버려서 사람들이 아예 관광버스에 내려서 걷기 시작한다. 우리처럼 산 아래에서부터 걸어서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들은 걸어서 건강에 좋고, 지리산과 지구는 매연에 찌들지 않아서 좋고, 걷는 사람들은 오가는 차량을 신경쓰지 않아서 마음대로 걸어서 좋고. 차량 대신 사람들이 2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것만 상상해도 황홀하다.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주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인간도 자연도 궁극적으로는 지구도 영원히 살 수 있다. 그게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기본 개념이다.
요즘 같은 단풍철에는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일일 또는 주간 수용능력을 정해 놓고 국립공원 안에 출입하는 차량 숫자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니면 설악산 용대리-백담사 구간처럼 차량을 전면 통제하고 셔틀버스를 운행하든지. 성삼재에 올라갔더니 정말 돗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차를 몰고 산에 올 필요가 있는가? 그 많은 매연가스 누가 다 마시라고. 그 혼잡스러움 누가 다 감당하라고. 아직도 우리나라 관광 당국이나 지자체는 관광객을 많이 모으는 개발지상주의적인 정책에만 신경을 쓰지 자연과 방문객 그리고 현지 주민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관광개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언제쯤이나 당국자들이 그걸 깨들을지. 관광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아들 지하가 갓난 애기 때 성삼재에 온 적이 있다. 여기에서 남쪽으로는 노고단이 올려다 보인다. 애기를 안고 우리 부부가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2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아마도 추석 때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막 포장된 이 도로를 타고 구례 쪽에서 올라온 거 같다. 그 때는 이런 정도의 아수라장은 아니었다.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가 차도 많아지고 소득수준도 높아져 행락인파가 엄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변함없이 똑같다. 관광지에 대해 어떤 관리정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 이건 직무유기다.
성삼재에는 구례에서 성삼재를 왕복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12시 40분 차를 타고 구례로 내려갔다. 그런 아수라장에서 1분도 머무르기 싫었다. 구례로 내려가는 길은 구곡양장, 한계령에서 양양 쪽으로 넘어가는 길처럼 구불구불하다. 천은사를 지나고, 화엄사 주차장을 지나 구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2년 전엔가 화개 쌍계사에 올 때 들렀던 곳이다. 그런데 서울 가는 표가 없단다. 구례역으로 기차편도 알아보았지만 역시 입석 밖에는 표가 없었다. 미리 예매를 해두지 않은 우리 잘못이다. 오후 2시 차로 광주로 가서 4시 40분 고속버스로 서울로 올라왔다. 가을단풍 행락 행렬은 서울까지 계속 우리 부부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날 밤 내내 고속도로 상행선도 만원이었다. (2009년 10월 31 - 11월 1일)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실상사행 버스는 하루에 16회 운행되며, 첫차는 07:00, 막차는 24:00.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걸린다. 동서울에서 백무동 가는 버스를 타고 실상사 앞에서 내리면 된다. 성삼재에서는 구례로 나가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서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 그런데 성수기에는 백무동이나 구례 모두 표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
숙박
실상사에서 성삼재 구간은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다양한 숙박업소가 많다. 민박, 여관, 모텔, 호텔, 유스호스텔, 오토캠핑장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식당
고개를 올라가는 곳곳에 먹을 만한 식당이 많이 있다. 특히 실상사 앞에 있는 ‘전통추어탕집’의 남원식 추어탕이 맛이 좋다. 뱀사골 입구에 있는 반선마을이나 달궁마을, 성삼재 주차장에도 식당촌이 자리잡고 있다.
주변 관광지
이 코스는 전체가 관광지다. 실상사와 지리산 성삼재를 달리는 861번 도로를 따라가는 전 구간이 절경이다. 특히 여름철과 단풍철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호젓한 단풍을 즐기려면 주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