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제게 "울고 싶은데 슬픈 영화 좀 추천해줘."라고 말하길래 <크래쉬>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보고 난 후 친구는 "뭐냐~ 너의 슬픔의 코드는?"라며 불만을 터뜨렸죠.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장르도 스릴러랍니다. ^^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라서 만약 영화치료라는 것에 도전을 하게 된다면 꼭 치료영화 목록에 넣겠다고 생각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제목처럼 "충돌"로 시작됩니다. 자동차 사고로 표현된 충돌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중복되어 나타나는데 사고당사자인 수사관 그레이엄은 이 수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충돌들이 고독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옴니버스식 영화인 <크래쉬>는 백인 부부인 릭과 진과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이란인 파라드와 멕시칸 대니얼 흑인형사 그레이엄, 흑인청년 피터와 앤쏘니, 멕시칸 열쇠수리공 다니엘을 통해 LA 곳곳에서 일어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충돌과 사건들을 모두 직접적이든지 간접적이든지 연결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갑니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부딪침이 잡음과 고통, 갈등이 되었다가 이해와 용서, 조화가 되었다가를 반복합니다. "세상은 좁다. 죄짓고 살지 말아라."의 미국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인종문제에 대한 원인을 다름에 대한 불신에서 찾고 그 해결책을 불교의 연기설에서 찾은 듯 보이는, 꽤 통찰력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이란인 파라드와 멕시칸 대니얼 간의 갈등이 빚어낸 에피소드였는데요. 보실 분들을 위해선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겠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별 수 없네요.^^
열쇠수리공인 대니엘에게는 천사같은 어린 딸이 있어요. 한 날 그가 퇴근하고 들어오는데 딸이 보이지 않자 대니얼은 아이의 침대 밑을 살핍니다. 대니엘이 무엇에 겁 먹었냐고 묻자 딸이 총소리가 들렸다고 말해요. 총알은 언젠가는 멈춘다고 다니엘이 말하자 아이는 언제 멈추느냐고 묻고 다니엘은 고민을 하다가 어딘가에 부딪칠 때 멈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이가 더욱이 겁을 먹고는 사람에게도 부딪치지 않느냐고 말하자 대니얼이 그렇다고 답합니다. 고심 끝에 대니얼에 딸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고 소곤거립니다.
"내가 5살 때 요정이 나타나서 그 어떤 총알도 뚫지 못하는 투명 망토를 주고 갔어. 내 아이가 5살이 되면 그 망토를 주기로 했는데 잊고 있었다."
아이가 믿지 않자 대니얼이 "정말이야. 보여줄까?"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옷을 벗는 것처럼 꾸민 뒤에 아이의 목에 망토를 둘러주죠. 그제야 딸이 안심을 합니다.
이 후, 다니엘은 이란인 파라드의 잡화점에 가서 문 열쇠를 고쳐주게 되는데요. 파라드는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가 매우 서툴렀습니다. 다니엘은 열쇠를 고치다가 파라드에게 "이것은 열쇠가 문제가 아니라 문 자체를 다시 달아야 한다."고 친절히 충고합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파라드는 문수리비까지 받으려 한다며 다니엘을 사기꾼 취급을 하고 다니엘은 화가 나서 출장비도 받지 않은 채 영수증을 구겨 휴지통에 버려버리고는 나가버리죠. 그런데 다음 날 파라드의 가게에 도둑이 들어 파라드의 전재신이다시피한 가게가 엉망이 됩니다. 파라드는 절망을 하여 구겨진 영수증을 보고 다니엘의 집 앞까지 총을 들고 찾아가죠. 그리곤 퇴근하는 다니엘에게 접근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지갑을 주는 다니엘에게 "이것 가지고는 어림없어."라며 파라드는 총구를 겨누죠.
마침 집 안에서 아빠의 트럭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던 딸 아이가 "아빠가 나에게 망토를 줬단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갑니다. 그리고는 파라드가 총을 쏘려는 찰나에 다니엘에게 안겨 온 몸으로 총알을 막아내죠. 그 순간 다니엘은 자신을 딸을 부여안고, 모든 것을 잃은 듯 절망합니다. 영화는 무성으로 다니엘의 얼굴을 close up하여 거의 10~20초간을 계속 보여줘요. 그의 표정이, 연기였지만 영화 끝나고도 한참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음.. 너무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이후의 삶이란 없는 거구나.. 란 걸 깨닫게 해준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뒷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파라드와 다니엘의 충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가끔씩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방향없는 증오가 너무 많아서. 자기 손으로 자기가 일궈온 가정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단지 날씨가 덥단 이유로, 단지 누군가가 새치기를 했단 이유로, 단지 좀 거슬리게 했단 이유로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자신의 상황이 절망스럽다고 여자나 아이나 동물같이 약한 대상들을 찾아다니며 분풀이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나마 <크래쉬>에선 불신이나 편견, 오해 등을 파괴의 원인으로 말하고 있지만 실제 세상에는 그 보다 이유없는 폭력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면서 사는 것, 타인에게 최소한의 친절을 보이며 여유를 갖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고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첫댓글 '바벨(Babel, 2006)'이 떠오르네요. 다니엘과 파라드의 충돌...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해요~
^^ 언제 바벨을 보아야겠네요. 반전이 있답니다. ㅋ
이 영화 수업시간에 알게 됐는데, 정말 좋았어요~
^^ 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각본가는 천재같단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