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평안도 ‘강계미인’과 자강도 ‘강계정신’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유배지에서 절세미인을 만나자 “玉이 옥이라커늘 반옥(반玉)만 너겨떠니 /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실(的實)하다 /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고 노래한다, 이에 그 여인은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섭鐵)만 녀겨떠니 /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 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고 화답한다.
이렇게 시작된 시인(詩人)과 기녀(妓女)의 사랑 이야기는 유배지 강계에서 벌어진다. 강계, 평안도 강계는 예로부터 ‘강계미인’으로 유명했다. ‘조선’ 땅에서 ‘미인(美人)’하면 ‘남남북녀(南男北女)’, ‘미인의 고장’ 하면 강계(江界)였다. 정철이 진옥을 만난 평안도 강계, 지금은 자강도(慈江道) 강계가 되었다.
강계시(江界市)는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인데, 과거엔 지형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데, 조선(1392년~1910년)시대 때에는 이곳이 군대 집합처였다. 강계읍성은 압록강 연안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였다. 강계시는 4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장자강이 흐른다. 강계는 ‘미인’보다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중요시한 도시였던 것이다.
이 전략적 요새에도 유명한 문화재들이 있다. 1436년에 축조된 ‘남산을 포괄하고 장자강과 북천강의 절벽을 돌아 강계 중심부를 성 안에 아우르고 있는 평산성 형식의 석성’인 강계읍성, 강계읍성의 남장대인 망미정(국보 65호) 그리고 ‘관서8경(關西八景)’의 하나로 유명한 인풍루(국보 64호), 옛 강계부의 관청 건물였던 강계 아사(국보 66호) 등이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미인도 문화재도 ‘깍두기’에 불과하다? 강계의 꽃은 ‘강계정신(江界精神)’이다. ‘강계정신’은 1990년대 체제붕괴까지 거론되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요구했던 당대의 시대정신이자 경제회생의 기치를 의미하며, ‘고난의 행군’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강도가 가장 모범을 보였다 하여 도(道)의 대표 도시인 강계와 이곳 주민들의 투쟁정신을 하나로 묶어 강계정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강계정신은 김정일이 98년 1월 자강도 인민경제 여러 부문을 현지지도한 것을 계기로 고창(高唱)된 경제선동의 구호이다.
경제난이 최악이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8년 1월 16∼21일,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강계시를 현지지도, 중소형발전소 등을 자체 건설해 경제난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강계정신’으로 규정, 주민동원을 위한 구호로 ‘강계정신’을 제시했다. 이후 김정일은 강계를 자주 방문했는데, 2007년에만도 세 차례나 방문했다.
2008년엔 새해 벽두부터 ‘자강도 강계’ 띄우기에 매우 적극적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자강도 시찰 10주년을 맞아 기념보고회 개최, 노동신문 사설등을 통해 자강도를 따라 배울 것을 촉구하는 등 정권수립 ‘60돐’을 맞는 올해 경제건설 주력 방침에 맞춰 본격적으로 자강도 홍보에 나섰다.
최근 평양의 조선중앙TV은 자강도 강계시에서 박도춘 자강도 당 책임비서 등 간부들과 도내 근로단체, 공장.기업소 일꾼, 근로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보고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박 책임비서는 ‘기념보고’에서 책임비서는 김정일의 강계시 현지지도는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불길을 지펴올려 고난의 행군을 낙원의 행군으로 전환시킨 특기할 역사적 사변”이었다며 주민들에게 “강계정신을 창조하던 그때처럼 수령결사 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을 발휘해 모든 부문, 단위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할 것을 요구했다.
또 1월 16일 자 ‘로동신문’은 ’강계정신의 위력으로 부강조국 건설에서 위대한 전환을 이룩하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강계정신은 혁명의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창조된 사회주의 결사수호정신이며 엄혹한 시련을 대담한 공격으로 맞받아 뚫고 낙원의 길을 열어놓은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이며, “강계정신으로 살며 투쟁하는 사람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자강도 사람들의 ’투쟁정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영도자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일심단결의 정신, 당의 노선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결사관철의 정신, 자기의 힘으로 난국을 뚫고 보란듯이 일떠서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는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이라며 “강계정신으로 살며 투쟁하는 사람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북한은 지난 10년동안 자강도에 “230여개의 중소형발전소와 수십개의 공장. 기업소가 건설되고 생산이 장성하여 도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수백개의 농촌마을들이 새로 일떠서 사회주의 선경을 펼쳤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사회주의 선경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선군팔경(先軍八景) : 장자강의 불야성(不夜城)’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선전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강계정신’ 띄우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여기서 ‘선군8경-장자강의 불야성’을 다시 읽어 보기로 한다.
북한의 월간지《천리마》2005년 2월호는 ‘아름다운 조국강산’이라는 연재물에서 <선군8경-장자강의 불야성>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서 중소형발전소를 많이 건설하여《고난의 행군》시기 제일 긴장한 전기문제를 푸는데서 시범을 창조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87(1998)년 1월 북방의 모진 눈보라를 헤치시고 자강도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곳 인민들이 장자강일대에 건설한 중소형발전소를 친히 돌아보시였다. (...). 중소형발전소를 수많이 건설하여 나라의 어려운 전기문제를 혁명적으로 풀며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켜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내 조국땅 북변의 이름없는 산천에 찾아든 환희의 밤.”(80쪽)라고 적혀 있다.
위 기사는 “그래서 장자강에 펼쳐진 불야성을 바라보며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들지 못한다. 진정 장자강의 불야성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내 나라, 내 조국에 펼쳐진 위대한 전변의 자랑찬 모습이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자강도에 펼쳐진 이 전변을 선군8경의 하나로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하는것이여라.”(80쪽)로 마무리되어 있다.
북한의 월간 화보지《조선》2005년 3월호도 ‘선군8경’이라는 연재물에서 <장자강의 불야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장자강은 우리 나라의 북변도시 강계시를 감돌아흐르는 압록강의 지류이다. 물매가 급한 산악하천인 장자강은 오늘 전력생산기지일뿐아니라 관개용수, 공업용수, 음료수 그리고 떼길과 배길로도 리용되고있다. 장자강기슭에는 약동하는 생활의 랑만과 정서가 흘러넘치는데 밤이면 대낮처럼 밝은 별천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듯 강변을 따라 층층히 들어앉은 살림집들에서와 공장, 기업소마다에서 불빛이 쏟아져나오고 불밝은 창가에 모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창조적희열과 랑만이 장자강의 물결에 실려 행복의 노래되여 흘러흐른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90년대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공장들이 숨죽고 집집의 불빛마저 꺼져 이 북변의 도시에도 생사를 위협하는 어둠이 가셔질줄 몰랐다. 바로 이러한 때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자강도를 여러차례 찾으시여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길을 밝혀주시고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자강도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곳곳에 수많은 발전소들을 건설하여 긴장한 전기문제를 풀었으며 공장들을 번듯하게 꾸려놓고 생산의 동음높이 울리며 온 나라에 사회주의수호정신, 강계정신이 나래치게 하였다. 자기의 손으로 가꾼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락원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활모습이 비낀 장자강의 불야성은 오늘 선군조선의 절경으로 전해지고있다.”(14~15쪽)라고 쓰여 있다.
위에서 살펴본《천리마》와《조선》의 글을 읽고 나면, <장자강의 불야성>도 ‘절경(絶景)’이나 선경(仙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장가강 강변에는 ‘관서8경’ 중 하나인 <강계 인풍루>가 위치하고 있어 ‘8경’ 운운(云云)할 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조선》주체 94(2005)년 제12호는 <관서8경 강계 인풍루>에서 “인풍루는 자강도 강계시를 감돌아 흐르는 장자강과 북천강이 합수되는 기슭의 절벽우에 있다. 이 루정을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불리우고있다. (...). 조국해방전쟁(1950.6-1953. 7)시기 미제에 의하여 심히 파괴되였던것을 주체43(1954)년에 원상복구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여러차례 강계시를 찾으시여 인풍루를 력사유적으로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41쪽)고 기술했다. 다음은 아주 많은 ‘장자강의 불야성’를 소재로 한 시 중 하나인 <인풍루의 밤>(《조선문학》주체94(2005)년 제2호, 65~66쪽)이다.
인풍루에 밤이 오니
장자강의 불야성이 장관이로구나
그 누가 이런 경치
선군8경이라 불렀던가
깊어가는 밤처럼 생각 많아라
장자강 합수목의 붉은 바위우에
관서8경이라 자랑많던 루정이여도
밤에는 칠칠이 어둠에 잠겨있더니
수수백년 짙어있던 어둠을 밀어내며
단청지붕 건듯 들어올린 인풍루의 밤
굽어보니
만수로 출렁이는 수면우엔
행복의 웃음넘친 불빛들 쏟아져내리고
불빛을 안고 떠나가는
려객선의 긴 배고동소리에
강변의 물오리떼 깃을 치는 밤
이런 밤을 기다려
강변의 버드나무 아름드리 년륜을
돌기돌기 감아안고
길길이 아지를 늘여 이 땅에 절을 하는가
철썩철썩 기슭을 치는 물소리에
옛이야기도 실어보는 마음이여
그 경치 하도 멋들어
관서8경이라 불러왔어도
살길찾아 떠나가는 무거운 류랑의 걸음
한번도 멈춰세우지 못했고
낮이면 명승을 부감하며 즐긴이들 있어도
밤에는 짙은 어둠에 싸여있더니
그 밤엔...
고난은 있었어도 비관은 몰랐고
밤은 깊었어도 잠을 몰랐던 강계사람들
장자강 곳곳에 언제를 막아
물을 길들여 불을 얻은 자랑있어
어둠은 합수목의 물결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갔거니
오, 장자야경이여
낮에는 자연의 관서경치
밤에는 창조의 선군정치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내 조국의 8경을 자랑하며
이 밤에도 불야성을 펼쳤구나
인풍루의 새 력사를 맞이했구나
[사진 / 위 - 망미정 / 아래 - 인풍루]
[ 강 계 아 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