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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들... 서건창/ 박승욱, 최항
가히 ‘야구(野球)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많고 많은 스포츠 경기 중에서도 일 년 내내 TV에서 중계방송 해주는 경기는 야구가 단연 으뜸이다. 더구나 요즈음은 종편방송 덕분에 KBO 리그 10개 구단의 모든 경기를 채널을 바꿔가면서 실시간으로 전부 모니터링 할 수가 있다. 다른 사정으로 혹시 방송을 놓치더라도, 아름다운 미녀 캐스터들이 야구선수 출신의 전문 해설가들과 지난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편집해서 리플레이 해 주는 것을 다시 보면 된다. 물론 친절한 해설과 날카로운 분석이 늘 함께 한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나도 지난 경기의 결과를 궁금해 하고 찾아보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나는 고교시절 친구들과 동대문야구장을 딱 한 번 구경 갔다 온 이후로 항상 야구를 좋아하며 살아 왔다. 봉황기, 청룡기... 군산상고, 대구상고, 부산고, 광주일고, 신일고, 경남고... 당시에는 고교야구가 최고 인기였다. 세월이 유수(流水)라더니 그것이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이 지나가자 프로야구가 생겨 언제나 가까이에 야구가 있었고, 이제는 미국과 일본으로 진출해서 활약하는 우리선수들의 경기까지 ‘내 손 안의 세계’인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즉각 확인해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의 프로야구는 1982년 제 5공화국 군사정부가 자신의 정권 정통성의 한계를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면서 희석시켜보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기획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고, 나도 이 가설의 상황성과 논리성에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로 34년이나 되는 파란만장한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명멸해간 수많은 스타선수들의 이름을 잊을 수는 없다. 김재박, 김봉연, 박철순, 이만수, 최동원, 장효조, 한대화, 선동열, 김용희, 송진우, 장종훈, 이종범, 이승엽, 이대호, 류현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불멸의 선수들과 함께 나의 청춘과 중·장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제 야구는 ㅡ 누가 야구를 잘 알던 모르던, 좋아하건 말건, 우리들의 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내 초로(初老)의 가을에 야구를 예상해 보건데, 아마도 나는 추신수, 강정호, 김광현, 양현종, 박병호, 김현수, 나성범, 김하성, 구자욱, 박승욱, 최항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내 가족과 벗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즐기며 나의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제 이것은, 혹시 나라에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게 된 일이다.
어제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Pittsburgh Pirates)’의 5번 타자 강정호 선수가 3회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몸 쪽으로 흐르는 패스트볼을 끌어당겨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만루 홈런을 때려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만루 홈런이라~, 강 선수 개인으로도 의미 있는 날이겠지만, 이것은 피츠버그 구단으로서도 올 시즌 첫 그랜드슬램이란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야구의 매운 맛을 연일 보여주고 있는 정호를 위해 건배를 보냈다. “정호야, 너 정말 대단해!” 조금 있으려니 퍼시픽리거 이대호 선수가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온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덩치 큰 이대호가 베이스를 돌아 홈 플레이트에 발을 찍고 돌아 나오며 중계 카메라를 향해 멋진 손 윙크를 보내온다. 고국의 팬들에게 보내는 인사일 것이다. ‘나도 이래요!’ ㅡ ‘OK! 대호야, 짜~식, 훌륭해!’ 나는 경탄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대호 선수를 위해서도 축배를 든다. 오~, 대한의 야구선수들 정말 대단하다. 진짜 대한국민 만세다.
나는 가까이 접하는 어떤 스포츠 등에 빠져 그에 관한 자료나 정보를 수집해 보거나 확인하던 사람이 맹세코 아니었다. 나는 도서관에 묻혀있는 옛날 고려나 조선시대의 역사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더 좋았다. ‘오늘’ 매스컴으로 접하는 대부분의 뉴스와 이야기들은 한 꺼풀만 그 껍질을 벗겨보면 대개 ‘탐욕’의 다른 이름들인 것이다.(이것들은 모두 ‘권력’과 ‘돈’과 ‘섹스’로 수렴한다.) 이러한 대책 없는 ‘오늘’을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의 자료나 역사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전공이 아니지만, 나는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역사가(歷史家)’적인 안목과 지혜를 사랑하고 지향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오늘 프로야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언컨대 단지 단 한 선수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가 누구냐?”고 당신이 내게 물어 주었으면 좋겠다. 오~, 당신이 물어주니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련다. 그 한 선수의 이름은 “서건창이다!” 그를 알지 못하는 야구팬이 있으려나? 서건창은 ‘넥센 히어로즈’ 구단의 2루수 1번 타자로 작년 시즌 KBO 리그의 MVP를 차지하였다. 2014 시즌에 나의 서건창 선수는 12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70, 7홈런, 201안타, 67타점, 135득점, 48도루를 기록하였다. 짧지 않은 KBO 리그의 역사에서 그는 최초로 ‘한 시즌 200 안타’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달성하였고, 타율 1위, 최다안타 1위, 득점 1위, 도루 3위를 차지해 당대 최고의 리드오프가 되었다.
서건창 선수
이제 서건창 선수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보련다. 아마 한 3~4년 전 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저녁 7시 경에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먼저 퇴근해 온 아내가 오늘도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중에도 TV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벌써 며칠 째인지도 모르는 반복적인 일이다. ‘야~, 오늘도 서건창이 도루했네’ ‘어머~, 저 옷 좀 봐’ ‘넥센이 오늘은 확실히 이기겠군’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때. 서건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전후를 살펴보자니 아내는 오늘도 넥센 팀을 응원하고 있고, 어쩌면 넥센 팀보다도 개인 서건창 선수를 더 성원하고 있는 눈치다. 사실 아내는 그 작년까지만 해도 야구경기를 보자면 어느 팀이 공격이고 수비인지의 가장 기본적인 야구 규칙도 잘 모르던 그냥 아줌마였다. ‘어라, 이 여인께서 이제 야구를 다 알고 볼 줄도 아네!’ 하는 기특한 생각에 작정하고 밥상머리에서 야구를 가르치려다 보니... ‘우와~, 웬걸!’ 나는 그날 아내에게 완전히 완봉패 당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하면 알고, 알면 다시 보인다”고 누구신가 하신 말씀은 여기 야구에서도 진리였다. 아내는 퇴근하고 매일 야구중계를 보면서 스스로 ‘야구의 도(道)’를 깨친 모양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또 네이버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서건창 선수는 물론, 그가 속한 넥센의 염경엽 감독과 여러 선수들... 그리고 당시 8개 구단의 자잘한 속사정까지 웬만한 전문가를 뺨칠 정도의 풍부한 야구 지식까지 두루 달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야구 지식의 궤도가 오직 서건창 선수 한 명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와~, 아내가 달리 보인다. 이 여인이 과연 진짜 내 마누라란 말인가?)
넥센 구단의 홈페이지까지 섭렵한 아내의 해설에 의하자면, 저 서건창 선수의 플레이는 ㅡ 연습생 출신으로 구단에 입단해서 말단 소총수로 병역까지 마친 현재, 그는 지금 한창 열심히 뛰어야만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는 홀어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다는 서씨 집안의 한 절실한 가장의 모습이었으며, 따라서 서건창의 인생에서 야구장은 그가 선택한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라는 말이었다. 저 자그마한 선수가 누상에 나갔다만 하면 매번 도루를 시도하느라, 9회 경기가 끝날 때쯤이면 헤드슬라이딩 한 그의 유니폼은 상·하의가 온통 땀과 흙투성이 뒤범벅이 되어있는 모습에서, 참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훌륭한 한 청년의 자화상을 본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서건창 선수가 몇 번이나 끈질기게 도루를 시도하는 광경을 보자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는 고백이었는데... 야구를 보노라면, 어떤 순간 우리네 간절한 인생이 슬쩍 겹쳐 보이기도 한다는 말이었다. ㅡ ‘나도 저 서건창 선수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렇게 나를 놀래키고 먼저 식사를 마친 아내가 서둘러 거실의 TV 화면 앞으로 자리를 옮겨 간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 아내의 삶과, 아내에게 전해들은 서건창 선수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따지고 보니 프로야구 선수뿐만이 아니라, 아내의 소속팀이라 할 수 있는 ‘주부(主婦)’라는 자리도 남편과 자식들을 보듬어 가정을 꾸려나가는 한 프로의 세계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간다. 그렇지 않은 것인가? 세상에 대한민국 주부들만큼 위대한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 어디에 또 있으리오. 나는 프로야구라는 매혹적인 세계 속에서, 그 중 아들 또래의 한 선수에게 빠져 매일 그를 응원하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래서 서건창이었던 것이다. 생활에 이끌려 살아가는 갱년기 주부의 고단한 하루 일과를 이렇게 멋지고 성실한 플레이로 위로하고 보상해 주는 ‘서건창 선수’였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부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아내와 함께 건창이의 팬이 되어 평생 그를 지켜보기로 하였다.(서건창 선수가 내 아들보다 나이가 적으니, 이렇게 반말을 해도 그가 나를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우리 건창이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일 테니까... 이 때,) “딱!” 하는가 싶더니 거실 쪽에서 아내의 다급하고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넘어간~다아, 넘어~간다아... 넘어갔다!” 나도 헤드슬라이딩을 하듯 잽싸게 식탁을 빠져나와 거실의 TV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등번호 52번 넥센의 4번 타자 박병호 선수가 목동구장 좌측 펜스를 훌쩍 넘어가는 대형 스리런 홈런을 치고 3루 주루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득의에 찬 병호의 늠름한 표정과 꽃밭처럼 환호하는 넥센의 덕아웃. 와~, 대단하다! 저 박병호 선수도 분명 심상치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는 인천의 연고지인 ‘SK 와이번스’를 응원해야 도리와 명분상 마땅할 터이지만, 야구를 보는데 그런 지연(地緣) 따위야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서건창과, 박병호와, 그리고 강타자 유격수 강정호가 있는 ‘넥센의 영웅들(Nexen Heroes)’를 응원하기로 결심하였다.
정말이다.
그날 이후로 대학생 딸과 아들까지 ‘넥센 물이 들어’ 합세하게 된 우리 가족은 점점 더 넥센의 열광적인 팬이 되어갔다. 작년에는 기어코 온라인을 떠나 차를 몰고 48국도와 올림픽대로를 타고 오프라인의 목동구장에까지 진출하였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목동은 넥센의 홈구장이다. 홈구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함께 박수치고 소리도 질러가며 응원하는 야구 구경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치맥(Chi-麥)’을 즐기며 1루 관중석의 맨 앞자리에 앉아 박병호와, TV에서만 보던 2루수 서건창의 날렵한 수비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5회초 넥센의 수비였다. 롯데의 손아섭이 때린 강력한 라이나성 타구가 좌중간을 가르나 싶더니 어이쿠, 재빠른 유격수 강정호한테 딱 걸렸다. 순간 물 흐르듯 6-4-3으로 연결되는 환상적인 더블플레이! 투수는 던졌고, 타자는 때렸고, 수비는 그걸 잡아서 다른 수비와 또 다른 수비에게 연결했다. 그 사이와 경계를 빨래줄 같은 흰 야구공이 4번이나 꺾여 돌았다. 한 호흡의 단절과 이어지는 세 박자 또는 네 박자의 리듬과 운율... 직구와 커브, 네모난 다이어몬드와 둥근 공, 직선과 곡선의 조화... 장군(감독)의 지략과 죽음을 무릅쓰는 병사(선수)들의 용기... 야구는 과연 인생을 닮았다. 한 번 떠난 자를 무슨 수를 쓰던 기어코 살려 다시 고향(Home)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야구의 규칙이었다. 그 가상의 야구 규칙 속에 실제의 선수들이 때로는 비명횡사하고 때로는 다시 기사회생하기도 하였다. 아~,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 한 여행이라면 ㅡ 떠난 곳으로 돌아와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여행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ㅡ 우리의 삶도(저기 서 있는 저 서건창 선수처럼,) 지상의 어느 한 지점엔가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일 터이다. 야구장은 그런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모험을 축약시켜 보여주는 하나의 세계이며 드라마이기도 할 터이다. 나는 맥주를 2캔이나 마신 알딸딸한 기분에 취해, 허리를 숙이고 긴장된 수비 자세를 다시 취하고 있는 내 눈 앞의 서건창 선수가 들으라고 돌연 큰 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건창아~ 잘해라~, 파이팅!!” 건창이는 나의 소리를 못들은 척 꼼짝 않고 홈을 주시하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옆구리를 쿡 찌르며 우리 딸내미가 내 귀에다 대고 한마디 했다. “아빠, 좀 조용히 해. 창피하쟎아~” ㅠㅠ 강화도 시골에서 야구 구경 온 한 늙은 관중이 잠시 주책을 떨었었나 보다. (쯧쯧,)
우리 가족의 열성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넥센은 한국시리즈의 가을 야구에서 연거푸 두 번이나 좌절을 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또 내년 시즌을 기대할 밖에. 그래도 2014 시즌에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 성원을 보냈던 서건창 선수가 MVP가 되는 걸 볼 수 있어서 진정 행복하고 기뻤다.(그의 놀라운 기록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이다.) 과연 올해 코리안시리즈에서는 넥센이 우승하는 걸 한 번 볼 수가 있으려나? 염경엽 감독의 지략은 출중하고, 박병호의 홈런포도 여전하며, 루키 김하성의 활약도 예전 강정호에 못지 않다. 그리고 서건창 선수도 시즌 전반기의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기대를 가져볼 만도 하지만...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정말 강팀이다.
박승욱, 최항 선수
지난 7월 22일 아침 10시, 나의 직장인 ‘강화문학관’으로 박물관 L팀장(문학관은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운영)이 키 크고 잘 생긴 어떤 한 청년을 데리고 나타났다.
“문학관에서 근무하게 될 ‘공익요원’ 한 명 방금 군청에서 인계받아 왔습니다. 앞으로 2016년
6월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양선생님이 아들처럼 데리고 잘 가르쳐주세요! 야구선수랍니다.”
“아, 그래. 반갑다! 야구선수라면, ...그럼 프로야구 선수냐?”
“예, ‘SK 와이번스’ 소속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질문했는데, 청년은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이렇게 공익근무요원 프로야구 박승욱(朴承昱, 1992 ~ )선수와 아마츄어 야구팬인 나는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Daum)에서 ‘박승욱’을 쳐보니 과연 그의 사진과 과거의 활약상들이 뉴스와 블로그들에 나와 있다. 박승욱 선수는 대구 출생으로 경복중학교와 야구 명문 ‘대구상고’(지금은 ‘대구상원고’로 교명을 바꿨다)의 야구부 주장 출신이다. 고교졸업 후 대학진학과 프로진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2012년 ‘SK 와이번스’의 3차 지명으로 일찌감치 프로야구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고 한다. 2012년 6월에 당시 정근우 선수(지금은 ‘한화 이글스’ 소속) 부상 공백의 대타로 15 게임을 뛴 적이 있으며, 포지션은 내야의 유격수나 2루수가 전문이다. 183 cm, 76 kg 의 날렵한 몸매에다 100 m 를 11초 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로, 장차 구단의 1번 타자가 되어 ‘도루왕’ 타이틀에 한 번 도전하고 싶다고도 한다. (...그거야 제대한 후의 일 일 터이고,) 그는 지금 공익근무라는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만 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나는 그의 상관으로 그를 잘 보살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승욱’이와 만난 후(나는 허례와 격식을 덜 좋아한다. 미리 양해를 구해놓고 평소에도 그에게 “승욱아~”하고 반말을 한다. 그렇다고 승욱이가 나를 막 대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독자들께서는 이런 말투를 양해하시길 바람) 지난 두 달 가까이, 나는 그와 문학관 주변 청소도 같이 하고, 문학강좌 준비도 같이 하고,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점심 식사도 함께 하며, 강화도에서의 그의 공익 복무가 보람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야구배트를 잡을 손으로 청소 밀대를 잡으라고 시키는 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어쩌랴~, 이건 당연한 일이다. 박승욱 선수는 지금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야구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만만치 않은 상관을 만난 것이 승욱이도 싫지는 않은가 보다. 나도 한가한 시간이면 그와 야구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좋기만 하다. 어쩌다 사무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승욱이를 인사시키며 “10년 후의 메이저리거 ㅡ 프로야구 SK 구단의 2017 시즌의 루키가 될 ‘박승욱 선수’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보이지만,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나가면 한 마리 표범처럼 빠르고 놀라운 선수입니다. 장차 나는 박승욱 선수의 ‘강화도 팬클럽’이나 운영하며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만... 운운”하며 자랑질을 하게 되는 재미도 나의 문학관 일상의 작은 기쁨이기도 하다.
한 달 전 쯤에는 ‘최항’이라는 이름의 승욱이와 같은 ‘SK 와이번스’ 구단 소속의 가슴이 딱 벌어진 친구가 또 내게 인사를 왔다. 이 녀석은 ‘강화역사박물관’에 배속이 되어서 내년 3월까지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다는데, 박승욱 선수가 박물관에 한 번 공익 물꼬를 터놓으니 이렇게 나는 진짜 아들 같은 젊은이들과 젊은 마음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게 다 지난 4월 우리 강화군 길상면에 ‘SK 퓨처스파크’가 개관되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승욱이와 항이는 퇴근 후면 두 녀석이 같이 길상으로 가서 하루 3시간씩 매일 운동을 하고 온단다. 장래 ‘SK 와이번스’ 야구팀의 1번 타자와 3번 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 선수들과 미리 생활해 본다는 것은, 야구를 좋아하는 내게 다시는 못 올 큰 행운인 것도 같다. 참, 최항 선수를 소개 드려야겠다. 최항 선수는 자신보다 그의 형이 현재까지는 더욱 유명하다. 여러분은 SK의 ‘소년장사’ 최정 선수의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최정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SK의 한국 최고 3루수이다. 항이는 그런 최정 선수의 막내 동생이고, 따라서 최정은 그의 롤-모델이고 영웅인 셈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최정, 최항 형제 선수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인천 문학구장의 전광판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항이는 1994년 생이고(22살) 수원의 ‘유신고등학교’를 나와서 SK의 지명을 받았다. 형을 닮아 미남이고 또 힘이 형 못지않은 장사라고 한다. 나는 최항 선수를 보자면 꼭 넥센의 박병호 선수를 보는 것 같아 밥을 안 먹어도 공연히 든든한 마음이 들어, 그의 넓은 등짝을 한 번씩 툭툭 두드려본다. ‘항이, 잘 해!’ (더 자세한 프로필은 당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시라.)
이제 나의 프로야구 이야기를 여기에서 맺도록 하자. 간단하게 끝내려 했는데 어느새 말이 많아져 버렸다. 지난 여름 군 복무중인 한 야구선수를 만나면서부터 나의 야구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어느덧 가을바람은 불어오고, 가을이 더 깊어지면 한 달 가까이의 고대하는 가을 야구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2년 뒤의 가을 야구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2017년부터는 ‘SK 와이번스’의 열렬 팬이 될 것이다.”라고 고백을 할 것이고, 그들은 내가 왜 이런 글을 미리 써 놓으려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다.
“승욱아~, 항아~, 너희들은 ‘프로야구’를 선택했다. 부디 성공해라!”
(사진 왼쪽 최항 선수, 오른쪽 박승욱 선수 / 가운데는 나의 진짜 아들이다. 일 도와주러 왔는데 내가 찍었다)
첫댓글 ‘(조경희)수필문학관’이기도 하니까, 붓 가는대로~ ‘수필’(隨筆)을 하나 쓴다고 썼습니다.
혹시 글을 다 읽으시고 여기까지 내려오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피츠버그의 강정호 선수가 큰 부상을 당했다네요. 그의 빠른 쾌유를 빌어봅니다.
정말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글이 하도 좋아 누가 썼나 했습니다.
과연 양태부 선생님이십니다.
문자 그대로 揚泰父 선생님이십니다.
세 젊은이가 늠름합니다.
야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보입니다.
든든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