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척곡교회(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대한민국 3대 오지마을(영양,봉화,청송)중에 봉화군 척곡리는 해발 360m의 오지 중의 오지마을이다. 척곡교회는 독립투사들의 회합장소 였고,독립운동 자금 전달의 거점이었다.
대한제국 탁지부(현재 기획재정부) 관리였던 김종숙(1872~1956)이 언더우드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관직을 내던지고 처가의 고향으로 내려와 장복우, 최재구와 함께 1907년에 교회를 설립한 2년 뒤 1909년에 척곡교회를 건립하였다.
지역의 부자 최재구가 땅을 내놓았고, 김종숙은 건축비를 헌금했다.
척곡교회 예배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미음 자 기와집으로 세워졌다.
출입문은 남녀 출입을 구분하기 위하여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분되었다.
교회 담장에는 아래에서 일본 헌병의 출현을 살피는 구멍이 뚫려 있다.
교회 설립자 김종숙은 1919년 장로가 되었고, 1946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독립투사들의 회합 장소였던 봉화 척곡교회
1907년 척곡교회 설립자 김종숙의 처남 석태산은 봉화에서 활약한 의병장이었다. 석태산를 비롯한,정용선,김명림 등 독립투사들은 척곡 교회를 중요 회합장소로 사용했고,독립운동자금을 모아 김종욱을 통해 만주로 자금을 전달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1920년 김종숙 장로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1945년 김종숙 장로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3개월 옥고를 치르고
1910년 석태산, 정용선, 김명림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소백산으로 들어가 항일투쟁을 하던 중에 체포되어 석태산은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김명림은 대구형무소에서 10년 복역했고, 정용선은 청주에서 체포되어 1928년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봉화 척곡교회와 명동서숙(明東書塾)
1907년 김약연(圭巖 金躍淵)이 세운 북간도 화룡현 명동촌의 민족교육기관 명동서숙(明東書塾)을 따라 애국청년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 명동서숙을 세우고 1943년 일제에 의해 강제 페교 되기까지 교육하였다.
2006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2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