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맨 이라면 반드시 쟁취해야 할 곳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엑스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선전 하계유니버시아드.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이 각종 국제적 행사를 ‘싹쓸이’ 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그만큼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상하이시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지상 최대의 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올해 3월에 열린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 양회(兩會)에서 손자정(孫家正) 중국 문화부장은 “상하이 엑스포 기간 동안 외국의 참관객들은 5000년의 역사와 30년 개혁개방의 세례를 겪은 중국의 정신과 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해는 이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국제상업도시다.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 세계 500대 글로벌기업 중 상해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운 기업이 IBM, 모토롤라, GE, 에릭슨, 노키아, GM, 폭스바겐, 제록스 등 221개에 달한다.
한국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중국본부도 수도 북경이 아닌 상해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상해의 위상을 잘 대변하는 현상이다.
상해는 장강삼각주와 장강 유역의 넓은 지역을 배후지로 두고 있으며,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및 독일의 베를린과 함께 세계 5대 무역도시이다.
국제화와 현대화가 이루어진 중국 최대의 도시이자 중국 최대의 대외개방 창구이며, 주요 수출입 및 국경출입구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미국·오스트리아·프랑스·영국·이태리·독일·러시아 등 12개 국가의 총영사관이 주재하고 있다.
상해는 중국의 중요 중공업기지일 뿐만 아니라 중국 최대의 경제중심으로서 항구와 무역, 과학기술, 정보의 중심지이며, 물자 및 상품의 소비지이면서 생산기지이다.
또한 금융, 보험, 무역 등 서비스업종 기구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2008년 말 상해의 제3차 산업의 비중은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였고, 그 중 금융업의 비중이 21.1%, 도소매 거래와 요식업이13%, 교통운수와 전신전화의 비중이 8.8%, 부동산업 비중이 15.3%이었고, 관광 및 정보자문 등의 분야도 비교적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상해의 상업은 줄곧 번영을 구가해왔다. 상해에는 와이탄(外灘) 금융가, 남경로(南京路), 회해로(淮海路),신천지(新天地)등 저명한 비즈니스거리가 있고, 아울러 항공, 철물, 의류, 가전, 명품 등 전문성 비즈니스거리가 있다.
그 중 남경로는 ‘중국 제1의 비즈니스거리’(中華商業第一街)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매일 연인원 700만 명의 인파가 몰리고, 1000여 개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회해로 역시 역사가 100여 년 된 고풍의 거리로서 고전식 부조(浮彫)와 동화 같은 건축물로 프랑스 파리 거리에 비유되곤 한다. 상해국제복장복식중심은 세계 각 패션몰을 연계시키고, 전 중국의 복식문화를 확산시킨다.
따라서 회해로는 중국의 명품 소비 소매, 패션쇼, 패션기술 교류, 소비개념 창출의 중심이며, 모델 매니저센터로서 파리나 밀라노에 버금가는 국제패션 중심의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가회(徐家匯)는 최근 신속하게 발전한 상업권이다. 이곳에는 원래 제6백화(第六百貨)뿐이었는데, 뒤이어 동방상하(東方商厦), 태평양백화점 등 대형 상업빌딩이 줄이어 들어서면서 원형 상업권이 형성되어 상해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상업지역이 되었다.
1960년대 상해에는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 단 하나였으나, 1978년의 16곳을 거쳐 지금은 이미 수 천 곳을 넘어섰다.
개혁개방 이전 상해에서 매장면적이 1만㎡ 되는 대형 상점으로는 제일백화(第一百貨), 화련상하(華聯商厦), 시장공사(時裝公司), 제일식품(第一食品) 등 단 4곳이었는데, 지금은 수 백 곳을 훨씬 넘었다.
항회백화광장(港匯百貨廣場)은 매장면적만 13만㎡(39,325평)이고, 정대광장(正大廣場)도 매장면적만 19만㎡(61,750평)나 된다.
한국 최대 백화점인 현대백화점 목동점의 영업면적은 겨우 13,730평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상해의 매장 면적은 이미 3,000만㎡를 넘어섰고, 상품매출액은 이미 5,700여 억 위엔(元)을 넘어섰다. 2008년 말 상해의 연쇄점이 14,660곳을 넘었다.
16년 전에 걸음마를 시작했던 상해연화초시공사(上海聯華超市公司)의 연쇄점은 이미 3천여 곳에 이르렀고 계속 확대 중이다. 중국에서 23년 동안 최고를 군림하던 상해 제일백화를 일거에 제치고 중국 제일의 소매업자가 되었다.
상해는 비즈니스 엘리트를 주조해내는 대용광로이다. 이 용광로가 배출한 근현대 중국 비즈니스 엘리트들은 상해에서 출세하여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이 점에서 상해는 중국 사업을 하려는 비즈니스맨이라면 반드시 쟁취해야 할 곳이다.
상해에서의 성공은 부를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중국 진출 기업인이나 무역인은 우선 다음과 같은 상해의 거대한 경제 중심의 기능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첫째, 상해의 경제 중심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상해의 금융 기능과 국내외 환적항 기능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셋째, 상해의 상업 전통의 장점을 파악하고 불량한 전통을 방비해야 한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상해인의 해파(海派) 성격 파악하기
서양의 조계지였던 원인으로 상해는 중국문화와 서양문화가 융합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상해는 서양을 알게 된 창구였고, 서양인 입장에서는 상해를 통해 중국을 체험하고 중국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문화와 서양문화의 오랜 만남과 갈등 그리고 결합의 결과 상해인 특유의 성격이 형성되었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북경의 경파문화(京派文化)와 대비하여 해파문화(海派文化)라고 부른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업 전통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산업관은 유교의 영향으로 조선시대와 같이 중농억상(重農抑商)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상인들은 ‘간교한 상인’(奸商)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근현대 서양은 이와 달리 중상(重商)의 입장에서 상품교환, 상품유통을 매우 중시했다. 근대 서양의 식민지 개척은 경제 진출이 주목적이었다. 서양인과 접촉이 잦았던 상해인은 서양 상인의 관념과 행위방식에 큰 영향을 받아 비교적 강한 공리의식과 경제관념을 지니게 되면서 두터운 비즈니스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둘째, 정명(精明)이다.
중국인들은 상해 인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으로 총명을 꼽는다. 이는 오랜 비즈니스 전통의 영향에 따른 필연적인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유교의 영향으로 ‘의리를 중시하고 이익을 경시 한다’는 중의경리(重義輕利) 관념을 중시했고, 통이 크고 호탕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세심하게 계산하고’(精打細算), ‘하나하나 따지고’(斤斤計較), ‘빈틈없이 세심한’(精明細心) 것을 추구한다.
비즈니스 전통으로 상해인은 일반 중국인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중국 상인들의 상해 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평가는 “너무 영리하다!”(太精了)는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되면서 공리주의와 상품의식으로 무장한 중국인들이 모두 총명하게 되었지만 상해인은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셋째, 공평·합리 관념이다.
전통시대나 개혁개방 이전, 심지어 현재에도 중국은 법치(法治)보다는 위정자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의한 인치(人治)가 강했고, 서구는 법치에 의한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다. 전통시대 중국인은 사회등급과 특권을 다반사로 알았고, 서구문화는 자유와 인권을 보다 강조했다. 상해 인들은 중국인 가운데 비교적 일찌감치 서구의 관념을 전수받아 사람들 간의 평등을 추구하고, 법률과 제도 하의 평등자유를 추구하여 계약관념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서구 취향이다.
특유의 지리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상해 인들의 생활방식에는 서구 분위기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상해 인들은 외국인과 거래할 때는 서구인의 교류방식이나 거래방식으로 진행하고, 외국회사에 근무할 때는 서구인의 행위방식과 업무방식으로 일을 한다. 이것이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나 상해 인들은 갈수록 서구인을 닮아갔다. 이와 같이 서구화된 상해 인들은 중국인들로부터 ‘얼치기’(半吊子) 서구인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따라서 비즈니스계에서 상해 인들은 서구인인 척하고 거드름을 많이 피운다.
다섯째, 포용의식이다.
상해는 중국문화와 서구문화가 뒤섞인 지역이다. 청대 말기에 이르러 점차 중국의 무역항 겸 조운운수의 중심이 된 상해는 아편전쟁이 종료된 1843년 통상구안으로 강제 개방되었다.
1845년부터 설치된 영국 등 열강의 조계 덕분에 상해는 상업, 금융, 방직, 경공업 및 교통운수가 발전하면서 중국의 상업금융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중국의 공업 명맥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19세기 이래 상해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토착’ 상해인의 비중은 매우 작아졌다. 중국 각지에서 세계 각국에서 각종 피부색의 각종 사투리의 각종 생활습관의 사람들이 상해에 운집하였기에 어느 문화도 주류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여러 문화가 뒤엉키면서 상해의 문화는 혼합문화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확대된 상해 인들은 나중에 들어오는 각 지방의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배타시하지 않음으로써 포용성이 강한 상해문화를 만들어왔다.
그리하여 각 문화의 장점들이 잘 융합됨으로써 상해의 경제와 문화가 신속하게 발전되었다. 이상의 특징은 상해인의 집단 특성, 즉 해파(海派) 특성으로서 아직도 상해 인들에게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상해인과 거래할 때에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경제적인 이익만을 꾀한다
오랜 상업전통의 영향으로 상해인들은 여타 지역의 중국인과 달리 개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정치에는 무관심하고 실속을 잘 따지고 주로 개인과 가정생활에 관심을 둔다. 그들은 실속철학(實惠哲學)이 몸에 배었다.
상해인의 이러한 철학과 관념이 일상생활에 표현되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이익을 중시하고, 사물의 실용가치를 중시하고, 형식과 기능 또는 심미와 실용 중에서 기능과 실용을 중시하게 되어 어느 면에서 미국인과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속을 추구하는 상해인은 아무리 복잡한 상황일지라도 자신의 최대 이익의 소재를 재빨리 찾아낸다. 상해인은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 북경인 등 북방 인에 비해 체면(面子, mianzi)이나 명성 등 비경제적인 요소를 덜 고려하고 경제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중국인 출국자수 중 상해 인이 가장 많은데, 그 최대 목적은 경제이익의 추구이다. 상해인의 이러한 관념이 거래에 투영되면 거래 상대방을 자아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 설정한다. 그리하여 득실 계산을 먼저 고려하게 되는데, 투자의 다과와 실제 이익을 비교하여 자신의 결정과 행위의 효과를 판단한다.
상해인은 장사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유일무이한 원칙과 목적으로 삼는다. 상해에서 돈벌이가 된다면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 패가 되지만 일단 경제이익의 획득이란 목적을 달성하였거나 또는 이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그 패는 신속히 해체된다.
따라서 상해인의 장사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장사의 관건은 돈벌이 여부이며, 장사를 위한 담판에서는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상해 인에게 장사의 대상이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많은 상황에서 상해인 중 장사에서 합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초면인 경우가 많고 또 서로 알 필요도 없다. 장사에서 양호한 관시(關係)를 형성하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양호한 관시를 형성하려면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상해에서는 특히 혐오하는 사람이 상대가 아니라면 상대의 인품과 외모는 그리 큰 작용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상해인과 장사를 할 때 다음의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상해인은 장사 목적이 매우 분명하고, 경제적인 이익이 유일한 준칙이다. 북경인 등 북방인은 장사를 할 때 인정관계(人情關係), 지위 차별, 체면 등을 고려하지만 상해인은 돈벌이가 된다면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쉽게 한 패가 될 수 있다.
둘째, 상해인과 협상할 때에는 이윤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해인은 협상과정에서 상대방의 신분배경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어느 저명인사의 아들이네, 어느 저명인사의 친척이네 하는 것들은 상해인의 관심 밖이다. 그들은 협상할 때의 풍채(儀表)를 중시하고 이미지(形象)을 중시한다.
상해 인들은 옷차림(衣冠)에 신경 쓴다. 따라서 옷차림을 한 개인의 소질을 평가하는 표준의 하나로 삼는다. 상해인과 협상할 때 맵시 있는 옷차림과 예의바른 행동은 자신의 소양을 보여줄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중시로 이해된다.
셋째, 상해인은 장사에서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상해인은 애초에 서로 몰랐고 또 서로 알 필요가 없었더라도 합작이 필요하면 합작을 한다. 만일 장사를 해서 성공했을 경우, 앞으로 합작하여 장사할 필요가 있다면 계속 교류를 하겠지만 더 이상 얻어낼 이익이 없다면 모든 관계는 종결된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정분을 죽이고 의리를 버리라
장사세계에서 사교는 필수적이며 거래활동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해인은 사교에서 정분을 쌓기 보다는 공리적인 색채를 뚜렷이 드러낸다. 상해인의 사교는 대부분 잠정적이고 부분적이고 표면적이다.
이익의 단기성과 높은 인구의 유동성 때문에 상해인은 단기적으로는 사교 대상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교분의 깊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북방인과 같이 상대방을 깊이 알아(知根知底) 친구를 위해 몸을 던지는 의리는 거의 없다.
따라서 북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상해인은 의리가 없고, 교류의 깊이도 매우 낮다. 특히 거래에서는 적나라한 공리 경향을 띤다. 상해인은 정감 요인이 희박하기 때문에 “예는 가고 오는 것을 중시 한다”(禮尙往來)는 중국인 인간관계의 지상원칙을 극단화시켜 등가교환을 추구한다. 증여가 있으면 반드시 동등한 반대급부를 바란다.
(등가교환: 상품의 가치와 가격(화폐량)이 일치하는 교환을 말한다. 가치와 가격의 일치는 그 상품에 대한 수요 ·공급이 엄밀히 일치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원칙으로 표현된다.
첫째, 무의미한 인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신세를 지면(欠情) 갚아야 하고, 질질 끌어서는(拖欠) 안 된다.
셋째, 받은 것과 갚는 것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동등해야 한다.
상해 인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예를 들어, 연말연시나 경조사 때의 선물 전달에는 등가교환이 엄격히 준수된다. 이는 상해가 19세기 후반 아편전쟁 이래 서구에 개방되어 중국의 상업도시와 금융도시로 자리매김하면서 상품의식과 등가교환 의식이 상해인의 의식과 일상생활에 침투하여 형성된 습관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상해인과 거래를 하거나 손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거나(請客吃飯) 선물을 보낼 때에는 상해인의 다음과 같은 교제원칙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첫째, 예절은 가고 오는 것을 중시한다(禮尙往來)는 원칙, 즉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예절이나 선물이 비싸거나 부담을 주는 것이면 받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예절이나 선물이 값싸면 협조를 얻기 어렵다.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둘째, 상해인의 예의를 쉽게 받아서는 안 된다. 받은 예의를 되갚는다는 것은 매우 신중한 일로써, 자칫하면 상해 인을 화내게 만들어 애써 쌓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쉽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장사에서 제몫만 챙긴다
너무 영악스럽다!”(太精了!) 이는 상해상인에 대한 외지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평가이다. 상해 인들은 지나치게 총명함을 내세우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문함정’(門檻精) 또는 ‘문감정’(門坎精)이라 불린다.
원래 상해말로서 일반 중국어에서는 모두 men kan jing으로 발음된다. 문함이나 문감은 문지방을 의미한다. 중국 전통사회에서는 모든 건물의 문지방은 주인의 지위에 따라 높이가 달랐다고 한다. 즉 지위가 높을수록 문지방의 높이가 높았는데, 허장성세를 부리는 사람들은 몰래 규정 이상으로 문지방을 높여 자신의 사회지위와 신분을 과시했다.
영악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높이의 문지방을 준비하여 평소에는 높은 문지방을 사용하고, 고관이 방문하면 즉시 이를 낮은 문지방으로 교체하였는데, 이를 ‘조립식 문지방’(活絡門檻)이라 한다. 이러한 연유로 나중에 문지방은 일을 하는 요령, 솜씨, 비결을 의미하게 되었다.
다른 설에 따르면 men kan(문함)은 영어 monkey(원숭이)의 pidgin english-피진영어 (洋涇濱話 yáng jīng bīn huà, 상업 항구에서 외국인과의 거래를 위해 중국어식으로 말하던 영어)라고 한다. 원숭이가 기민하기 때문에 문함에 총명하다는 의미가 담기게 되었다. 기원이야 어쨌든 현대 중국어에서 men kan은 문지방이나 문턱 외에 솜씨, 요령, 비결을 의미한다.
한편, 정(精, jing)은 명사로는 요정 또는 요물을 가리키고, 형용사로는 총명하다, 똑똑하다, 영리하다, 영악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상해 인에 대한 지칭으로서의 문함정이나 문감정은 꾀자기, 꾀보, 꾀퉁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될 것이다.
상해인의 총명이 일상생활에 반영되면 개인권익과 개인이익의 보호를 포함한 사익을 꾀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차지해야 할 것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작은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따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상해의 일반시장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가 채소장수와 몇 푼의 돈을 놓고 다투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상해인은 당연히 차지해야 할 이익은 챙기려고 할 때 이익의 얼마인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장사세계에서 상해인은 전문가(裏手 li shou)이다. 물건을 잘 알아볼 뿐만 아니라 이치에도 밝고 흥정도 잘한다.
따라서 상해상인과 교제를 할 때는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먼저 상해인의 요구 수준을 개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높은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가 진행될 수 없다.
둘째, 상해인과 장사할 때 상해 인으로부터 ‘폭리를 취하려’(宰人)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상해상인과 거래를 할 때 지나치게 소심할 필요는 없다. 물정을 아는 상해 인들은 지나친 요구는 하지 않고 얻어야 할 이익을 얻으려 할 뿐,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인내심을 가져라
중국에서 상해상인 외에 광동상인이나 강절상인(江浙商人,강소성 절강성 상인,온주상인) 등 중국 남방 상인도 꽤 총명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의 총명은 장사에서 표현된 것이지만 상해인의 총명은 몸에 배어있다.
상해인은 너무 총명하기 때문에 그들과 합작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상해상인은 장사할 때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에 너무 자질구레한 일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그들은 협상을 진행하기 전에 대부분 사전에 시장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진행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담판은 대부분 충분한 준비를 거친 뒤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해인과의 장사에서 작은 문제 때문에 논쟁은 그치지 않고 지루하게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상해인과의 장사가 매우 피로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충분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인내하여 담판에 성공하고 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면 그 후의 진행은 매우 순조롭기 때문에 그들과의 협상에서 인내심은 쓸만한 덕목과 자산이 될 수 있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 상도덕과 법규를 준수하라
아직은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가 강하다는 공인된 중국에서 상해는 그나마 법치관념이 가장 앞선 곳으로 공인된 곳이다. 이는 ‘10년 동란’이란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사회질서와 경제활동이 비교적 잘 유지되었고, 과거 서구제국주의 통치 하인 조계시대에도 외국의 지배로 인해 사회질서가 잘 유지되었던 역사 경험의 덕분일 것이다.
상해는 원래 이민사회이기에 외지인이 처음 상해에 들어오면 기댈만한 전통 세력이나 연줄이 없는 곳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력으로 먹고살아야 하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규칙을 지켜야 했다. 따라서 상해상인은 상도덕이나 법규를 비교적 잘 준수하게 되었다. 이렇게 강요된 행위방식이 지속되면서 합리성, 평등 및 규범을 추구하는 관념과 관습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上海市는 매우 이성적인 도회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상해상인과 장사를 할 때는 상해와 상해인의 이러한 특징에 따라 법규와 절차를 지켜야 한다. 상해 인이나 상해상인이 위법이나 탈법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상해인의 자아의식이나 또는 외지인의 공감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연해지역에서는 밀수가 성행하였고 암시장(黑市)이 창궐하였지만 이에 참여한 상해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국 북방의 여러 지방에서는 위법과 탈법에 의한 돈벌이가 장사의 비결로 통하여 가짜상품을 만들어 팔고 탈세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이에 동참하는 상해인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이러한 각도에서 본다면 상해인은 장사세계에서의 ‘군자’ 또는 ‘양반’이라는 평을 들을 만하다. 따라서 상해인과 장사할 때 법규를 준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신뢰와 협력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계약서 서명에 주의하라
상해인은 매우 이성적이어서 일을 할 때 사리에 맞는 근거를 요구한다. 이는 그들의 오랜 상업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업사회 또는 비즈니스사회에서 상업행위의 정상적인 진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행위에 참여하는 각자가 공동으로 준수해야 할 규범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규범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거래행위가 빈번해짐에 따라 날로 공감대가 넓어진다. 상해는 일찍이 서구의 수백 년 된 상업전통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여타 지역에 비해 현대 상업의 역사가 길다. 따라서 상해 인들은 일을 할 때 공평과 합리를 중시하고 합리를 추구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계약(合同)을 중시한다. 이는 상해인의 높은 법치관념과 장기간 서구인과 교류하여 형성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상해인과 장사하면서 계약서에 서명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계약의식이 강해야 하고, 계약서 서명은 쌍방 협력의 법률 근거로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 내용이 전반적이고 표현이 정확해야 한다. 특히 쌍방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셋째, 계약을 체결할 때 발생 가능한 의외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여 상응하는 대책을 삽입해야 한다.
넷째, 계약의 체결에는 당사자 쌍방 국가의 관련 법률과 법규에 부합하도록 하여 예견되는 주 객관 원인으로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반드시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상해인은 준칙을 잘 지키므로 계약서 서명이 끝나면 불가항력의 외부 영향이 없는 한 대부분 계약에 근거하여 일을 하지 절대 얼렁뚱땅하는 법이 없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그들에게 큰 위험을 감수하게 하지 마라
상해 인이 총명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상해인의 총명은 160여 년 상업사회를 통해 형성된 생존 본능이다. 상해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어떤 행위에서든 개인의 지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소의 지출로 최대의 수입을 얻으려 한다.
따라서 총명한 상해인은 큰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는다. 상해인은 일을 할 때 북방인과 같이 ‘한 걸음 내딛고 다음 걸음을 생각해’(走一步看一步) 보듯이 하지 않고, 종종 모든 것을 잘 생각한 뒤에 시작한다. 즉, 상해인은 장사할 때 안정을 추구한다. 차라리 하지 않을망정 모험하기를 꺼린다.
따라서 상해인과 장사할 때 먼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각 예상 결과에 대해 가급적 정확한 판단을 내려 위험한 일이라면 상해인과 합작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상해인에게 허황된 느낌이나 모험적인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상해인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얻으려 하며, 허황되거나 비실제적인 이익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셋째, 거래 중 일정한 위험이 존재한다면 미리 분명히 해두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상해인은 중도에 위험을 인식하고 발을 뺄 수 있다.
넷째, 자신의 우세를 이용하여 장사기회(商機)를 잡아 상해에서의 위험투자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새로운 매판(買辦)을 이용하라
매판이란 옛 상해에서 서양 상인에게 고용되어 경영활동에 종사한 상인을 가리킨다. 매판은 포르투갈어 comprador의 음역인 ‘강백도’(康白度, kangbaidu)라고도 불렸다.
옛날 중국에서 상품 교역 중 판매자와 구매자 쌍방 사이에 중간 연락을 하는 거간꾼인 중간상인(中間商人)은 거간상(居間商)‧거간인(居間人)‧경기인(經紀人)‧경판상(經辦商)‧대판상(代辦商)‧시아(市牙)‧아상(牙商)‧탁시(度市) 등으로 불렸다.
아울러 납견적 (拉縴的)‧고쾌(賈儈)‧기행주(其行主)‧상쾌(商儈)‧시쾌(市儈)‧아기(牙紀)‧아랑(牙郞)‧아인(牙人)‧아자(牙子)‧아쾌(牙儈)‧아행(牙行)‧아호(牙戶)‧포람인(包覽人)이라고도 불렸다.(박병석, 『중국상인문화』(서울: 교문사, 2001), 34-35쪽)
옛 중국의 상해는 독특한 역사지리 환경으로 수많은 상인들이 운집하여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다. 서양 상인은 상해나 중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현지인을 고용하여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서양인이 고용하여 의지했던 현지인이 매판이다.
그들은 총명하고 시장 상황에 정통하여 서양인과 중국인 사이의 중개자로서 상품이 될 만한 물건을 수집하고 구입하여 수출하거나 수입상품을 팔기 위한 판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러한 수출입 업무를 하는 가운데 봉급을 받았고, 또한 커미션(佣金)과 이익배당(分紅) 수입을 챙겼다. 어느 사람의 연간수입은 백은(白銀)으로 몇 만냥이 되기도 했다.
옛 중국 상해에서 매판은 업무는 비록 거간꾼이었지만 신분은 엄연한 상류사회 성원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상해가 개항한 이래 1949년까지 상해 매판은 1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옛 중국의 매판 중에는 총명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당시의 경제계 엘리트는 대부분이 매판으로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성공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자 오랜 동안 많은 상해인들은 해외에 친인척이 있다고 ‘해외관계’(海外關係)를 말하는 것을 꺼렸다. 그들은 ‘매판자산계급’이라는 이름으로 갖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다시 변해서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과거의 역사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돌연 ‘해외’와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홍콩자본, 대만자본, 싱가포르자본, 일본자본, 한국자본, 미국자본, 영국자본 등 전 세계 각종 자본이 줄지어 상해에 대거 투입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외국상인이 다시 대거 들어오자 자연적으로 새로운 상해인 매판이 생기게 되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상해에 합자기업을 세운 뒤 일 년에 몇 차례 공장을 순시하거나 중국측 이사회 등과 회의를 여는 것 외에는 대부분 중국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지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총명한 외국상인, 특히 국적은 다르나 혈통은 같은 화교, 화인(華人)은 신뢰할 만한 친척이나 친구를 물색하여 대리케 하였다.
이러한 대리인은 외국상인에게만 책임을 지고 보수도 외국상인으로부터 수령하였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새로운 매판’인 셈이다. 현재 상해에서 새로운 매판 노릇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방식은 각자 다르다. 상해에서 무역박람회가 열리면 박람회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은 거기가 새로운 매판이다.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이나 신분증은 대부분 외국회사의 대표증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 분명히 현지 상해인 이지만 거래를 위해 협상이라도 하면 ‘매판’의 총명한 정도는 진정한 외국상인에 손색이 없다. 상해의 새로운 매판의 발생은 개혁개방의 덕분이다.
어찌되었든 상해에는 매판이란 역사적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화, 총명, 개척정신과 계약관념 등은 모두 매판과 관련되고 있다. 따라서 상해인, 특히 상해상인을 이해하려면 매판을 이해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여타 지방의 상인이 상해에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매판을 접촉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듯이, 외국상인으로서 상해에서 장사를 하는 관건은 현지사정에 밝고 총명한 매판을 어떻게 선발하고, 또 그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자신의 입장을 신속하고 민첩하게 진술하라
상해인의 자존심은 중국에서 유명하다. 상해인의 자부심은 상해가 중국 최고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도시근로자 월급으로 “36위안 만세!”를 외쳤던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상해는 중국의 발전에 가장 많이 공헌했다.
당시, 상해의 인구는 중국에서 가장 많았고, 개인소득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높았다. 당시 가장 값나가는 것은 돈이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상해인의 월급이 가장 높은 부자라라고 생각했다. 상해인도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설날(春節, chunjie)을 맞아 고향을 찾아갈 때 상해 인들은 늘 옷, 식품, 완구 등을 잔뜩 사가서 고향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들이 외치는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소리에 상해 인들은 뿌듯해 했다. 이러한 자부심에 빠진 상해인은 갈수록 외지인을 무시하게 되었다. 상해인은 외지인을 ‘촌사람’(鄕下人, xiangxiaren)이라 부른다. 그들 눈에 자신들만이 도회지 인이고 외지인이 푸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상해에서 유창한 상해 말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면책특권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상해인이 상해인의 신분을 영예롭게 여기고 상해를 잘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다른 중국 사람들은 이를 두고 ‘상해를 연모하는 고질’이란 뜻의 ‘연호벽’(戀滬癖)이라 비꼰다. 이 때문에 상해의 우수한 고등학생들도 대부분 북경이 아닌 상해의 대학에 진학한다.
상해인의 오만은 자신감을 토대로 한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상해는 발전의 속도를 더 냈다. 상해는 첨단 공업기술, 전국 최고의 인재, 그리고 전통 있는 공상금융문화를 한껏 지니고 있어 중국의 ‘동방 명주’가 되었다.
자신감으로 생긴 상해인의 자부심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신이 제안한 방법에 대한 고집으로 나타난다. 상해인은 이를 자연스러운 것이고 논리에 맞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찬동해야 한다고 여긴다.
상해인은 외지인과 합작할 때 늘 자신의 기술이 선진적이고 업종이 고루 갖추어져 자력갱생이 가능하므로 어느 것도 남에게 빌지 않으며 너희가 와서 빌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상해인의 중국 외지인에 대해 오만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오만하다.
미국의 어느 운동화 제조사는 상해에서 2년간의 고난한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상해를 포기하고 생산 공장을 광주에 설립하였다. 세계 대국인 미국 국민은 태생이 우월감으로 가득한 데도 불구하고 상해인의 자부심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상해인의 이러한 오만과 뻐김은 외지인의 반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중국 속담에 “뻐김(自大)은 바로 냄새 취(臭) 자이다”(自大是一個臭字)라는 말과 같이 잘난 체하면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외지인은 상거래에서 상해인과 합작하는 것을 꺼린다.
따라서 상해인과 거래할 때는 상해인의 자부심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상해 인이 ‘오퍼를 내기’(報價, baojia) 전에 적당히 뒤를 캐보고 합리적으로 상담을 진행하며, 그의 오퍼가 너무 차이가 난다면 서둘러 마음을 접는 것이 낫다.
둘째, 협상 시 먼저 자신 쪽의 시작 진술을 잘 준비해야 한다. 진술하면서 쌍방의 논쟁이 될 만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상대방이 진정으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셋째, 모든 일을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한다. 총명하고 자부심이 강한 상해인은 상담하기 전에 심리적인 준비를 충분히 하기 때문에 일단 상해 인이 먼저 오퍼를 내면 이 가격은 흥정(討價還價, taojiahuanjia)의 여지가 거의 없다.
상해인과 장사하기: 국제표준에 따라 거래를 하라
상해인의 국제사회에 대한 심리상태는 비교적 균형을 잡고 있다. 그들은 내심으로 외국인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외국인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서구 선진국에 대한 이해에 있어 약간의 ‘서양 숭배’(崇洋)가 있기는 있지만 기질적으로는 그리 치우치지 않는다.
상해인은 서양인과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대하려 한다. 상해는 오래 전 근대부터 서구 경제와 문화가 중국으로 통하는 거점이었던 동시에 중국이 세계로 나가는 창구로서 중국문화와 서구문화가 모이고 만나는 특수한 위치를 점하여 왔다. 이로 인해 상해인은 서구문명을 깊이 받아들였다.
상해인은 중국의 여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매우 ‘현대적인’(洋)듯한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상해인들은 중국속의 또 다른 외국인 같다는 뜻으로 그만큼 서구문화를 제대로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상해인의 눈에 서구사회는 중국 외지인이 생각하듯이 먼 곳이 아니다.
그들은 일찌감치 서구문화의 혜택을 받아 자신들의 문화에 서구의 문화 성분을 많이 조화시켰다. 여타 다른 지역의 중국인들이 외국인을 비정상적으로 여기는 데 비해 상해인들은 외국인을 보통 사람으로 여긴다. 피부색이 다르다 해서 이상한 감정을 갖지 않는다.
중국의 북방인들은 대부분 외국인을 ‘로와이’(老外)라고 부르지만, 상해인은 국적을 알면 국명을 붙여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이라고 부른다. 관념상 상해인의 실용주의, 합리화 경향, 계약의식과 법제관념 및 총명한 성격 등 심리적 경향은 서구인의 전형적인 심리적 그것과 비슷하다.
이는 중국 전통의 의리, 관시(關係), 윤리, 등급관념 등의 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비록 상해인의 관념이 서구인의 관념과 다르지만 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며, 중국 전통 관념과의 거리보다도 가깝다. 오늘날 상해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그들 정서와 문화에는 서구화 경향이 많이 접목되어 있다.
첫째, 상해인의 자녀에 대한 최대 희망은 출국유학이다. 상해에는 늘 ‘출국붐’이 분다.
둘째, 상해인의 혼인관념도 외향형이다. 서구화로 인해 상해인은 국제결혼을 좋게 보고 있고, 국제결혼은 상해인의 서구화를 더욱 촉진한다.
셋째, 서구화된 상해인은 외국어에 대한 수요도 강하다. 상해인의 외국어 수준은 중국 최고를 자랑한다. 영어는 상해인의 필수적인 생존 도구가 되었다. 상해인의 취업 3대 도구로 외국어, 컴퓨터 및 운전면허증이 꼽힌다.
일반적인 중국인의 서구인에 태도는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한편으로는 신과 같이 존경하여 지존으로 모시고 공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속임수를 당할까 역병 피하듯이 한다. 따라서 중국인이나 서구인들이 합작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비교하여 상해인은 서구인을 접촉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여 외국 상인들에게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상해인은 서구화 경향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국제표준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거래의 방식에서도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다.
이상 전 세계 최대의 인구 중국인 그리고 그 중국인 속의 외국인, 상해인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상해인들의 장사속이 기타지역 중국인들에 비해 다소 우위에 있다는 것일 뿐이고, 사업의 원칙이라는 것은 어느 지역이든 또한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자신의 확고한 원칙과 실력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장사 형태와 방식 그리고 습성들은 상해인들 보다 다소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여타 중국인들 역시, 요즘 시대에는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초스피드 시대에 인터넷 문화까지 전 중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중국인들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넓디넓은 땅덩이의 중국,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중국인. 그들이 자각하고 있다. 그들이 깨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또 하나의 기회이다. 위기보다는 기회를 더 적극 부각시켜, 중국으로 거침없이 진출하여 상해인들보다 더 지독하게 더 영리하게 장사하여 중국전역에서 철저하게 돈을 벌어 보도록 하자. 상해인과 한국인이 장사로 맞붙어 본다면....
|
첫댓글 매판으로 커다란 중국의 구동력이 되고 있는 상해의 현재는 한국이 건너야 할 곳인 것 같네여..
우시도 현대판이지요..
좋은 상습관은 배워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