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를 찾아 떠나는 심정이었을까? 크로캅은 결국 PRIDE 링을 떠났다. 그것은 고독하고 슬픈 결정이었다. 만약 그가 돈 때문에 떠났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PRIDE 링을 떠난 것은 자신의 꿈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이었다. 미완성의 타이틀을 거머쥔
크로캅. 하지만 크로캅으로서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PRIDE가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인 사쿠라바 카즈시를 잃고 이제 외국 선수로는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크로캅마저 떠난 PRIDE 선수들은 술렁거리고 있다. All Or Nothing PRIDE는 방황하고 있다.
2006년의 PRIDE2006년 PRIDE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출발했다. 하나는 세계화였고 다른 하나는 무제한급 GP의 성공적인 개최였다. 세계화의 1착은 미국 개최로 어느 만큼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제한 GP는 애초 지향했던 바인 헤비급과 미들급의 대결구도가 무너지면서 좀 맥이 빠진 감도 없지 않다. 게다가 황제로 군림하고 있던 효도르가 불참하면서 많은 부분 의미가 퇴색됐다.
마크 콜먼과 쇼군의 대결에서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던 GP는 미들급 선수들의 참전의지를 꺾어 놓았고 일본의 기대주들은 모두 8강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크로캅과 대결을 펼쳤던 요시다와 실바에게 무너진
후지타는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로 배려했던 매치업이었지만 예외나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PRIDE는 100점 만점짜리 숙제에 50점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는 사실 후지 TV가 공중파 방송을 포기했던 상황과 이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수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사쿠라바 카즈시의 K-1 이적과 같은 문제들이 놓여있다. 히스 힐링, 퀸튼 ‘람페이지’ 잭슨 같은 수준급의 선수들도 PRIDE 링을 떠났다. 무제한급 GP의 광경들도 사실 그런 면에서 여러모로 전과 같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전의 GP들보다 긴장감이 결여된 것은 사실이었다.
2007년의 PRIDE?
매년 남제를 즈음해서 PRIDE는 새해의 전망을 내놓는다. 사카키바라 사장은 2007년의 전망을 세계화에 맞추고 있다고 했다. 일본 내 안티 세력들과 시장 점유는 이제 한계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K-1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한 것에는 역시 세계화가 가장 큰 공을 세우긴 했다. 거기에 UFC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공공연히 회자되는 바대로 UFC는 PRIDE의 최고 선수들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입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내 MMA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들에 기인한다. 그리고 WWE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산업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이 발전되어있고 또한 세계화되어 있다. 영화배우와 팝뮤지션, 스포츠 스타가 UFC에 합류한다면 세계화는 너무나 순조로울 전망이다. 세계 최고는 시간문제라는 말은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든든한 베이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PRIDE는 어떡할 것인가? 바로 미국 시장 진입이 그러한 UFC를 반격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실 UFC의 일본진출과 PRIDE의 미국 진출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쫓기는 것은 분명 PRIDE다. 세계화가 되지 않으면 일본 내 여론이 호전되기 힘들다. 일본 내 여론이 호전되지 않으면 공중파 방송이 어렵다. PRIDE의 공중파 방송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다급한 돈줄이나 다름이 없다. 경쟁관계에서 선수들의 개런티는 어쩔 수 없이 오를 것이고 그러한 높은 개런티를 지불하고 선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중파를 매개로 하는 수익창출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PRIDE의 선수가 UFC의 선수들보다 뛰어나다, 아니다’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 없다는 점이 바로 PRIDE의 문제다.
남제 이후 다시 연초 사카키바라 사장은 올 한해 PRIDE 대회의 한 해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에 의하면 일단 연착륙 정도는 아니지만 넘버시리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무사도를 중지하고 미국 대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반기에만 두 번의 대회를 미국에서 열고 연중에 한국이나 중국, 브라질에서 PRIDE 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대회의 의미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수성의 전략’이라면 3국의 PRIDE 개최는 ‘공격적인 신호탄’을 의미한다.
UFC에 어울리는 쪽은 효도르한국 내 PRIDE의 위상과 K-1의 전례를 살펴본다면 올 한 해 잘 컨트롤 한다면 성공적인 대회 개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잘 컨트롤 한다’이다. 즉 PRIDE의 미국 대회 성공이 얼마나 가시화 될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다. 애초 PRIDE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UFC와 연계된 대회 개최를 진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UFC에 러브콜을 보낸 것은 PRIDE만이 아니었다. FEG도 적극적이었다. UFC는 더욱 좋은 조건을 따지면서 시간을 끌었고 미국 시장 수성의 덫을 만들었다. 거기에 걸려든 첫 번째 선수는 크로캅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동서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동구의 저력에 대해서 미국은 늘 경계해왔다. 오늘날 중국이 그런 것처럼 미국에게 러시아와 동구는 늘 경쟁의 대상이었다.
크로캅과 효도르는 그러한 미국 MMA 시장의 대어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실력을 떠나서도 그렇다. 크로캅은 효도르와 대전을 간절히 원했지만 승리를 담보할 수 없었다. 패배 후 이적보다는 가장 자신의 지명도가 높을 때 좋은 몸값을 받고 UFC를 석권해보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사실 UFC의 옥타곤을 즐기고자 했던 것은 효도르였다. 더티 복싱은 아니지만 삼보를 기반으로 하는 효도르의 탁월한 테이크다운 능력과 강력한 파운딩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펀치, 그리고 그것을 페이크로 강한 앨보우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효도르에게 최적의 격투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특히 킥보다는 펀치를 위주로 넓은 옥타곤을 누비며 빠른 발과 엄청난 핸드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도 효도르에게 옥타곤이 매력적인 이유였다.
크로캅은 어쩌면 효도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UFC로 떠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UFC를 석권하고 다시금 PRIDE 링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크로캅의 UFC 성공도 사실 매우 중요하다. 엄청난 리치와 묵직한 펀치로 위태롭긴 했지만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쥔 팀 실비아나 삼보와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알로코프스키 등의 거센 텃세 앞에서 과연 크로캅이 얼마만큼 빠르게 타이틀을 차지할 지 모르겠다. 크로캅의 UFC 성공 여부는 사실 PRIDE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PRIDE 파이터 VS UFC 파이터 아직까지 객관적으로 헤비급에는 UFC보다 PRIDE에 훨씬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평가 받고 있다. 효도르와 알렉산더 형제, 이미 UFC 챔피언에 올랐던 조쉬 바넷, 효도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여전히 건재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어마어마한 맷집과 펀치를 과시하는 마크 헌트, 빅4로 불렸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링스나 K-1, M-1 등 다른 단체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언제든지 다른 단체로 이동할 수 있다. 만인의 적인 효도르가 아직은 헤비급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상징적이다.
미들급에 접어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현재 UFC의 미들급은 최강의 스트라이커 ‘아이스맨’ 척 리델이 챔피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척 리델은 강력한 도전자라고 할 수 있는 ‘악동’ 티토 오티즈를 제압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선수는 실바에게 두 번 고배를 마셨던 퀸튼 ‘람페이지’ 잭슨이다. 잭슨은 이미 지난 미들급 GP에서 척 리델을 KO로 잡았던 바가 있다. 물론 퀸튼이 종교에 귀의한 후 치렀던 윤동식과의 대결을 포함한 몇 차례 대전에서 예상외의 싱거운 경기를 펼치면서 PRIDE 링을 떠나게 됐지만, 퀸튼이 미들급 최강자 중 한 명인 것을 부인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척 리델은 퀸튼을 꺾고 실바와 대결을 펼치길 원하겠지만 퀸튼과의 대전도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들급과 헤비급에서 PRIDE는 UFC를 상당부분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하의 체급에서는 전세는 역전된다. PRIDE의 웰터급 GP와 라이트급은 세계 최강이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사실 일본인 선수들이 챔피언에 오르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현재 조르쥬 생 피에르나 앤더슨 실바 등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PRIDE에 비해 훨씬 견고해 보인다. 맷 휴즈나 비제이 펜과 같은 선수들이 타이틀 권역에 놓인 것과는 다르게 고미의 도전자들은 모두 일본인 일색인 점과 대조적이다. 과연 일본인들이 강해서만 그런 것일까? 게다가 인기라는 측면에서도 헤비급에 비해 초라한 경량급이고 보면 무사도의 잠정 휴업은 ‘큰 그림에서 뒤지고 있는 이벤트는 진행할 필요성이 없다’는 DSE의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
2007년 DSE가 내세운 PRIDE 세계화의 핵심은 사실 경쟁 단체들과의 비교 우위를 확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통한 미국 시장의 상륙 성공이 전제되어야 한다. 격투기란 근본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에 대한 팬들의 응원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단체는 살아가는 것이다. PRIDE는 외형적으로 다른 두 개의 단체, K-1과 UFC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국의 시장은 한정되어있고 미국 시장은 이미 UFC가 선점하고 있는 상황. 그 가운데 최고의 파이터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일본 자금줄인 공중파 중계권을 얻어 스폰서쉽을 맺어 경영난을 타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PRIDE가 공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나서는 근본 이유인 것이다.
[위글은 월간 HOLOS 2007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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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