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야노슈가 죽고 신성로마 군대가 헝가리 지방에 진출하자 술탄의 군대는 1541, 43년에 걸쳐 원정에 나섰고, 그 결과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 통치 지역과 술탄 통치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이후에도 간헐적인 전투가 벌어진 끝에 1562년에야 안정적인 평화협정이 이루어졌다. 술탄의 군대는 동쪽으로도 진군했다. 1534~35, 1548~49, 1554~55년 세 차례의 원정을 통해 술레이만 1세는 아덴, 예맨, 바그다드와 이라크의 대부분, 아르메니아 서부, 소아시아 동부 등을 점령했지만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를 패망시키지는 못했고 1555년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런 가운데 1538년 9월 28일에는 하이르 앗 딘이 이끄는 술탄의 해군이 그리스 서부 프레베자 근해에서 로마 교황령,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연합 함대를 격파했다. 술탄의 해군은 트리폴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지역도 장악했다. 이로써 오스만투르크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패할 때까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다.
문학, 예술, 공예, 건축 등의 분야에서 오스만투르크 문화를 융성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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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레이만 1세 치세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누렸다. 황실이 후원하는 많은 예술가 집단이 활동했다. 도제식으로 수련을 마친 예술가와 장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정해진 등급을 부여 받고 연간 네 차례 급료를 받았다. 1526년의 경우 40개 집단에 속한 600여 명이 활동했다. 당대에 가장 재능 있는 예술가와 장인들이 이러한 집단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단 이슬람권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많은 이들이 왔다. 이를 통해 유럽 예술과 이슬람 예술의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황실을 위해 일하는 예술가들은 화가, 보석세공사, 금세공사, 모피공, 건축가, 직물 제조공, 제책 장인 등 매우 다양했다. 술레이만 1세 이전의 술탄들은 대체로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술레이만 1세부터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고유의 예술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