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열산 소나무를 왜 베나?
수많은 탐방객들의 발길에 상처 입은 거열산이 탐방로 정비공사가 진행되면서 치유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돌보지는 않고 마냥 부려먹기만 해서 미안했던 마음도 조금은 덜게 되었다.
애초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거열빌라에서 오르는 탐방로는 극심하게 훼손된 급경사 구간의 복원과 주탐방로의 휴식년이 도입된다면 한결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건계정 뒤로 오르는 길 중 가운뎃길은 뿌리가 드러난 암반위의 소나무 주변으로 토양복원이 숙제로 남겨질 듯 하다. 약수터 옆으로 내려오는 길과 이 가운뎃길은 부분적으로 지형복원까지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사려 깊은 탐방로 정비의 모범으로 여겨진다.
탐방로 정비가 몇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거열산의 추가적인 훼손을 방지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거열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거열빌라 뒤로 오르면 나오는 전망대 주변의 능선부에 있는 소나무를 밑둥까지 싹뚝싹뚝 잘라버린 것이다. 20~30년생 소나무 수십 그루가 이렇게 잘려 나갔다. 굽은 나무이거나 주변의 나무에 비해 자람이 더딘 나무 그리고 탐방로와 너무 가까이 있는 나무는 가차 없이 잘려졌다. 잘려진 소나무들은 살아남은 소나무에 기대어 차곡차곡 산의 경사를 따라 쌓아 놓았다. 이런 일이 군립공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바로 숲가꾸기 현장이다. 장래 재목이 될 나무를 키우기 위해 주변의 나무들을 제거한다. 영양분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숲 하층의 관목이나 덤불도 깨끗이 제거한다. 바닥이 훤하게 드러난 사이로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마치 잘 가꾸어진 조림지와 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이런 일을 위해 지자체와 산림청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림인 나라에서 임목을 자원화하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이런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임목축적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과 같은 자연공원에서 이루어지면 절대 안 된다. 일정한 산림을 국립 또는 도립, 군립으로 지정하여 자연공원으로 삼는 까닭은 나무를 제목으로 잘 키우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공원 안에서는 특별히 고유의 자연생태계와 종다양성 그리고 생태적 건강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거열산군립공원을 포함하여 자연공원안에서는 숲가꾸기를 해서는 안 된다. 가꾸기란 무엇인가? 결국 산림자원 가꾸기이다. 자원으로 가꾸는 데에는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종다양성과 생태적 건강성은 인간의 개입과 간섭을 가능한 하지 않는 속에서 더욱 증진된다. 숲 하층의 관목과 풀을 베어내거나 자람이 모자란 나무를 베어내는 행위는 자연공원의 존재이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기본개념이 없는 무식한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 없는 무식한 행위가 왜 버젓이 자연공원에서 일어나는가? 생각해보자 국립공원과 군립공원은 똑 같은 자연공원으로서 관리 주체가 다르다는 차이 밖에는 없다. 아시다 시피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군립공원은 거창군에서 관리한다. 국립공원에서 이런 일이 있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장담컨대 책임이 있는 공단직원들은 모조리 옷을 벗어야 될 일이다.
거창군은 앞으로 이런 류의 터무니없는 사고에 근본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자연공원을 포함해서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관리에 대한 업무는 지금까지 폭증해 왔고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뒤늦었지만 거창군은 자연․생태계 관리업무를 별도로 독립시키고 육성해야 한다. 성격은 전혀 다른데 분야만 비슷하다고 업무를 포개어 놓으면 본말이 전도된 결과물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