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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수)
진주에서 여동생네 부부와 함께 사천(진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약 40여분 만에 제주 공항에 도착했는데 하루 먼저 간 동생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제주 날씨가 너무 쌀랑해서 유채가 피었을지, 벚꽃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서 동생에게 물어 보니 벚꽃은 1주일 정도 있어야 필 것 같고 유채는 만발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바로 조천 숙소로 갔는데 집근처 골목길에 동백은 한창 피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유채와 벚꽃을 목표로 해서 1주일간으로 짧게 잡아 왔다. 사천에 항공우주청이 들어 서면서 배후도시가 필요해서 토지를 수용하는데 우리 과수원도 몽땅 수용되기에 올해 안으로 조상묘와 과수원을 옮겨갈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수용되는 땅의 지주가 수백명이나 되는데 개인적으로 접촉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받아 내기 어려워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협상을 하는데 동생이 경찰서장경력이 있어서 지주들이 추대해서 대책위원장을 맡았다는데 일이 많아서 오래 자리를 비우기도 힘들어 딱 1주일만 다녀 오기로 한 것이다.
저녁에는 흑돼지구이에 한라산소주를 곁들이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진주에서 출발 할 때 노트북컴퓨터를 배낭에 넣지 않고 차 뒷좌석에 두고 온 모양이다. 노트북을 가져 와야 매일 찍은 사진을 정리할 수 있는데 사진작업을 할 수 없으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가서 해야겠다. 작년에 안 쓰던 노트북 한 대를 제주 숙소에 두고 갔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 집을 오랫동안 비워 두어서 그런지 보일러를 돌려도 방이 너무 춥다. 전기장판을 깔고 자지만 방안 공기가 너무 쌀랑해서 이불을 끌어 덥고 잤다.
3월 20일(목)
제주여행 첫날인 오늘은 조천 숙소에서 가까운 동백동산을 보고 서귀포에 있는 jw메리엇호텔 앞 바닷가 유채밭을 목표로 정했다.
선흘에 있는 동백동산은 이름 그대로 동백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람사르 습지보존지역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선흘리 곶자왈 지대에 펼쳐진 동백동산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숲 가운데 하나다. 언제 찾아도 사철 푸른 이곳엔 오랜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숲속 깊은 곳까지 발길이 닿으면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생명의 못을 만나게 된다. 동백동산은 오래 전부터 선흘리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되어온 곳이다. 곶자왈 지대에 있어 화전조차 일구기 어려운 숲이지만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나무를 구워 숯을 만들고 썩은 고목에 버섯을 재배하며 희망적인 삶을 꾸려 왔다.
지금은 모두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모습들이지만 숲 안쪽에는 숯 가마터와 같은 옛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숲에서 얻은 것들을 토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은 이제 동백동산을 보호하는 지킴이가 되어 숲을 가꾸고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숲 곳곳에는 크고 작은 습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동백동산이 생명의 숲이라 불리는 이유들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제주도는 물이 무척 귀했었다.
물 한 모금이 소중한 시절, 사람들은 숲속 습지를 찾아 말과 소들에게 물을 먹이고 생활에 필요한 물을 매일같이 길어다 썼다. 동백동산의 습지는 생태학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보전 가치가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덕분에 이곳은 2011년 제주도에서 4번째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었다. 제주에는 현재 물영아리오름과 물장오리오름, 1100고지 습지를 비롯해 동백동산, 숨은물벵뒤 습지까지 총 5곳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동백동산에 동백보러 갔다가 뜻밖에 람사르 등록 습지란 걸 알게 되었다.
다음 코스인 서귀포 중문에 있는 메리엇호텔로 달렸다. 서귀포를 지나다 보면 도로변에 팔삭이가 주렁주렁달려 있어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땅에 떨어진 팔각이를 몇 개 주워서 까 먹어 보니 자몽맛이 난다. 팔삭이를 제주 자몽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처음 먹을 땐 신맛이 강해서 힘들지만 일단 먹고나면 또 먹고 싶어지는 게 중독성이 있나 보다. 팔삭은 만생종 밀감이라고도 하는데 겨울부터 늦은 봄까지 수확을 한다.
서귀포 메리엇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 방향으로 조금 가면 언덕에 유채가 환상적이다. 아직 덜핀 듯 하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소나무 언덕과 노란 유채 그리고 짙푸른 바다가 어울러져서 환상적인 풍경이다.
작년에 동생이 찍어서 보내 준 사진을 보고 여길 꼭 가 보자고 했는데 과연 한번 와 볼만한 곳이다. 여긴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호텔 투숙객의 산책코스인데 지키는 사람은 없으니 들어가서 맘대로 촬영할 수 있었다.
제주의 또 하나 볼거리는 먼나무이다. 저게 뭔나무요 하고 물으면 먼나무라고 대답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잎과 가지 사이가 멀어서 먼나무라고 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멀리 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 먼나무는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빨간 열매가 가지가 넘치도록 달려 있어서 멀리서 보면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먼나무는 각 가정에서 정원수로 심기도 하지만 서귀포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메리엇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박수기정 대평항에 혹시 유채가 있는지 가보고 귀가하기로 했다. 대평항 옆에 있는 높이 100m의 수직절벽 박수기정은 환상적이다.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주 올레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올레길은 박수기정의 윗길로 오르게 되어있다. 작년 6월에 동생과 함께 올레 9코스를 걸어서 기억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대평항에도 유채는 없다. 이젠 제주의 봄에서 유채는 지워야 할 것 같다. 와흘 숙소로 돌아 가는 길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제만 해도 봉오리상태였는데 하루사이에 활짝 피었다. 제주에 오는 날은 무척 춥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살짝 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젠 완전한 봄날씨 같다.
3월 21일(금)
이번 여행 중의 일기예보는 비가 전혀 없고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1월에 동백과 한라산 설경, 6월에는 수국과 메밀, 한라산 철쭉을 보려고 제주여행을 했다. 제주는 1년 중에 9월만 빼고 아무 때나 와도 구경거리가 넘치는 곳이지만 3월에는 약 10년 전에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간 것 외는 없다. 그 때 기억으로는 섬 전체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혔던 것 같다. 그래서 유채를 잔뜩 기대하고 3월에 제주에 왔는데 실망 그 자체였다. 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유채밭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가 해서 알아 보니 그동안 도에서 농민들에게 유채 보조금을 주어서 심었다는데 2025년 올해부터 보조금을 주지 않아서 농민들이 유채를 전혀 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농민들이 농사목적으로 유채를 심은 게 아니라 제주도에서 관광객의 볼거리를 위해서 유채를 심어 왔던 것이다. 유채는 동백, 수국과 함께 제주의 3대 꽃이라고 하는데 유채가 없으니 너무나 허탈한 일이다.
여행 첫날인 오늘은 일단 유채가 확실한 성산일출봉 근처 광치기해변으로 갔다. 성산포로 가는 도중에 큰 녹차밭이 보여서 들어 가 보았더니 지난 해에 한번 다녀 간 ‘오늘은 녹차 한잔’이라는 다원인데 작년에는 반대편 도로변에서 보았고 이번에는 다원의 정문으로 들어 갔기에 다른 녹차밭으로 생각했으나 간판을 보니 같은 장소였다. 녹차밭이 약간 언덕은 있지만 비교적 평평한 편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곳으로 보였다.
녹차밭을 지나 벚꽃으로 유명한 가시리지역으로 조금 더 가다 보니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있고 안으로 들어 가니 한우목장도 있다. 가시리는 약 5km이상되는 도로변에 봄에는 벚꽃과 유채, 유월부터는 수국, 가을이면 코스모스로 유명한 길이다, 그런데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유채는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개인땅이 아니고 도애서 관리하는 도로변인데 여기마져 유채를 심지 않았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목장에는 누런 황소를 사육하고 있는데 요즘은 토종 한우는 없을 것 같고 수입 소를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 땅에서 키우면 한우라고 할만 하겠지.
성산포에 도착하니 유채가 만발해서 안절부절했던 마음이 풀린다. 광치기해변 유채는 검은 돌담과 푸른 바다가 잘 어우려져서 제주다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채밭에는 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 없는데 대부분이 중국인들이다. 중국은 땅이 넓어서 중국인들도 다 가 보기 힘든 나라지만 내가 몇 년 전에 뤄핑이란 곳에 유채여행을 다녀 왔는데 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려도 유채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대단한 곳인데 중국사람들이 손바닥만한 성산포에서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두들 인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성산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섭지코지로 갔다. 섭지코지로 가는 도로변 바다의 물색이 완전 옥빛이다.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하여 차를 잠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섭지코지에 들어 가 봐도 유채는 없다. 여긴 유명 관광지인데 왜 유채를 심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유채 때문에 여간 속이 상하는 게 아니다. 유채없는 섭지코지는 별로 볼 것도 없어서 대충 한바퀴 돌아 보고 종달리에서부터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조천방향으로 바닷가 경치를 구경하러 출발했다. 오늘은 바닷물빛이 좋아서 세화, 월정, 김녕 바닷가를 차례대로 돌아 보면 좋을 것 같다.
바닷가를 돌다보면 해변에 용천이라는 곳이 더러 있다. 용천은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 들어 낮은 곳으로 흘러 가다가 바닷가에서 수압에 의해 솟아 나는 샘물인 셈이다. 제주도는 땅속이 화산석으로 되어 있어서 천연 필터역할을 하기에 용천에서 나오는 물은 삼다수나 다름없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용천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하는데 용천수를 맛보면 짠맛이 전혀 없는 민물이다. 물이 솟아 나는 구멍 안에 들어 가면 사람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고 한다. 지하에는 물과 모래로 되어 있어서 빨려 들어간다니 아이들이 장난삼아 들어 갔다가는 큰일 나겠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아무런 경고판이 없으니 관광객들은 조심해야겠다.
하도 포구 인근에는 별방진이라는 돌로 쌓은 성곽이 있다. 별방진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데 하도 포구에 가는 길이면 한번쯤 성곽을 돌아볼만 한 곳이다.
하도 포구, 세화리 해수욕장, 월정해수욕장, 김녕해변 모두가 옥색 물빛으로 발걸음을 붙든다. 제주를 그렇게 많이 왔어도 이처럼 물빛이 아름다운 날은 난생 처음 본다.
여행 첫날 제주도 북동쪽 해안을 한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 와서 오늘도 흑돼지 구이에 한라산 소주 한잔했다. 노트북을 안가지고 왔기에 사진 정리도 못하고 술기운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아직은 집안이 추워서 전기장판 켜고 담요 두장을 덮고 자야 했다.
3월 22일(토)
이번 여행기간 중에 날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된다.
오늘은 제주시에서 한림까지 제주 북서부 해안을 돌기로 했다. 맨 먼저 찾아 간 곳은 이호테우해수욕장인데 이호테우해수욕장은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제주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여행을 마무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호테우해수욕장은 말등대로 유명하고 노을이 좋은 곳이다. 말등대는 제주의 특산물 조랑말을 형상화 한 것인데 여행객들의 포토포인트 중 하나이다. 이 해수욕장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장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호항 방파제 옆에는 민물 때 물과 함께 고기가 들어 갔다가 썰물 때 고기를 가두어 잡는 전통적으로 고기를 잡는 독살이 있는데 물이 빠져 나간 시간에 가면 멋진 촬영 포인트가 되며 독살 옆에는 용천도 있다.
썰물 때 물이 빠져 나가면서 백사장에 신기한 그림이 생기는데 마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형상인데 오늘따라 그렇게 좋은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해안선을 따라 옛날부터 다니던 좁은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서 동네구경도 하고 물빛 좋은 곳에 쉬어 간다. 올레길도 큰 도로보다는 좁은 마을길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어서 올레길을 완주하게 되면 제주의 속살까지 다 보게 된다고 한다.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 온 곳이서는 간혹 길이 끊겨서 돌아 나가야 한다.
제주 북서해변도 오늘은 물빛이 환상이다. 정말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차를 자주 세우게 되고 촬영을 하면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애월을 지나고 조금 더 가면 한림항인데 한림항 못 미쳐서 웨이뷰란 멋진 카페가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커피점인데 작년 가을에는 황화코스모스가 곱더니 이번에는 유채를 심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한림항이고 좀 더 가면 협재해수욕장이 나온다.
밀짚모자처럼 생긴 비양도를 앞에 두고 있는 협재해수욕장 그리고 협재해수욕장과 500m 정도 떨어진 금능해수욕장은 수심이 얕아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피서지로 인기가 있다. 두 해수욕장은 사구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래언덕을 걸어 이동 할 수 있는데 물빛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에는 비양도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협재에 또 하나는 우도에 있다.
협재 해수욕장 길 건너편에는 한림공원이 있다. 지금처럼 공원이 되기 전에는 협재용암동굴이 있었는데 무료로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한림공원 안에 흡수되어 입장권을 사고 들어 가야 볼 수 있다. 한림공원도 볼기리가 많은 공원인데 시간이 부족하여 오늘은 여기서 차를 돌려 조천숙소로 가는 길에 제주 민속오일장에 둘러 생선을 사기로 했다. 시장에 도착했더니 차량이 얼마나 많은지 큰 도로에서는 진입을 못하고 좀 둘러서 뒷길로 가서 겨우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닷새마다 서는 장인데 생선이 싱싱하고 가격도 착해서 제주도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인데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동안 매일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어서 오늘은 재래시장에서 사온 문어와 오징어를 되쳐서 한잔 하고 고등어 갈치구이로 저녁식사를 했다.
3월 23일(일)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다. 수원 막내 여동생은 퇴직 이후에도 일이 바빠서 같이 오지 못하고 오늘 저녁시간에 오겠다고 하더니 그마져 못 온다고 한다. 같이 먹겠다고 생선까지 잔뜩 사 두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오늘은 혹시 유채가 있을지, 청보리가 피었을까 해서 가파도에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서귀포 엉덕물계곡 유채를 보기로 했다. 가파도를 가려면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조천 숙소에서 모슬포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이라 70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중산간도로가 잘 나 있어서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은 5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가파도 가는 배는 매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데 미리 승선예약을 안 하고 왔더니 주말이라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가파도는 섬이 작아서 차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고 걸어 다녀도 한 두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데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다니기도 한다. 주인이 살지 않는 민가들은 지붕이 내려 앉고 마당에 잡풀이 무성하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돌아 오지 않고 노인들이 섬을 지킨다. 주민들은 보리농사를 짓고 고기잡이로 생업을 이어 가는데 민박과 식당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점은 가파도엔 전봇대가 없다는 건데 미관을 위해 전깃줄을 모두 지하애 묻었다고 하니 깨끗하고 아름다운 섬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 셈이다. 보리는 아직 땅바닥에 붙어 있고 유채는 선착장 근처에 조금 있고 보이지 않는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을 전망대라고 하는데 해발 18m라고 하니 큰 해일이라도 닥치면 섬 전체가 스나미에 쓸려 가지 않을까 싶다. 전망대에서 진주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여섯분을 만났다. 오십대 후반쯤으로 되어 보이는데 퇴직을 하고 함께 놀러 다닌다고 한다. 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내 카메라로 몇장 찍어서 보내 주기로 했다. 서울에 돌아 와서 사진을 정리해서 보내 주었더니 휴대폰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좋아 한다. 진주에 내려가면 식사를 대접하겠다니 다음에 갈 때 연락해야겠다.
점심으로 간짜장을 시켰는데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11시 배로 들어 갔다가 오후 2시 20분 배로 돌아 나왔다.
동생이 작년이 가 보았다는 엉덩물계곡으로 갔다. 서귀포에 있는 엉덩물계곡은 경사진 언덕에 유채를 심어서 참 볼만 했다. 동생말로는 작년보다 상태가 못하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가뜩이나 제주에 유채가 없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 셈이다. 소문듣고 찾아 온 사람들로 붐벼서 사진찍기도 쉽지 않았다.
귀가길에 엊그제 다녀 온 메리엇호텔을 다시 갔더니 일요일이라 특별한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행사장을 지나야 유채밭으로 갈 수 있는데 행사요원들이 어떻게 왔냐고 따져 묻는다. 사진 좀 찍겠다고 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그냥 유채밭으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었다.
첫날 왔을 때 덜 핀곳이 있었는데 그 사이 유채가 완전히 다 피었다. 행사요원이 자꾸 눈치를 하는 것 같아서 몇 장만 찍고 돌아 나왔다.
여기서도 숙소까지 가자면 한 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해는 지고 어두워 진다.
3월 24일(월)
작년 9월에 왔을 때 정말 볼리가 없더니 유채없는 3월도 그렇다. 그냥 일정을 단축하고 돌아 가고 싶지만 제주-사천 노선은 수, 일요일만 비행기를 운행하고 있어서 빨리 가는 것도 맘대로 안된다.
그래서 오늘은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가려고 출발했다. 그동안 매일 도시락을 준비해 다녔지만 우도에 가면 짜장면을 꼭 먹어야 해서 점심은 준비하지 않았다. 점심을 사 먹는 맛도 있지만 도시락을 준비해 가면 시간도 절약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다니다 보면 경치 좋은 곳이 많아서 식사하기에도 편하다.
동생부부는 성산일출봉을 한번도 올라 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천천히 같이 오르기로 했다. 성산일출봉은 해발 180m인데 천천히 쉬어 가며 오르면 30~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바닷속에서 수중폭발한 화산체이다. 용암이 물에 섞일 때 일어나는 폭발로 용암은 고운 화산재로 부서져 분화구 둘레에 원뿔형으로 쌓여 있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신양해수욕장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육지와 연결이 된 것이다. 일출봉 정상에는 지름 600m, 바닥면의 높이 해발 90m에 면적이 214,400㎡나 되는 분화구가 자리한다.
예로부터 이곳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은 영주 10경(제주의 경승지) 중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 저편 수평선에서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일출은 온 바다를 물들이고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붙잡아 놓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케 한다.
무릅에 인공관절수술을 해서 걱정했는데 스틱집고 천천히 걸으니 정상까지 무사히 갔다가 돌아 올 수 있었다. 일출봉 분화구에는 가늘고 키가 큰 관음죽이 넓게 펴져 자라는데 지난 번 보다 관음죽 분포면적이 많이 늘어 난 것 같았다. 한라산은 조릿대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어서 걱정이라더니 일출봉도 이런 문제가 생겼다.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갔다. 우도는 넓어서 걸어 다니기에 너무 벅차기에 갈 때마다 차를 싣고 가는데 우도 주민이거나 경로라야만 차를 실어 준다. 우도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가 넘어서 짜장면 집부터 갔다. 검멀레해안 근처어 있는 ‘띠띠빵빵’이란 식당인데 올 때마다 이 집에서 식사를 했더니 식당주인이 우리 가족을 알아보고 반가워 한다. 오늘 따라 식사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식사가 나올동안 땅콩막걸리부터 한잔 했다. 우도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할 것은 우도땅콩먹걸리, 짜장면, 땅콩 아이스크림이다.
식사를 마치고 검멀레해안으로 갔더니 카페주인이 심었다는 제법 넓은 유채밭이 있고 개화상태도 좋았다. 커피를 시키면 유채밭에 들어 가서 사진도 찍게 한다는데 우린 그냥 밖에서 몇장 찍고 갔다. 해안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 우도의 바닷물빛도 예사롭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채에는 울고 바닷물색에 웃었다.
서빈백사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산호초와 조개껍질로 이루어진 홍조단괴해변이라고 하는데 서빈백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이란다.
마지막으로 일가 우씨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로 갔다. 물질을 나가서 3시까지 돌아 오겠다고 했는데 3시가 한참 지나도 돌아 오지 않아서 4시 배를 타려고 막 떠나려는데 오셨다. 반갑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톳 말린 것과 땅콩 좀 사고 떠나려고 하는데 바닷가에 두고 온 것이 있으니 가져 가란다. 뭔가 했더니 오늘 막 작업한 생미역을 한자루나 주신다. 미안하지만 미역을 받아 들고 돈 얼마를 주머니에 밀어 넣다시피 하고 천진항으로 갔다. 일가라고 우리가 가면 뭐든 담아 주려고 하는 정이 고마워 우도 가면 일가집은 꼭 빠트리지 않고 찾아 간다.
오늘도 숙소에 돌아 오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었다.
3월 25일(화)
내일 돌아 가야하니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다. 일주일이 짧지만 볼거리가 없다 보니 길게 느껴진다.
오늘은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생각나지 않아서 숙소근처 돌문화공원을 다녀 와서 조천 바닷가 닭머르해안에서 장노출이나 해 볼까 한다. 바람이 조금 심한 편이라 장노출하기에 적당할 것 같다.
돌문화공원은 언제 가도 볼만한 곳이다. 제주의 돌이란 돌은 다 모아 놓은 곳 같다. 구석구석 다 돌아 보려면 한나절로 부족하지만 오전에 대충 둘러 보기로 했다. 동백은 있지만 유채는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제주의 대표 관광명소인데 유채를 심지 않았으니 제주유채는 정말 끝난 모양이다.
숙소로 돌아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닭머르해안으로 갔다. 바닷가에 서 있는 돌이 닭 머리처럼 생겨서 닭머르라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파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왔는데 이상하게도 바다가 잠잠하다. 장노출은 파도가 쳐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파도가 속을 썩인다. 그래도 삼각대를 세우고 ND필터를 끼워서 장노출을 시도 해 보니 그렇게 좋은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제주에서 장노출은 남원 큰엉해안이 가장 좋은 곳 같다. 거긴 언제나 큰 파도가 몰아 치니까 최고의 포인트다. 몇 장 찍고 가방을 챙겨서 숙소로 돌아 왔다. 이번엔 챙길 짐도 별로 없는데 대충 가방을 챙겨놓고 저녁식사를 했다. 남동생은 매일 200km 가까운 거리를 운전하느라 수고했고 반찬거리, 소주, 막걸리 사 댄다고 돈도 많이 써서 같은 형제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3월 26일(수)
일주일 전 도착했을 땐 봉오리상태이던 동백이 거의 만개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 근처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동백, 수선화, 진달래, 목련을 찍었다. 동백이 지금 한창 잘 피어 멀리 위미리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동생은 오늘 가지 않고 하루 더 있다가 내일 부산으로 간다고 해서 여동생 부부와 나만 오늘 돌아 가면 된다. 나는 12시에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동생부부는 12:30 사천가는 비행기를 탄다. 자주 모이기는 해도 형제들이 사는 곳은 서울 수원 부산 진주로 흩어져 있다.
해마다 유월에 수국과 한라산철쭉을 보러 왔는데 올해는 막내동생이 토지수용대책위원장을 맡아서 시간이 잘 나지 않을 것 같다. 이전해 갈 농지도 물색해야 하고 어린 과수와 조상묘도 옮겨야 하니 올 한해는 바쁘다. 올해까지만 과수원 일을 하고 나면 내년부터는 당분간 농사일이 없을 테니 언제든지 제주를 오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집이 돌아 오니 제주에서 찍어 온 사진 3천장이 나를 쉬지도 못하게 한다. 사진정리하고 보내 줄 사람에게 보내 주고 동영상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야 하니 1주일 이상은 pc앞에서 작업해야 할 것이다. 할 일이 없는 것보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