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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도 세련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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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빈민운동을 하던 20년 전의 일이다. 철거민들이 주택공사 사업단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흔히 양 편이 살벌하게 대치된 경우에는 누가 흥분해서 한 마디 툭 던진 말이 불씨가 되어 순식간에 뒤엉켜 치고 받게 된다. 부득이 내가 나서서 양 쪽의 흥분을 갈아 앉히고 이해를 시키면서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중이었다.
독선, 아집, 편견, 집착 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각기 독립된 단어들이 아니라 종합 셋트로 함께 붙어 다닌다. 즉 편견을 가졌다면 아집과 집착 ,독선을 골고루 균형 있게 갖추게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을 하고 있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적당한 지식과 교양으로 치장되어 있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신앙으로 포장되어 있으면 MRI 촬영을 해도 발견하기 힘들다. 자기 신념을 지킬 줄은 알지만 성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테러범 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인간이 항상 모든 것을 알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편견이 세련되어 마치 편견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은 내재론적 해석을 취한다. 이런 입장을 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서를 바라보는 어떤 객관적인 시각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저 ‘성경 구절에 이렇게 쓰여 있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판단의 근거를 두고 있는 성경구절들이 어떻게 해서 오늘의 우리의 손에 전달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 편견도 세련되면 고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