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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 의학과 의료
-제2부. 첨단 의학과 세계관-
과목 : 기독교 세계관과 치유윤리
교수 : 김경호
발표자 : 박사 3학기 황금주
4장. 첨단의학의 세계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의학(의술)이 가치 중립적이지 않고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성과 밀접한 관계성을 맺고 있다면, 첨단의학에서 그에 상응하는 세계관 또는 종교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논의를 위해 먼저 세계관의 정의와 세계관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관과 종교
▶ 사이어(James Sire)- “이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틀릴 수도 있는 가정들)들이다”
▶ 왈쉬(Brian J. Walsh)와 미들턴(Richard middleton) - “신앙은 인간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세계관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신앙적 결단이 우리의 세계관의 윤곽을 정해준다”
▶ 홈즈(Arthur F. Holmes) - “세계관을 인간의 신념체계라고 규정할 때 이 신념을 종교로 대치해야 한다“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 “개인의 전 이론적인 신념과 태도 그리고 가치관의 통일적인 관점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
▶ 카이퍼(Abraham Kuyper) - “종교는 인간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쉐퍼 – “인본주의는 오늘날의 종교가 되었다”
2. 새로운 유사 종교의 탄생
오늘날의 첨단의학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적 배경을 살펴본다.
▶ 쉐퍼 – 우리 시대의 세계관을 “유물론적 인본주의”라고 정의 함.
▶ 홈즈 – 인본주의를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와 유신론적 인본주의로 구분함.
▶ 자크마리탱 – 신 중심적 인본주의와 인간 중심적 인본주의로 구분하여 전자만이 진정한 인본주의 일 수 있다고 주장.
▶ 맥그레거 – 인간 중심적 인본주의에 대해 인간주의(Hominism)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을 물질세계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보고 인간의 독특성이나 본질을 부인하는 성격을 반영하였다.
▶ 쿠르츠 – 인본주의의 특성을 인간을 물질세계의 일부로 이해하고, 초자연적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절대 가치의 부인에 둠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상대화하였다. 여기에 인본주의의 희망의 원천으로서 과학주의를 추가하고 있다.
▶ 사르트르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저서에서 그의 낙관이 인간의 행동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 딕슨(Patric Dixon)- 인간복제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면서 “역사적으로 가능 일은 누군가에 의해서 시행되었다”라고 말한다.
▶ 하웃즈바르트 -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이룩해 낸 진보의 수단, 이를테면 경제, 테크놀로지, 과학, 국가와 같은 것들은 오늘날 신으로서 자신들의 의사를 우리에게 부과하는 그러한 세력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 슈르만 – 기술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를 바빌론에 비유하고, 그 안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바빌론 포로 상태로 표현하면서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일에 경고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의학 또는 첨단 기술이 존재하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은... 홈즈가 주장한 유사 종교로서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과학적 인본주의’라는 신념인 것이다.
3. 의술의 종교성 – 유물론적 인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만남
▶ 바하니안(G. Vahanian) - “오늘날 마술은 과학으로, 신화는 기술로 치환되었다”
▶ 일리히(Ivan Illich) -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신화의 하나로 사제의 역할을 의사가 대행하게 된것”
▶ 바이츠제커 - “과학에 대한 믿음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믿음이 되었다”
이러한 의술이 실용주의와 결합하면서 생명 가치를 상대화하고 상품화하며, 실용성을 위해 목적 가치인 생명을 파괴하는 일도 의술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치 않고 행하는 아이러니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여기저기에서 몰렉과 맘몬 신으로 둔갑한 의술의 모습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없는 실용주의, 쾌락주의, 물질만능주의적 인본주의가 과학주의적 의술과 만났을 때, 의술은 막강한 세력이 되어 인간은 거기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기술을 우상화하기 보다는 기술의 힘을 이용해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체세포 복제를 통해 생명체의 조작을 넘어서 생명체의 창조라는 새로운 장을 연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이나, 1993년에 홀(Hall)과 스틸만(Steelman)이 인간복제 실험을 처음 시도한 이래 더욱 구체적인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인간복제 문제 등, 인간의 호기심은 그칠줄 모르고 이어져 가고있다.
인간복제 연구에 대해 「타임」지의 여론 조사의 결과는 절대적으로 부정적이었지만 연구는 진행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타임」지의 여론조사 결과 55%가 반대를 했지만 그런데도 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 자신들이 신뢰하는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도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서는 무시해 버림으로써 종교로서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며 현대의학은 스스로 바벨탑을 쌓고 있다. 의술은 인간의 요구이면 무엇이든지 연구하고 시행해주는 인본주의자들의 절대 종교가 된 것이다.
5장. 첨단의학의 우상들
유물론적 진화론
유물론적 진화론에 대해 깊이 논의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의과대학 교육뿐 아니라 모든 교육이 이 가설을 마치 진리인 양 취급하는 근거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즉, 진화론은 과학이며, 따라서 중립적이지만 창조론은 편견을 가진 믿음이라는 전제 위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교육된 의료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정할 근거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의료의 비인간화를 초래할 것이다. 유전학의 발전으로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가설임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사상임에 틀림이 없다.
진화론의 뿌리가 인본주의에 있고 진화론 제창 당시 인본주의자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결국 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전쟁, 살육, 독재, 인간의 기계화, 비인간화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면 신을 떠난 인간이 쌓은 바벨탑이 곧 진화론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임을 알아야 한다. 유물론적 진화론은 인간을 영과 육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지 못하며,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라 진화론적 차등이 있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2. 실용주의,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다수를 위한 최대 행복’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이론이며, 따라서 공리주의자의 도덕 혹은 윤리에서 ‘선’이라는 개념을 정하는 기준은 곧 ‘행복’을 의미한다.
실용주의는 ‘프라그마타’(행동, 실무, 사업)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용어로 19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퍼스, 제임스, 듀이 등에 의해 정립되었으며, 진리는 현실적으로 적용하고 행동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실제로 장기를 얻기 위해 임신을 한 예들이 소개된 자 있다. 즉, 복제라는 기술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이를 가지는 일이 있었는데 실용주의, 공리주의가 이념이 되면 이를 위해 절대 가치가 이용되는 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3. 유전학적 결정론
문예 부흥 이후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철학과 뉴턴의 기계론적 물리학에 진화론과 유물론적 세계관이 가세하면서 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세계관은 오로지 물질의 인과관계만으로 만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유물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이다. 즉, 모든 현상이 물질로 환원되며 인간도 물질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정론의 영향은 의학적 영역 밖에서도 이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개인의 부당한 행위나 심지어 범죄까지도 유전자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인간 사회에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강간을 하는 사람들이나 흉악범들은 그런 행동을 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로 환원해 버릴 때 이 사회의 범죄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4. 과학주의
과학주의에서 진리란 실험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며 무전제의 중립적인 것이다. 과학주의는 인과율에 따르는 기계론적 결정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과학주의 방법론만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나아가 과학주의는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을 과학적 방법론에 두는 낙관주의적 신념이다.
업적 지향적 과학주의 사고의 결과로 의학 영역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 낸 위머트(Ian Wilmut)는 뒤늦게 인간복제에 이 기술이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인간복제의 필요성이 없을 뿐 아니라 비인간적인 일이라고 말하였지만 그 기술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버렸다.
과학주의는 교회에도 스며들어와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카운슬링이 심리학을 과학적이라는 전제하에 진리처럼 수용한다는 점이다. 과학적 관찰 방법으로 심리학이 발견한 인간 이해는 인간의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간의 당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성경은 당위성을 가르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죄의 고백을 전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르치고 있다.
5. 민주주의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누스가 회심한 이후 14세기 동안 정치와 종교가 일체였으나 기독교의 영향이 정치 영역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유럽의 경우 문예부흥 이후 정치 혁명을 통해, 미국의 경우 1776년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에 의해 미국의 헌법과 권리 장전이 기초되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인본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미국 사회로
부터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제시켜 나간 것이다.
의료 영역에도 민주주의가 결정권을 주도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즉, 절대 원리가 무시된 채 투표에 의해 다수결로 상대적인 결정을 하는 일이 흔해진 것이다. 낙태나 안락사의 결정이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의료 영역에서 절대 가치인 생명을 상대화시키는 일에 민주주의가 하나의 주의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6.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은 패스워드를 ‘무엇이든’(whatever)이라고 표현할 만큼 모든 것에 대해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주장하고 의미의 절대화보다는 상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을 ‘개별적 사상’ 또는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중심성에서도 벗어나 탈 인간 중심주의와 탈정치화, 탈역사화를 표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엇이든(whatever) 진리’라는 인식은 대체의학이나 뉴에이지 의학 이라는 이름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방법들이나 고대 종교의 신앙에 근거한 의료행위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제거해 주었다.
▶ 현대의학이 넘을 수 없는 난제들 – 인간 수명의 한계, 만성질환 극복의 한계(암,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에이즈)등, 의료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일반인의 지나친 믿음과 기대감, 문명사회에서 많이 발생하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같은 증상들, 나이가 들면서 노화로 발생하는 증상들, 일반인들이 의료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시간적, 경제적, 전달 체계적 어려움, 영적 기갈을 해결할 수 없는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인 생의학 모델의 의료가 가지는 한계.
7. 상업주의,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은 명백히 반기독교적이다. 경제적 이윤을 최대화하고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며 강자를 우상화하고 경제적 생산성에 인간을 종속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은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의 근본적인 의도를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 -미구에즈 보니노-
제약 사업이 표방하는 고귀한 뜻과는 달리 회사의 이윤 추구를 위한 과대광고나 효과의 조작, 부작용 숨기기 등은 생명보다 상업주의를 우위에 둔 결과라 할 수 있다.
“거품이 예고되는 바이오 벤처”
유전자지도, 인간복제 등이 일상어가 되어가면서 소위 바이오 벤처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의 오랜 관심사인 생명의 신비가 완전히 벗겨지고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정부와 기업이 생명의 산업화, 즉 바이오 벤처를 미래 산업으로 부르짓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돈 냄새에 대해 본능적인 후각을 가진 투자자들도 생명공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일반인들도 잔뜩 궁금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바야흐로 ‘바이오 벤처 시대’가 도래하는 듯하다.
이 기사에는 유전공학을 발전시킨 당위성이요 동기인 인도주의적 목표와 순수성은 온데 간데 없다. 아직 연구도 기초단계에 있는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바위오 벤처를 세워서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기업과 정부의 단합된 모습만을 읽을 수 있다.
6장. 생의학 모델 의료의 반성
첨단의학의 기여와 우려되는 위험성
첨단의료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흔히 21세기는 생명공학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미 20세기 의학의 발달이 보여준 결과들에 대해서도 감탄을 하고 있다.
항생 물질의 발달로 인한 전염병의 극복, 장기 이식, 심근경색증 치료, 소아백혈병, 임파선 암 등 몇 종류의 암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항암치료의 발달로 몇몇 암의 완치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편 유전공학에 의한 제품들도 이미 임상의학에 사용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의 진전도 놀랄 만한 것이다. 비록 단일결함 유전자 질환이고 아직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증복합성 면역결핍증(SCIDS) 환자의 유전자 치료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30억 쌍에 이르는 DNA 염기 쌍에 존재하는 인간의 유전자를 모두 밝혀내는 작업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가 예상보다 일찍 완성되었다. 이것은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지만 컴퓨터의 발달이 선행되지 않았더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첨단의학의 발달에 대해, 특히 유전자 기술을 응용하는 의학 분야에 대해서는 기대감과 우려감이 공존하고 있다.
2. 생의학 모델은 의료의 원칙에 충실한가?
생명의료 윤리의 원칙은 다음 네 가지 혹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즉, 비첨과 차일드리스가 주장한 네 가지 원칙인 ①자율성 존중의 원칙, ② 악행 금지의 원칙, ③선행의 원칙, ④ 정의의 원칙이 있다. 한편 르빈(Carol Levine)이 제시하고 있는 원칙은 ①개인에 대한 존중, ②선행, ③정의로 압축되며 여기에서는 악행 금지와 선행의 원칙을 묶어서 취급하고 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기 이식의 발달로 제기된 뇌사 문제는 본질적으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뇌사는 장기이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필요하게 된 장기의 수급을 위해 요구된 어떤 목적을 가진 죽음의 정의다. 한국의 경우 법적으로 뇌사가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님) 뇌사 상태에 빠진 자녀의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미화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화의 이면에 장기를 내어 준 사람의 권리나 자율권은 철저히 짓밟히고 있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장기 기증을 부품을 빼주는 정도로 인식하고 가족 간에 직, 간접적인 강압으로 장기 기증을 요구하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를 카스(Leon R. Kass)는 “고상한 형태의 식인 행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유전자 치료의 선도자인 앤더슨(W.French Anderson)도 유전자 조작이 질병 치료의 목적이 아닌 신체의 변형이나 인간의 행동 변형에 사용되는 데 대해,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가 부주의로 변형되었을 때 복구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3. 의료행위의 동기: 연민 vs 생명의 신성함
자유 개념이나 인간의 자율권이 문예부흥과 인본주의 발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비치(Robert M. Veatch)에 의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의 문을 열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편지 글을 통해 도입한 ‘자유’ 개념은 후일에 의료윤리에서 환자의 자유와 자율권에 영향을 주었다. 의료행위에서 쉽게 ‘삶의 질’과 연계해버리는 ‘자유와 연민’을 의료윤리의 흔들리지 않는 근원으로 삼을 수는 없다. 불행히도 루터의 자유 개념은 많은 인본주의적 의료윤리학자들에 의해 의료에서 ‘환자의 절대 자율권’으로 번역 왜곡되어 버렸다.
루터가 말하는 자유는 오늘날 생의학 모델의 의료윤리에서처럼 인간의 자유를 절대화하지도 않고 인간의 자율성의 극대화를 꾀하지도 않는다. 자유의 근원과 자유의 목적이 분명하며, 속박하는 자유가 아니라 누리는 자유다.
그리스도의 의료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연민과 사랑’을 근거로 해야하는 것이며, ‘인간 자유의 극대화’나 ‘삶의 질의 극대화’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신성함의 절대성’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받아 섬기며 함께 누리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겸허하게 제자리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7장. 의료의 기초로서 성경적 세계관과 인본주의 세계관의 비교
성경적 세계관 : 창조, 타락, 구속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성경적 세계관의 출발점으로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창조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성경의 의료의 대상인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기독교적 인간관을 선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명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의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문화명령을 받은 청지기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가 정당한 의학을 발전시켜서 인류에 기여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이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는 행위이다. 생명의 기원과 생명의 시작 그리고 생명의 끝을 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기독교 인간관의 기본이다.
죄가 사탄에게 가져다준 승리는 아직도 유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담 이래 우리는 편만한 죄의 영향으로 왜곡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구속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건강을 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편만한 죄의 영향력 때문이며, 이로써 왜곡된 체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란 자신이나 타인 또는 자연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분리가 초래한 육체적인 영역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을 전인적으로 포함하는 부조화, 무질서, 불균형의 상태를 말한다.
오늘날 의료윤리의 논의에서 기본적인 질문이 되는 고통과 질병 그리고 삶의 질이나 죽음의 문제에 대해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그 이해와 해답을 찾는 것이 성경적 의료의 기초가 된다.
의술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손이 되는 것이므로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예수께서는 흔히 치유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가시적 증거를 보여주셨던 것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2장 28절에는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했고, 누가복음 9장 11절에도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리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을 종합해 볼 때 치유란 자신과 타인, 피조물과 하나님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창조 당시의 정상적인 관계, 즉 조화와 질서와 균형이 있는 관계로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의료를 통해 새로운 창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에 보조자로서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성경적 세계관과 의료
2. 대비 : 생의학 모델 의료와 성경적 의료의 세계관
유물론적 인본주의의 세계관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따라서 인간은 창조될 수 없으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물질로부터 우연해 의해 진화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은 진화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완성된 가치를 가질 수 없고 불완전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상대 가치의 증가와 발전을 위해서는 인간을 개조하고 창조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며, 하나님이 없는 그들로서는 이 일이 자신의 몫이 된다. 따라서 유전자 조작이나 인간복제도 진화론적 윤리의 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제한도 없이 이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의료는 인간의 진화라는 최고의 선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종말을 의미하며 곧 의료의 실패를 의미하게 된다.
가이슬러(Norman L. Geisler)는 생명의료 문제에서 하나님 노릇(playing God)과 하나님을 섬김(serving God)인가의 문제로 초점이 모아는 이 두 세계관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비교하였다.
<유대. 기독교와 세속적 인본주의의 세계관>
유대. 기독교 | 세속적 인본주의 |
창조가 존재한다 | 창조자는 없다 |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되었다 | 인간은 진화하였다 |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다 | 인간이 생명을 주관한다 |
생명의 신성함을 우선시하는 원칙 |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원칙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
< 생의학적 이슈에 대한 기독교인과 인본주의자의 견해 >
기독교적 입장 : 하나님을 섬김 | 인본주의적 입장 : 하나님 역할 |
자발적 치료 | 강제적 치료 |
인간의 삶을 향상 | 인간 생명을 창조 |
인간 생명을 고침 | 인간 생명을 재창조 |
인간 생명을 유지 | 인간 생명을 조작 |
유전자 조화 | 유전자 조작 |
자연과의 조화 | 자연을 지배 |
자연에 순응 | 자연에 군림 |
결국은 의술의 시행 대상이 되는 인간을 의료인이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 즉 의료인의 인간관은 의술의 적용과 방향이나 목표를 설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의료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에서부터 출발한다.
기독교적 인간관은 인간이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로 보기 때문에 전인적 접근이 결여되면 기독교적인 의료라 할 수 없다. 오늘날 의술을 단지 인간 육체의 부품들을 고치는 고도의 기술로서 숭배하게 된 결과 현대의학의 특징인 비인간화, 지나친 전문화가 초래되었고, 결국 의료에서 기독교적인 인간관을 포기했을 때 스스로 전인이기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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