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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ṇidahati [pa+ni+dhā] to put forth, put down to, apply, direct, intend; aspire to, long for, pray
for S v.156 (atthāya cittaŋ paṇidahiŋ).
ger. paṇidhāya S i.42=Sn 660 (vācaŋ manañ ca pāpakaŋ); S i.170
(ujuŋ kāyaŋ); A iii.249 (deva-- nikāyaŋ p.); iv.461 sq. (id.); Vbh 244 (ujuŋ kāyaŋ p.)=DA i.210.
Paṇidhāna (nt.) [fr. paṇidahati; cp. philosophical literature & BSk. praṇidhāna]
aspiration, longing, prayer VvA 270; Sdhp 344.
Paṇidhi (f.) [fr. paṇidahati; cp. BSk. praṇidhi Divy 102, 134, in same meaning.
The usual Sk. meaning is "spy"]
aspiration, request, prayer, resolve D iii.29, 276; S ii.99, 154; iii.256 (ceto˚);
정형구 Idha, bhikkhave, bhikkhū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ŋ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세상에서 수행승이 숲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한가한 곳으로 가서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몸을 바로 세우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여. <*성전협회>
S47:10
Ten[ah]ānanda, bhikkhunā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itabbaṃ.
그러면 아난다여, 비구로서는 어떤 것이라도 오직 깨끗이 믿을 만한 相들에 마음을 향해야 한다.
Tassa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ato pāmojjaṃ jāyati.
어떤 것이라도 오직 깨끗이 믿을 만한 相들에 마음을 향하는 그에게 歡喜心이 생긴다. .....
So iti paṭisañcikkhati – ‘yassa khvāhaṃ atthāya cittaṃ paṇidahiṃ, so me attho abhinipphanno.
Handa, dāni paṭisaṃharāmī’ti.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마음을 향하게 한 그 목적이 내게 성취되었다.
그러니 이제 나는 거두어들인다.’라고. <*카페>
Atta1 [ā + d + ta; that is, pp. of ādadāti with the base form reduced to d. Idg *d-- to; cp. Sk. ātta]
that which has been taken up, assumed. atta-- daṇḍa, he who has taken a stick in hand,
a violent person, S
ādadāti : [ā + dā + a] takes.
attaññutā
attasammāpaṇid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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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해의 길 Netti.[PTS29]
Imāni bhavaṅgāni yadā samaggāni nibbattāni bhavanti, so bhavo. Taṃ saṃsārassa padaṭṭhānaṃ.
그 존재[를 이루는] 부분들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것이 있다. 그 때 그것이 존재(有)이다.
그 [존재는] 윤회의 근접요인이다.
Niyyānikalakkhaṇo maggo. Taṃ nirodhassa padaṭṭhānaṃ.
길(道)은 벗어나게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 [길은] 소멸의 근접요인이다.
Titthaññutā pītaññutāya padaṭṭhānaṃ.
훌륭한 스승을 아는 것은 희열을 주는 스승을 아는 것의 근접요인이다.
Pītaññutā mattaññutāya padaṭṭhānaṃ.
희열을 주는 스승을 아는 것은 향상과 퇴보의 정도를 아는 것의 근접요인이다.
Mattaññutā attaññutāya padaṭṭhānaṃ.
향상과 퇴보의 정도를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의 근접요인이다.
Attaññutā pubbekatapuññatāya padaṭṭhānaṃ.
①자신을 아는 것은 이미 지은 복덕의 근접요인이다.
Pubbekatapuññatā paṭiorūpadesavāsassa padaṭṭhānaṃ.
②이전에 지은 복덕은 알맞은 곳에 사는 것의 근접요인이다.
Patirūpadesavāso sappurisūpanissayassa padaṭṭhānaṃ.
③알맞은 곳에 사는 것은 훌륭한 이가<*를> 의지하는 조건의 근접요인이다.
Sappurisūpanissayo attasamāpaṇidhānassa padaṭṭhānaṃ.
④훌륭한 이가<*를> 의지하는 조건은 자신을 잘 유지하는 것의 근접요인이다.
Attasa-m-āpaṇidhānaṃ sīlānaṃ padaṭṭhānaṃ.
⑤자신을 잘 유지하는 것은 계(戒)의 근접요인이다.
Sīlāni avippaṭisārassa padaṭṭhānaṃ.
계는 후회 없음의 근접요인이다.
Avippaṭisāro pāmujjjassa padaṭṭhānaṃ.
후회 없음은 행복(悅樂)의 근접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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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경(A4:31) 1. Cakkasuttaṃ
31. ‘‘Cattārimāni, bhikkhave, cakkāni, yehi samannāgatānaṃ devamanussānaṃ catucakkaṃ vattati,
yehi samannāgatā devamanussā nacirasseva mahantattaṃ vepullattaṃ pāpuṇanti bhogesu.
Katamāni cattāri?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번영의] 바퀴가 있어서
이것을 구족한 신과 인간들은 이 네 가지 바퀴를 굴리게 되고
이것을 구족한 신과 인간들은 오래지 않아 재물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무엇이 넷인가?
Patirūpadesavāso, sappurisāvassayo [sappurisūpassayo (sī. syā. kaṃ. pī.)],
attasammāpaṇidhi, pubbe ca katapuññatā –
③적당한 지역에 사는 것, ④참된 사람을 의지하는 것,
⑤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②전생에 지은 공덕이다.
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cakkāni, yehi samannāgatānaṃ devamanussānaṃ catucakkaṃ vattati,
yehi samannāgatā devamanussā nacirasseva mahantattaṃ vepullattaṃ pāpuṇanti bhogesū’’ti.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번영의] 바퀴가 있어서
이것을 구족한 신과 인간들은 이 네 가지 바퀴를 굴리게 되고
이것을 구족한 신과 인간들은 오래지 않아 재물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Patirūpe vase dese, ariyamittakaro siyā;
Sammāpaṇidhisampanno, pubbe puññakato naro;
Dhaññaṃ dhanaṃ yaso kitti, sukhañcetaṃdhivattatī’’ti.
2. “적당한 지역에 살고 성자와 친하게 지내고
자신을 바른 흐름에 두고 전생에 공덕을 지은 사람,
그에게 곡식과 재물과 명예와 행복이 굴러온다.”
paṭhamaṃ;
대림스님 역 註>
125) 디가 니까야 제3권 [십상경](D34)에도 나타나고 있다.
126) 만일 전에 불신 등을 가졌다면 그런 것들을 버린 뒤 믿음 등에 확고하게 서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지혜롭게 두는 것이라고 복주서는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다.
2. 작은 법문의 품 4. 위대한 축복의 경 4. Maṅgalasuttaṃ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Atha kho aññatarā devatā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ā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Ekamantaṃ ṭhitā kho sā devatā bhagavantaṃ gāthāya ajjhabhāsi –
2. 그 때 마침 어떤 하늘나라 사람이 한 밤중을 지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 숲을 두루 비추며
세상에서 존귀한 님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다가와서 그 하늘사람은 세존께 시로써 이와 같이 말했다.
261.
‘‘Bahū devā manussā ca, maṅgalāni acintayuṃ;
Ākaṅkhamānā sotthānaṃ, brūhi maṅgalamuttamaṃ’’.
3. [하늘사람] “많은 하늘나라 사람과 사람들,
최상의 축복을 소망하면서 행복에 관해 생각하오니, 최상의 축복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소서.”
262.
‘‘Asevanā ca bālānaṃ, paṇḍitānañca sevanā;
Pūjā ca pūjaneyyānaṃ [pūjanīyānaṃ (sī. syā. kaṃ. pī.)], etaṃ maṅgalamuttamaṃ.
4. [세존]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④슬기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③Patirūpadesavāso,적당한 지역에 사는 것, ④sappurisāvassayo,참된 사람을 의지하는 것,
⑤attasammāpaṇidhi,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②pubbe ca katapuññatā전생에 지은 공덕.>
263.
‘‘Patirūpadesavāso ca, pubbe ca katapuññatā;
Attasammāpaṇidhi [attasammāpaṇīdhī (katthaci)] ca, etaṃ maṅgalamuttamaṃ.
5. ③분수에 맞는 곳에서 살고, ②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⑤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4.
‘‘Bāhusaccañca sippañca, vinayo ca susikkhito;
Subhāsitā ca yā vācā, etaṃ maṅgalamuttamaṃ.
6.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여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5.
‘‘Mātāpitu upaṭṭhānaṃ, puttadārassa saṅgaho;
Anākulā ca kammantā, etaṃ maṅgalamuttamaṃ.
7.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6.
‘‘Dānañca dhammacariyā ca, ñātakānañca saṅgaho;
Anavajjāni kammāni, etaṃ maṅgalamuttamaṃ.
8. 나누어 주고 정의롭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며, <*saṅgaha:4攝>
비난받지 않는 행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7.
‘‘Āratī viratī pāpā, majjapānā ca saṃyamo;
Appamādo ca dhammesu, etaṃ maṅgalamuttamaṃ.
9. 악한 행위를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8.
‘‘Gāravo ca nivāto ca, santuṭṭhi ca kataññutā;
Kālena dhammassavanaṃ [dhammasavaṇaṃ (katthaci), dhammasavanaṃ (sī. ka.)], etaṃ maṅgalamuttamaṃ.
10.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69.
‘‘Khantī ca sovacassatā, samaṇānañca dassanaṃ;
Kālena dhammasākacchā, etaṃ maṅgalamuttamaṃ.
11.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70.
‘‘Tapo ca brahmacariyañca, ariyasaccāna dassanaṃ;
Nibbānasacchikiriyā ca, etaṃ maṅgalamuttamaṃ.
12. 감관을 수호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71.
‘‘Phuṭṭhassa lokadhammehi, cittaṃ yassa na kampati;
Asokaṃ virajaṃ khemaṃ, etaṃ maṅgalamuttamaṃ.
13.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72.
‘‘Etādisāni katvāna, sabbatthamaparājitā;
Sabbattha sotthiṃ gacchanti, taṃ tesaṃ maṅgalamuttama’’nti.
14. 이러한 방법으로 그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아니하고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Maṅgalasuttaṃ catutthaṃ niṭṭhitaṃ.
소치는 사람의 긴 경 M33
[주) 본경은 앙굿따라 니까야 「소 치는 사람 경」(A11:18)과 같다.]
3.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춘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엇이 열하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 물질을 알지 못한다. ② 특징에 능숙하지 못하다.
③ 진드기를 제거하지 않는다. ④ 상처를 잘 싸매지 않는다.
⑤ 외양간에 연기를 지피지 않는다. ⑥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한다. ⑦ 마시는 물을 알지 못한다.
⑧ 길을 알지 못한다. ⑨ 방목지에 능숙하지 못하다. ⑩ 젖을 남김없이 다 짜 버린다.
⑪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久參)이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을 특별히 공경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춘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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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titthaṃ jānāti?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te kālena kālaṃ upasaṅkamitvā na paripucchati, na paripañhati –
‘idaṃ, bhante, kathaṃ? Imassa ko attho’ti?
Tassa te āyasmanto avivaṭañceva na vivaranti, anuttānīkatañca na uttānī karonti,
anekavihitesu ca kaṅkhāṭhānīyesu dhammesu kaṅkhaṃ na paṭivinoden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titthaṃ jānāti.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⑥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율(경장.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에게 자주 다가가서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이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존자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 의심을 없애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pītaṃ jānāti?
Idha, bhikkhave, bhikkhu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na labhati atthavedaṃ,
na labhati dhammavedaṃ, na labhati 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pītaṃ jānāti.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⑦ 마시는 물을 알지 못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래가 선언하신 법과 율이 설해질 때
주석서를 의지하여 생긴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하고,
성전을 의지하여 생긴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하며,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시는 물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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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añca, bhikkhave, bhikkhu anavasesadohī hoti?
Idha, bhikkhave, bhikkhuṃ saddhā gahapatikā abhihaṭṭhuṃ pavārenti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tatra bhikkhu mattaṃ na jānāti paṭiggahaṇāya.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anavasesadohī hoti.
1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⑩ 젖을 남김없이 다 짜 버리는가?
비구들이여, 믿음 있는 장자들이 의복, 탁발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그가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비구를 초청하면, 그는 그것을 취함에 있어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젖을 남김없이 짜버린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su na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na mettaṃ vacī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na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1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⑪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久參)이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을 특별히 공경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久參)이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에 대해, 눈앞에 있건 없건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건 없건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건 없건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久參)이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을 특별히 공경하지 않는다.
‘‘Imehi kho bhikkhave ekādas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abhabbo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tuṃ.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춘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17. ∼ 27.
[* 1. 사대와 사대소조색이 물질임을 아는 것.
2. 행동 특징으로 愚賢을 아는 것.
3. 진드기 제거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
4. 육근 단속은 상처 치료
5. 법을 전달하는 것은 연기를 피우는 것
6. 법을 전수 받는 것은 물 마실 곳을 아는 것
7. 전수 받은 법을 알아듣는 것은 물 마실 줄 아는 것
8. 팔정도가 나아가야 할 방도임을 아는 것
9. 사념처가 마라의 영역이 아닌 수행처임을 아는 것
10. (젖을) 남겨둘 줄 아는 것이 지족
11. 구참비구들을 자애의 마음으로 대함]
...
성전협회 역
10.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많이 배우고 전승에 정통하고 가르침을 기억하고 계율을 기억하고
논의의 주제를 기억하는 수행승들에게 때때로 찾아가
‘존자여, 이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 존자들은 그에게 열려지지 않은 것을 열지 않으며,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여러 가지 종류의 의심스러운 현상에서 의심을 제거해 주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바로 수행승이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1.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마실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여래가 말한 가르침과 계율이 설해질 때에 그 의미에 감동하지 못하며,
그 진리에 감동하지 못하며, 그 가르침과 더불어 희열을 경험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바로 수행승이 마실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12.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바로 수행승이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3.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풀 뜯은 장소에 능숙하지 못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네 가지 새김의 토대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수행승이 풀 뜯는 장소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다.
14.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마르도록 우유를 짜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에게 믿음이 있는 장자가 의복, 음식, 처소, 필수약품을 챙겨서 초대하면,
그 수행승은 그것을 받는 데 한도를 모른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바로 수행승이 마르도록 우유를 짜는 것이다.
15.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이러한 수행승들 즉, 장로, 존자, 출가한 지 오래된 원로,
승가의 아버지, 승가의 우두머리를 최상의 존경으로 공경하지 못하는 것인가?
세상에서 수행승이 수행승들 즉, 장로, 존자, 출가한 지 오래된 원로, 승가의 아버지,
승가의 우두머리에 대하여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애로운 신체적 행위로 대하지 못하고,
자애로운 언어적 행위로 대하지 못하고, 자애로운 정신적 행위로 대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수행승이 이러한 수행승들 즉, 장로, 존자, 출가한 지 오래된 원로,
승가의 아버지, 승가의 우두머리를 최상의 존경으로 공경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열한 가지 조건을 갖춘 수행승은 가르침과 계율 가운데
성장, 발전, 번영을 이룩할 수 없다.
법을 앎 경(A7:64) 대림스님 역
‘‘Attaññū ca kathaṃ hoti? Idha, bhikkhave, bhikkhu attānaṃ jānāti –
‘ettakomhi saddhāya sīlena sutena cāgena paññāya paṭibhānenā’ti.
No ce, bhikkhave, bhikkhu attānaṃ jāneyya –
‘ettakomhi saddhāya sīlena sutena cāgena paññāya paṭibhānenā’ti, nayidha ‘attaññū’ti vucceyya.
Yasmā ca, bhikkhave, bhikkhu attānaṃ jānāti –
‘ettakomhi saddhāya sīlena sutena cāgena paññāya paṭibhānenā’ti, tasmā ‘attaññū’ti vuccati.
Iti dhammaññū, atthaññū, attaññū.
5.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만일 비구가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를 [설했다].
‘‘Mattaññū ca kathaṃ hoti?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가 되는가?"
6.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그래서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때를 아는 자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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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해의 길 Netti.[PTS50]
Paṭirūpadesavāso vivekassa ca samādhissa ca sādhāranaṃ padaṭṭhānaṃ.
적당한 곳에 사는 것은 떠남<*閑居>과 삼매를 위한 공통의 근접요인이다.
Sappurisūpanissayo tiṇṇañ ca aveccapasādānaṃ samathassa ca sādhāraṇaṃ padaṭṭhānaṃ.
훌륭한 사람이 의지하는 것은 세 가지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사마타를 위한 공통의 근접요인이다.
Attasammāpaṇidhānaṃ hiriyā ca vipassanāya ca sādhāraṇāṃ padaṭṭhānaṃ.
자신에 대한 바른 서원은 양심과 위빠싸나를 위한 공통의 근접요인이다.
<앞 PTS29
Attasa-m-āpaṇidhānaṃ sīlānaṃ padaṭṭhānaṃ.
자신을 잘 유지하는 것은 계(戒)의 근접요인이다.
뒤 PTS186
Vācaṃ manañca paṇidhāya sammā, kāyena pāpāni akubbamāno;
언어와 정신을 올바로 세우고, 몸으로 악함을 행하지 않는 자,>
경전이해의 길 Netti.[PTS141]
Sāmākapatthodanamattameva hi, paccekabuddham hi adāsi dakkhiṇaṃ;
Vimuttacitte akhile anāsave, araṇavihārimhi asaṅgamānase.
단지 좁쌀 한 발우 만큼의 밥이지만
해탈한 마음의, [마음의] 황무지가 없는, 번뇌 없는, 다툼 없이 머무는, 끄달림(染着) 없는 정신을 지닌,
홀로 깨달은 분께 공양을 올렸다.
Tasmiñca okappayi dhammamuttamaṃ, tasmiñca dhamme paṇidhesiṃ mānasaṃ;
Evaṃ vihārīhi me saṅgamo siyā, bhave kudāsupi ca mā apekkhavā.
그 때 최상의 법을 신뢰하게 되었다.
또한 그때 법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 意가 法들을 받들어 담았더랬다. / 法에서 意가(/를) (잘) 향했다.
.....cf. nimitte cittaṃ paṇidahitabbaṃ>
이와 같이 머무는 이들과 나의 만남이 있기를.
결코 존재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기를.
Tasseva kammassa vipākato ahaṃ, sahassakkhattuṃ Kurusūpapajjatha
Dīghāyukesu amamesu pāṇisu, visesagāmīsu ahīnagāmisu.
그 업의 과보로 나는 천 번을 꾸루에 태어났다.
[그곳은] 오랜 수명을 가진 이, 내 것을 갖지 않는 생명을 지닌 이,
탁월한 곳으로 가는 이, 열등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 이가 [있는 곳이다.]
Tasseva kammassa vipākato ahaṃ, sahassakkhattuṃ tidasopapajjatha;
Vicitramālābharaṇānulepisu, visiṭṭhakāyūpagato yasassisu.
그 업의 과보로 나는 천 번을 삼십 삼천의 천신으로 태어났다.
여러가지 색깔의 화환과 장식과 기름을 바른 명성을 지닌 이들 중에서
훌륭한 몸을 지닌 이로 [태어났다.]
Tasseva kammassa vipākato ahaṃ, vimuttacitto akhilo anāsavo;
Imehi me antimadehadhāribhi, [142] samāgamo āsihitāhitāsihi.
그 업의 과보로 나는 마음이 해탈한 이, [마음의] 황무지가 없는 이, 번뇌 없는 이가 되었다.
[142쪽] 마지막 몸을 지닌 이, 이익과 불이익을 초월한 그들과 나의 만남이 있었다.
Paccakkhaṃ khvimaṃ avaca tathāgato jino, samijjhate sīlavato yadicchati;
Yathā yathā me manasā vicintitaṃ, tathā samiddhaṃ ayamantimo bhavo ti.
승리자이신 여래가 이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계를 지닌 이는 바라는 것을 이룬다.
나의 정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 이룬다.
이것은 마지막 존재이다.”
Idaṃ vāsanābhāgiyaṃ suttaṃ.
이것은 훈습에 관련된 경이다.
경전이해의 길 Netti.[PTS132]
Yo nindiyaṃ pasaṃsati, taṃ vā nindati yo pasaṃsiyo;
Vicināti mukhena so kaliṃ, kalinā tena sukhaṃ na vindati.
비난받아야 할 것를 칭찬하거나 칭찬받아야 할 것을 비난하는 이,
그는 지는 패를 입으로 고르고 있다. 그 지는 패로는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Appamatto ayaṃ kali, yo akkhesu dhanaparājayo;
Sabbassāpi sahāpi attanā, ayameva mahantataro kali;
Yo sugatesu manaṃ padosaye.
노름에서 모든 재산만이 아니라 자신조차 잃게 하는 것, 이 패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잘 가신 이에 대하여 정신을 분노에 빠뜨리는 것, 이것이 가장 크게 지는 패다.
‘‘Sataṃ sahassānaṃ nirabbudānaṃ, chattiṃsatī pañca ca abbudāni;
Yamariyagarahī nirayaṃ upeti, vācaṃ manañca paṇidhāya pāpakanti.
[133쪽] 나쁜 말과 나쁜 정신을 내어서
거룩한 이를 비난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10만 니랍부다의 해 동안 그리고 35 압부다의 해 동안.
<*S6:9 각묵스님 역 A4:3 대림스님 역
책망 받아 마땅한 것을 칭송하거나 칭송받아 마땅한 것을 책망하는 자
입으로서 최악의 패를 모은 것이니 그런 최악의 패로는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하리.
노름에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고 자기 자신까지 [잃는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오히려 하찮은 것일지니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더럽힌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아주 낭패스러운 것이 되노라.
성자들을 비난하는 자 말과 마음으로 악을 지어
10만과 36니랍부다 동안 그리고 5압부다만큼 더 지옥에 떨어질지니.”>
Idaṃ saṃkilesabhāgiyaṃ suttaṃ.
이것은 오염에 관련된 경이다.
경전이해의 길 Netti.[PTS186]
받아들여진 것과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의 둘 다에 해당하는 것
Tattha katamaṃ anuññātañ ca paṭikkhittañ ca?
그와 관련하여 받아들여진 것과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의 [둘 다에 해당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Kiṃ sūdha bhītā janatā anekā, maggo canekāyatano pavutto;
Pucchāmi taṃ gotama bhūripañña, kismiṃ ṭhito paralokaṃ na bhāyeti.
많은 사람들이 왜 두려워합니까? 길은 다양한 영역으로 설해졌습니다.
드넓은 반야를 가진 고따마여, 나는 이것을 묻습니다.
어디를 딛고 있는 자는 다음 세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Vācaṃ manañca paṇidhāya sammā, kāyena pāpāni akubbamāno;
Bahvannapānaṃ gharamāvasanto, saddho mudū saṃvibhāgī vadaññū;
Etesu dhammesu ṭhito catūsu, dhamme ṭhito paralokaṃ na bhāye’’ti.
언어와 정신을 올바로 세우고, 몸으로 악함을 행하지 않는 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많은 집에서 사는 자,
믿음이 있고 부드럽고 관대하며 친절한 자,
이 네 가지 법을 딛고 있는 자, 법을 딛고 있는 자는 다음 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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